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챙겨와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요.]
사실 잊고 있었다. 에르다가 1년에 한 번씩 태초의 정원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얼렁뚱땅 두 달이나 지나버렸달까.
“에르다, 너는 왜 말 안 한 거야?”
“잊어버렸지.”
그걸 잊냐? 정원에 가서 가져올게 얼마나 많은데!
“솔직히 말해봐. 너 일부러 말 안 했지?”
“아니거든?”
그런데 왜 시선을 피하냐, 이놈아. 우진의 노려보는 시선에 에르다가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렸다. 누가 봐도 속내가 훤히 드러난 모습에 우진이 혀를 차고 말했다.
“내가 말할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겠지.”
“뭐? 왜? 어쩌라고?”
얼씨구?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그만 투덜거려. 이만한 일로 언제까지 꿍해 있을 거야?”
“됐고. 가서 챙겨올 거 알지?”
“알아. 이미 본체가 마력석은 잔뜩 캐놨어. 그리고 약초랑 식재료도 틈나는 대로 준비해서 몇 년은 풍족할 거래.”
역시 에르다. 뭐가 필요한지 다 안다니까.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한 얼굴로 물었다.
“만드라고라는? 몬스터 고기하고 바닷가재랑 참치도 잡아놨대?”
“그건 내 아공간에도 있는데?”
“지금 있는 건 나한테 넘기고 새로 잡아 와. 몬스터는 고기 손질하고 참치는 핏물 빼서 가져오고. 이왕이면 조개 종류도 많이 가져와라.”
오랜만에 조개구이나 해먹어야지.
“그렇게나 많이?”
“너희가 좀 많이 먹니?”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그래?”
얼씨구? 선 넘는다? 정원에서 가져온 건 대부분 이 녀석들 뱃속으로 들어가는데? 뭐 이제는 영물들이나 현준도 먹지만.
“내가 먹는 거로 구박은 안 할 테니까 양심 좀 챙겨라.”
“칫, 너무 한 거 아니야? 내가 숲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알아. 그래서 실컷 놀게 해주잖니.”
“이게? 매일같이 밤이면 왔다 갔다 했는데?”
그럼 뭘 더 바라는 거야. 벌써 몇 개월째 놀고 있으면서.
[고생하긴 했죠. 그만큼 열심히 놀고 있지만요.]
그러니까 말이다. 어쩌면 두 가지를 다 열심히 하는지 저것도 재주다. 중국 숲 완성하고도 지난 두 달여간 중동 지역에 계획했던 모든 숲을 완성했으니까.
덕분에 그쪽은 사막도 많이 줄어들고 지하수도 채운 덕분에 새롭게 변화하고 있었다. 기후 또한 각 지역에 맞게 가이아가 조절하고 있으니 문제는 다 해결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안 내려와? 보르센! 빨리 내려와!”
우진의 고함에 잠시 후 인간 형태가 빠른 속도를 떨어져 내렸다. 바로 눈앞에 사뿐히 내려앉는 보르센을 본 우진이 혀를 차고 말했다.
“영물들 괴롭히지 마라.”
“억울하다! 내가 뭘 괴롭혔다고 그래?”
응. 네가 옆에 있는 게 괴롭히는 거란다. 안 그래도 신수들 눈치를 살피는데 그걸 이 녀석만 모르지.
“가서 화산 다 처리하면 신호 보내. 바로 소환할 테니까.”
“나는 제법 걸릴 거야.”
“알아.”
정원이 좀 넓어야지. 그곳 화산 다 처리하려면 한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물론, 정원에도 보르센처럼 불의 신수는 둘이나 있었다. 다만 하급 신수라 능력이 보르센보다는 딸린달까.
“그런데 다른 녀석들은 왜 안 간대?”
“굳이 갈 필요 없다는데?”
“하여간, 게을러터져서는. 같이 해결하면 빨리 끝나고 좋잖아.”
“놔둬. 몬스터 정도는 정원에 남은 신수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맞아. 다 갈 필요는 없지.”
하긴, 신수들뿐만 아니라 환수도 있으니까. 여차하면 에르다도 도울 터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빨리 다녀와. 아프리카에도 숲 만들어야 하니까.”
“알았어. 잔뜩 챙겨올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몸이 흐릿해지는 에르다와 보르센을 보며 우진이 다급하게 잡았다.
“잠깐! 아공간에 있는 건 주고 가야지.”
“아, 맞다!”
“싹 비워.”
“알았다니까!”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우진이 혀를 차고 에르다가 쏟아내는 다양한 식재료를 아공간으로 옮겨 담았다.
“이제 없어.”
“오냐. 둘 다 잘 다녀와.”
“응! 다녀올게!”
“나중에 보자!”
둘의 모습이 흐릿해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원으로 역소환된 것이다.
“보르센은 오래 걸리겠지?”
[최소로 잡아도 지구 시간으로 3개월은 걸릴 겁니다.]
“그 정도나 걸려? 이상하네. 아무리 화산이 많아도 위험 수위까지는 안 갔을 텐데?”
[지구와 정원의 시간 차이가 있으니까요.]
“아아, 그렇다고 했지.”
후보자가 정원으로 갈 때는 기존 세계의 시간이 멈추지만, 원래 지구와 정원은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아마 지금쯤 화산의 수위도 높아졌을 터라 어쩌면 3개월로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남아 있던 신수들이 제법 많이 해결했다니 그 이상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래 걸려도 딱히 상관없는데.”
[보르센이 들으면 섭섭할 겁니다.]
그걸 넘어서 삐지겠지. 우진이 픽 웃음을 흘리고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
황폐해진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며 숲을 만들 기반을 다지는 동안에도 에르다는 돌아오지 않았다.
보르센이야 어차피 늦는다지만, 에르다는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이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한 달여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소식조차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알아볼까요?]
“정원에는 시스템이 없잖아?”
[996차원 후보자가 가 있습니다.]
“아아, 결국 갔나 보네.”
[그게 정상적인 결과죠. 마스터처럼 무시하는 후보자는 없으니까요.]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만 좀 우려먹어라.
“너도 참 뒤끝 있다니까.”
[됐고요. 그래서 연락해볼까요?]
“아니, 놔둬. 곧 오겠지.”
그 세계의 주인이라 위험할 일도 없고 아마 몬스터 처리 문제를 도와주느라고 늦는 것일 테다. 우진은 곧 에르다 생각을 떨쳐내고 숲 진행 상황을 지켜볼 때였다.
<진, 지하수 문제는 다 해결했어.>
<오, 그래? 수고했다.>
<수고 아니야.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인걸.>
그걸 아는 놈이 그리 오래도록 잠적해서 지켜만 봤냐? 우진이 울컥해서 한소리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삼켰다.
<정원에서 쉬고 있어. 문제 터지면 바로 해결하고.>
<으응. 그런데 숲은 완성했어?>
<아직. 몇 개만 더 만들면 아프리카는 끝날 것 같다.>
<그럼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거지?>
<당연하지.>
황폐해진 곳이 너무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겉으로만 보면 멀쩡한 곳도 정작 땅이 힘을 잃은 곳이 태반이라 세심하게 손 볼 곳이 많았다.
<고생이 많아. 고마워.>
<알면 잘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거 알지?>
<으응, 미안해.>
그렇다고 기죽지는 말고. 뭘 또 시무룩해지고 그래? 하여간, 정신교육을 하든지 해야지, 너무 섬세해서 탈이다.
<마력 충전되는 족족 필요한 부분에 신경 쓰면 돼. 특히 내핵이나 방벽, 우주 방사능은 잘 관리하고.>
<알아. 그래도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겠지?>
당연히 괜찮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불안해하지 마. 나도 있고 에르다랑 신수들도 있고, 환수랑 영물들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으응. 알았어. 그런데 환수가 은동이라고 했지? 바다 정화하는 환수, 내가 만나도 될까?>
<은동이를? 왜?>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바다 오염이 심했는데 그걸 혼자 정화하고 있으니까 미안하고 고마워서.>
하긴, 감사할 건 해야지. 이젠 가이아도 있으니 바다 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이아가 직접적인 정화는 못 해도 지구를 활성화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래라. 어딨는지는 알지?>
<으응! 그럼 나중에 봐!>
거참, 이럴 때는 또 성질 급하네. 뭐라 할 틈도 없이 뚝 끊긴 연락에 우진이 실소를 흘렸다.
[안정을 찾은 것 같네요.]
“혼자가 아니잖아.”
더는 불안해할 일도 지칠 일도 없을 테니까.
“저 녀석은 기본만 유지해도 돼.”
[그렇죠. 능력자들이 많으니까요.]
이브의 말대로였다. 이제 지구는 가이아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우진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모이고 비가 숲에 뿌려졌다. 동시에 빛을 머금은 묘목이 성인 크기만큼 자라고 식생이 풍성해지는 모습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진! 끝났어!”
<꾸우웃!>
“오냐. 수고했다. 바로 다른 장소로 가자.”
우진은 숲을 둘러싼 보호막을 제거하고 금동이와 정령들을 데리고 미리 점찍어둔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보호막을 치고 금동이와 정령들이 익숙하게 일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우진 또한 지하수 위로 땅을 팔 때였다.
에르다와의 계약진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모습에 우진이 냉큼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빛과 함께 나타난 에르다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녀왔어.”
“오냐. 보르센은?”
“다른 신수들하고 화산 처리하고 있지. 생각보다 수위가 높더라고. 아마 그거 싹 처리하려면 제법 걸릴 거야.”
그럼 3개월보다 더 걸리려나. 뭐 보르센이야 늦게 와도 상관없으니까.
“그래서 왜 늦었는데?”
“왜긴. 몬스터 소탕 좀 하고 지구에서 사간 음식도 나눠 먹고 후보자 교육도 시키고 왔지.”
“지구에서 음식을 가져갔어?”
“당연하지!”
그게 언제부터 당연한 거였냐? 우진이 실소를 흘리고 물었다.
“뭘 얼마나 사갔는데?”
“아공간 한 부분이 찰 정도로?”
“미쳤구나?”
“에헤헤, 좀 많았나? 그런데 그중에 반이 술이었어.”
누가 먹깨비 아니랄까 봐 진짜 미쳤네.
“다들 좋아했지. 엄청 맛있다더라.”
“평소에 안 해 먹었대? 가르쳐줬잖아?”
“먹었지. 그래도 지구 술이나 음식은 처음이잖아. 남은 건 본체 주고 왔어.”
“그래. 잘했다.”
어차피 일 년 후에 다시 갈 텐데 그때 또 가져가면 되겠지.
“그래서 후보자는?”
“기억 봉인하고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진이 한 방식대로 이끌어주기로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 인간이냐고?”
“응. 인간이 중심인 세계였나 봐.”
[과학이 발전해서 이종족도 없고 마법도 없는 세계죠.]
“지구와 같은 세계네? 멸망 원인은?”
[전쟁이요.]
역시나. 하긴, 인간 중심 세계에서 전쟁이나 오염 빼고는 말이 안 되겠지.
“최소 5천 년은 버텨야 할 텐데.”
“괜찮지 않을까? 그동안은 후보자 선택에 맡겼는데 이번에는 본체도 작정하고 잡을 거라더라.”
“당연히 그리해야지. 옆 차원인데 멸망 가면 지구도 피해 본다고.”
“그쪽 차원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응. 아니야. 남의 차원 알 게 뭐야. 지구가 최우선이지!
“됐고. 이제 3개만 만들면 아프리카는 끝나니까 오늘 중으로 돌아다니면서 성장 좀 시켜.”
“크기는?”
“지난번 시리아 정도와 같거나 조금 작아.”
“알았어. 이브, 표시해줘!”
“마력석하고 재료는 주고 가, 인마.”
“나중에 정원 가서!”
그리고는 쌩하니 사라지는 에르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숲의 기반은 완성된 모습에 다시 금동이와 정령들을 데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작가의말
어쩌죠.ㅠㅠ
완결 한편 남은 거 올리려고 했다가 서재에서 연재를 완결로 잘못 눌렀어요.
예약으로라도 올리려고 했는데 완결작이라 안된답니다.
이거 취소 안되던데 방법 없나요?
연재가 처음이라 호기심만 넘쳐서리....하, 답이 없다.
만약 삭제하면 글 전체 다 사라지나요?
외전도 다 써놨는데 어째....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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