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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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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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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12.14 20:10
조회
680
추천
13
글자
9쪽

9화

DUMMY

밤밤중 잠이 오지 않았다.


동생들의 미래를 위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귀족 - 사실 귀족인지도 의심스러운 놈 - 밑에서 평생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원장님을 설득해서 남은 돈으로 우리끼리 가게라도 하나 내는게 나을 것인가. 나만 희생하면 갈 수 있는 탄탄한 길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불투명한 위험한 길. 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혐오스러웠지만 좀처럼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 뭐라도 좋으니까 판단할만한 정보를 좀 달라고... "


답답한 마음에 투덜거려봤지만 들어줄 사람도 없다. 한밤중 자기 방에서 배개에 얼굴을 파묻고 투덜거리는걸 듣기는 누가 듣겠는가. 아, 이 부드러운 배개, 이 포근하고 좋은 향이 나는 이불... 전부 다 그 작자들이 낸 후원금으로 마련한건데...


" 아, 정말 모르겠다. "


어차피 난 바보니까 똑똑한 사람들 흉내를 내봤자 소용없다. 무식한 놈은 무식한 놈 답게 돌진을 해야 일이 풀리는거다.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초록 달인지 퍼런 달인지 하는 여관으로 가서 물어보자. 대체 뭐하는 작자들인지, 날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는 것인지, 내가 가면 후원이 이어질거라는걸 어떻게 보증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해주면 그 길로 따라가는거고 뭐 하나라도 시원찮은게 있으면 때려치는거다.


그래, 그거면 돼.


더 이상은 생각할 필요없어, 하고 나는 의식적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눈을 감았지만 역시나 잠은 오지 않았다.


***


" 아, 그 202호 손님들 말이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몰라도 지들끼리 싸우느라 시끄럽게 굴더니 참 보기 뭣한 꼬락서니로 아침 일찍 나갔어. 거 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멀끔하게 생긴 사내새끼가 쪼그마한 계집애한테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아가지고 뒷덜미를 잡혀서 질질 끌려나가는데 아, 정말 내 숙박업 17년 인생에 그런 해괴한 광경은 처음 봤다니까! 심지어 사내 자식은 무슨 귀족처럼 훌륭한 옷을 빼입었고 계집애는 옷도 낡아빠진게 영락없이 하녀 꼬락서니더라고.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이야? 깜짝 놀라서 경찰을 부르려고 했는데 그 사내자식이 괜찮다고 말려서 내비뒀지. 내 잘 모르긴해도 아마 그 뭐시라더냐... 외국말이라 잊어버렸는데 하여튼, 이쁜 계집애한테 얻어맞는걸 좋아하는 변태들이 있다더니 그놈이 그런건가보더라고. 어휴, 진짜 생긴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아, 참. 내 정신 좀 봐. 쓸데없는 소릴 하느라 정작 중요한 용건을 잊고 있었군. 아까 뭐라고 했었지? 아, 그래. 델핀이란 아가씨 말이지. 기억하네. 셋 중에선 그나마 제일 사람같은 사람이었거든. 안그래도 그 얌전한 아가씨가 자길 찾는 사람이 있으면 이걸 전해달라고 했었다네. 자, 받게나. 하여튼 그 하도 해괴망측한 일이라서... "


" 아... 하... 하...하하... "


나는 손바닥만한 봉투를 받아들면서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내가 듣기에도 제정신이 아닌 기행이긴 한데 상황에 따라선 그 변태새끼를 평생 주인으로 모셔야하는 처지다보니 마냥 기분 좋게 비웃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곤란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여관 주인을 무시하고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 ..... "


봉투 안에 든 것은 한 장의 편지지였다. 하얗고 빳빳한게 척 봐도 아주 질이 좋은 종이였는데 그 단정한 시녀가 적었다고 생각하기 힘들만큼 개발새발 마구 휘갈긴 글씨가 4~5줄 정도 적혀 있었다. 별다른 봉인도 없이 여관 주인에게 맡겨뒀던 점이나 빈약한 분량으로 보건데 특별히 중요한 내용은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무슨 내용이 되었건 읽어보지 않으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정할 수가 없으니까.


" 저기... 죄송한데 이거 좀 읽어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


부끄러움을 참고 여관 주인에게 편지지를 건낸다. 이런 짧은 글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해서 남에게 기대야 한다는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창피하다고 해서 갑자기 문자 해독 능력이 생길 리 없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에 순응하는 수 밖에.


" 그래? "


여관 주인은 편지지를 받아서 슬쩍 훝어보더니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을 심상하게 읽어주었다.


" 어디보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일정이 변경됐다는군. 열 두번째 씨? 아, 자네가 열 두번째야? 으응, 그거 참 별난 규칙이군. 하여간 며칠안에 자네한테 따로 연락할테니 그때까지 생각이나 더 하고 있으라고 적혀있다네. 뭐 날씨가 어쩌구하는 시덥잖은 인삿말이나 의례적인 말이 좀 적혀있긴하지만 내용은 그게 다야. "


" .....감사합니다. "


예상대로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몰라도 좋을 내용도 아니었다. 여관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편지지를 받아서 밖으로 나온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여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하아... "


오른손으로 얼굴을 덮자 불타는 숯이라도 잡은 듯,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하층민 중에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하물며 부모조차 없는 꼬맹이라면 오히려 읽고 쓸 수 있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부끄럽다고 얼굴에 불이 확확 치솟는건지 참...


" 후우... "


뭐, 어차피 부끄러워해봐야 당장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잊어버리자. 적당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맛있는거나 먹다보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로를 상점가 쪽으로 잡았다.


***


그날 밤.


평범하게 " 다녀왔습니다. " 하고, 인사하고 언제나처럼 시덥잖은 잡담을 나누며 의욕과 실력의 부조화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저녁식사를 마친 나는 괜히 피곤해져서 일찍 자리를 펴고 누웠다. 그러나 막장 자려고 눈을 감으니 또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자세를 몇 번이나 바꾸어도 점점 더 피곤해지기만 할 뿐, 잠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주 미칠 노릇이다. 요 이틀간 계속 잠을 제대로 못잤더니 그새 버릇이라도 되버린걸까.


" ...부터! "


그때,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격앙된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소리가 난건 그 한번 뿐. 그 뒤로는 고요한 침묵이 계속됐다.


어쩌지? 나가서 알아볼까? 아니면 그냥 잠이나 잘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문을 열었다.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마당에 누워있어봐야 뭐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끼이익...


낡은 나무문이 언제나처럼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린다.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기야 바로 문 앞에서 고함을 질렀으면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가 들렸겠지. 방음도 되지 않는 방에서 잘 안들릴 정도라면 거리가 제법 있다고 보는게 합당하다.


그렇다는건 역시 원장실인가.


하기야 잘 생각해보면 이 고아원에서 고함을 질러가며 성을 낼 사람은 원장님 밖에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가서 물어보고 원장님이 아니라면 밖에서 난 소리일테니 신경끄고 잠이나 자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 거실에 다다랐다.


철벅.


" 잉? "


천만 뜻밖에도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밟혔다. 거실은 카펫 하나 없이 냉기가 그대로 올라오는 돌바닥인데도 온기가 느껴지는걸 보니 쏟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뭔가 싶어서 자세를 낮춰 살펴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린내가 확 올라왔다. 이 냄새는 분명히...


" 피? "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살펴보자 조금씩 바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흘리는 희생자를 질질 끌고 간 듯 보이는 혈흔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질퍽거릴만큼 많은 피로 그려진 혈선을 따라 반대편 복도에까지 다다르자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밝은 달빛 덕분에 시야가 확 트였다. 그리고...


우드득, 우드득...


복도 한복판에서 추잡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머리도, 옷도, 눈동자마저도 새하얀 그 소녀는 피로 범벅이 된 체, 복도 한복판에 주저않아


나의 여동생을 뜯어먹고 있었다.


작가의말

이래도 저래도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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