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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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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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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05.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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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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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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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 프롤로그

DUMMY

서걱!


마지막 하객의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용도를 마친 칼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아르모어는 피곤한 얼굴로 기지개를 폈다.


" 으아~ 이제야 겨우 끝났네. "


내팽겨진 칼이 돌바닥을 두부처럼 파고든다. 그 비정상적인 날카로움이야말로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아르모어가 일격에 사람 목을 벨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아무리 베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 해도 3kg이 넘는 검을 몇백번이나 휘두르는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어서 어께가 빠질 듯이 아팠다.


"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 "


" 이런걸 유지하면서 딴짓할 여유가 어딨어? "


어께를 두들기며 투덜거리자 커다란 고양이의 뒷편에서 일반적인 크기의 검은 고양이가 걸어나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쇠사슬을 밟으며 반박했다. 드래곤이 검에 심어준 술식을 기반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30마리 이상의 고양이 요정이 달라붙어야 가까스로 구현할 수 있었던 마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마리라도 자리를 이탈했다간 당장에 마법이 깨져버렸을 것이다.


" 그러게 귀찮은 짓 하지 말고 그냥 쳐죽이면 됐잖아. "


" 의뢰할땐 네가 직접 죽여야 한다며. "


" 그건 백기사를 내가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지, 하객 전체를 내가 죽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


" 알게뭐야, 제대로 확인 안한 네가 잘못이지. "


" 크윽...! "


검은 고양이의 말마따나 의뢰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실수였기에 아르모어는 분한 듯이 이를 갈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임을 인정했다고 해도 억울한 마음까지 사라지는건 아니라서 괜히 칼로 바닥을 긁으며 끊임없이 궁시렁댔다.


" 뭘 그렇게 궁시렁대는거냐? "


" 아, 도서관장...님? 그 모습은 뭡니까? "


" 음? 아... "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낮익은 목소리에 아르모어는 반갑게 고개를 들었다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구의 사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는 있는데 전신이 시뻘건 비늘로 뒤덮혀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자신의 꼬락서니를 자각한 도서관장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오른손에 메달아놓은 사슬 뭉치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 이놈이 예상보다 훨씬 쎄지 뭐냐. 방심했다가 고생 좀 했다. "


" 그렇게나 강했어요? "


" 음, 나 정도 되는 드래곤이니까 망정이지 천살배기 애들 같았으면 아마 당했을거다. "


도서관장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야말로 기절초풍할만한 내용이었다. 천살이면 어엿한 성체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현대 인류가 모두 힘을 합쳐 대적한다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존재가 바로 다 자란 드래곤이다. 그런데 그걸 1:1로 때려잡을 수 있다니, 드래곤이 내린 평가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 옛 시대의 사람들은 대체 뭐하던 작자들이야... "


애냐의 설명을 신용한다면 『기사』는 제작 당시엔 적당히 뛰어난 병기에 불과했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소원의 열쇠』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물건이 혼자서 다 자란 드래곤을 때려잡을 정도라면 당시의 전쟁병기는 대체 얼마나 강했다는 소릴까?


" 생각하시는 것처럼 대단하진 않았어요. 아무리 마법이 뛰어난 당시라도 드래곤과 대적할 수 있을만한 병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답니다. "


아르모어의 의문에 대답한 것은 어딘가 낮이 익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도서관장의 손에 들린 사슬 뭉치에서 머리만 겨우 내놓은 계집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인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애냐였다.


" 뭐야, 그 꼴은? "


" 전(前) 마스터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기라고 억지를 부려서 말이죠. 그래서 정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끌어왔다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거에요. "


그래봤자 헛수고였지만요, 하고 애냐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아르모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힘을 끌어다 쓴 대가로 어려진거라면 단순히 외견만 바뀐게 아니라 힘까지 약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얼마나 약해진건데? "


" 보시는대로요. "


외견대로의 강함이란 의미다. 그리고 애냐의 겉모습은 기껏해야 10~12살 정도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요컨데 완전히 무력하다는 소리였다.


" 아, 그리고 『기사』도 소환할 수 없어요. 있는대로 힘을 다 끌어다썼다가 거덜냈거든요. 헤헤헤... "


쑥쓰러운 듯 웃는 얼굴에 주먹을 힘껏 꽃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가까스로 찍어누른 아르모어는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킨 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언제까지 그 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


" 한 1년 정도? "


빠직!


천연덕스러운 미소와 함께 내놓은 애냐의 대답에 아르모어는 이마에 힘줄을 돋구며 폭발하고 말았다.


"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전재산 탈탈 탈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겨우겨우 일을 성사시켰더니 이번엔 무력한 꼬맹이를 옆에 달고 1년 동안이나 도망다니라고!? 장난하냐!!! "


그도 그럴게 백기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곧 죽고 죽이는 『소원의 열쇠』 쟁탈전에 참전한다는 의미다. 그런 상황에서 『열쇠』도 『기사』도 사용이 불가능하다는건 군인에게 알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라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무려 1년 동안이나 말이다.


" 싫으면 그만두세요. 저도 당신보단 저기 위대하신 드래곤 님을 새 주인님으로 맞이하고 싶으니까요. "


그러자 애냐는 도서관장의 다리에 볼을 부비면서 태평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로선 누가 새 마스터가 되어도 최후의 승자가 될 확률만 높으면 장땡이었기에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준 도서관장을 내버려두고 아르모어에게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 도서관장 역시 애냐의 구조에 흥미가 있었기에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 호오, 그거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데? 도서관에 가져가서 한 오백년쯤 느긋하게 연구해보는 것도 괜찮겠어. "


" 죄송합니다. 저 사실 드래곤과 계약하면 폐품이 되는 결함이 있어요. "


" 괜찮아. 부서지면 부서지는대로 잔해를 연구하면 되니까. "


도서관장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린 말에서 손톱만큼의 장난기도 찾아내지 못한 인형은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자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아르모어를 돌아보았다. 마치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그 모습에 한숨을 푸욱 내쉰 아르모어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으며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 기가막히긴 하지만... 이제와서 다른 『기사』를 노릴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관장님, 그 녀석 풀어줘요. "


" 그냥 내가 가지고... "


" 드래곤이 한입으로 두 말 하시게요? 그리고 어차피 폭군이 뺏어갈텐데 가져가봤자 뭐해요. "


" 싶진 않군. "


은근히 탐욕을 내비쳤던 도서관장은 아르모어의 지적을 받고 잽싸게 말을 바꾸었다. 그의 말마따나 드래곤이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호기심으로 충만한 폭군이 신기한 인형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으니까.


촤르륵.


" 그럼,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백기사』의 새로운 마스터가 되주시겠어요? "


애냐가 쇠사슬에서 풀려나면서 묻자 아르모어는 탐탁찮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애냐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우고 다가와 자그마한 손으로 볼을 잡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 저를 이끌어주실 새로운 주인님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


그러고보면 애냐가 이름을 물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그 전까진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정말로 클로디아를 죽이고 새로운 주인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모어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 "


"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 확실히 입력했습니다. "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미소지은 애냐는 막을 틈도 없이 아르모어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겹쳐진 입술을 통해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와 심장에 모여들었다. 잠시 후, 애냐의 입술이 떨어졌지만 아르모어는 그녀와 무형의 기운을 통해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 각인(imprinting) 완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 "


계약을 마치고 정식으로 자신의 것이 된 애냐가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내자 아르모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그녀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답했다.


"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


새로운 세대의 하얀 기사가 역사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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