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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인생 2회차 빌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동네서점
그림/삽화
김주보
작품등록일 :
2023.05.10 12:27
최근연재일 :
2023.06.16 14:09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8,516
추천수 :
189
글자수 :
186,803

작성
23.05.19 13:55
조회
289
추천
7
글자
11쪽

과거로 보내진 이유 9화

DUMMY

나에게 다가온 선생님은, 내 입술에 자신의 그 빨간 입술을 포개었다.

부드럽고 따듯한 입술의 감촉은, 마치 현실처럼 느껴졌고, 살며시 눈을 떠보니, 그녀의 얼굴 또한 생생하게 보였다.

현실 같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늙은이에게,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 꿈이야! 이건 꿈이 확실해!'


꿈이라는 확신이 든 나는 욕심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꿈속에서 꿈인 줄 알 수 있는 기회가 흔하던가.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으로 가져갔고, 그러자 꿈속에서도 양심은 있었는지, 내 주름진 손은 미친 듯이 파르르 떨려왔다.


"덥썩~"


황홀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그 순간.


"찰싹~"

"윽, 뭐야?"


그러나 황홀함도 잠시... 내가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쥔 그 순간, 그녀는 내 싸대기를 찰싹 갈기더니, 그 후에는 나를 밀쳐냈다.

내 뺨에는 짜릿한 통증도 강렬하게 느껴졌는데, 그제서야 나는, 지금 이곳이 꿈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처음 하게 되었다.


'뭐지? 분명히 꿈일텐데, 꿈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허둥대며 눈을 비볐고, 그 후에는 내 볼을 스스로 "착착" 때려가며 정신을 차려봤다.

그녀에게 얻어맞은 뺨에서는, 여전히 얼얼하게 통증이 느껴지는 게, 꿈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안 봤는데, 첫날부터 진도가 좀 빠르시네요!"

"네? 꿈이 아닌가요?"


멍청한 질문이었다.


"삐삐삐~ 삐삐삐~"

"송화중씨,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봐요."

"네 감사, 아니 수고, 아니 아니 죄송합니다!"

"또각 또각~ 철컥~ 쿵~"


그녀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인지 아닌지도 아직 헷갈렸고, 꿈이 아니라면 그녀가 왜 먼저 다가왔는지, 그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화나 영화에서 꿈인 지를 확인해 볼 때, 볼을 꼬집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항상 바보 같다 생각했었지만, 내가 막상 이런 일을 겪어보니, 나도 내 볼을 스스로 꼬집어 볼 수밖에 없었다.


"아~"


아팠다.

일단 꿈이 아닌 것은 확실해 졌다.


"철컥~"

"화중씨."


이번에는 송박사가 들어와 나를 불렀다.

나는 죄지은 사람마냥, 아니 실제로 죄를 지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노트를 정리하는 척 딴청을 피워봤지만, 송박사는 이내 다가와, 나를 마주보고 앉아 물었다.


"수업은 어떠셨습니까?"

"네? 그게 저......"


수업이 어땠냐는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말해야 할 지, 아니면 별일 없었다는 듯이 둘러대야 할 지를 놓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송박사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인 것 같아, 결국 털어놓는 쪽을 택했다.


"저, 근데... 근데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기초지식 선생님이 저에게 먼저...

"알고 있습니다."

"네?"


송박사는 역시 또 알고 있었다.


"그것도 훈련의 한 부분입니다."

"훈련이요?"

"과거로 가시려면 한달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를 유혹해 보시죠."

"네? 제가 어떻게? 에이~~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저 같은 노인네가, 어떻게 젊고 이쁜 선생님을..."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올 겁니다. 그렇게 수업 내용이 정해져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업 내용이요?"


그 말이 나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하지만 왠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도 좀 민망하다 싶어, 더 이상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러자 박사 또한 설명을 줄였고, 당부의 말을 남기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다음 수업에 집중하세요. 남은 수업들은 모두 이 강의실에서 진행됩니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면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그럼!"


송박사가 강의실을 나가자, 가운을 입은 내 또래의 과학자 같은 남자분이 들어왔고, 이런저런 화학 약품들을 늘어놓더니, 폭탄제조와 독약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송박사의 말대로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도 싶었지만, 기초지식 선생님과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좀처럼 수업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 년만, 아니 몇 십년만 이었으니까, 그 입술의 느낌....

그렇게 어영부영 하루일과를 끝낸 나는, 저녁이 돼서야 송박사를 다시 만났다.

송박사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 미션들이 적혀 있는 서류봉투를 건네더니,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설명도 해주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간전송기는 우리가 만들어낸 복제인간의 생체정보만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작은 쪽지 하나도, 지금의 물건들은 과거로 가져갈 수 없는 겁니다."

"네 그렇군요! 그럼 오늘 배운 내용들은, 필기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거야 당연히 모두 암기하셔야 합니다!"

"네? 모두요?"

"네, 그 뿐만 아니라, 조금 전에 드린 미션들도 완벽하게 암기하셔야 합니다. 미션을 암기하는 일은, 여러 훈련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네? 이것들까지 전부 암기 하라구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와 버렸다.


"휴~~, 제가 노력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한 달 만에 가능할까요? 저 같은 늙은이는 전화번호 하나 외우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60먹은 중늙은이에게, 한 달 만에 이 많은 분량을 암기 하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네? 가능하다니? 좀 현실 적으로..."

"신체검사 결과, 송화중씨의 뇌 기능은, 30대 수준입니다."


가능하다 말한 송박사는, 나의 반박도 잘라버리고, 자신의 주장을 덧붙였다.


"스스로 안된다는 선입견만 버리시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30대? 제가요?"

"네, 그리고 미션 내용을 잘 외우셨는지, 검사는 제가 아니라, 기초지식 선생님에게 받으세요. 아마 동기부여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기초지식 선생님한테 검사를요?"

"네! 흠..."


기초지식 선생님을 언급한 송박사는, 어울리지 않게 묘한 미소를 남긴 후 식탁에서 일어났다.


"이제 숙소로 가시는 길 정도는 파악하셨을 테니,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이번주 훈련시간표! 아까 드린 서류봉투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숙소에 가셔서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혼자서 시간표대로 일정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뭐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송박사가 떠난 후, 나는 식당에 홀로 남아 그가 한 말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봤다.


'동기부여? 저많은 것들을 한 달 만에 다 외워라?'


그가 남기고 간 서류 봉투에서 훈련 시간표를 꺼내 본 나는, 지옥 같은 격투 훈련이, 매일매일 첫 시간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씨발!"


하지만 그 다음 시간에는, 보상이라도 하듯 꼬박꼬박 기초지식 수업이 따랐고, 그걸 본 나는, 내 나름이기는 하나, 송박사의 속 듯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희로애락'


사람들이 힘들지만, 바득바득 버티며 세상을 사는 이유, 그가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닐까?




[다음 날]


"삐삐삐~ 삐삐삐~"


어제 있었던 일들을 무한반복 생각하느라 밤새도록 뒤척인 나는, 송박사 없이 처음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잠을 설쳐 피곤한 몸이었지만,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었고, 그 후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과 같은 표정을 하면서도, 내 발로 체육관으로 가, 또 다시 격투선생님 앞에 섰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어 어~"

"퍽 퍽~"

"으악~"


그렇게 또 박교관은 나를 무차별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박사에게 힌트를 들었으니, 오늘은 나도 조금 달랐다.

깡패들에게 맞을 때는, 괜히 성질을 건드리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어, 맞더라도 과도한 리액션을 섞어가며 최대한 불쌍한 척 해야 했지만, 지금은 어차피 30분 정해진 시간 동안 맞는 거, 오늘은 나도 큰맘 먹고, 마구잡이지만 주먹을 휘둘러 봤다.


"그래 씨발 덤벼라!"


내가 마구 주먹을 휘두르자, 박교관도 당황했는지 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때 나는 바짝 가드를 올렸고, 할 수 있는 최대한 매서운 눈으로 박교관을 노려봤다.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씩씩거리며 대치하는 사이, 나의 가쁜 호흡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일방적으로 맞을때 보다는, 맞서는 것이 훨씬 살만하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씨발! 오지마! 나도, 아니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는 거야!"


자신감을 얻은 나는, 어디서 본 기억이나, 박교관의 발 움직임에 집중했다.

어차피 발을 움직여야 다가올 수 있으니, 박교관의 발 움직임을 살피며 움찔했다, 때로는 팔을 휘저으며 박교관을 밀치는 것으로 시간을 끌었다.


"팍 팍"

"으악~"

"퍽 퍽"


하지만 역시 나의 작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박교관의 사정거리 안으로 걸려 들어, 코너에까지 몰려버렸다.


"으윽 흑"


그러나 나는 어제와 달리, 이를 악물고 힘을 주며 버텼다.

종료 시간을 알고 있었으니, 더 이상 그만하란 말 따위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가드를 바짝 올리고, 복부에도 힘을 꽉 주었다.

때때로는 실눈을 떠, 박교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박교관의 가쁜 숨소리가, 처음으로 내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 헉~"


'역시 그도 사람이었어!'


"삐삐삐~ 삐삐삐~"


그때 수업이 끝나는 알람이 울렸다.

오늘도 나의 온 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욱신욱신거렸지만, 지금 내 가슴 속 기분만큼은, 어제와 판이하게 달랐다.


"헉 헉~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업이 끝났다는 안도감 보다는, 반드시 꼭 한 번은 이겨보고 싶다는 투쟁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기분은 뭐지?'


그러자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도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후회였다.


'그래... 그동안 나는 왜 피하고만 살았을까?'


격투 수업이 끝난 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무언가 깨달은 나는, 샤워까지 하는 여유를 부리며, 기초지식 선생님을 만나러 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도 두들겨 맞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거울 속 나는 이런저런 표정들까지 지어 보이며, 왠지 멋있는 척을 하고 있었다.

탈의실 거울 앞에서, 손바닥 가득 스킨을 따랐고, 양손에 "짝짝" 볼에도 "짝" 하고 두들겼다.

그 후에는 송박사가 지급한 똑같은 운동복들 중에서도, 유독 깨끗해 보이는 놈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렇게, 그녀를 만나러 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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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죽은 자의 미션 28화 23.06.10 71 2 12쪽
28 죽은 자의 미션 27화 23.06.09 73 2 12쪽
27 죽은 자의 미션 26화 23.06.08 83 1 14쪽
26 버림받은 존재 25화 23.06.07 87 2 12쪽
25 버림받은 존재 24화 23.06.07 106 2 14쪽
24 세 번째 미션 23화 23.06.05 147 2 12쪽
23 세 번째 미션 22화 23.06.03 126 1 13쪽
22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들 21화 23.06.02 172 3 12쪽
21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들 20화 23.06.01 142 3 13쪽
20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들 19화 23.05.31 169 4 12쪽
19 두 번째 미션 18화 23.05.30 168 4 12쪽
18 두 번째 미션 17화 23.05.29 176 5 11쪽
17 두 번째 미션 16화 23.05.27 182 5 11쪽
16 두 번째 미션 15화 23.05.26 207 5 12쪽
15 나는 미래에서 왔으니까... 14화 23.05.25 21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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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는 미래에서 왔으니까... 12화 23.05.23 25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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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과거로 보내진 이유 10화 +2 23.05.20 276 7 12쪽
» 과거로 보내진 이유 9화 23.05.19 290 7 11쪽
9 과거로 보내진 이유 8화 23.05.18 315 7 12쪽
8 과거로 보내진 이유 7화 +2 23.05.17 36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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