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72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3.09.24 13:39
조회
1,672
추천
30
글자
11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1)

DUMMY

정말로 긴 꿈을 꾼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조용히 눈을 떴다. 쓰러진 사이에 아침이 되었는지 커튼 너머로 은은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 여긴 병원인가? '


침대를 둘러싸며 드리워진 커튼을 보고 병실은 연상한 아르모어는 여기가 병원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가 아는 남방군이라면 죄수병 하나를 위해 굳이 병원비를 지불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 기껏해야 의무실이겠지. ' , 하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촤르륵


' 읏, 추워. '


커튼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 아직 새벽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어제 새벽과 비교해도 꽤나 쌀쌀한 날씨다. 마치 잠들어 있는 사이에 계절이 바뀐 것만 같았다. ' 그럴 리가 있냐. ' 하고 속으로 웃던 아르모어는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얼굴을 만져보았다. 어째서인지 축축한 물기가 묻어났다. 밤새 눈물이라도 흘렸던 모양이다. 뭔가 슬픈 꿈이라도 꿨던 것일까? 하지만 꿈이라는 것이 대게 그렇듯, 생각해내려고 해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어차피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에 아르모어는 금새 관심을 끊었다. 그리고 뒤늦게 중요한 문제를 파악했다.


' 아차, 붕대! '


손으로 눈을 직접 만질 수 있었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있던 붕대가 사라졌단 뜻이다. 아마도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버린 모양이었다. 하기야 감옥에서부터 두르고 다녔던 것이니 냄새 때문에라도 버릴만했다.


' 곤란한데... 뭔가 눈을 가릴만한게 없나? '


붕대 자체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지만 여왕의 눈을 내놓고 다닌다는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붕대를 대체할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여왕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 어? "


분명히 여왕의 눈을 활성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넓어지지 않았다. 투시력이 생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여왕의 눈을 사용한지 십년이 넘었지만 일찍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아르모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


능력을 활성화시키는 감각이 살아있는 것으로 봐서 여왕의 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체의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 아르모어는 못박힌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섰다. 눈을 가리더라도 투시력이 없으면 의미가 없었다. 남의 시선 때문에 시력을 포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 차라리 진짜 장님처럼 감각이라도 발달했으면 모르겠는데 이것 참... '


눈을 감고 능력을 활성화시켜보았지만 역시나 투시 능력은 발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여왕의 눈이 사라지고 사람의 눈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자그마한 기대를 품고 침대에서 나온 아르모어는 표정을 찡그렸다.


' 몸이 무거워. '


잠을 오래 자서 그런지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움직이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 안에 거울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내 벽면에 걸린 거울을 발견하고 작은 기대를 품은 체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실망감이 가득한 자신의 얼굴과 변함없는 여왕의 눈이 비쳤다.


'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인가... '


아르모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흉한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숨길 수도 없는 모습이다. 광물같은 눈을 가진 그의 얼굴은 자신이 봐도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하물며 남들이 보기에는 어떻겠는가?


' 이래서야 괴물 취급을 받아도 할말이 없군. '


아르모어는 별일 아니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능력의 유무나 흉한 외모 따윈 계속 살아갈 녀석들에게나 심각한 문제지 조만간 죽어 나자빠질 예비 시체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자신을 타일렀지만 잔뜩 굳어버린 표정은 어째서인지 펴질 줄을 몰랐다.


덜컥.


그때, 방문이 열리며 낮선 사내가 들어왔다. 백의를 걸친 것을 보니 군의관쯤 되는 모양이었다. 제법 나이가 있는지 회갈색 머리카락과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반쯤 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을 멍청히 바라보는 아르모어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 같기도하고 혐오스러운 것을 보고 놀란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에 아르모어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가 이내 자조하며 풀었다. 어차피 자신의 삶은 끝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와서 남의 반응 같은거야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군의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폰 피르쉬어? "


" 내가 피르쉬어가 맞긴 하지만 유령이 된 기억은 없는데. 표정 좀 펴지 그래? "


비아냥거리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인지 군의관의 표정이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 말버릇이 고약하군. 영창에 끌려가서 맑고 고운 비명소리를 지르기 싫거든 지껄이기전에 먼저 네 계급부터 생각하는게 좋을거다. "


" 예,예, 명심합죠. "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아르모어가 장난스레 말하자 군의관은 무어라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르모어는 그가 사령관을 의식해서 자제했다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쨌건 군의관은 말꼬리를 잡고 투닥대기보단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기를 선택했는지 아르모어에게 몸 상태를 물었다.


" 몸은 좀 어떤가? 움직이는데 불편은 없나? "


" 음, 몸이 좀 무겁긴한데 거동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야. "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이자 군의관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물었다.


" 목이 마르다거나 배가 고프진 않나? "


" 아니, 딱히? "


이번에도 군의관은 놀라운 표정으로 책상에 놓인 노트를 펼치고 무언가를 기록했다. 투시 능력이 있었다면 훔쳐볼 수 있었을텐데, 하고 아르모어는 생각했다. 기록을 마친 군의관은 질문을 재개했다.


" 초능력이나 마법은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겠나? "


" 아니, 어째서인지 완전 먹통이야. "


" 그렇겠지. "


당연한 것은 놀랍게 여기고 당연하지 않은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군의관의 태도에 흥미를 느낀 아르모어가 물었다.


"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인데 혼자만 알지 말고 속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지? "


" 말조심 하라고 했을텐데 들어먹질 않는군. 청각에 문제가 있는건가 아니면 머리가 어떻게 된건가? "


군의관은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했지만 실질적인 제제는 가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 어쨌든 이야기해줘야 할 일이니 설명해주지. 넌 네가 어쩌다가 쓰러졌는지 기억하고 있나? "


" 모의전 도중에 난입한 왠 미친년한테 얻어맞아서 이 꼴이 됐지. "


바로 어젯밤의 일이니 모를 리가 없다. 앞 뒤 내용은 잘라먹고 결과만 말하자 어찌된 셈인지 군의관은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 미친년이라니, 말조심해라! 그분은 너 따위가 함부로 입에 답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


" 허? "


생각지도 못한 격렬한 반응에 아르모어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신나간 여자가 대체 뭐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 높으신 양반인가? ' 그야 높으신 양반이 맞긴 맞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클루니 사령관을 패버리고 무사할 리가 없을테니까. 하지만 군의관이 보이는 반응은 단순히 높은 사람을 욕한 것에 대한 반응치곤 지나쳤다. 개인적으로 존경하기라도 했던건가? 진실이 어찌됐든 군의관은 당장이라도 폭발하려는 화를 가까스로 참아내는 티를 팍팍 내며 경고했다.


" 네놈은 그분에 대해 알 수가 없을테니 이번 한번만큼은 넘어가겠다. 하지만 지금부터 또 그 따위 망언을 지껄였다간 네놈의 머리통이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


' 빈말은 아닌 것 같군. '


머리통이야 날아가든말든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지만 아직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기에 아르모어는 주의해두기로 마음먹었다. 한참만에야 분을 가라앉힌 군의관은 아직도 약간 흥분기가 남아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재개했다.


" 어쨌든! 네놈은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격에 네놈의 가슴은 완전히 주저앉아버렸다. 심장까지 뭉개질만큼 치명적인 부상이었지. "


" 아니, 잠깐만. 말이 이상하잖아. 심장이 뭉개졌는데 어떻게 살아? "


" 낸들아냐! "


군의관은 진심으로 짜증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 분명히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마저 함몰되어 있었다! 심장 박동도 느껴지지 않았어! 혹시나 오른쪽에 심장이 있는 특이 체질인가 싶어 그쪽도 검사해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정황상 심장이 뭉개진건 틀림없었어. 그런데도 살아있단 말이다! 실제로 살아있는데 뭐 어쩌라고!? 네놈의 몸뚱아린 현대 의학의 영역으론 설명할 수 없는 것 투성인데 낸들 무슨 수로 알겠냔 말이다! "


아무래도 이 질문에 대해서 쌓인게 많은 모양이었다. 심장이 뭉개져도 살아있었단 말에 아르모어 자신도 황당하긴 했지만 요정화된 신체 때문인가보다 하고 막연히 받아들여버렸다. 어차피 의학 논문 쓸것도 아닌데 세세하게 따져봤자 별 소용도 없다. 하지만 군의관은 그렇지 않았는지 그로부터 한참을 더 씩씩거리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 그래서 나는 네놈이 머지않아 죽을거라 생각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현대 의학의 기술로 치료할 수 없는 부상인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놈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심지어 그 상처를 자력으로 치유해가면서 살아남았다. 의학적으로든 마법적으로든 이유를 해명할 순 없었지만 천천히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5년 7개월만에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이렇게 일어난 것이다. "


" 잠깐만. "


대충 어떤 내용이 나올지 짐작하고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던 아르모어는 군의관의 마지막 말에 정색을 하며 물었다.


" 지금 뭐라고 했지? "


" 한마디로 요약하면 네놈은 놀라운 자연 회복력으로... "


" 그거 말고! 마지막에 한 말 말이야! "


" 마지막? 아아... 그렇지. "


아르모어의 경악한 표정을 즐기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 네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까지 5년 7개월... 정확히 말하자면 5년 7개월 21일이 걸렸다. "


꼭 삼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소리였다.


작가의말

연중인줄 알았습니까?

 

작가킥!

 

단순히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하얀기사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84 어영부영 휴재가 3개월을 넘겼습니다. +9 14.10.07 981 13 1쪽
183 2화 - 신문팔이 소년의 운수 나쁜 밤 +5 14.07.03 1,059 28 19쪽
182 1화 - 신문팔이 소년의 운수 좋은 날 +6 14.06.29 1,226 23 15쪽
181 후기 겸 백기 +9 14.05.11 1,641 25 2쪽
180 하얀 기사의 이야기 - 프롤로그 +7 14.05.11 1,577 27 9쪽
179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end) +5 14.05.10 1,196 28 9쪽
178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4) +4 14.05.06 1,181 27 20쪽
177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3) +7 14.05.05 1,366 26 16쪽
176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2) +7 14.04.24 2,041 30 18쪽
175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1) +6 14.04.24 1,511 30 11쪽
174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end) +7 14.03.23 1,349 34 8쪽
173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11) +6 14.02.15 1,272 26 12쪽
172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10) +10 14.01.26 1,223 38 10쪽
171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9) +7 13.12.07 1,470 35 15쪽
17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8) +5 13.11.17 1,313 30 13쪽
16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7) +9 13.11.12 1,323 43 8쪽
16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6) +6 13.11.03 1,275 36 12쪽
16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5) +5 13.11.02 1,531 46 7쪽
16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4) +7 13.10.23 1,345 34 13쪽
16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3) +5 13.10.18 1,161 29 9쪽
164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2) +7 13.10.02 1,209 33 3쪽
»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1) +8 13.09.24 1,673 30 11쪽
162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9) +3 13.09.01 1,304 44 3쪽
161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8) +6 13.08.28 1,591 39 11쪽
16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7) +3 13.08.26 2,325 44 13쪽
15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6) +6 13.08.21 1,477 33 10쪽
15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5) +5 13.08.18 1,639 32 9쪽
15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4) +1 13.08.11 1,505 36 9쪽
15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3) +6 13.07.30 3,599 66 14쪽
15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2) +7 13.07.22 1,595 3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