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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일반소설

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77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05 13:00
조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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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3쪽

그와의 불화7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L이 기억하는 두 번째 여인은 천안에 살고 있었다. 대학시절, 한동안 L은 그녀의 자취방을 무시로 드나들었다. 그녀의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내 여동생과 만난다고 들었습니다.”

긴 여름방학이 끝난 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느닷없이 학교 로비로 찾아온 오빠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잔뜩 억누른 목소리였다.

“당신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이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 L은 당황했다.

“여동생은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제 여동생을 설득해주세요. 당신도 아직 아이를 키울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예. 뭐 얘기해 보겠습니다.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개새끼...”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L은 그가 떠난 뒤에도 한참동안 로비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곧장 군대에 자원입대를 하였다. 비겁한 짓이었지만, L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처음엔 그녀와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곧 고된 훈련 속에 까마득히 잊혀졌다. 그 뒤 제대를 했고, 다시 복학하고 난 뒤에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L의 밤은 다시 무수한 여인들로 채워졌지만, 이전과는 달리진 점도 있었다. 피임에 더욱 신경쓰게 되었다.

동창회 사무실에 수소문하여 어렶리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고, 먼저 전화통화를 했다.

어, 그래. 정말 오랜만이야, 이십년이 넘었네 ....천안까지? 그래, 와... 다행히 그녀는 L의 전화를 반겨주었다.

“정말, 계속할 거야?”

하초가 물었다.

“그래봐야, 세 명이야.”

“뭘, 확인하고 싶은 건데? 혹시라도 아직까지 사랑이란 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궁금해졌어. 내 과거에 대해서.”

천안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L은 내내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내가... 개새끼였나?”

“이봐, 다 지난 일이야, 자학하진 말자고.”

하초가 위로했다.


저물녘에 당도한 그녀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계단을 오르는 L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스무 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녀는 반갑게 L을 맞아주었다.

“어서 와. 어쩜 하나도 안 변했니? 짧은 머리도 그대로고.”

“그래... 너도 뭐, 그대로네.”

“무슨 그런 거짓말을... 근데 싫지는 않네?”

그녀는 살풋 웃어보이고는 곧장 주방으로 갔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맛난 저녁 차려줄게.”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어정쩡하게 거실에 서 있던 L의 시선이 벽면의 사진 액자에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스무 살의 자신과 초로의 그녀가 다정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L은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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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6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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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1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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