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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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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9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22 09:00
조회
52
추천
1
글자
4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매번 같은 음식, 안 질려?”

“응. 정말 맛있어. 어릴 때 할머니가 연탄화덕에 석쇠로 고기 구워주시던 생각도 나고. 어릴 때 그 고기가 동나기 전까지는 밥숟가락을 놓지 않았거든.”

J는 부러 과장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쉬이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언제부턴가 J는 주문한 고기를 반 넘어 남겼다. 게다가 J는 자신도 알거니와, 거짓말에는 당최 소질이 없었다. J는 스스로 겸연쩍은 마음에 소주잔을 입에 가져갔다.

“너 나... 좋아하지?”

순간 J는 입안에 소주를 뿜고 말았다. 어머, 그녀가 얼른 휴지를 꺼내어 J의 앞섬을 닦아주었다.

“농담이야, 농담. 어쩜 넌 예나 지금이나 똑같니?”

그녀가 웃었다. 사례가 들렸던 탓인지 J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좋아한다... J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J는 그녀가 일을 마칠 즈음, 계산을 치르고 고기집을 나왔다. 뒤따라 나온 그녀가 예의 팔짱을 꼈다.

“아까 농담한 거 때문에 기분 상했어?”

그녀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뭐...”

“다 늙은 여편네가 주책이다, 그치?”

“늙긴... 처녀라고 해도 믿겠는데.”

“어머, 너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아?”

그녀가 웃었다. J는 그녀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배후에 도사린 아픔과 고통 따위를 외면할 수만 있다면 내내 모르고 싶었다.

“새 운동화는 왜 안 신어?”

J가 물었다.

“응, 여기서 일하면 금방 더러워져. 아껴 신어야지. 울 아들 면회 갈 때나 신으려고...”

“그냥 신어.”

“아직 쓸 만해.... 그리고 정들어서 선뜻 버려지질 않네.”

함께 걸어가는 동안 내내 J의 눈은 그녀의 낡은 운동화에 묶여 있었다. 쓸 만하긴, 당장 내다버려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추레해 보였다. 버려야 할 것들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피곤한 발을 떠올리고는 J는 들릴락말락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이제는 익숙해진 고급 아파트 단지 초입에서 멈춰섰다.

“매번 고마워... 그리고 나 땜에 물린 고기 맨날 먹지 말고, 보고 싶으면 전화해.”

그녀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건넸다. J는 얼떨결에 메모를 받아들었다.

“그런 거 아냐. 정말 맛있다니까.”

“알았어. 고기 먹으러 오는 거지? 나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선뜻 대답하지 못한 J의 얼굴이 또 다시 벌게졌다. 촉수가 낮은 가로등 불빛이 J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가.”

“그래, 갈게.”

J가 돌아섰다.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J는 그저 이렇게만... 하고 생각했다. 맨날 물린 고기를 먹고 그녀를 만나고 그녀를 바래다주는 일이, 해서 그녀의 웃음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일들이 나날이 반복되기를 바랐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가 J에게 물었다. J는 말이 없었다. 그 즈음 총각인 L은 좌석등받이에 드러눕듯이 기댄 채 반쯤 엉덩이를 걸친 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고, 얼마 전에 묶었다는 K는 호출벨을 눌러 메뉴판을 주문했다.

“야, 배 안 부르냐?” 내가 묻자, K는 친구를 불렀다고 했다. 물론 우리와 같은 동창이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열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러길 바랐어. 그냥 그대로....”

J가 말끝을 흐렸다. 단언컨대, 그런 관계는 성립되질 않는다. 만물유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따라서 J의 바람은 불가능한 것이다. 가망없는 기대를 가진 자의 눈빛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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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40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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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3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1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4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5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7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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