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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바라기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관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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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바라기
작품등록일 :
2023.06.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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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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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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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기부와 거래

DUMMY

“왔습니다! 비행기가 왔습니다!”


진짜 왔다. 남수단공화국의 임시 대통령이 된 알리미르는 활주로로 내려서는 화물기를 보며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과거에는 종교갈등, 군부갈등, 부족갈등이 가장 극심한 곳이어서 최악의 파탄국가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무기는커녕 권력에 미쳐 갈등을 조장하던 자들이 모조리 사라졌으니까. 무엇보다 굶주림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돈이 있어도 일찌감치 도망치지 못해서 죽은 자들이 태반이고 가난해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건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구원의 손길이 온 것이다. 그러니 종교가 어떻든, 부족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그저 남수단을 외면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알리미르는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 힘을 꾹 주고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비행기를 향해 다가갔다. 그 옆으로 따라붙은 정치인들은 거대한 화물기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대통령님, 저 안에 든 게 다 식량일까요?”


“글쎄요.”


듣기로는 식량과 물, 의약품이라고 했다. 의료시설이 미비해 의약품도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물과 식량이 더 급했다.


‘우선은 살아야지.’


굶주린 국민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수호신이 만들어준 지하수가 있어 식수로 사용할 수 있었고 농경지 덕분에 당장은 급한 불은 끈 상황이었지만.


‘식수와 농수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해.’


물이 귀한 만큼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다. 가뭄과 폭염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모르니까. 강은 메말랐고 열대우림이니 습지니 하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된 것이다.


“아! 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보좌관의 말에 퍼뜩 상념에서 벗어난 알리미르는 황급히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대통령 알리미르입니다. 남수단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마하니 대통령이 직접 마중 나왔을 줄이야. 저마다 당황해서 움찔거리자 외교부 직원인 문상진이 대표로 나와 고개를 숙이며 영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한국 외교부 소속 문상진입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한국이 남수단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별말씀을요. 저희 대통령께서도 남수단의 어려움을 알고 제일 먼저 찾아가라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빈말이라도 좋았다. 실제 한국과는 교류하며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외면하지 않고 식량을 보내주니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알리미르는 진실한 마음을 담아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보좌관이 은근슬쩍 알리미르를 막아섰다.


“먼 길에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물건부터 내리겠습니다.”


“아! 장비는 준비했습니다.”


보좌관의 손짓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지게차가 줄줄이 다가왔다. 화물기가 열리고 포장 상태로 가득 채워진 물품에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풀어졌다.


지게차가 물건 하나씩 내려 멀찌감치 옮겨놓는 동안 품목을 적은 서류를 가져온 문상진이 알리미르의 곁으로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대통령님, 우선 식량 목록은 쌀, 소금, 밀가루, 구황작물입니다. 그리고 식수용 물하고 비누, 의약품인데, 의약품은 기본 약품하고 예방접종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아마 의사분께 보이면 용도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알리미르와 정치인들이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식량과 물만 와도 감사한 데 종류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쌀은 한국 품종이라 양도 많고 맛도 좋습니다. 충분히 주식으로 하셔도 될 겁니다.”


“알지요. 예전에 한국과 교류할 때 먹어봤습니다.”


남수단은 습지가 많거나 반대로 척박한 곳이 대부분이라 벼농사를 잘 짓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의 쌀처럼 부드럽지도 않았고 주식으로 삼기에도 부족했다.


설사 농사를 지을 여건이 됐다 한들 지난 남수단의 역사를 보면 답이 안 나오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제는 달라.’


비록 임시라 하나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수단은 달라질 것이다. 알리미르는 각오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 이건 설계도입니다.”


“설계도요?”


설마, 발전소 설계도인가. 문상진이 서류철 사이에서 꺼낸 용지 몇 장을 내밀자 알리미르가 화들짝 놀라 급히 용지를 확인했다.


“정말 발전소 설계도군요? 하지만 마력석이 없어서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마력석을 구입하고 싶어도 그럴 형편도 아니었다. 알리미르의 난감한 표정에 조상진이 슬쩍 웃고는 말했다.


“저희 대통령께서 수도에 사용할 발전소와 소각장 두 개는 기부 형식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나머지는 남수단이 안정을 찾고 다시 대화를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품 안에서 목각함을 꺼내 내밀었다. 떨리는 손으로 목각함을 받은 알리미르는 어느새 바짝 다가와 고개를 내미는 정치인들이 볼 수 있게 함을 열었다.


“오오! 이게 그 신에너지 석이군요.”


“세상에 새까만 보석 같습니다.”


“큰 건 도시 하나를 다 감당할 수 있다던데 사실일까요?”


“사실일 겁니다. 한국은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이미 증명한 겁니다.”


“미국도 사용 중이죠!”


정치인들이 저마다 반색하며 주고받는 사이 알리미르는 마력석을 물끄러미 보다가 벅찬 숨을 고르고 고개를 숙였다. 문상진이 화들짝 놀라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대통령님께 전하겠습니다. 그보다 저, 혹시 전기를 연결하는 기술자는 있으시지요?”


“예! 있습니다. 있어요.”


알리미르의 단호한 답에 문상진이 내심 안도하며 활짝 웃었다. 곧 목함을 닫아 손에 꼭 쥔 알리미르가 말했다.


“남수단을 안정시키고 한국에 보답할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비록 석유나 천연가스는 개발하지 못하겠지만, 그것 외에도 자원은 많았다. 꼭 보답하겠다는 알리미르의 의지를 느낀 문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프리카 다른 나라도 가는 겁니까?”


“예. 다른 비행기가 움직일 겁니다.”


“현재 아프리카 상황이 많이 안 좋은데, 그 많은 식량이 가능한 겁니까?”


나라만 해도 몇십 개였다. 그 많은 나라를 다 감당할 식량이 될까. 알리미로의 의문에 답하듯 문상진이 방긋 웃고는 말했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희 대통령께서 미리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 감사한 일이군요.”


이미 예상하고 대비했다는 말이다. 물론, 수호신이 사랑하는 국가이니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렇듯 스스럼없이 도와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과연 돌려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모든 짐이 내려졌다. 화물기 문이 닫히자 문상진은 영문으로 된 품목 서류를 보좌관에게 건네고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희도 시간이 없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대로 가시려고요?”


“안 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건 한국이나 머나먼 아프리카나 똑같았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 매달리는 알리미르와 정치인들을 간신히 떼어놓고 황급히 화물기에 올랐다.


마치 도망치듯이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비행기를 본 사람들이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가득 쌓인 물품을 본 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풀어졌다.


“이제 살았습니다, 대통령님.”


“예. 죽으라는 법은 없군요. 자자! 다들 정리합시다. 이제 곧 사람들이 모일 겁니다.”


“예!”


알리미르의 지시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일꾼들이 몰려들었다. 포장지를 뜯고 물품을 하나하나 구분할 때 정치인들도 팔을 걷고 나섰다.


그렇게 남수단이 구호 물품으로 한시름 덜었을 때 시간과 날짜 차이를 두고 한국의 화물기는 아프리카와 중동 곳곳으로 이동했다.


*


미국이라 해서 기부를 받은 최빈국과 다를 게 없었다. 공항까지 직접 마중 나온 데이비드를 보며 한때 가장 많이 만나왔던 조현성 대사가 방긋 웃으며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군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현성의 환한 웃음에 데이비드는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가 직접 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과 우리 한국은 우방국이 아닙니까. 저희 대통령께서도 직접 가는 게 예의라 하셨습니다.”


데이비드의 쓴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말이 좋아 우방국이지, 이미 전세가 역전된 지 오래였다.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사라졌듯이 소국이었던 한국의 위상이 지금에 와서는 최상위에 있었다.


‘이제는 과거처럼 대해서는 안 돼.’


시대가 바뀌었으니 자신도 미국도 바뀌어야 했다. 데이비드는 애써 울적한 심기를 가라앉히고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계도를 먼저 보내준 덕분에 무사히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벌써요?”


“예. 마력석만 결합하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지요.”


“다행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조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향해 손짓하자 화물기가 열리고 대형 철제상자 두 개를 든 사람들과 엔지니어 한 명이 다가왔다.


“최상급은 화물기와 상하수도 정화에 들어갈 마력석이고 하나는 원하셨던 연구용 최하급 마력석입니다.”


“오! 최하급이면 에너지가 어느 정도입니까?”


“부수지 않고 통으로 사용하면 최소 20년 이상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나 됩니까?”


“예. 마력석 쓰임도 다양하다고 합니다. 아마 연구해보시면 많이 놀라실 겁니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이미 각 주에 발전소와 두 가지 소각장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하물며 대지진이 터졌을 때도 마력석에는 피해가 없었던데다 전압기 외에 전기로 인한 사고도 없었다.


‘위험률이 확 내려갔지.’


이젠 이것으로 연구를 거쳐 어지간한 에너지를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과 협조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대통령님, 조만간 밀가루나 과일은 충분히 모일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음, 그런데 한국은 밀 농사를 많이 짓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한국은 주식이 쌀이라 그에 비해 밀은 부족한 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은단 말인가? 데이비드의 의문에 조현성이 살짝 고개를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사실은, 대통령님께서 관리자님께 부탁하셨습니다.”


“아! 그럼 관리자님이?”


“예. 우리나라 최대 농경지인 평야에 밀을 한 번에 키워주신다고 하셨답니다. 그러니 얼마 안 있어 밀가루 수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잘됐군요.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는 쌀은 안 남았습니까?”


“농경지를 늘린 덕분에 기부를 제외하고도 조금은 여유가 있습니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새로운 농지까지 더해서 수확량이 늘었으니까요. 그래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충분히 보낼 양이 됐습니다.”


기부한 나라만 해도 최소가 수십 곳이었다. 그런데도 여유가 있다니. 새삼 다가온 격차에 데이비드는 씁쓸한 현실을 삼키고 다시 말했다.


“미국도 쌀을 수입하고 싶습니다.”


“쌀을요?”


“한국의 쌀은 부드럽지 않습니까. 탄수화물도 풍부하고 포만감이나 영양 면에서도 차라리 쌀이 나을 것 같아서요.”


하긴, 쌀만큼 배부른 건 없지. 탄수화물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도 밀가루 음식보다는 차라리 쌀이 괜찮았다.


무엇보다 식량난이 시급한 상황이라 쌀을 수입할 거라는 것쯤은 이미 예상한 일이라 조현성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예. 그럼 엔진 교체한 후 한국으로 화물기를 보내주세요. 저희는 다른 나라도 가야 해서 바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엔지니어는 이곳에 남나요?”


“예. 상하수도 부분에 도움을 줄 겁니다. 다음에 한국으로 들어오실 때 같이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데이비드에게 고개를 숙인 조현성이 엔지니어 한 명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다시 화물기에 올랐다.


마력석 거래는 모든 나라와 해야 하기에 화물기 한 대로 세계를 돌아다녀야 할 판이었다. 화물기가 활주로를 떠나자 데이비드도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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