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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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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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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41,677

작성
14.07.0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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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화 - 신문팔이 소년의 운수 나쁜 밤

DUMMY

우리 도시의 암시장이 열리는 곳은 해가 떨어질 무렵의 사바린 가로 정해져 있다. 사바린 가는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이름이 붙여진 거리답게 제법 규모가 큰 대로로 은밀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서 열리는 시장 역시 은밀함이라곤 조금도 없어서 암시장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처럼 은밀해야할 암시장이 사실상 공인된 야시장처럼 대놓고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은 도시의 높으신 양반들에게도 유용한 곳이기 때문이다. 뇌물이라던지 장물 따위의 검은 재물을 처분하는데는 암시장만한 곳이 없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에 뇌물 정도는 바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로서는 자세한 내용은 알 도리가 없다. 기자들이라면 또 모를까, 일개 신문팔이가 알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뭐,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건 암시장을 이용해도 딱히 문제될게 없다는 점이다. 경찰들은 암시장이 열릴 시간이면 사바린 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치안도 불안정하지만 아직 진짜 무시무시한 놈들이 출두할 시간은 아닌 만큼, 어중이 떠중이들의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사바린 가에 접어들자 벌써부터 얼굴을 가린 상인들이 좌판을 벌려놓고 조용히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하나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손님을 기다리다가 물건에 흥미를 가진 손님이 물어보면 그제서야 입을 여는 식이다. 뭐, 다른 도시 암시장에 가 본 적이 없으니 모든 암시장이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여기서는 그렇다. 아마 검은 물건을 취급하다보니 입이 무거워지는거겠지, 하고 심상하게 넘기며 환전상들이 자리잡은 좌측 구석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허름한 책상위에 저울을 놓고 뒷편에 다양한 화폐가 들어있는 자루를 쌓아놓은 사내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암시장의 환전상들이다. 주요 화폐의 시세는 노점들 한복판에 버젓히 공개되어있기 때문에 어느 환전상에 가도 환전 비율은 동일하다. 화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은행 시세보다 10~30% 정도 비싸게 쳐주기 때문에 수수료가 비싸도 외국 돈을 습득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암시장을 찾는다.


" 어서오시오. "


나는 그들 중 가장 가까운 책상으로 다가가 말없이 금화를 내밀었다. 금화를 받아든 환전상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더니 마지막으로 저울에 달아본 뒤 판정을 내렸다.


" 진짜 갈드 금화군. 몇 개나 가지고 있소? "


나머지 3 개의 금화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확인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100갈드짜리 금화 4개라... 모두 400 갈드군. 순금 4g이나 다름없지. 우리네들에겐 가장 반가운 화폐요. 마땅히 특별 대우를 해드려야지. 공식 환율은 100 갈드에 10만 데카트지만 100갈드당 12만 데카트씩 쳐주겠소. "


이게 갈드 금화였던가.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미처 알지 못했다. 대답을 보류하고 한가운데에 있는 시세표를 슬쩍 확인한다. 역시나 갈드 : 데카트 환율은 1 : 1200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는 어느 환전상에 가도 모두 같은 가격일테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환전상은 금화를 작은 주머니에 쓸어넣은 뒤, 수수료 4만 데카트를 제한 42만 데카트를 건내주었다. 금화인 이상, 최소 20만 데카트는 받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42만이나 받을 줄이야! 이쯤되면 한달 내내 벌어도 벌까말까한 거액이었다. 이러면 상대에게 얕보일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 그리고 이것도. "


돈주머니를 넘겨받으며 버릇없는 하녀에게 받은 은화를 책상 위에 올린다. 은화의 가격이야 뻔한 것일테지만 2~3만 데카트만 되어도 나에게는 큰 돈이다. 은화를 받아든 환전상은 한참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커다란 주머니의 주둥이를 열고 아무렇게나 던져넣으며 말했다.


" 랑디엘 은화. 보셰트의 랑디엘 신전에서 발행한 옛날 돈이오. 은 함유량이 떨어지는 저질 주화라 지금에 와선 어린애 장난감에 불과하지. 그래도 보존 상태는 괜찮은 편이니 수집품으로서 2만 데카트까진 드리겠소. "


요즘에야 엘로얀이면 데카트, 펜드리아면 리오네, 알마크면 다르크라는 식으로 1국가 1화폐가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지만 200년 전만해도 유력한 영주나 신전 따위가 제멋대로 화폐를 찍어내곤 했다. 이런 돈들은 오늘날에는 당연히 사용되지 않지만 녹여서 귀금속을 뽑아내거나 수집품으로서 판매되곤 한다.


" 좋습... "


수집품으로 구매하는거라면 환전 수수료는 없다. 예상대로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외 천장은 팔아야 손에 들어오는 돈이니 감지덕지다.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누군가의 손이 내 머리를 멈춰세웠다.


" 그건 랑디엘 은화가 아닐텐데요. "


낮선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젊은 여자의 온화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자 본 적이 있는 낮선 얼굴의 여자가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 환전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순된 표현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분명히 낮에 보았던 건방진 하녀와 똑같은 얼굴이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자세히 보니 머리색도 그 하녀는 밝은 갈색인데 반해 이 여자는 밝은 금발이었다. 쌍둥이가 아니면 아주 닮은 사람이리라.


"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사기를 치면 안되죠. 그건 랑디엘 주화가 아니라 1123년, 위그 2세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보셰트 왕실에서 발행한 백금화에요. 딱 300개만 발행한 희귀품이죠. 3년 전에 보셰트의 마리옹 백작 부인이 구매했을때 가격이 530만 트랑이었으니까 데카트로 환산하면 아, 마침 여기 표가 있네요. 1트랑에 7데카트, 수수료를 제하면 6데카트니까..... 총 3억 1800만 데카트에요. "


" 사, 삼억 천 팔백만... "


상상해본 적도 없는 거액에 입이 떡 벌어졌다. 곧이어 그런 거액을 받아챙기면서 단돈 2만 데카트만 던져주려 했던 환전상에게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대번에 책상을 넘어 달려들려다가 환전상이 별안간 웃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 멈춰버리고 말았다.


" 푸하하하하핫, 이게 위그 2세의 즉위를 축하하는 기념 주화라고? 웃기지 마라 계집. 내가 비록 여기서는 신참에 속하지만 이 일을 해온지가 벌써 17년이 다 되어간다. 갓 개업한 애송이도 아니고 설마하니 은화와 백금화를 햇갈릴까? 무슨 억하심정으로 날 모함하려드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틀림없는 랑디엘 은화다. 뭣하면 여기 있는 환전상 전체에게 물어봐도 좋아. 나, 참. 아무리 오만잡것들이 다 모이는 암시장이라지만 살다살다 별 소릴 다 듣는군. "


워낙 당당하게 나오니까 뭐라하질 못하겠다. 따지고보면 저게 그 값비싼 백금화라는건 갑자기 나타난 저 여자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가. 여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저 여자가 거짓말을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으니까. 은화를 백금화라고 우겨봤자 환전상이 속아넘어갈 리 없고 환전상에게서 돈이 나오지 않으면 여자가 이득을 우려낼 도리가 없다. 게다가 환전상이 지나치게 세게 나오는 것도 수상하다. 아무리 화가나도 일단은 웃는 얼굴로 응대하는게 상인 아닌가. 아무리 암시장에서 일하는 검은 상인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장사치인만큼 이까짓 일로 쉽사리 얼굴을 붉히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여자가 말을 이었다.


"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아마도 제가 잘못 안 거겠지요. 하지만 그 주화의 정체야 어찌됐건 환전을 하고 말고는 돈 주인의 마음에 달린거죠. 아닌가요? "


" 그야 그쪽 마음대로요. "


환전상이 자못 불쾌한 듯한 눈초리로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그럼 어떻하고 싶으세요? "


고민할 것도 없다.


" 환전하지 않겠습니다. "


저 주화는 고가의 백금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때가서 다시 환전하면 그만이다. 고작 2만 데카트를 빨리 받자고 가능성을 엎어버릴 이유가 없었다. 내 말이 떨어지자 환전상은 피식 웃더니 지체없이 자루에서 주화를 꺼내 내게 돌려주었다.


" 자, 더 이상 볼일은 없소? "


" 예. 실례했습니다. "


" 잘 가쇼. "


역시 상인은 상인이라는 걸까. 주화를 돌려주고 배웅하는 과정에서 화난 기색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환전상 거리를 떠났다. 다른 환전상도 많이 있었지만 어차피 다 한통속인 놈들이니 물어봐야 시간낭비다. 그렇다면 이게 정말 은화인지 백금화인지 어떻게 구분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리를 걷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하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 아, 저기... 죄송합니다. 진작 인사드려야했던건데... 아깐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사과를 하면서 처음으로 여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땋아내린 금발머리만 보면 정숙한 시골 처녀 같았지만 피부가 깨끗하고 옷차림도 공장에서 찍어대는 싸구려 양산품 같지는 않았다.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생긴게 단순하고 종류가 적어서 딱 보면 티가 나는데 그녀의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고 단아한 멋이 배어나오는게 검소하고 정숙한 귀족 부인을 연상시켰다. 뭐, 세상에 정숙한 귀족 부인이라는게 과연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지만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고 상당한 솜씨의 장인이 만든 물건으로 추정된다는거다. 평민이면서 돈이 많은 사람은 좀 더 화려한 복장을 선호한다는걸 감안하면 귀족... 이라면 좀 더 거만했을테니 그건 아니겠고 평민이라도 전통 있는 부자 집안의 아가씨일 것이다. 하층민 꼬마에 불과한 나에게는 너무나도 먼 세계의 주민...


" 후후, 그렇게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세요? "


" 예!? 아, 예, 아니... 저, 그... "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는 바람에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허둥지둥 당황해서 앞 뒤도 안 맞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했지만 머리가 돌아가질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


어째서 이렇게나 허둥대는걸까.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갈 만큼 엉망진창이던 머릿속이 여자가 어께를 가볍게 잡으며 다정하게 이야기해주자 손과 닿은 어께 부분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열기가 얼굴로 뻗어나가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진다. 아마 보기 민망할 정도로 새빨개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맙소사, 사내 대장부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너무 한심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 후후, 부끄럼쟁이시군요. "


" 아, 아닙.... "


사나이로서 도저히 들어 넘길 수 없는 소리가 들리자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발끈해서 소리높여 부정했지만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자 얼굴에 열이 올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엉거주춤한 자세로 멍청하게 있다가 아무래도 우스운지 쿡쿡대며 웃기 시작하는 여자의 모습에 그제서야 또 다시 추태를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으아아아아! "


쾅쾅쾅쾅쾅!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한참을 달려나간 나는 벽에 막히자 미친듯이 머리를 벽에 박아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가 시원해지는 감각과 함께 머리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슥슥 닦은 뒤에 살펴봤지만 주변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시장에서 벗어나버린 모양이었다. 시각 대신 냄새와 촉각으로 그것이 피라는 것을 깨닫는다. 통증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걸로 보아 골통이 부서진건 아니고 가죽이 찢어진 것 같다. 제법 상처가 큰 것인지 좀처럼 피가 멈추질 않았다.


머리가 시원해진건 좋지만 점점 나른해져간다. 이대로는 좀 곤란할지도...


시야가 한순간 흐릿해진다. 다리가 수수깡처럼 후들거린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것을 이를 악물고 버텨낸다. 한번 이겨내자 시야가 선명해지며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방금 생긴데다 애당초 깊지도 않은 상처다. 출혈량이 많을 수가 없다. 벌써부터 힘이 빠지는건 어디까지나 정신의 나약함 때문이다.


돌아가자.


마지막은 좀 이상했지만 도움을 준 여자에게 감사 인사도 했고 현금도 42만이나 들어왔다. 빵을 사지 못한건 아쉽지만 그야 내일 아침에 사면 그만이다. 볼일은 다 봤으니 위험한 놈들이 기어나오기 전에 돌아가는게 상책이다. 결정을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여기가 어딘지를 알아야 돌아갈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길 저편에서 달려오는 세 명의 사내를 포착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가장 앞에 선 두건을 쓴 사내가 자신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는 것을 깨닫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틀림없이 날 노리는거다!


역시 그 건방진 하녀가 준 것은 수억짜리 백금화가 틀림없다. 저놈들은 그걸 빼앗으러 오는 것이다. 나한테 사기를 치려고 했던 환전상 자식이 사주한게 틀림없다.


" 젠장! "


여기가 어딘지 한가롭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무조건 사내들의 반대편으로 내달린다. 신문팔이 노릇을 하면서 늘상 뛰어다녔기 때문에 뜀박질엔 자신이 있다. 그러나 피가 계속 빠져나가서 그런지 얼마 달리지 않아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데도 꿈 속을 뛰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 눈이 자꾸만 감기고 다리에 순간적으로 기운이 빠진다. 그 바람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끈덕지게 달려나간다. 포기할 수 없다. 이 돈만 있으면 나의, 우리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이다. 그걸 사기꾼 따위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절대로!


" 아! "


그러나 지형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막다른 길과 마주쳐버린 것이다. 그것도 담으로 막힌게 아니라 건물로 막혀서 타고 올라갈 수도 없다. 어떻하지? 어떻하면 좋지? 뾰족한 수가 보이질 않는데 사내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심장이 터질듯이 쿵쾅대고 신경이 과열되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정말 길이 없는건가? 이대로, 이대로 빼앗길 수 밖에 없다고?


" 흐아! 그놈의 새끼 더럽게 잽싸네. "


" 쪼끄만게 사람 애먹이고 말이야. "


" 지금 신에게 기도해둬라 곧 직접 만나게 될테니까. "


고민하는 사이에 세 명의 사내가 도착해버렸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건을 쓴 놈, 배가 볼록 튀어나온 덩치, 키가 크고 마른 수숫대 같은 놈까지. 그다지 오래 뛰지 않았는데도 숨을 헐떡이는걸 봐선 전문적인 '꾼' 들은 아니다. 기껏해야 뒷골목 양아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량들이리라. 불행 중에 다행이지만 그렇다고해서 희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골목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어른 세 명이 가로막고 있으면 빠져나갈 틈이 없다. 이대로 거리가 좁혀지면... 끝이다.


한걸음 한걸음


온갖 쌍욕을 지껄이며 사내들이 다가올때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고작 이 까짓 놈들을 못 당해서 우리들의 미래를 빼앗긴다 생각하자 머리에 피가 확 쏠렸다. 안돼, 그럴 순 없어. 죽어도 못 줘!


" 으아아아아아아아!!!!! "


퍽!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가장 먼저 달려오던 두건 쓴 사내의 배를 어께로 들이받는다. 설마하니 공격해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지 사내는 눈을 부릅떴지만 넘어뜨릴만큼 충격을 주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았다.


" 크윽, 이 새끼가! "


몸통박치기를 버텨낸 사내가 분노하며 내 몸통을 붙잡으려 들었다. 허리를 잡아 그대로 들어올리려는 생각일지 모른다. 멍청한 놈. 차라리 그냥 무릎으로 갈겨버렸어야지. 마음속으로 상대를 비웃으며 전력을 다해 오른손을 휘두른다. 어디를 향해? 그야 당연히...


퍼억!


" 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


주먹에 전달되는 물컹한 감촉이 소름끼치게 기분나쁘다. 사타구니에 전력을 다한 펀치를 얻어맞은 두건을 쓴 사내는 비참한 비명과 함께 풀썩 주저앉았다. 그틈을 타 빠져나가려는 순간, 몸이 왼쪽으로 밀려난다 싶더니 엄청난 충격이 좌두부를 강타했다. 머리가 멍해지며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다. 키가 큰 사내에게 발차기를 얻어맞았다는걸 깨달은 것은 배가 튀어나온 거한의 솥뚜껑만한 주먹이 시야를 가득 매운 뒤였다.


뻐억!


마력이 끊어진 마나등처럼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발길질에 전신이 비명을 지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공처럼 몸을 마는 것 밖에 없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설이 비처럼 쏟아지고 그 두배는 될 것 같은 발길질을 당하며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든 순간, 뒤쪽에서 이상할 정도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 거기까지. "


낮익지만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 음색 자체는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지만 별로 화난 것 같지도 않은데 심장이 터질 듯이 공포스러운 목소리는 맹세코 들어본 적이 없다. 나를 때리던 개자식들도 공포를 느낀건 똑같았는지 구타를 멈추고 물러섰다. 그리고 무어라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너무 맞아서 그런지 아니면 피를 너무 흘려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아, 정말 시끄럽네. 사람이 기껏 기회를 주면 제깍 꺼질 것이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


그러나 이번에도 저 여자의 목소리만큼은 똑똑하게 들렸다. 거의 동시에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는 잠잠해졌다.


" 아...으... "


곧이어 몸이 강제로 들어올려졌다. 누군가가 쓰러진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 것이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건 괴상한 신음소리 뿐이었다. 하다못해 날 구해준 사람이 누군지라도 보기 위해 퉁퉁 부어오른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들어올린다. 억지로 눈을 뜨자 녹아내린 것처럼 엉망진창이 된 세상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직, 아직 좀 더 눈을 떠야... 죽을 힘을 다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가까스로 인식할 수 있는 상이 맺힌다.


은은하게 내리쬐는 달빛 아래 양 사이드를 높게 묶은 갈색 머리카락,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한 여자의 모습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나 지루해하는 표정과 달리 그 눈만큼은 심장이 멎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여자는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마냥 증오스럽기 짝이 없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눈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작가의말

언제나 그렇지만 제 의도와 결과물은 항상 백만광년쯤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한 2천자 분량으로 생각한 내용인데 8천자 돌파라니...

 

이래서야 진행속도가 제대로 나올려나 걱정입니다.

 

안되면 몇 놈 빨리 죽여서 스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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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1화 - 신문팔이 소년의 운수 좋은 날 +6 14.06.29 1,226 23 15쪽
181 후기 겸 백기 +9 14.05.11 1,641 25 2쪽
180 하얀 기사의 이야기 - 프롤로그 +7 14.05.11 1,577 27 9쪽
179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end) +5 14.05.10 1,196 2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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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하얀 기사 이야기 Ep.0 - 이야기의 시작 (2) +7 14.04.24 2,041 3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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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5) +5 13.11.02 1,532 4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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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9 - 낙인 (3) +5 13.10.18 1,161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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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7) +3 13.08.26 2,325 44 13쪽
159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6) +6 13.08.21 1,478 33 10쪽
158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5) +5 13.08.18 1,639 32 9쪽
157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4) +1 13.08.11 1,506 36 9쪽
156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3) +6 13.07.30 3,599 66 14쪽
155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2) +7 13.07.22 1,595 3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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