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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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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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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4.01.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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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0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10)

DUMMY

" 당신에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나요? "


' 갑자기 왠 헛소리야? '


아르모어는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심각하다못해 비장미까지 감도는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남의 소원 같은건 왜 묻느냔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면전에다 ' 너 돌았냐? ' , 하고 폭언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설마하니 아무 생각없이 저런 말을 하진 않았을거라는 믿음이 가까스로 감정을 억눌렀다.


" 있냐, 없냐를 묻는거라면 있어. "


차분하게 대답할 생각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도 놀랄만큼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미처 억누르지 못한 감정이 발성기관에 수작을 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지금 아쉬운 쪽은 자신이 아니라 애냐 쪽이니까.


" 그런가요.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


예상대로 애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까칠하게 대답한 정도로 파토낼만큼 시시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딱히 이쪽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양보를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등한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양보라는 느낌이다.


' 의외로 되면 좋고 말면 말고 정도의 일인가? 아니면 대화를 보다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허세? '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애냐의 입에서 난처한 질문이 흘러나왔다.


" 당신은 그 소원을 위해 모든걸 버릴 수 있나요? "


그녀의 입에서 '모든 것'이란 단어가 흘러나오는 순간, 아르모어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촉'이 그녀의 말에 담긴 무게를, 짧막한 단어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함부로 대답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아르모어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질문으로 받아쳤다.


" 글쌔, 그런건 왜 묻는거야? "


애냐의 눈동자에 실망의 빛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금새 평정심을 회복한 인형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이 세상에는 『소원의 열쇠』 라는 마법이 있어요. "


" 소원의 열쇠? "


어쩐지 낮익은 울림이다. 어디서 들었던걸까, 하고 아르모어는 곰곰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른손으로 수면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기억을 더듬어가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커다란 책장들이 미로처럼 놓여있는 익숙한 도서관의 풍경이 떠올랐다.


" 이름 그대로 사용자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이에요. 비록 일회용이긴 하지만 어떤 소원이라도 이룰 수 있죠. "


아마도 15년. 아니, 17년 정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차원이동의 실마리를 찾겠답시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분야의 책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어대곤 했다. 세계 각지의 전설을 기록한 책들을 탑처럼 쌓아놓은 채, 일주일을 투자해서 기어이 다 읽었던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 하지만 아무나 소원을 이룰 수 있는건 아니에요. "


소원의 열쇠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수많은 전설 중에 하나였다.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로 중부지방에선 나름대로 유명한 전설에 속했다.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다섯 개로 쪼개진 열쇠 조각을 모두 모은 사람에게 소원의 열쇠가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전설치곤 흔해빠진 내용이었을 것이다.


" 소원을 열쇠는 다섯 세력의 합작품으로 만들어졌답니다.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쇠를 만들었지만 누가 열쇠를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심하게 다투었어요. 머리를 쓰기에 따라선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동시에 자신이 소속된 세력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소원을 빌 수 있었거든요. 결국, 끝까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치를 여건도 못되었던 다섯 세력의 수장들은 격렬한 토론 끝에 일종의 대리전을 통하여 주인을 가리기로 결정했어요. "


흐름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멈춘 애냐는 기억을 떠올리느라 정신이 팔린 아르모어를 보고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 ' 이걸 계속해야하나. ' , 하고 고민하는 듯한 회의감이 떠올랐다. 그래도 본론한번 꺼내보지 못한 채 이야기를 끝내는건 아니다 싶었는지 헛기침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 그들은 먼저 열쇠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고 열쇠를 수호할 『기사』를 만들었어요. "


" 기사? "


"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요즘의 기간트 같은거에요. 이 기사를 이용해서 다른 기사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면 자동으로 상대방이 지닌 열쇠 조각을 흡수하는 식이죠. 이렇게 모든 열쇠 조각을 모은 기사의 주인이 최종적으로 소원의 열쇠를 가지게 되는거랍니다. "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있던 아르모어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 이상한데... 나도 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소원의 열쇠에 대한 전설은 여러번 들었지만 네가 말하는 제작자들의 사정이라던가 『기사』를 이용한 대리전 같은건 한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어. "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걸 알고 있는거야? 하고 묻는 듯이 그는 고개를 젖혀 애냐를 바라보았다. 여왕의 눈과 마주친 새파란 눈동자에 아주 잠깐, 기쁨의 빛이 스쳐지나간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르모어의 머리를 끌어안은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그건 제가 바로 열쇠의 다섯 조각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


과연, 전설의 당사자라면 남들이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줄줄히 꿰고 있어도 이상할게 없다. 또한 뜬금없이 소원을 물어본 것부터 영양가 없는 전설 따위를 주절주절 설명해댄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 .....아무리봐도 열쇠 조각치곤 너무 큰데? "


여러가지 의미에서 믿음이 가질 않았다. 물론, 소원의 열쇠라고 해서 정말로 열쇠 모양이란 법은 없지만 그녀의 설명대로라면 대리전의 승패를 결정짓는건 어디까지나 『기사』의 역할이고 열쇠 조각은 승리자에게 딸려오는 전리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태여 인간형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 보통 그냥 열쇠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기사』의 열쇠에요. 저희와 계약을 맺어야 기사의 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죠. 여기에 기사를 소환하는 좌표점이자 마스터를 보좌하는 비서 역할도 겸하고 있어요. "


그녀의 해명에 고개를 주억거린 아르모어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의문점을 꺼냈다.


"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내가 알기로 소원의 열쇠에 대한 전설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야. 그리고 네 스스로 소원의 열쇠는 일회용이라고 밝혔지. 그런데 왜 오늘날까지 사용되지 않고 남아있는거야?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 "


열쇠를 제작한 다섯 세력에게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는 점으로 보나, 스스로를 열쇠 조각이라 주장하는 애냐의 완성도로 보나, 소원의 열쇠는 세계수로 인해 멸망해버린 옛 시대에 제작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세계 멸망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기껏 완성시켜둔 최후의 희망을 사용하지 않고 버려둔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백만번 양보해서 멸망은 그렇다쳐도 애냐와 같이 완성된 열쇠들은 제 발로 돌아다니면서 주인감을 찾아다녔을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미 먼 옛날에 5명의 주인이 모두 결정되고 대리전을 통해 승자가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 저희로서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동 명령이 내려온건 지금으로부터 불과 13년 전이고 모든 기사의 마스터가 정해지면서 쟁탈전이 시작된 것은 아직 8년도 체 되지 않았습니다. "


" 아니, 8년 동안 대체 뭘 했길래 아직도 결판이 안난거야? "


최소 5천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 줄곳 방치되어 있다가 불과 13년 전에야 기동했다는 이야기도 믿기 어려웠지만 고작 5명 중에 한명을 가리는 싸움을 장장 8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보다 황당하진 않았다. 애냐도 내심 한심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던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후우... 그게 바로 제가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요. "


이야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맥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열쇠와 기사는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투입해서 만들어진 병기들이에요. 당시에는 적당히 우수한 병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에 비해 마법 기술이 형편없이 쇠퇴해버린 오늘날에는 단독으로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는 강력한 병기가 되버렸죠.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마스터를 선택하면서 그 점을 완전히 간과하고 말았어요. "


" 현재에 안주해버렸군. "


" 네, 지금의 마스터는 우수한 분이시지만 너무 많은걸 가지셨어요. 더 이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진거죠. 이제 그분의 머릿속엔 현재의 행복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생각 밖엔 들어있지 않아요. 그나마 아주 소극적인 방안밖에 떠올리지 못해서, 사실상 아무것도 안하는거나 다름없어요. 아마 다른 기사가 목을 따버리기 전까진 변하지 않을테죠. "


터무니없는 실수였어요, 하고 그녀는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하지만 한번 계약을 맺은 이상, 마스터가 죽거나 기사가 파괴되기 전까지는 계약을 파기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마스터를 죽이고 새로운 마스터를 찾아다닐 수도 없죠.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당신처럼 괜찮아보이는 마스터 후보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 뿐이랍니다. "


후아~ 다 말해버렸다, 하고 말을 끝마친 애냐는 속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아르모어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돌아보는 새로운 마스터 후보에게 '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 , 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 제 새로운 마스터가 되어주실래요? "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처럼 수줍은 얼굴로


작가의말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최근 들어서 글을 쓰는게 너무나도 힘듭니다.

 

예전엔 키보드 위에 손만 올려놓으면 머릿속의 풍경이 알아서 글로 변환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걸 못하게 되버렸네요. 취미로 적는 소설뿐만 아니라 글 자체를 쉽사리 적을 수가 없습니다. 고작 한 줄을 적는데 몇 번을 고쳐대는지... 어차피 결과물은 처음거나 마지막거나 도찐개찐인데 말이죠. 스스로도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으니 깝깝합니다.  

 

어쩌면 그냥 자신감이 사라져버려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우... 이 짤막한 후기도 대체 몇 번을 다시 적는건지... 

 

언제 날 잡아서 책이나 왕창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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