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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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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63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03.23 21:36
조회
1,348
추천
34
글자
8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end)

DUMMY

시체, 시체, 시체.


전, 후, 좌, 우 사방 어디를 보아도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이미 시청 앞 광장을 가득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신원불명의 시체를 져나르는 군인들의 손길은 멈출 줄을 몰랐다. 모두가 지난 이틀 동안 벌어진 괴사건에 휘말려 죽은 사람들었다.


이 발디딜틈도 없이 번잡한 죽은 자들의 광장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무심한 표정의 고양이는 사람의 시체를 스스럼없이 짓밟으며 광장의 중앙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다가 문득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쓴 사내가 있었다.


" 괜찮아. "


" .....그래. "


돌아보는 고양이의 시선에서 걱정의 빛을 읽어낸 사내는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저 빈말은 아닌 듯, 모자의 그늘 아래로 언뜻 비치는 그의 표정은 목소리만큼이나 무덤덤했다. 상당히 뜻밖의 반응이었는지 검은 고양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짧막한 대답과 함께 몸을 돌렸다.


" 여기야. "


망자들의 광장을 가로질러 한 시체 앞에 멈춰선 고양이는 뒤따라오던 사내에게 확인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곤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사내의 눈앞에 유달리 마르고 체구가 자그마한 소녀의 시체가 나타났다. 허리를 굽혀 얼굴을 확인한 아르모어는 조심스럽게 시신의 옷을 들춰보았다. 그러자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처참한 학대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부분은 시간의 힘으로 옅어져 있었지만 몇몇은 아주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인지 눈에 띄게 선명했다.


" 지독하군. "


최근에 새롭게 난 상처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본 아르모어는 표정을 찌푸리며 옷을 덮어주고 시선을 돌려 시체의 목을 살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이라면 한 손에 거머쥘 수 있을만큼 얇고 가느다란 목에는 가죽 띠 같은 것을 둘렀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시체를 뒤집어보니 뒷목에도 거의 동일한 자국이 있었다. 타살이라는 명확한 증거였다.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 이처럼 균일한 흔적이 나오는게 아니라 앞쪽의 흔적이 보다 깊고 선명하게 나와야 한다. 여기까지 확인한 아르모어는 소녀의 시체를 다시 똑바로 눕혀준 뒤, 지친듯한 얼굴로 바닥에 앉았다. 그는 살해당한 사람답지 않게 반개한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 정말 웃기는 일 아니야? "


요정어로 말하고는 있지만 시선은 여전히 시체에게 꽃혀 있다.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시체에게 묻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 검은 고양이는 침묵을 지켰다. 애초부터 대답을 구한 질문은 아니었던 듯, 아르모어는 기다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모두 잃었어. 그리고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남의 손에 자랐지. 그것도 곱게 자란게 아니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신나게 두들겨 맞으면서 자란거야. 빌어먹게도 불행한 유년기 아냐? 그토록 힘들게 살아오다가 이틀 전에야 겨우 해방됐는데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이 꼴이라니, 참 웃기는 노릇이야.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괴로운 일만 겪다가 간거잖아. 무슨 놈의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 이 쪼끄만 애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평생 괴롭힘당하면서 살다가 남의 손에 목졸려 죽어야 하나?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금방 답이 나오더군. "


그의 말투는 무덤덤했지만 목소리에선 분노가 묻어나왔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을 쌓아온 검은 고양이조차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꼈을 정도로 깊고 진한 분노였다.


" 바로 나랑 얽혔다는거야. 재수없게 나랑 얽혔기 때문에 부모를 잃었고 안목없는 나 때문에 망할 년에게 맡겨져 학대당했으며 족보도 없는 괴상한 결계를 펼쳐버린 나 때문에 죽은거라고. 맙소사, 천하에 이런 개새끼를 봤나. 그게 나야. 빌어먹을, 나란 말이야. 전부 나 때문이야. 여기 광장에 깔린 놈들도 다 나 때문에 죽은거라고. 심지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야.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세어보면 못해도 오천명은 넘을걸! 어느 나라 법정에서 판결을 받아도 틀림없이 최고형이 나올만한 개새끼가 바로 나란 말이야. "


또 자책인가, 하고 검은 고양이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불합리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실패를 했으면 거기에서 얻은 교훈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마땅하건만, 이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행위를 후회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다.


" 그렇다면, 난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개새끼가 된거지? "


여기까지 말한 아르모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소녀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광장 바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예기치 못한 돌발행동에 당황한 검은 고양이는 주변을 경계하는 것도 잊은 채, 사내에게 물었다.


" 이대로 그냥 갈거야? "


" 이대로 그냥 가지 않으면? "


" 복수라던가, 장례라던가 할 게 많잖아. "


요정들은 아무리 친한 상대라 할지라도 일단 죽고나면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종족들의 장례 문화나 망자에 대한 감정 따위는 모두 무의미한 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검은 고양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낭비'를 입에 담은건 어디까지나 아르모어에게서 일거리를 따내기 위한 호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내막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르모어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 필요없어. "


검은 고양이는 벙찐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것은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란 인간의 입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 놀란 얼굴을 돌아보며 사내는 어딘가 초탈한 듯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거지만 오늘에서야 겨우 확신이 들었어. 내 인생은 이런 풍경의 연속인거야. 사이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가던지간에 결국은 시체가 그득한 종착역에 도달하고야 말지. 이 세상에 도달한 그 순간부터 내 미래는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거야. "


" 그건 터무니없는 비약이야. "


" 뭐, 그럴지도 모르지. 단순히 내 망상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건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는거야. 이 빌어먹을 세상이 날 불행으로 밀어넣는거라 확신해버렸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알아먹었으면 어서 가자고. 준비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으니까. "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부은 아르모어는 마치 십년 묵은 채증이 내려간 사람처럼 후련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서두르라는 듯이 손짓하며 앞서나갔다. 그 뒤를 멍한 얼굴로 지켜보던 검은 고양이는 한참만에야 겨우 냉정을 되찾고 사내에게 물었다.


" 가다니, 어디로 간단 말이야? "


" 안식처! "


" 안식처? 안식처에 가서 뭘 하려고? "


고양이의 물음에 앞서가던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호탕한 목소리로 즉답했다. 이번에도 생각지도 못한 목적지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행보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질문과 함께 사내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러자 아르모어는 유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세상을 지워버릴거야. "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작가의말

창작의 샘이 말라붙었어!!!!!!!!!!!!!!!!!!!!!!!!!!!!!!!

여유시간도 없어!!!!!!!!!!!!!!!!!!!!!!!!!!!!!!!!!!!!!!!!

퀼리티도 구려!!!!!!!!!!!!!!!!!!!!!!!!!!!!!!!!!!!!!!!!!!!

그런데 완결은 내야해!!!!!!!!!!!!!!!!!!!!!!!!!!!!!!!!!!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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