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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하얀기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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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2.11.10 21:49
최근연재일 :
2016.12.31 21:49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623,224
추천수 :
8,717
글자수 :
1,341,677

작성
14.10.12 04:26
조회
1,094
추천
22
글자
11쪽

3화 - 누구냐, 넌?

DUMMY

" ..... "


뭔가 끔찍한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식은땀에 푹 절어버린 이부자리와 아직까지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몸을 보면 어지간히도 무서운 꿈이었나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남아있는 공포를 털어버린다. 악몽 따위에 시간을 낭비해도 좋을만큼 신문팔이의 아침은 한가하지 않다. 악몽을 차는 것처럼 힘차게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옷을 갈아입는다. 낡은 바지를 졸라매고 어젯밤에 입은 채로 잔 누런 셔츠 위에 갈색 조끼를 걸치면 끝. 머리맡에 놓아 둔 갈색 모자를 눌러쓰고 창문을 활짝 연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따스한 햇살이 방 안 곳곳에 눌러붙어있던 악몽의 잔재를 몰아내고 활기찬 일상의 공기를 불어넣어준다.


" 날씨 좋다. "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겨울이라는걸 잊어버릴만큼 따스하다.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법한 드물게도 좋은 날씨... 어라?


" 이제 막 일어났는데... 해가 떠 있다고!? "


조간 신문 배달원의 출근 시간은 새벽 3시까지. 당연히 그 시간에 해가 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내 눈에 해가 보인다는건...


" 젠장, 지각이다! "


그것도 무단 결근으로 처리되어도 할말이 없을 만큼 늦었다. 이미 조간 배달은 진작 끝났을테니 이제와서 가봤자 할 일은 없을테지만 얼굴이라도 내비치는 것과 끝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다. 짤릴 확률을 0.1%라도 줄이려면 1초라도 빨리 튀어나가는게 상책이다. 문을 걷어차고 다급히 입구를 향해 달려나가는데 뒤에서 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어디가? "


우리 고아원의 일곱 식구 중 막내인 열 일곱번째였다. 일곱명 중에서 막내인데 왜 열 일곱번째냐하면 우리 피오니 고아원만의 조금 특이한 룰 때문이다. 피오니 고아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그전까지 사용하던 이름을 버리고 고아원에 들어온 순서를 새로운 이름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열 일곱번째는 피오니 고아원에 들어온 열 일곱번째 아이란 뜻이다. 물론, 이런 괴상망측한 이름을 평생 쓰는건 아니고 가족이 찾아오거나 어딘가에 입양될 때, 혹은 성인이 되어 고아원을 나갈 때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대부분 고아원에 들어오기 전에 사용하던 이름을 다시 쓰거나 입양한 사람이 새로 지어주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짓거나 원장님이 지어주는 경우도 가끔 있.... 아니, 내가 지금 이걸 누구한테 설명하고 있는거야?


" 응, 오빠 일나가는거야. 벌써 많이 늦어서 빨리 가야 돼. "


대답과 함께 동생의 갈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다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과장 좀 섞어서 바늘처럼 뻣뻣하던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부드러웠던 것이다. 꼭 무슨 부잣집이나 귀족 아가씨처럼.... 어? 그러고보니 옷도 처음보는 옷인데? 디자인이 밋밋한게 척 봐도 공장에서 만든 저렴한 옷이긴 했지만 땟자국 하나 없는 새 옷이었다. 옷은 커녕, 당장 먹을 빵값을 걱정해야 하는 고아원 사정상 옷을 사서 입는다는건 꿈도 꿔본 적이 없었는데....


" 일? 왜에? 오빠 이제 일 안해도 된다고 그랬잖아. "


" 뭐? "


어디서 난거냐고 물어보려는데 동생이 먼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꺼냈다. 일을 안해도 된다고?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가? 그렇잖아도 열 한번째 형이 고아원을 떠난 뒤로 돈을 벌어오는게 원장님이랑 나 밖에 없어서 - 그나마 내 수입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라 사실상 원장님 수입이 전부다 - 늘상 돈에 쪼여 사는데.


" 어제 오빠가 데려온 귀족님이 에... 음... 맞아, 후원. 우리 고아원을 후원해주시기로 해서 더 이상 일 안해도 괜찮다고 했자나. 그거 덕분에 원장님이 옷도 사주고 맛있는거도 사줘서 되게 좋았는데... 닭꼬치 또 먹고 싶다. "


" ..... "


그런 기억은 없다. 그러나 동생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영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


" 응, 그래. 그랬었지. 오빠가 깜빡했어. "


" 그럼 오빠 안나가도 되는거야? "


" 응. "


" 와~ 신난다~ 오빠 노라줘~ 노라줘~ "


어울려주고 싶기는 하지만 그 전에 원장님을 찾아가 상세한 내용을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적당히 막내 동생을 달래서 떼어놓고는 원장님의 방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원장님이 방에 있을 확률 거의 없지만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온게 사실이라면 보나마나 방에 처박혀 뒹굴거리고 있을게 뻔했다.


똑똑


" 열 두번째입니다. "


" 들어와라. "


예상대로 문 안쪽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팔자좋게 침대에 드러누운 채, 잡지를 뒤적거리는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바로 우리 피오니 고아원의 원장님이다. 본명 불명, 과거 불명의 이 남자는 겉모습만 보면 과묵한 군인 같은 느낌이지만 실상은 게으름 피는걸 좋아하는데다 씻기도 귀찮아해서 냄새나고 툭하면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면서 고집을 피워대는... 요컨데 이 고아원에서 제일 철이 덜 든 사람이다. 뭐, 제대로 돈은 벌어오고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한게 있어서요. "


" 어제 뭐? 그 보셰트의 귀족님이 후원해주기로 했던 일 말이냐? "


" 네. "


" 너도 그 자리에서 같이 들었는데 뭐 물을게 있어. "


모처럼의 여유를 잡지 속 야한 누님들과 누리고 싶다는 속마음이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나왔다. 돈이 없어서 그 좋아하는 잡지를 두 달씩이나 못 샀었으니 이해못할 것은 아니지만 이쪽도 이런 시덥잖은 문답이나 나누려고 여기온게 아니다.


" 그게, 어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영 기억이 안나서요. "


술을 마신 기억은 없다. 그러나 충분한 돈을 손에 넣은 이 남자가 술을 안 샀을 리가 없고 술을 샀다면 나한테 안 먹였을 리 없다. 평소 지론이 ' 술은 다 같이 먹어야 술인거야! ' 인 양반이 혼자서만 마셨을 리 없잖은가. 무엇보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았다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릴 리가 없다.


" 허, 참. 벌써 열 세살이나 먹은게 고작 브랜디 두 병 마셨다고 기억이 끊겨? 사내새끼가 그래서야 어디 쓰나. 그래도 근 반년을 꼬박꼬박 탈없이 일하길래 조금 쓸만한 놈인 줄 알았더니 에잉. 실망이다 실망. "


역시 먹였구나 이 인간. 그것도 두 병씩이나. 왠만한 어른도 두 병이면 맛이 갈걸 내가 마셨으니 멀쩡할 리가 있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 골이 다 지끈거렸다. 그래서 이마를 짚었더니 이게 또 마음에 안드는지 심퉁한 표정으로


" 쯧쯧쯧... 사내새끼가 그깟 숙취가지고 죽상은. 에잉,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어디가서 내가 키웠다고 그러지마라. 쪽팔린다. "


하고, 터무니없는 망언을 지껄이더니 비척비척 일어나 찬장 위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는가 싶어서 가만히 지켜봤더니 자그마한 상자를 내려서 뚜껑을 열고 안에서 거무튀튀한 물체를 꺼내 나에게 건냈다. 받아보니 말라비틀어진 과일 같았는데 색깔 때문인지 꼭 썩은 것처럼 보였다.


" 이게 뭐에요? "


" 말린 타렝이다. 보기엔 좀 그렇지만 숙취에는 최고니까 먹어둬. "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걸 보니 나름대로 아끼던건가보다. 외관 때문에 별로 먹고 싶진 않았지만 이래서야 안 먹을 수도 없게 됐다. 하기야 왕년엔 쓰레기통에서 줏은 다 썩은 빵도 먹던 난데 이제와서 음식 외관 가지고 투덜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과감하게 반절쯤 배어무니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는게 의외로 맛이 좋았다. 단물이 다 빼먹을 생각으로 열심히 씹고 있는데 원장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호통소리가 날아왔다.


" 하, 사내새끼가 쫌생이처럼 오물오물, 오물오물 과일이 죽되겠다 이놈아. 깝깝하게 굴지말고 그냥 확 삼켜! "


" 아깝잖아요. 단 건 좀처럼 먹기 힘든데. "


" 흥, 그러고보니 넌 어제 일이 기억 안난다고 했었지. 그딴건 이제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아까워 할 필요 없어. 어제 네가 데려온 귀족 나리가 우리 고아원이 마음에 든다면서 현금으로 10억 데카트나 주고갔다. 봐라. "


그러면서 원장님은 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내 눈앞에 펼쳐보였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나는 까막눈이기 때문에 보여줘도 뭐라 적혀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만 저금액을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는 글자가 맨 마지막 줄에 다다라 엄청나게 길어진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원장님이 이런걸로 거짓말할 이유가 없으니 후원을 받은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 이것 뿐만이 아니야.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10억씩 보내주기로 약속까지 받았다. 허랑한 말만이 아니라 공증인을 세워서 확실하게 문서까지 남겨놨어. 그 귀족이 망하지 않는 이상, 적어도 10년간은 돈 걱정 안해도 된단 말이다. "


맙소사, 10억 즉시 지급에 향후 10년간 매년 10억씩 추가로 보내준다니! 감히 꿈조차 꿔본 적 없는 거액이었다. 향후 10년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다!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원장님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네가 힘들게 일할 필요 없다. 앞으로는 가정 교사를 고용해줄테니 공부에 매진하도록 해라.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만 충분히 쌓으면 대학까지도 보내주마. 암, 보내주고말고. 대학만 졸업하면 네가 하고 싶다던 상사원이든, 시의 공무원이든, 귀족의 행정관이든 온갖 훌륭한 직업들을 골라서 선택할 수 있다. 어떠냐, 가슴이 뛰지 않느냐? "


그 말대로였다.


내 가슴은 확실히 터질것만 같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제까지만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화려한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다.


등골이 얼어붙을 듯한 불안감.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두려움이 폭포수처럼 밀려들었다.


" 이건... 일어났던 일이 아니야. "


마음이 두려움에 잠식당한 순간, 입술 사이에서 나조차도 듣지 못한 말이 나지막히 흘러나왔다.


" 누구냐, 넌? "


작가의말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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