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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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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1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06 09:00
조회
67
추천
1
글자
4쪽

그와의 불화8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꽃게탕과 따뜻한 밥, 그리고 반주로 곁들인 소주. L은 적이 묘한 표정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 그리고 절반은 변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줄곧 만나온 사람을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L을 대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에서 세월이 할퀸 흔적들을 제외한다면, 그 시절 자취방에서 밥상을 대하던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저물녘까지 놀다가 돌아온 어린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듯, 그녀는 흐뭇하게 L의 먹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흡사 단촐한 가족끼리의 저녁식사 같은 그 광경은, L에게는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녀는 비운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L이 함께 마실 것을 권하자, 손사래를 쳤다.

“나 술 안 마셔. 교회 다니거든.”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집안 곳곳에 십자가며, 성경구절 등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예전에도 교회를 다녔었나?”

“아니, 연서 가지면서부터.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수용시설에 있었거든. 지금도 거기서 근무해.”

“아이 이름이 연서구나.”

“응, 박연서.”

“잘 생겼네.”

L은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말했다.

“어릴 적엔 정말 예뻤는데, 점점 머리통이 커지더라. 지금은 군대에 있어. 얼마 전에 일병 진급했대. 그래도 귀엽지?”

“응... 귀엽네.”

지금 그 아이는, 그녀와 만나던 시절의 L보다 더 자라있었다. L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서 부러 고개를 처박고 우왁스레 밥을 퍼 넘겼다. 목이 메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그녀가 사진에서처럼 웃고 있었다. L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안하다... 그때 난 너무 겁이 났었어... 네가 정말 아이를 낳을 줄은 정말...”

입안에 가득 담긴 밥알 때문인지, 눈시울이 붉어진 탓인지, 목이 메어 말은 어눌한 비분절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미안하긴, 저 아이 때문에 내게 얼마나 행복한데. 너 잘못한 거 없어. 그땐 너랑 나, 둘 다 너무 어렸잖아. 나도 도망치고 싶었어, 근데, 저 아이가 내 뱃속에서 살고 있더라.”

L은 입안에 밥알이 그대로인 채 울고 말았다. 그녀가 휴지 몇 장을 건넸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네가 찾아올 거란 생각 했었어. 그리고 그때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해야지, 생각하고 있었어... 울지마, 체하겠다.”

L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그대로인 채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간간히 그녀가 채워준 소주잔도 꿀떡, 꿀떡, 삼켰다. 그녀와 아이가 지난 세월동안 겪어왔을 풍파를 L은 가늠해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모자의 다정한 모습은 더더욱 L의 마음을 후벼 팠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거뭇거뭇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목사가 될 거래. 지금 신학대학교 다니고 있어. 속이 깊은 아이야... 군대에서 꼬박꼬박 월급 모아서 선물을 준비해주더라. 난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

그녀의 자식자랑은 계속되었다. 아비 없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아비 없는 빈자리는 그렇게 채워졌다. 구하고, 의지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왔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어미의 속을 태운 적이 없었고, 지탄 받을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L은 난생처음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는 형편없이 취해버렸다. 시야는 형편없이 좁아진 탓에 눈을 치떠야 사물을 겨우 분간할 정도였고,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탓에 숨결도 거칠어졌다.

마음씨 좋은 그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L을 위해 아들의 방에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연신 중얼거리던 L은 어둠 속에서 흐른 눈물이 그대로인 채로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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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6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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