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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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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79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17 09:00
조회
41
추천
1
글자
4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J가 그녀를 처음, 아니 엄밀히 말하면 다시 만난 곳은, 어릴 적 추억을 돋게 만드는 연탄화로에다 매운 양념의 삼겹살을 굽는 고기집이었다. 주문을 넣고, 밑반찬과 소주가 먼저 나오고, 일행들과 서둘러 첫잔을 비울 즈음, 벌겋게 충혈된 연탄과 고기가 같이 나왔다. 그리고 앞치마를 두룬 여인네가 가위와 집게로 석쇠 위에 고기를 가지런히 얹어놓았다. 빈 잔에 소주를 다시 따랐다.

“팀장님, 한 말씀 하셔야죠?”

잽싸게 잔을 비운 과장이 J에게 잔을 건넸다.

“수고 많았어. 많이들 먹어.”

일제히 박수를 쳤다. 퇴근 후에 이어지는 팀원들과의 회식은 늘 그러했다. 몇 번의 박수가 강요되고 나면, 숙제처럼 술잔들이 줄을 서고, 그 숙제를 겨우 풀어내고 난 뒤에는 누군가가 잡아놓은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팀장이 자리를 뜨면, 그들의 회식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었다. 근 십여년째 이어져온 패턴이었다. 단지 나이를 먹었고, 직위가 바뀌었을 뿐.

집게와 가위를 든 여인네가 다시 나타나서 익힌 고기를 먹기 좋게 절단했다. 능숙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무심결에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가위질이 멈췄다. 어....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J는 그녀를 알아보았고, 그녀도 J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이야..,.”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 J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술잔 하나가 면전으로 튀어나왔다.

“팀장님, 제 잔 한잔 받으시죠, 헤헤.”

얼떨결에 술잔을 받는 사이, 그녀는 다른 테이블로 사라졌다.


“정말 예뻤어. 대학교 때에는 정말이지, 남자들이 줄을 섰어.”

J가 맥주로 목을 축였다.

“너도 좋아했었구나.”

“그러지 않을 수 없었지. 근데 뭐, 말 몇 마디도 제대로 섞어본 적은 없어. 그냥 연애편지 하나 품고 기회만 넘보다 말았지.”

“캬~ 연애편지! 요즘 애들도 그런 거 주고 받고 하나?”

얼마 전에 묶었다는 K가 새삼 감흥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야야, 저기 봐라” 총각인 L이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창밖에는 조금 전까지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남녀가 팔짱을 낀 채로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길가에 멈춰서서 밀담을 나누더니, 곧장 모텔 입구로 사라졌다.

“좋을 때다! 부럽다!”

“좋은 세상이야. 우리 때는 막 눈치보고, 지켜주고 뭐 그렇지 않았냐?”

“저런 애들이 연애편지를 알겠냐? 기껏 카톡이나 주고받다가 저렇게 기분나면 배 맞추러 가는 거지.”

“뭐, 솔직하고 좋네. 우리 땐 너무 가식적이었어.”

저마다 감상평을 쏟아냈다. 순식간에 남녀를 삼켜버린 모텔 입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내가 그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J는 조금 못 마땅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근데 그 여자는 널 알아봤다고?”

“그렇더라. 이름까지 잊지 않고 있더라고. 그다지 기억할 만한 일도 없었을텐데.”

“야, J야. 넌 왜 그리 순진하냐? 내가 여자들에 대해선 좀 아는데, 여자들은 말이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귀신같이 안다는 거야. 괜히 ‘여자는 요물이다’란 말이 나온 게 아니지.”

총각인 L이 J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그리고 먼저 그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는 건 말이지, 뭔가 의도가 있다는 거지.”

“무슨 의도?”

“그러니까.... 뭐, 좀 괜찮게 사는 것 같은데, 돈 좀 빌려달라거나 아님, 좀 외로우니까....헤헤헤.”

“야, 시덥잖은 소리 집어치우고, J 얘기나 좀더 들어보자.”

우리는 별 의미없이 잔을 부딪쳤다. J의 표정이 좀더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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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6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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