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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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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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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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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3.08.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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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하얀 기사의 이야기 Ep.8 - 떨어진 별 (8)

DUMMY

"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을 설명 좀 해주겠는가? "


출근하기가 무섭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화려한 투구를 뒤집어쓴 괴한과 베르가를 보고 사령관은 지난 몇년간 지었던 표정들 중에 가장 떫은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남방군 전체를 통틀어 잠옷 바람에 투구만 뒤집어쓴 체 사령관 집무실에 쳐들어올 인물은 단 한명 밖에 없으니까. 보나마나 공녀가 또 뭔가 억지를 부린 결과이리라. 그러나 공녀에게 얻어맞아 날아간 이빨을 인공 이빨로 갈아끼운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마취가 풀리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반대급부로 잊고 있었던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업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잠이나 퍼자고 싶은 것을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일을 보고 있는데 차라리 아데발트 가문의 숙적인 발디스 공작을 상대하는게 훨씬 속편할 정도로 골치아픈 인물을 끌고왔으니 표정이 좋을 턱이 없었다.


' 윽, 이거 잘못 걸렸구나. '


사령관을 모신 몇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깊은 원망의 눈빛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베르가는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럴 시간에 원망의 화살을 조금이라도 돌려야한다.


" 공.녀.님.께서 '꼭'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모셔왔습니다. "


' 높으신 공녀님이 꼭 사령관님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박박 우기는데 저 같은 찌레기가 어쩌겠어요. 그냥 따라야지요. 그러니까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뀨잉뀨잉~ ' 정도의 의미를 내포한 말에 사령관은 크흥, 하고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지만 원망의 눈길을 거두었다. 심적으로 괘씸하긴 하지만 자신이 베르가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으셨습니까? "


결국, 사령관은 마지못해 공녀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것도 가시가 잔뜩 돋혀있는 투다. 머리로는 안된다는걸 알지만 가슴은 어제 당했던 굴욕을 잊지 못했던 탓이다. 다행히 공녀는 그런 '사소한' 문제를 신경쓰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딱히 트집잡지 않았다.


" 응. 노친네도 내가 사고치고 여기 내려온거 알고 있지? "


그저 원래부터 예의범절이라는걸 쌈싸먹은 망나니일 뿐. 사령관은 금방이라도 폭발하려는 분노를 애써 찍어누르고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 예에... 물론, 알고 있지요. 온 나라가 공녀님이 저지르신 사고로 떠들썩했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


" 그래서 나에게는 전공이 필요해. 속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가 말이야. "


" 물론입니다. "


사령관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비천한 죄수병은 자신이 지은 죄를 후회하여 찬란한 미래를 걷어차고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데 고결한 공작의 딸은 추악한 죄를 지어놓고도 후회하는 기색 없이 그저 세간의 비난을 잠재우기만을 원한다. 이 얼마나 경멸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아데발트 공작의 가신으로서 그러한 속내를 내비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역겹고 부끄러운 일일지라도 주군이 필요로 한다면 수행해야 하는 것이 그의 자리였다.


" 공작 전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공녀님께서는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전공과 함께 본가로 복귀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리되면 누구도 공녀님의 죄를 트집잡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 그렇게나 늦게? "


공녀의 목소리엔 불만이 아니라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 여기 오면서 듣기론 남방군의 전력은 7천에 육박한다고 했다. 맞나? "


" 정확히는 7817명입니다. "


" 거의 8천명이군. 그런데도 고작 엘프 오백놈을 못 잡아서 이 시덥잖은 장난질을 내년 말까지 계속하겠단건가? "


공녀의 말에 사령관의 눈이 번뜩였다. 남방군의 규모야 딱히 비밀이 아니지만 적군인 엘프들의 숫자는 기밀로 취급하여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다. 발트 내에서야 아무리 쉬쉬해도 어떻게든 소문이 퍼져나가겠지만 외부에서 온 공녀가 알고 있다는건 셋 중 하나다. 공작이 직접 알려줬던지, 정보 통제에 틈이 있던지, 그도 아니면 공녀가 남방군 내부에 사람을 박아놨던지.


' 전하께서 직접 알려줬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주군께서는 공녀가 얌전히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기를 바라셨지 공녀가 진짜 전장에 나가 속죄하길 바라신게 아니니까. 괜히 알려줘봐야 공녀가 날뛸 위험만 증가할 뿐, 좋을 일이 없다. 그러니 통제를 뚫고 흘러나간 소문을 들었던지 사람을 포섭해뒀던지 둘 중 하나인데... '


공녀가 남방군과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공작 전하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결정한 일이다. 따라서 공녀 개인으로서는 미리부터 남방군에 인물을 박아놓고 정보를 수집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결국, 남방군의 정보 통제에 어딘가 틈이 있었고 공녀의 측근들이 그것을 활용해 정보를 제공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 정보부 내 이놈들을 그냥... '


사령관은 내심 이를 갈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어쨌거나 지금 처리해야 할 당면과제는 겉으로 보이는 숫자 놀음에 속아 적을 얕보는 멍청한 공녀에게 현실을 납득시켜주는 일이다.


" 상세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틀림없이 저희는 적들보다 수가 16배나 많습니다. 그러나 엘프들은 숲의 지리에 환하고 소리없이 이동할 줄 아는데다가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잡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저들은 수천에 달하는 무인병기를 운용하고 있어 실제로는 오히려 아군이 열세에 처해 있습니다. 다만 적들의 무인병기도 대인전용에 불과해 성을 공략하기엔 한계가 있어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들의 무인병기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내년 말쯤이면 완성되어 실전배치될 것이므로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수월하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고 있던 공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상황은 이해했어.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문제를 괜히 성급하게 나서서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지. 하지만 내년까지 가만히 놀고만 있어선 곤란해. "


" 물론입니다. "


아무 직함도 맡지 않은 체, 시간만 빈둥빈둥 보내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은 아데발트 공작가에 욕을 퍼부을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역량이 어디 가는게 아닌만큼 겉으로는 입을 꾹 다물고 있겠지만 속으로는 반감을 키울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공녀가 저지른 사고는 그녀의 지고한 신분으로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귀족들의 민심과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다.


' 중소귀족들의 반발을 산다는건 주군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래서는 안되지. 암, 안되고말고. '


거대한 영토를 소유한 공작가라고 해도 모든 영지를 직접 관리하는 것은 아니다. 공작가의 방대한 영토를 관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작에게 충성을 맹세한 중소귀족들이며 그들의 충성이 흔들리면 화려한 공작가의 영화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 오늘 중원회의*를 통해 공녀님이 지휘할 부대를 편성할 것입니다. 공녀님의 성의와 용맹을 강조하기 위해 총원은 10명 내외로 구성할 예정이며 편의상 저를 제외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령관 직속 부대로 편성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남방군의 그 어떤 부대보다도 용감하고 인상적인 활약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며 공녀님의 위상을 크게 드높일 것입니다. "


" 사실과 상관없이 말이지? "


비꼬는 듯한 공녀의 말에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공녀님께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니까요. "


" 그거 참 고맙네. "


공녀는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며 구역질이 난다는 듯, 혀를 빼물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투구에 가려져 사령관에겐 보이지 않는다. 경멸을 숨긴 공녀는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했다.


" 고마운 김에 간단한 부탁 몇 가지만 더 들어줘. "


" 부탁이라 하심은... "


사령관의 긴장한 목소리에 공녀는 손짓으로 안심하라는 재스쳐를 취해보이며 말했다.


"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별로 대단한 부탁도 아니니까. "


' 너 같으면 걱정 안하겠냐! '


사령관과 베르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오래간만에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그걸 알 턱이 없는 공녀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먼저 한 가지 확인을 받아둬야겠는데, 내가 지휘할 부대의 부대원들 말이야. 어차피 전쟁터에 데려갈 애들이 아니니까 내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지? "


" 예? 그게 무슨... "


" 노친네 말대로라면 이 좁아터진 성에서 앞으로 1년 넘게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나처럼 활동적인 사람이 그런 생활을 견디려면 집중할만한 뭔가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퍼엉! 무슨 소린지 알겠지? "


쓸데없이 귀여운 목소리라 짜증이 2배로 치솟는다. 마음 같아서는 감방에 처박히기 싫으면 개소리 집어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호통이라도 쳐주고 싶다. 눈에 뵈는게 없는 죄수병 피르쉬어였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텐데. 그러나 미래를 포기하지 못한 사령관은 자신의 입장을 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공녀가 '폭발' 했을때의 뒷수습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다.


' 사고를 치고 속죄하러 온 공녀가 여기에서까지 또 대형 사고를 쳐버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몇 놈 희생시켜서라도... '


" 알겠습니다. 다만 죽이지는 마십시오. "


사령관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공녀의 요구를 수락했다. 맹수의 장난감으로 던져질 희생자들에겐 안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전쟁이 끝난 뒤까지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공적을 최대한 몰아주어 응분의 보상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좋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대원들은 내가 직접 뽑겠어. "


" 직접... 말입니까? "


" 응. 내 취향인 녀석들로 모아놓아야 가지고 놀 보람이 있잖아. 마음에 안드는 장난감을 한 트럭쯤 쌓아놓아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안 그래? "


사령관은 갈등했지만 공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걸 인정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희생물의 조건을 달아두는 것 뿐이었다.


" 대신 남방군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특별한 군직을 맡고 있지 않은 사람만 뽑으셔야 합니다. "


남방군의 주요 인사나 그 혈족들은 대부분 군직 하나쯤은 꿰차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조건이라면 최악의 사태 - 전멸 - 가 벌어지더라도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었다. 다행히 공녀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선선히 조건을 받아들였다.


" 좋아. 조만간에 목록을 만들어서 보내줄게. "


자기 할말을 마친 공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무실을 나섰다.


***


작가의말

왠지 이 에피소드만 50화는 거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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