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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님의 서재입니다.

농담1. 그와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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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84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4.30 17:08
조회
125
추천
1
글자
5쪽

그와의 불화2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그가 눈을 떴을 때,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 피칠갑한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검은 두루마기에 갓을 쓴 핏기 없는 사내들은 저마다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게 무슨 난리야! 역병도 아니고...”

“아주 벌집을 만들어놨구먼, 쯧쯧.”

“언제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처리하나! 오늘 아주 일복이 터졌네, 터졌어!”

그때였다. 낯선 풍경에 넋이 반쯤 빠져 있던 그에게 검은 두루마기의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근데 너는, 왜 5원짜리를 그리 꼭 쥐고 죽었느냐?”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손아귀에 5원짜리 지폐가 구겨진 채 쥐어져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넌 민란에 낀 것이 아니라 그냥 계집애한테 장신구 사주려고 시장에 들어섰다가 개죽음을 당한 게로구나... 어디 보자....”

사내는 허리춤에 반으로 접어놓은 책자를 꺼내어 보았다. 그리고는,

“어허, 이런 가엾은지고... 이리 오너라” 하고, 그를 잡아끌었다. 그는 사내를 따라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그곳을 벗어나서 길고 좁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용상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염라대왕이었다. 사내가 정중히 목례를 하고, 책자를 올렸다. 염라대왕은 천천히 그 책자를 읽었다. 어허, 이런 가엾은지고.... 어허, 어허... 책자를 다 읽었을 때, 염라대왕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사내도 아니고, 계집도 아니다. 환관들은 남성을 포기한 대신에 권력을 누렸건만, 이 가여운 아이는 못난 아비 만나서 양물이 잘리고, 기생집에서 잡일을 하면서 연명했구나. 죄라고는 어릴 적에 아비를 원망한 일 외에는 깨끗하구나.... 어째 이리 삶이 모질단 말인가.... 고개를 들라.”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내생에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어려워 말고, 말해보거라. 네 원하는 바대로 하리라.”

그는 당황했다. 그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저... 밥을 굶지 않았으면...”

“그리하마. 또?”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영월이가 떠올랐다. 그 고운 얼굴과 자태, 그녀가 방심한 사이에 힐끗 엿보였던 가슴골과 하얀 목덜미...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사랑을 실컷 해보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이 웃었다. 곁을 지키고 있던 저승사자들도 웃었다.

“내, 그리 해주마.”

그러고는, 큰 소리로 명하였다.

“이 아이는 밥 굶지 않는 집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가장 크고 단단한 양물도 달아주거라!”



"이게 말이 되냐?“

L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야, 난 정말 심각하단 말이야.”

L은 울상이 되었다. 어라? 웃음기가 잦아들었다. 평소 기괴한 웃음소리를 달고 하는 말마다 주어 빼곤 대부분이 농담이었던 친구였다. 저녁 무렵, 독일식 돼지족발인 ‘슈바인스 학세’와 맥주 앞에 모여앉은 우리들 앞에서 그는 낯선, 정말이지 낯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얘기지. 그게 어떻게 말을 하냐?”

내가 말했다. L의 이야기는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요즘 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럴 거야. 오늘은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

허스키한 목소리의 D가 L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야, 일단 고기 먹어. 니가 속이 허하니까 헛소리가 들리는 거야.”

매달리고 싶은 팔뚝을 지닌 W가 고기 한쪽을 포크로 찍어 L에게 건넸다. 그러나 L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어. 정말 말을 하더라니까?”

L은 자신의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친구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는지, 맥주잔을 들어 쏟아 붓듯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예의 거창한 트림을 뿜어냈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트림 소리는, 언제 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늘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게 너한테 말을 했다고 치자. 근데 뭐라고 했는데?”

내가 물었다.

“그게... 나보고 식상하대.”

“목소리는 어땠어?”

이번엔 얼마 전에 묶었다는 K가 물었다.

“뭐랄까, 좀 울린다고 해야 하나? 사우나에서 말하는 느낌? 여튼 그래.”

아무려나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뭐, 어쨌든. 그러나 L이 저토록 심각한 표정이고 보니 안 믿을 수만도 없었다. 하긴,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종종 일어나곤 하니까. 이를테면 귀신이나 저승, 신 따위.

“지금도... 지금도 얘기하고 있어... 이 자식이....”

L이 신음하듯 말했다.


‘그’라는 대명사가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말을 하고, 나름 신념과 견해가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의 상징이니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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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2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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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3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6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8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7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7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8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8 1 5쪽
» 그와의 불화2 18.04.30 126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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