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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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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59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3.10.18 23:01
조회
1,160
추천
29
글자
9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3)

DUMMY

야~옹.


꺼져가던 의식이 고개를 쳐든다.


야~옹.


감겨있던 눈꺼풀이 열린다.


야~옹.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울음소리에 영면이 깨지고 고통의 세계가 펼쳐진다. 의식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것처럼 세상은 흐릿하게만 보인다. 소름이 가득한 피부는 창백하다못해 기괴하게 보였고 입술은 괴상한 루즈라도 바른 것처럼 시퍼런 색으로 물들었다. 떨림조차 멈춘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가고 심장 박동과 호흡은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네처럼 느긋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야~옹.


그 소름끼치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고 혈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골수까지 치밀었던 한기가 물러가고 혈관이 확장되며 심장이 달리고 싶어 안달이 난 기관차처럼 활기차게 쿵쾅댄다. 마침내 온전한 상태를 되찾은 사내,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멍청한 얼굴로 주변을 두어번 둘러보다가 이내 자신을 올려다보는 새하얀 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하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 뭐야. "


안식으로 가는 길을 방해받은 사내의 눈빛에서 짜증의 빛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고양이의 호박색 눈동자는 무감정하게 원망을 받아내곤 말없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툭.


그러자 허공에서 편지 한 장이 튀어나와 사내의 앞에 떨어졌다. 처음부터 그걸 전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 이건 또 왠놈의 편지야? "


아르모어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편지를 받아들었다. 새털같이 많은 날을 두고 하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기 직전에 날아와서 훼방을 놓았으니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그러나 봉투에 적힌 발신인을 확인하자 원망은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 뭐야, 에리카가 보낸거잖아. 인간의 편지를 왜 너네가 전해주는거야? "


틀림없이 안식처의 누군가가 보냈을거라 생각했던 아르모어는 의외의 발신인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얀 고양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다려봤자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그는 편지로 관심을 돌렸다. 잊고 살았던 직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을뿐더러 내용을 읽어보면 전말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 이거 에리카 글씨가 아닌데? '


편지를 펼쳐보자 마치 프린터가 인쇄한 듯이 반듯반듯한 필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개성이 두드러지던 - 까놓고 말해서 개발새발이던 - 에리카의 글씨를 생각하면 몇 년의 갭을 생각해도 본인이 직접 썼다고 보기는 힘들고 누군가가 대필해줬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웠다. 편지를 완전히 펼쳐보자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넘겨준 가게의 매출이 떨어져서 맡겨둔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이 편지를 받으면 내년 4월이 되기 전까지 무바라크로 와서 아이를 데려가기 바란다. 만일 기한 안에 오지 않으면 임의로 처리하겠다.』


" 이게 무슨 전화통화도 아니고... "


아르모어는 짤막한 편지 전문을 읽고 기가막힌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설마하니 에리카가 정말 이렇게 썼을리는 없을테니 대필해준 놈의 소행이 틀림없다. 멋이라곤 눈꼽만치도 없으면서 기계처럼 정밀한 필체, 그리고 용건만 간단히 요약해적는 말라비틀어진 감성까지, 100% 검은 고양이 놈의 소행이다.


' 이걸 왜 대필까지 해줘가며 전해준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긴 하네. '


아르모어는 한숨을 쉬었다. 한번 맡은 아이를 힘들다고 중도에 팽개치려는 에리카의 행태가 썩 마음에 드는건 아니었지만 가게 운영이 난항을 겪고 있다니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경제력이 없는데 무슨 수로 애를 책임진단 말인가? 문제는 아르모어 자신도 경제력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 어차피 내가 가봤자 감당하기 힘든건 마찬가지잖아. 그럼 차라리 내버려두는게 낫지 않을까? '


이러나저러나 제 3자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다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오랫동안 무바라크를 비웠던 자신보단 그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해왔던 에리카와 직원들이 훨씬 좋은 연줄을 가지고 있을테니 그들이 하도록 내버려두는게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외면하기엔 발목을 붙잡은 죄의 족쇄가 너무나도 무겁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한참동안이나 고민하던 아르모어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결정을 내렸다.


" 후우... 일단 가보기는 해야겠다. "


***


마음을 정한 뒤에도 아르모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여행이란 마음만 먹는다고 가능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땅덩어리가 작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있는 한국에서조차 무전여행은 아주 고달픈 일이다. 하물며 도시의 권역을 벗어나면 야생의 세계가 펼쳐지는 이 세상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한겨울에 떠나는 길이니만큼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다면 객사를 피할 수 없다.


' 일단은 정보부터... '


" 이봐. "


아르모어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있던 하얀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고양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표정한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 여기서 무바라크로 가는 교통편이 뭐 없을까? "


냐옹.


고양이는 꼬리를 두어번 살랑거리다가 호박색 눈동자를 끔뻑거리며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눈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훌륭한 지도가 나타난다. 아르모어는 지도 위에 표시된 몇 가지 선을 주의깊게 살펴보고는 지도 옆에 적어둔 각각의 교통비를 참고하여 여행로를 결정했다.


' 일단 에키온에서 기차를 타고 무바라크까지 가는게 난이도로 보나 비용으로 보나 제일 합리적인데... 문제는 에키온까지 가는 방법과 비용이란 말이지. '


일단 철도가 닿는 곳까지만 간다면 이야기는 끝이다. 기차표 값이 문제가 되겠지만 무슨 1등칸을 타자는 것도 아니고 기차표 정도야 뭔 짓을 해도 구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에키온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 버스가 없으니까 마차를 타야하는데 한번에 에키온까지 가는 것도 아니고 세비츠에 들러서 갈아타야하니까 길을 상당히 돌아가게 되는걸. 게다가 삯이 50만 내외라니,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너무하잖아. 무슨 금쪼가리를 먹여서 키운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걸어가자니 못해도 열흘은 꼬박 걸어야 한단 말이지... '


이 한겨울에 노숙을 9일이나 해야 한다는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준비를 갖추지 못하면 꼼짝없이 얼어죽을 수 밖에 없다. 아르모어는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 제일 중요한건 역시 총이려나. 옷도 이런 홑껍데기 가지곤 안될테고 아, 신발도 두세켤레 정도 필요하겠다. 기술이 구려서 그런지 의외로 금방 떨어진단 말이지. 다음엔... 음... 식량은 당연히 준비해야겠고 모포 두 개랑 짐을 지고갈 배낭..... '


이리저리 따져보니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 적지 않았다. 전부다 구매하려면 얼추 70만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그나마 가장 중요한 총을 빼고 계산한 값이고 총과 탄환값까지 고려하면 백만 가지고도 모자랄 것이다.


' 그냥 마차타고 가는게 나을거 같기도 하고... 아니, 마차를 타더라도 옷이나 식량이 필요없는건 아니니까 총 비용은 역시 도보가 싼가. '


이리저리 따져보던 아르모어는 답답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돈을 구할 방법은 마땅찮은데 나갈 곳은 많으니 묘수가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던 것이다.


" 혹시 100만 데카트만 빌려줄 수 있어? "


답답한 마음에 대출을 문의해보았지만 하얀 고양이는 고개를 설래설래 내저었다.


" 하긴 그렇겠지. "


예상대로의 반응에 아르모어는 입을 삐죽였다. 수익을 기대할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담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장래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뭘 보고 돈을 빌려주겠는가? 기껏해야 오랫동안 거래해왔다는 신용 하나인데 20년도 안되는 시간 따윈,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는 요정들에게 있어선 내세울만한 일이 못되었다.


' 별 수 없구만... '


아르모어는 눈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를 타든, 도보로 이동하든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을 벌어야만 한다. 그리고 외부와 격리되어 땅이나 파먹고 살아가는 오지의 시골 동내에서 외지인이 단기간에 돈을 벌만한 일자리가 있는 곳은 딱 한군데 밖에 없었다.


" 여러모로 고마웠다. "


그는 곁에서 온기를 유지해주던 하얀 고양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멀리 솟아있는 남방군 주둔지의 성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예고한대로 좀 많이 늦었습니다.

 

체감상 거의 8천자는 쓴 것 같은데 결과물은 반토막도 안되네요.

 

영문을 모르겠네.

 

다음편은 최대한 일찍 올려보도록 노력...노력...노력...노력...노력.........

 

 

 

***

 

이전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이 주워왔던 아기의 성별에 대해서 투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오래전의 일이기도하고 의견도 이리저리 갈려서 다시 한번 투표를 받아볼까 합니다.

 

댓글로 성별과 이름을 적어주시면 결과에 따라 본편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한은 다음편이 올라올때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투표해주셨던 분들에겐 사죄를 표합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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