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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80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5.2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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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
추천
43
글자
19쪽

학원 Boom!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20화



“가자!”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우리 모자는 힘차게 집을 나섰다. 할머니도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가 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할머니가 손을 꼭 쥐며 건네준 전단지가 한 가득이다.


우리 동네 학원이 이렇게 많았던가.


1회차의 기억을 토대로, 괜찮았던 학원들을 추려 차례대로 방문하기로 했다.


“상혁아. 정말 여기 안 가봐도 괜찮겠어? 진짜 괜찮은 곳이랬는데.”


엄마는 아쉬운지 한 전단지를 계속 손에 쥐고 있다.


그 학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할머니도 여러 번 추천하기도 했고, 현재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학원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갈 필요 없다.


“괜찮아요. 안 가도.”


왜냐면 그곳은 ‘주산 학원’이었으니까.


아무리 1995년에 주산 학원이 최고로 군림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게는 시간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몇 년 만 있으면 주판을 튕기는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컴퓨터가 세계를 장악하겠지.


지금 그 학원에 가봤자.


‘후후후. 침몰하는 배를 타고 있는 우매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썩 즐거운 일은 아니군요.’


라면서 입을 털다가 한바탕 하고 쫓겨나는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컴퓨터 학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래 뵈어도 컴퓨터는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회귀 이전, 언제까지 몸을 굴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을 따 두었다.


나이 30 먹고 자격증하나 땄다고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회귀를 통해 어린 시절로 돌아오지 않았나.


컴활을 딴 3살 아기라니, 벌써부터 어마어마한 경쟁력 가진 셈이나 다름이 없다.


아마 현재 기준으로 따지면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아쉽네’


이 시기는 정보에 대한 규제가 보다 자유로웠다고 한다.


이럴 때 작정하고 여러 정보를 캐 본다면 즐거울 것 같다만.


환경이 여의치 않으니 그 즐거움은 잠시 후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아쉬운 대로 내가 고른 곳은 ‘왕실 음악학원’이었다.


훗날 이 학원에서 국제 피아노 대회 우승자가 탄생하니까 원장의 실력은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음악의 길을 걸어 볼까?”

“응! 우리 아들은 천재니까! 분명 피아노도 잘 치고, 바이올린도 잘 키고 그럴 거야!”


피아노랑 바이올린의 재능은 다른 영역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뭐라도 어떻겠는가. 이 몸은 치트 소유자다. 어쩌면 ‘천 개의 악기를 다루는 음악 천재’ 같은 인생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리 오너라!”


나는 음악학원의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났다.


“음. 아직 어린 아이니까요. 아이 치고는 굉장히 감각이 있어요. 일단은 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의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다. 설명이 길다는 건 결국 재능이 없다는 뜻이다.


첫 스타트는 좋았다. 계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과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사실에 원장이 경악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전생에 해본 적이 없으니 능숙하게 연주할 방도가 없었다.


거기에 DNA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아쉽더라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내가 되고 싶은 건 ‘정점’이지 ‘예습 좀 해온 어린이’가 아니었으니까.


‘무작정 DNA에 의지하기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학원을 찾는 게 좋겠군.’


때마침 생각나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상혁아? 이곳은 별로야?”

“음. 음악보다는 미술학원이 어떨까 싶은데요.”

“미술! 붓을 쥔 상혁이도 멋있을 것 같아!”


엄마는 사진기를 꺼내며 아들바보의 면모를 보였다.


물론 미대 오빠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미술학원을 선택한 것은 인기 때문이 아니다.


‘돈! 많은 돈! 아주 많은 돈!’


아무리 그림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다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바로 현대 미술!


회귀 이전 붓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나라도 쉽게 도전할만한 분야이며, 운이 좋으면 떼돈을 벌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대충 물감 휘적휘적 한 그림이 몇 억씩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까짓 거. 설명만 잘 붙이면 되는 거 아니야?’


아쉽게도 아니었다고 한다.


“아~ 내 ‘별 헤는 밤을 건너며 마주한 모나리자가 꿈꾸는 하늘’이!”


내가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은 학원 강사에 의해서 폐기처분 당했다.


‘뭐, 그 나이 또래 애들은 다 이렇게 막 그림을 그리는 법이라고?’


미래에 큰 히트를 쳤던 현대미술 작품들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지만, 강사의 눈엔 그저 어린 아이의 낙서로만 보이는 듯하다.


이렇게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건만 어찌 아무도 몰라준단 말인가.


“큭... 이것이 시대를 앞서나간 천재들의 외로움이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 현대미술이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분야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닌 다른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분야일지도.


어쨌든 ‘20억짜리 현대미술로 인생 한 방’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인생 편하게 살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


이제 남은 학원들 중 가볼만한 곳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뭐. 애초에 여기는 꼭 한 번 가보려고 했으니까.’


학원 앞에 도착하자 엄마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혁아. 여길 가겠다는 거 맞아?”

“네. 엄마는 별로에요?”

“으응. 아니. 괜찮아.”


선뜻 내키지 않을 만한 비주얼이긴 하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인상은 모두 험상궂고, 우락부락하며, 구린 땀 냄새가 난다.


그래.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다름 아닌 킥복싱 학원이었다.


* * *


‘더 큰 주먹, 더 강한 발차기’는 마을에서도 꽤 유명한 킥복싱 도장이다.


일본과 태국, 두 군데서 킥복싱을 배워 왔다는 젊은 사범이 운영하는 곳으로, 반월동에서는 불량학생 갱생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수강생이 좋든 싫든 쫓아다니며 스포츠맨십을 몸과 정신에 ‘때려’ 넣고, 나쁜 행실을 끊게 만든다.


만약 킥복싱 도장이 아니었다면 마을 치안이 몇 배는 나빠졌으리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


사범의 수완에 킥복싱 도장은 동네 학부모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그만큼 거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사람들도 선뜻 방문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의 홍관우 사범은 오랜만에 제 발로 찾아온 신입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젊은 여성과 어린 아이. 어느 쪽도 이런 칙칙한 도장과는 어울리지가 않다.


지금만 해도 훈련하던 녀석들이 주먹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지 않나. 나름 굴린다고 굴리고 있음에도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놈들이 나온다.


아직 덜 굴렀다 이거지.


“중기야! 애들 손이 쉰다! 그리고 이쪽 보고 있는 놈들 오늘 집에 못 간다고 전해라!”

“옙!”


잠시 후, 고통 어린 비명이 도장을 가득 채웠다.


그제야 홍 사범은 앞의 두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손을 꽉 쥐고 있는 게 겁에 질린 듯하다.


‘실수했군’


“중기야! 애들이 왜 아파하냐? 평소처럼 웃으라 그래!”


그러자 도장에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


“하하하하하!”


하지만 회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죽을상이었기에 기괴할 뿐이었다.


‘제기랄 별로 달라지는 게 없구만’


이게 그의 도장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이었다.


험상궂은 놈들만 있어서 일반 회원들이 접근을 안 했다.


때문에 제 발로 이곳을 찾아온 두 사람은 홍 사범에게 있어서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두 사람을 계기로 도장의 분위기를 바꾼다면?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킥복싱의 멋짐을 전파할 수 있으리라.


나름 호남이라 자부하는 홍관우는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서 오세요. 아가씨. 저희 도장은 여성 수강생들도 환영한답니다. 운동을 하면 체중관리나 몸의 균형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안내 멘트를 쥐어짰지만 여성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배우려는 게 아니에요.”

“네?”


그는 새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엔 그녀와 아이 둘 뿐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저 아이가 배운다는 소리인데, 킥복싱은 어린 아이가 배우기엔 위험한 운동이다.


저 여자 분이 배울 때 곁다리로 같이 배운다면 모를까. 저 아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리다.


“... 아! 수강하실 분이 오늘 같이 안 오셨나 봐요?”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짚어 보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여전히 도리도리 돌렸다.


“제 아들. 상혁이가 배우고 싶대요.”


헉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들이라는 말도 놀라웠지만 정말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격투기를 가르칠 생각이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안 됩니다. 위험해요. 애가 배울 운동이 아니에요.”


정신을 차리고 단호하게 만류하자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데 상혁아?”

“조심할게요.”

“그래. 진짜 조심하는 거다? 약속?”


그의 진심어린 조언에 대한 여자의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전문가의 말이 아니라 아이의 의사를 우선한 것이다.


홍 사범이 제발 재고해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끄떡없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꽉 찬 상태다. 오히려 이 아이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해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저. 체험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그 다음에 결정하면 안 될까요?”


그 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아이가 나섰다. 확실히 또래 아이들에 비해 당돌하고 똘똘한 느낌이긴 했다.


“그래 체험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그가 신입생을 굴리는 법은 간단하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체력단련을 시키면 된다.


하지만 차마 아기를 그렇게 굴릴 수는 없었기에 조금 겁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킥복싱의 맛만 보여주고, 나중에 커서 다시 오도록 권유하는 게 최선이리라.


“자 우선 발은 어깨 넓이로 벌리고. 한 발자국 정도만 앞으로 내밉니다. 발은 정면을 향해야 해요.”


그래도 우리 도장에 관심을 가져 준 것이 고마워 진지한 태도로 지식을 전수했다.


“주먹을 움켜쥐고 타점이 주먹 끝으로 갈 수 있도록 휘두릅니다. 이 때 단순히 팔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등, 허리, 다리까지 몸 전체를 같이 쓴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는 설명을 마치자마자 앞에 있는 샌드백에 원 투 주먹을 휘둘렀다.


팡! 파방!


묵직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전력을 다한 주먹이다.


보통의 꼬마라면 여기서 겁을 집어먹는다. 눈물을 터트리는 경우도 여럿 봤다.


주먹을 휘두르는 걸 객관적으로 보면 꽤나 살벌할 테니까.


분명 녀석도...


“어라?”


꼬마의 표정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만 한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다.


“끝인가요?”


얼씨구? 오히려 무언가를 더 요구하기까지. 홍 사범은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원 투 펀치에 이어 하이킥을 시전했다.


퍽!


아무래도 팔 보다는 다리의 힘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도장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모을 정도로 강인한 발차기였다.


그러나 꼬마 아이는 감탄했다는 듯 박수를 치고 있을 뿐이다.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어린 아이 상대로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저 자세 좀 잡아 주시겠어요?”


그는 순순히 상혁의 말에 따랐다. 어차피 어린 아이다. 조금만 아프거나, 싫증이라도 나면 금방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게 뻔하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자 해 봐라.”


일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스레 예지력이 길러지곤 한다.


보나마나 이 아이의 주먹은 솜 주먹일 것이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실력에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아이 어머니를 달랠 말이나 준비하고 있는 게...


팡!


“응?”


팡! 파방! 퍼억!


“이게 무슨...”


아이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울리는 경쾌한 타격음이 홍 사범의 잡생각을 하나 둘 날려 버렸다.


저게 말이 되는 일일까? 저렇게 어린 애가 타격의 원리를 이해하고 주먹을 뿌린다고?


게다가 주먹의 위력도 약하지 않았다. 아니. 나이에 비해서는 상당히 강한 편이다.


저 정도 소리는 숙련된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낼 수 있는 소리니까.


“저... 어머님? 아이가 지금 몇 살이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힐끗 고개를 돌리니 미소를 지으며 사진기 버튼을 연타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어머님?”


재차 부르자 그 때가 되어서야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저희 상혁이는 3살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다. 이제 알겠냐는 눈빛에 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작 3살에 저 정도 신체 능력이다. 다리는 잘 깎은 조각과 같고, 팔은 힘을 줄 때마다 그 두께를 늘려간다.


거기에 센스도 나쁘지 않다. 처음엔 어색하더니 점점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마치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던 상혁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샌드백만 때리니까 감이 안 잡히는 거 같은데요.”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처음 온 회원을, 그것도 3살 꼬마를 스파링 시키는 일은 없다.


하지만 갈증이 나는 건 꼬마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상혁이라는 꼬마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보고 싶어졌다.


“중기야! 현빈이 좀 데려와라!”

“... 사범님?”

“데려오라면 데려와. 니가 사범이냐? 오랜만에 한 판 뜰까?”


맞기 싫었던 중기는 빠르게 현빈을 데려왔다.


현빈은 도장에 다니는 초등학교 3학년 꼬마였다.


들어온 지는 반년이 안 되었지만 3살에게 맞고 다닐 녀석은 아니다.


성장 차도 분명하고, 그동안 개같이 구른 녀석이다. 기본은 잡혀 있었다.


“현빈아 상대해줘라.”

“사범님!”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빈이마저 기분이 나쁘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도 10살이 3살짜리한테 지는 게 말이 되나.


얼마나 자신을 무시했으면 이런 싸움을 시킬까.


딱 봐도 그런 생각들이 얼굴 위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말로 했다간 맞을까봐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 사범님 노망나셨나봐.”

“저거 뭐라 그러더라. 청년치매?”


입 밖으로 꺼낸 새끼들 목소리를 기억해두었다.


보는 눈도 없는 자식들. 이따가 놀라서 턱이 빠질 것이다. 안 빠지면 내가 빠지게 만들 테다.


홍 사범은 일단 상혁의 보호자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괜찮으시죠?”


그러자 어머님은 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괜찮니?”

“괜찮은데요?”

“그렇대요.”


결국 아이에게 전권을 넘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전히 자식에 대한 확신이 가득 찬 여성이다.


아니, 실제로 재능이 있는 게 맞으니 보는 눈이 있는 여성이라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잠시 후,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한 짜리몽땅 꼬마가 낑낑거리며 링 위로 올라갔다.


단련을 하던 녀석들도 슬쩍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대결이다.


원래라면 훈련량을 2배로 늘렸겠지만 녀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내버려 두었다.


링 위의 두 꼬마가 자세를 취했다.


“자. 준비하시고~ 시작!”


시작 신호에 맞춰 먼저 튀어나온 것은 현빈이었다.


녀석에겐 이겨도 본전인 시합이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게 그나마 덜 수치스러울 거란 판단이다.


“하앗!”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않은 것 같다.


현빈은 오른발을 뻗으며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뒤, 오른쪽 주먹을 날렸다.


반년동안 주구장창 연습한 녀석의 필살기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깔끔한 주먹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주먹이 상혁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꼬마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주먹을 흘려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움직임이다. 3살 꼬마가 무슨 전투광, 파괴마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싸움 경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상혁은 너무도 여유롭게 공격을 피해냈다.


긴장하지도 않았고, 과한 움직임으로 균형을 무너트리지도 않았다.


마치 주먹이 그곳으로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딱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 공격을 피해냈다.


전율이 몸을 타고 흘렀다.


“맙소사. 애가 눈까지 좋아.”


안 그래도 신체 구성이 훌륭한데 킥복싱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요소까지 갖추었다.


아까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극도의 황홀감에 무언가 흐를 뻔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죄다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녀석들도 눈이 있는 만큼, 방금 저 움직임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아는 게다.


그 정적 속 현빈은 얼굴을 붉혔다.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두 번째로 끝낸다!”


하지만 두 번째 주먹도, 세 번째 주먹도 꼬마를 스치지 못했다.


맞기만 하면 끝나는 건 확실한 데 맞출 수가 없으니 미칠 지경이다.


심지어 현빈의 풋워크를 보고 따라하기까지.


누가 7살 연상이고, 누가 유리한지 모를 양상이었다.


“이 씹할 새끼!”


그 때부터는 킥복싱이고 뭐고 없었다. 현빈은 상혁을 때려눕히기 위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한참을 피하던 상혁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즈음이었다.


‘이 쯤이면 충분하다’ 홍 사범은 아이의 표정에서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음 순간 상혁이 공세로 전환했다.


여느 때처럼 공격을 흘리고 상대의 빈 복부에 왼쪽 주먹으로 잽을 두 방 날렸다.


“어흑!”


그리고 상대의 신경이 맞은쪽으로 쏠린 틈을 타, 반대편 다리를 향해 킥을 날렸다.


쩍,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현빈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흐으으르극.”


많이 아픈 것 같다. 제대로 들어갔으니 아플 수밖에 없다. 어쩌면 쪽팔려서 배로 아플지도 모른다.


어쨌든 승부가 났다. 홍 사범이 기대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고작 3살 꼬마가 자신보다 7살 많은 형을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 이내 꼬마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을 때, 홍 사범은 온 몸이 짜르르 떨렸다.


“이거지.”


주변의 시선이 홍 사범에게로 쏠렸다.


“이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계속 소리쳤다.


“이거라니까?”


뭐가 자꾸 이거라는지. 말은 없었지만 도장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재능. 그들은 살면서 저보다 빛나는 재능을 본 적이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부르르 떨던 홍 사범이 윗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링에 올라갔다.


걸리적거리는 현빈은 발로 밀어내고, 미친 것 같은 재능의 꼬마 앞에 섰다.


“꼬마야. 아니 상혁아. 나랑도 한 판 뜨자.”


‘더 큰 주먹, 더 강한 발차기’의 관장이 3살 꼬마에게 스파링을 신청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분명 주말이 된 지 2초 정도 된 거 같은데 벌써 일요일 밤이네요.


수정할 사항이 조금 많아서 평소보다 늦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 추천도 선호작도 큰 힘이 됩니다.


좋은 밤 되시고 내일도 좋은 하루 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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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연을 끊는 법 +5 22.05.14 3,723 64 19쪽
4 천릿길 효도도 한 걸음부터 22.05.13 4,012 76 17쪽
3 vs 최강(아기) +5 22.05.12 4,463 74 17쪽
2 천하제일 아기대회 +5 22.05.11 5,558 86 17쪽
1 세상이 날 억까해 +6 22.05.11 7,894 9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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