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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74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5.17 22:29
조회
2,919
추천
55
글자
21쪽

아기는 빵집을 구원한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8화



“으음... 흠...”


빵집에서의 면접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엄마는 그 날 이후로 하루 종일 전화기만 내려다보고 있다.


면접 합격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날 우리 모자가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고하고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나? 봉식은 며칠만 기다려 달라며 대답을 미루었다.


아무리 빵에 자부심이 있어도 그렇지, 홍보를 아예 무시하겠다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참 까다로운 대머리다. 모근이 적은 만큼 아량도 좁아터진 게 틀림이 없다.


당장이라도 가게에 찾아가 무력행사를 해버릴까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홍역이니까.”


내가 원하는 건 초대박 가게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다.


그리고 대한제일 빵집이 초대박 빵집이 되기 위해선 권봉식의 고집을 꺾어야 했다.


아니, 사람들이 빵을 먹어봐야 이 빵이 그냥 비싸기만 한 빵인지, 비싸도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빵인지 알 거 아닌가?


그래서 내가 나이 서른 먹고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떤 것이다. 이 기회에 빵 좀 먹어 보라고.


이것이 현대 사회의 마케팅이요, 공격적인 자기 PR이다.


내 방식이 훨씬 가게에 도움이 된다, 이래도 덜떨어진 신념을 안 고칠 거냐 등을 온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봉식도 효과를 보았으니 이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만약 이래도 모른 척 거절한다? 그럼 이 쪽에서 사절이다.


아니 사실 좀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정도 수완도 없는 곳에 엄마를 믿고 맡길 수는 없으니까.


또 새로운 대박 가게를 찾아 엄마를 소개시켜주면 된다.


뭐 이도저도 아니면 꾹 참고 궁핍하게 살다가 비트코인으로 인생역전하는 수도...


띠리리리리!


그렇게 7개월의 나이로 인생 설계를 하고 있자니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는 첫 번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으셨다.


“네? 정말요? 아 네 가능하죠. 감사합니다!”


다행히 다른 가게를 찾으러 나갈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상혁아! 합격이래!!! 오늘부터 나오라는데? 정말 정말 좋아!!”


그녀는 나를 안고 뒹굴다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보통 합격을 통보한 당일부터 일을 나오라 하는 것은 경우가 없는 일이다.


특히 오픈 시간까지 2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어느 정도 교양을 가진 봉식과, 진숙이 그렇게 부탁을 했다는 건...


‘그만큼 몸이 달았다는 소리지.’


아마 지금 당장 부르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그 추측이 사실임이 밝혀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망의 첫 출근 길, 엄마와 나는 대한제일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 팔릴 때도 한산했던 며칠 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제법 대박 집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접근하자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아기! 아기다!”

“저 아기가 그 아기야?”


아직 일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열기가 후끈했다.


“상혁아!!! 나 또 왔어! 꺄아아악!”


이미 에스코트를 맛본 여대생이 아는 체를 해왔다. 어쩌면 저렇게 호들갑을 떨어주니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걸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숙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은주 씨! 그리고 상혁 군. 와줘서 고마워요.”

“불러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엄마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으나, 진숙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바깥에 사람들 보이죠? 다 상혁 군 보러 온 거에요.”

“아...”

“며칠 사이에 찾아오는 손님마다 아기를 찾아서 난처하던 차였어요.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의 기색에 피로가 쌓여 있는 듯하다.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이다.


진숙의 말에 의하면 저번에 영어로 감탄사를 표하던 사람이 라디오 방송을 하는 사람인데, 그 날 방송에서 빵집을 소개했다고 한다.


세상에 아이가 에스코트를 해주는 빵집이 다 있다고.


방송의 파급력에 더해,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해져 나온 결과가 바로 저것이다.


오픈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줄이 길게 서있다.


오직 나의 퍼포먼스를 목격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빵집에 와서 아기를 찾는 게 어디 있냐고...”


봉식이 중얼거리며 등장했다.


“여보!”

“일이 바쁘면 유리가 와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실패하고...”


진숙이 눈총을 보냈으나, 봉식은 여전히 주눅이 든 상태다.


이번 일을 기회로 어떻게 딸을 꼬셔 볼 생각이었으나 그게 실패한 모양이다.


내가 이 가게의 문제를 해결한 이상 앞으로도 딸이 제빵에 관심을 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모자가 그 자리를 뺏은 것 같이 되지만, 원래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내가 끼어드는 편이 더 평화적이기도 하고.’


머지않아 이곳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대한제일 빵집을 폭삭 무너트릴 만한 그런 사건이.


오직 나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은혜 갚기는 그걸로 값을 치루면 된다.


“난 아직 너를 인정한 게 아니다 꼬맹이. 그 날의 일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겠지.”


그런데 정작 가게 사장이 이러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대머리.”

“뭐?”

“정말 빡빡하시다구요. 마음도 머리도.”


일부러 맨들맨들한 머리를 가리키며 아픈 사실을 꼬집었다. 그러자 봉식도 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뭐? 빡빡이? 이 녀석이!”


물론 뭘 해보기도 전에 진숙에게 제압당했다.


“여보! 이제 애랑도 싸워요? 은주 씨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 애가 나를 놀렸...”

“시끄러워요!”


어째 자기편이 없다고 궁시렁 거리는 봉식이다.


철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것도 다 그만큼 신념이 굳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신념 속에 우리가 포함되었을 때, 그는 누구보다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상혁아. 무리하지 말고. 쉬고 싶을 때는 바로 엄마한테 오는 거다?”


엄마는 일을 배우러 가기 전, 걱정이 듬뿍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작 7개월 밖에 안 된 아이에게 일에 대한 부담을 준다는 게 못내 걸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싱긋 웃고 말았다. 지긋지긋한 중소기업의 행패에 비하면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였으니까.


마음을 다잡고 맨 앞의 손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해 주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57살이 되...지는 않았다.


체감 상 그렇다는 소리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도, 나는 이제 막 태어난 지 8개월이 되었을 뿐이다.


대한제일빵집은 여전히 가파른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엄마는 빠르게 경험치를 쌓으며 일에 익숙해져갔고.


이제는 많은 손님 때문에라도 가게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물론 바빠진 뒤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칵~ 퉤! 빵이 왜 이리 비싸? 유명하다고 해서 와 봤더니 완전 사기꾼들이었잖아?”


가끔 이렇게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남한테까지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


“손님~ 잠깐 밖에서 이야기 좀 하실까요?”


물론, 우리 가게에는 쓸 데 없이 근육이 우락부락한 마초가 있다. 나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끔 저렇게 진상을 통해 해소하는 모양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빠빠기.”


봉식과 나의 관계는 다행히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점점 빵맛에 매료되는 손님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때문인지 신이 나서 신 메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여전히 자신이 가게의 1옵션이 아닌 2옵션인 것이 불만이지만. 그걸 뒤엎어 버릴 정도의 빵을 만들 거라며 말이다.


어쨌든. 때로는 매정하게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가족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취업을 한 게 바로 직전 같은데 어느새 월급날이니 말이다.


이제 꾸준한 수입원이 생겼고, 그로인해 생활도 정상궤도에 올라 숨통을 조금 트일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벌어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니.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걸 못해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이, 절박해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월급은 엄마와 내게 큰 의미를 가졌다.


우리끼리의 생활의 첫 걸음을 제대로 디딘 것과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에게 행복하게 흐르는 시간이 꼭 남들에게도 똑같이 흐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은 저녁. 한창 바쁜 시간대가 지나고 슬슬 마감시간으로 들어서는 때였다.


“은주 씨~ 상혁아~ 이리 와 봐요.”


진숙이 갑자기 우리 모자를 불렀다.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에, 표정이다.


그녀는 후후후 웃으며 뒤에 숨겨두었던 봉투를 꺼내었다.


“짠. 이번 달 월급이랍니다! 갑작스레 일하게 되었는데 너무 잘 해줬어요. 고마워요.”

“사장님...”


엄마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거절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보수다. 그래서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리라.


진숙은 엄마의 손에 봉투를 들려주고는 그녀를 껴안아 주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잘 부탁해요.”


이 한 달 동안, 진숙은 엄마를 여러모로 살펴보았다. 은주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가게에서 일해도 좋은 사람인지.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은주는 성실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겉과 속이 같은 투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굳이 아기가 아니더라도 곁에 오래 두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건 고생 많이 한 상혁이 꺼~”


진숙은 나에게도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헐.”


예상치 못한 수입이다. 물론 내가 가게 부흥의 1등 공신임은 분명하지만 설마 8개월 된 아기에게까지 돈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진숙의 말에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상혁이 맛있는 거 사먹어도 많이~ 남으니까, 엄마가 관리해주면 되겠다. 그치~”


역시 돈을 받으면 엄마 통장에 영구 보관해야 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숙명인 모양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 주는 것은 핑계고, 고생한 엄마에게 주는 보너스 혹은 성과급일 것이니까.


“사장님! 괜찮아요. 안 주셔도 돼요.”


엄마가 거절할 기색을 보이길래, 냉큼 다가가 배꼽 인사를 한 뒤 봉투를 받았다.


“역시 상혁이는 참 똑똑하단 말이야.”


진숙이 흐뭇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녀가 뭘 몰라서 그런다.


이런 돈은 너무 거절하는 것도 실례다. 깔끔히 받는 것이 좋다.


“자. 오늘 마감은 나 혼자 할 테니까 오늘은 상혁이랑 맛있는 거라도 먹어요.”

“아뇨. 돈도 받았는데 그럴 수는...”

“어허! 사장 명령이에요!”


엄마는 그럴 수는 없다면서 어떻게든 남으려 했으나, 진숙이 권위를 세우는 바람에 그대로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참 좋은 분이셔.”

“댜다.”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 노릇 좀 해볼까? 엄마가 소고기 야채 이유식 끓여줄게.”


엄마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역시, 탱크네 엄마한테 영향을 받은 게 틀림이 없다.


아직은 요리 실력이 미숙해서 먹는 것이 고되긴 하다만. 그래도 언제나 그녀의 음식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말만 제대로 할 수 있었어도, 엄마는 언제나 엄마 노릇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 * *


진숙은 알바생을 보내고 가게의 문을 걸어 잠갔다.


어차피 손님이 더 올 것 같지도 않으니 혼자서 천천히 마감을 하려는 생각이다.


매장은 텅 비어 있어 치울 것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휴우.”


힘들었다. 남은 빵들은 알바에게 줘서라도 해치우고는 있지만 이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자기가 더 맛있는 빵을 만들면 된다고 연구에 몰두하고는 있는데... 솔직히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나도 알고, 그도 알고 있는 문제. 그걸 해결하기 전까지는 아마 가게 사정이 나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지.”


연애할 때는 그 강단 있는 모습이 좋았는데, 지금은 조금 답답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자신이 선택한 남자인 것을.


오늘, 가게 정리를 마치고 그와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할 것 같다.


덜컹덜컹.


늦은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빵을 좀 남겨 놓을 걸 그랬다.


“손님. 죄송한데 저희가 오늘 빵이 다 팔려서요.”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일을 하러 갔으나, 손님은 한참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똑똑.


“문 좀 열어주세요.”


가만히 있으면 사라지겠거니 했으나, 이제는 문을 두드리고 있다.


별 미친놈이 다 있다. 기분은 나빴지만 어쩌겠는가. 저런 사람도 손님인 것을.


“손님. 저희가 영업이 끝나서요. 혹시 내일 와주실... 앗!”


손님을 자세히 보자마자 낮에 있던 사건이 기억이 났다.


배가 툭 튀어나온 체형에 흐리멍텅한 눈동자. 전체적으로 신경질적인 인상까지.


딱 보아도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남자가 가게에 찾아와 가격이 비싸네, 사기꾼이네 뭐네 악담을 퍼부었던 사건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 빵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던 남편은 이를 목도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손님을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갔고, 머지않아 남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돌아왔다. 남편도 없이 그녀가 혼자 있을 때.


등골이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아까까지의 귀찮음과 짜증스런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이를 애써 억눌렀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못 다한 말을 이었다.


“내일 찾아와 주시겠어요?”


눈을 질끈 감고 뒤를 돌았다. 이대로 일이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러나 슬프게도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들어맞는 법이다.


“문 좀 열어 봐요.”

“...”

“문. 열어.”


이에 대답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도망쳤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112에 신고를 넣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이제 곧 사람들이 올 거라고,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문이 잠겨 있지 않냐고.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두려움에 잠식되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운명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도 흐르는 법이다.


쨍그랑.


유리문이 깨지는 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잠시 후 괴한이 문을 넘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주먹 만한 돌이 들려 있다.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었다. 안전했던 피난처가 도리어 막다른 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 도와주세요!”


도움을 요청하고.


“살려...주세요.”


목숨을 구걸해 보아도.


기적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시간은 냉혹하게 흘러만 갔다.


봉식이 현장을 찾았을 땐 모든 일이 끝난 후였다.


아내는 병원에 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범인을 붙잡고, 가게를 고쳤으나 갈가리 찢긴 그의 마음은 고쳐지지 않았다.


빵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그 빵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


그의 빵에 대한 아집 때문에, 등신 같은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빵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 * *


“뭐. 그러다가 딸이 봉식의 마음을 돌려 부녀 빵집으로 새로 태어난다. 그런 이야기지.”


그렇다. 이건 전생의 이야기. 대한제일빵집이 부녀 빵집으로 거듭나게 된 경위이자, 어쩌면 반복되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파편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위험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덕분에 봉식은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모자와 봉식이 도착했을 때, 가게의 유리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는 상태였다.


“도와주세요! 꺄아악!”


비명이 들린 곳으로 향하자, 진숙을 향해 돌을 내리 찍으려 하는 괴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숙아!!!”


이를 발견한 봉식은 땅을 박차고 뛰어갔다.


흉신악살과 같은 표정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혔고, 괴한의 얼굴에 근육이 충만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후엑!”


2방은 필요가 없었다. 단 한 대 만으로 괴한은 진열대를 부수며 날아가 벽에 쳐박혔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보! 괜찮아?”

“흐어어어엉. 무서웠어요. 여보~”


진숙은 많이 놀란 듯 평소의 기품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봉식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봉식은 그녀를 강하게 껴안아 주었다.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봉식 역시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하마터면 아내를 잃을 뻔 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으리라.


잠시 후 경찰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현장의 상황을 보고 누가 괴한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구분을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근처에 cctv가 있어 괴한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수 있었다.


이 일로 징역살이를 시키는 건 불가능 하겠지만 적어도 무단 침입, 기물 훼손 등의 죄목은 적용시킬 수 있어, 접근 금지 조치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대한제일 빵집의 네 사람은 조용했다.


다들 충격을 받아 심력을 많이 소비한 탓이다.


나는 오늘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보았다.


우선 기껏 자리 잡은 일자리가 없어질 위험은 사라졌다.


또한 사장 부부에게 은혜를 입혔으니, 나중에 얻을 수 있는 파이도 늘어날 것이다.


이제 이곳을 다시 한국 굴지의 빵집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쿠후후.”


이 정도면 길바닥 스타트 치고는 확장 공사를 잘 마쳤다. 이대로 쭉 나가면 탄탄대로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번 일로 봉식이 마음을 열면 좋겠으나, 너무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그 때, 가만히 있던 봉식이 정적을 깨트렸다.


“우선 내일은 영업을 못할 것 같군. 은주 씨는 유급휴가라고 생각하고 하루 푹 쉬세요.”


그의 눈빛은 아직까지도 형형해서 엄마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봉식은 엄마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에게 다가와 시선을 던졌다.


“처음엔 뭔 개소린가 했다.”

“네?”

“열심히 신상품을 개발하고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갑자기 가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온갖 고집을 부리니 말이다.”


엄마는 갑작스런 반말에 당황했으나, 이내 아들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고 진정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이번 일은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려던 엄마를 붙잡은 것도 이 몸, 대뜸 봉식의 연구실로 찾아가 따라오라며 고집을 부린 것도 이 몸이다.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을 진실 되게 믿었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훌륭했다.


“아무 일도 아니면 매출이고 뭐고 너를 내쫓을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구나.”


강철과 같은 근육을 가진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아내는 크게 다쳤을지도 몰라. 은주 씨 말마따나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였구나.”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봉식도 알고 있다. 차마 그 입으로 말하긴 끔찍해 언급하지 않을 뿐.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아니, 고개를 숙이다 못해 허리까지 깊게 내렸다.


“사장님! 그러지 마세요!”


엄마의 만류에도 그는 꿋꿋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하다. 혹시 괜찮다면 내 무례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진심어린 사과다. 고작 8개월짜리 아기에게 행하기엔 너무나 과할 정도이다.


“...”


엄마의 품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그의 민머리에 손을 올렸다.


“빠빠기. 조아.”


평소와 같은 놀림이 아니다. 굳은 분위기를 품과 동시에 내가 그에게 화가 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지금만큼은 두 사람은 아기 대 성인이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써 마주하고 있었다.


“상혁아...”


봉식은 일어나 내 손에 자신의 큼지막한 손을 덧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댜다.”


드디어 재능 있는 제빵사와 최강의 아기가 손을 잡았다.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이 두 사람 사이로 불어 앞으로, 또 위로 나아갔다.


작가의말

오늘도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순서대로 본래의 흐름 - 과거 회상 - 상혁의 개입이 반영된 현재 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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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 이름은 박상혁 22.05.26 2,374 41 15쪽
16 빡치네 22.05.25 2,361 42 13쪽
15 키드냅 당한 키드 그게 바로 나에요 +3 22.05.24 2,518 44 13쪽
14 보리차처럼 시원하고 달달한 것. +3 22.05.23 2,567 50 19쪽
13 NTR 속 금태양 아기가 되다. +1 22.05.22 2,715 47 15쪽
12 vs 라이벌 +1 22.05.22 2,702 49 16쪽
11 할머니는 손자를 사랑한다 2 +1 22.05.20 2,713 55 12쪽
10 할머니는 손자를 사랑한다. 22.05.19 2,713 58 12쪽
9 엄마에게도 엄마는 있다 +2 22.05.18 2,819 54 16쪽
» 아기는 빵집을 구원한다. +1 22.05.17 2,920 55 21쪽
7 아기는 사람들을 함락시킨다. +1 22.05.16 3,097 57 16쪽
6 엄마의 취업은 내가 따낸다. 22.05.15 3,326 55 14쪽
5 악연을 끊는 법 +5 22.05.14 3,724 64 19쪽
4 천릿길 효도도 한 걸음부터 22.05.13 4,013 76 17쪽
3 vs 최강(아기) +5 22.05.12 4,464 74 17쪽
2 천하제일 아기대회 +5 22.05.11 5,560 86 17쪽
1 세상이 날 억까해 +6 22.05.11 7,897 9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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