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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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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6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17 17:00
조회
63
추천
1
글자
5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뭐, 이젠 아이들도 다 컸고, 신랑은 해외 출장이 많아서 매번 빈집 지키는 일도 지루해서 소일거리 삼아 하는 거야.”

“계속 서 있던데, 힘들지는 않아?”

“힘들긴.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랑 수다 떨다보면 시간도 잘 가고 좋아.”

그녀가 웃자 깊은 눈밑의 애교살이 더욱 도드라졌다. 가장자리에 희미한 주름이 두 개 접혔다가 사라졌다. 예전의 갸름하던 턱 선은 조금 처져 있었고, 웃을 때 생기던 볼우물은 그에 비례해서 좀 더 깊어졌다. 그래서였을까? J가 보기에 그녀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예뻐 보였다.

“아까, 그 사람들 회사 동료들이야?”

“응. 우리 팀원들.”

“너, 되게 멋져 보이더라. 건배사 하는 것도 근사하고.”

그녀가 또 웃었다. 동굴처럼 깊고 서늘해지는 눈. 한때 저 눈빛에 안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근 이십여년이 지난 얘기지만.

“형은 잘 지내?”

“응, 바쁘지 뭐, 지금 미국에 나가 있어,”

“사업은 잘 되고?”

“응. 그럭저럭 괜찮은가봐. 난 자세히는 몰라. 그이가 워낙 말이 없는 편이잖아.”

졸업을 하자마자 그녀는 삼년 선배인 지금의 남편과 곧장 결혼을 했다. 말이 없고 조용한 선배였다. 연애에 대한 소식도 없이 곧장 날아든 청첩장에,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준비에 정신없던 J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일을 기억해냈다. 그 뒤로 처음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다행이네. 요즘 불황이라 다들 어려워하는데.”

“그렇지 뭐.”

편의점에서 산 냉커피는 어느새 얼음만 남았다. 이제 일어설 때가 된 것이었다.

“집이 어디야?”

J가 묻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이 근처에 살아, 그냥 걸어가도 돼.”하고는 일어섰다. J는 무심결에 그녀의 운동화를 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많이 닳아 있었다.

“바래다줄까?”

“직원들 있는 데로 가봐야 하지 않아?”

“아니. 내가 있으면 불편할 거야.”

“그래, 그럼 단지 앞까지만.”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자정의 거리는 불 밝힌 간판들과 사람들, 차량으로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어정쩡한 간격으로 두 사람은 천천히 그 길을 지났다. 불빛을 따라 두 사람의 그림자는 수시로 모양을 바꾸었다.

“다 왔어. 여기야.”

기분 탓일까. J는 한 정거장 남짓한 거리가 유독 짧게 느껴졌다.

“그래. 들어가.”

“아니야. 바래다줬으니까, 너 돌아가는 건 봐줘야지.”

그녀가 또 웃었다.

“그래. 그럼 갈게. 담에 또 보자.”

“그래, 잘 가.”

J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가다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아파트 단지 초입에 서 있었다. J의 시선을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J도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다시 걸었다. J의 그림자가 불빛을 따라 요동치고 있었다.


그날 이후, J는 그 고기집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뭐, 딱히 그녀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연탄구이가 당기더라고. 어차피 술자리는 피할 수 없고, 그 집이 맛도 괜찮고, 가격도 저렴하니까...”

궁색한 변명이었다. 어쨌든 J는 근 한달간을 하루가 멀다하고 그 가게를 찾았고, 거기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매번 J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왔어?”

“응.”

“오늘은 혼자네? 일행 있어?”

“아니, 와이프가 늦는다고 밖에서 저녁 해결하고 오래서...”

“그래... 그럼 오늘은 술은 먹지마. 여기 음식이 맛은 좋은데, 건강에는 별로야. 짜고 맵고.”

“딱 한병만 마실게. 반주로”

그녀는 음식을 내어왔고, J는 혼자 묵묵히 밥을 먹었다.

초저녁 손님들이 거나하게 취해 자리를 비울 즈음, 그녀가 앞치마를 벗고 맞은편에 앉았다.

“사장님한테 부탁했어. 친구가 와서 오늘 좀 쉬겠다고.”

“그래도 돼?”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시급인데 뭘.”

“괜히 미안하네. 나 때문에..”

“미안하면 술 사.”

J와 그녀는 고기집을 나왔다. 그녀가 양팔을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와, 얼마 만인지 몰라. 이렇게 밤에 놀러 나온 게.”

“일한 지 오래됐나봐?”

“한 삼년 됐지? 이래뵈도 내가 거기 아줌마 중에 왕고야. 주말도 없이...”

그녀가 말을 끊고 설핏 J의 눈치를 살폈다. 주말도 없이?

“그래도 돼? 형이 뭐라고 안 해?”

그녀의 안색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과장된 웃음기에 덮였다. 이내 볼우물이 파이고 눈밑 애교살이 뭉쳤다.

“사장님이 하도 사정을 해서... 내가 좀 손이 야물거든. 뭐, 딱히 주말에 쉬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렇구나.”

J는 내심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그녀가 갑자기 팔짱을 꼈다. 순간 구운 고기 내음이 훅, 끼쳐왔다.

“나 저거 사줘.”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크림맥주집 간판을 가리켰다.

“어떤 맛인지 한번 먹어보고 싶더라.”

팔짱을 낀 J와 그녀는 나란히 건물로 들어섰다. J는 팔꿈치에 느껴지는 그녀의 탄력이 불편했지만,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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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1 1 4쪽
»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4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3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7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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