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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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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175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3.11.12 20:34
조회
1,323
추천
43
글자
8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7)

DUMMY

이히이이이이잉!!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온 순간, 귀청이 찢어질 듯한 말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는 반사적으로 한나를 골목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의 몸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혔다. 머리가 꺠지고 피가 쏟아져나온다. 이것만해도 이미 치명적인데 그 위를 흥분한 말이 덮쳤다. 억센 말발굽에 얼굴이 뭉개지고 팔뼈가 부러져 양팔이 괴상한 모양으로 구부러졌으며 배가 짓밟혀 내장이 터지고 가슴과 옆구리도 발굽세례를 피하지 못해 뼉다구가 분질러진다. 무슨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철저하게 남자를 짓밟아버린 말은 마부가 한참동안 진땀을 뺀 끝에야 겨우 발을 멈추고 물러나 거친 숨을 내쉬었다.


" 아... 아아... "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사에 어린 한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기운이 넘치던 아저씨가 차마 눈뜨고 보기 겁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현실을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아이의 작은 머리는 오발탄처럼 갈곳을 잃은 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고 뇌의 명령을 받지 못한 육신은 그저 멍청히 입을 벌린 체, 눈앞의 참상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 무슨일이냐!? "


한편, 마차 안에서 젊은 남자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가 크게 요동쳤으니 안에 탄 사람에겐 여간 놀랍고 불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선한 것 같아 마부는 식은땀을 흘리며 잽싸게 대답했다.


" 왠 거렁뱅이가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마차에 치였습니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은뎁쇼. "


" 뭐야? "


문이 벌컥 열리고 요란스런 붉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와 밋밋한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연이어 마차에서 내렸다. 붉은 정장 쪽은 키가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산적상인 반면에 회색정장 쪽은 중키에 통통한 체형이었는데 붉은 정장 쪽보다 나이가 열살은 더 들어보였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M자 탈모의 조짐이 살짝 엿보였다. 그들은 수염이나 체형 때문에 알아차리가 쉽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이 상당히 닮아 있었다. 타인이 이렇게까지 닮기는 힘든 일이니 아마도 둘은 형제지간인 듯 싶었다. 그러나 같은 참상을 목격한 형제의 반응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 햐, 이거 아주 피떡을 만들어놨구나. 이 난폭한 녀석 같으니라고. "


붉은 정장의 남자는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 되버린 아르모어를 보고는 껄껄 웃으며 말의 목을 찰싹 때렸다. 전쟁터에서도 보기 힘든 처참한 시체를 눈앞에 두고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 것이 처참한 시체에 아주 익숙한 사람 같았다. 아마도 시체와 친숙한 직업을 가졌거나 피와 살이 튀는 전장을 두루 거친 사람, 혹은 타고난 성정이 잔혹하여 그 스스로가 이런 시체를 자주 만들어낸 사람일 것이다.


" 어이쿠, 이거 정말 끔찍한 몰골이구나. 내 머리털나고 이런 처참한 시체는 처음본다. "


" 아니, 형님! 지시는 내리고 가셔야지 그렇게 들어가면 어떻합니까! "


"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해라. 난 도저히 못보겠다. "


반면 형으로 보이는 회색 정장의 사내가 보여준 태도는 훨씬 평범했다. 그는 시체를 보자마자 안면이 하얗게 질리더니 사고의 뒷수습을 동생에게 떠맡기고는 진절머리를 치며 마차 안으로 도망가버렸다. 붉은 정장의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우리 형님은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심약해서 탈이라는 둥, 귀족이라면 마땅히 피와 친해야 한다는 둥, 하면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 저... 어떻게 할깝쇼? "


마부가 붉은 정장의 남자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아르모어가 입은 옷을 슬쩍 확인해보더니 코웃음을 치곤 말했다.


" 입고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동냥이나 하고 다니는 거렁뱅이 같은데 감히 본가의 마차 앞을 막아섰으니 간덩어리가 이만저만 큰놈이 아니구나. 원래대로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마땅하지만 이미 뒈져버렸으니 별 수 없군. 김새는 이야기지만 그냥... 응? "


그때, 골목에 선 체 죽은 부랑자의 시체를 넋나간 얼굴로 바라보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띄였다.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하며 비쩍 마른 몸뚱어리나 변변찮은 복색을 보니 방금 치여죽은 거렁뱅이의 딸래미쯤 되는 모양이었다.


" 오호라. "


남자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감돈다. 그는 아직도 패닉에 빠진 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한나에게 다가와 거친 사내의 손으로 그녀의 어께를 붙잡았다. 어린아이에겐 상당히 아플 정도로 힘을 주었는데도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한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 에잉, 계집애가 소리도 좀 지르고 발버둥을 쳐야 재미가 있는 법인데 뭔놈의 계집아이가 시체마냥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으니 이거 영 재미가 없구만. "


남자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억센 팔로 한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마차 문을 열고 아이를 던져넣었다. 한편, 머릿속에 각인되어버린 참상을 지우려고 애쓰던 회색 정장의 사내는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왠 커다란 물체가 날아오자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물체를 받아들고나니 왠 어린 계집아이였다.


" 아니, 이 계집애는 뭐냐? "


" 에헤, 잠시만 데리고 계십쇼. 있다 가면서 설명해드릴테니까. "


그러고는 마차 문을 열어둔 체, 마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 이봐. "


" 예, 작은 도련님. "


" 저 시체 저건 길가는데 방해되니까 아무데나 적당히 치워버려라. "


" 그걸로 괜찮을깝쇼? "


" 상관없어. 내버려두면 저 쥐새끼들이 경찰을 부르든 사제를 부르든해서 처리하겠지. "


붉은 정장의 사내는 골목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을 경멸스러운 눈으로 훝어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마차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의 뜻에 따라 마부는 구역질을 참으며 시신의 옷자락을 잡고 질질 끌어서 골목안에 처넣어버리고는 다시 마차에 올라 고삐를 쥐었다.


" 이럇! "


히이이이잉!


우렁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멈춰섰던 마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시체의 공허한 눈동자에 마차 전면을 장식한 문장이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잠자코 지켜보던 사람들 중 몇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시체를 가까이에서 살펴보려 했으며 누군가는 신전에 도움을 청하러 가려 했고 누군가는 경찰을 불러올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어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일이 있어서 일어난 것 같은데 그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묘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길바닥을 선명한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골목 쪽으로 고개만 슬쩍 돌려도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시체가 적나라하게 방치되어 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하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냐옹.


이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거리를 호랑이 같은 무늬를 가진 고양이 한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같은 거리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하며 들쑤시던 그 고양이는 골목 입구에 버려진 아르모어의 시체를 밟고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머릿속으로 짧막한 보고를 보냈다.



『아르모어 폰 피르쉬어, 행방불명.』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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