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일반소설

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73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16 11:23
조회
58
추천
1
글자
4쪽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공통점이라고는 동갑에 같은 중학교 동창이라는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공통점이라고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흔네 살의 우리들은 체코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유래된 흑맥주를 팔고 있는 술집의 원탁에 모여 앉았다. 안주로는 젊은이들 취향인 오븐 피자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동창들의 모임이란 게 그러하듯이, 처음엔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담에는 각자의 지난 삶에 대한 소회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학창시절과 지난 삼십년간에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마땅한 화제 거리가 없었다.

- 애들이 몇 살이랬지?

- 응, 중2, 초6

- 잘 커?

- 잘 커

맥주를 마셨다. 의미 없는 건배처럼 싱거웠다.

- 사업은 잘 돼?

- 요즘 잘 되는 사람이 어딨냐? 다 겨우 유지하는 정도지.

새로운 안주가 나왔지만, 몇 점 집어먹다가 만다. 이미 목까지 차오른 맥주 탓이었다. 배도 부르고, 더 이상 얘깃거리도 없었다. 누군가가, 이제 그만 일어날까? 라고 말한다 해도 아무도 이견을 낼 친구는 없을 터였다. 그때였다.

“나, 얼마 전에 묶었어.”

난데없는 방점처럼 K가 말했다. 오~ 거의 동시에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아프냐?”

“응, 얼얼해.”

“난 둘째 낳자마자 묶었는데.”

“그걸 왜 묶냐? 쓸데도 없는데...”

“마누라랑 안 하냐?”

저마다 반응들을 쏟아냈다. 실로 바보스럽기 그지없는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바보들 사이에서는 부부관계의 횟수도 자랑거리가 되었고, 밤마다 아빠 엄마 사이를 파고드는 늦둥이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지난 열애담에 환호했고, 늦바람이 든 아내 탓에 밤이 무서운 친구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전작은 장기를 두루 거쳐 배설되었고, 다시 꾸역꾸역 맥주를 채워 나갔다.

잠자코 듣던 J가 입을 연 것은 다섯 번째 안주가 원탁 위에 올라왔을 때였다. 뜨거운 김을 뿜고 있는, 크기가 제각각인 소세지모듬구이였다. 나는 농담이라도 할 요량으로 가장 작은 소세지를 포크로 찍어 올렸다. 그리고 그때 지나치게 진지한 편인, 그래서 늘 지루한 편인 J가 큰 웃음을 친구한테 선사할 수도 있었던 내 농담에 앞서 말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말야....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야, 지겹지도 않냐? 난 다시 태어나면, 사랑, 결혼 같은 거 안하고, 혼자 속 편히 살 거야.”

“왜? 내 마누라는 다시 태어나도 나랑 살겠다던데?”

오~, 또 함성이 쏟아졌다.

“야, 난 하도 많이 썼더니, 이젠 서지도 않아. 누구 약 좀 구할 데 없냐?”

우리들 중 유일한 총각인 L이 말을 꺼내자, 다들 키득키득 어깨춤을 춰댔다.

“샘플 나오면 몇 개 챙겨줄게. 근데 쓸 데나 있냐?”

제약회사 다니는 K가 말했다. 그러자 저마다 하나씩 구해달라는 청탁이 들어왔다.

“야, 샘플 많이 안 나와. 처방 받고 사 먹어!”


한편 J는 잠자코 맥주를 마셨다. 어라, 이 자식 봐라! 누군가 J를 향해 말했다.

“그런 거 말고... 진짜 사랑 말이야. 가슴 저리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그런 거. 그게 가능할까?”

J는 아까보다도 더 진지해져 있었다. 일순 원탁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농담1. 그와의 불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5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8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7 1 4쪽
19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1 1 4쪽
»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9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2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2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6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6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