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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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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9.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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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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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6쪽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3)

DUMMY

검은 갈퀴가 먼저 의식을 차린 건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둘 다 폭포에 잠식되고 물길 따라 흘러가던 중 우연히도 물기슭에 닿아 육지에 도달했다.


속에 든 물을 게워낸 검은 갈퀴는 힘겹게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자 고통이 온몸을 난도질했다.


"으윽!"


검은 갈퀴는 반쯤 엎드렸다. 한쪽 팔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쇄골이 박살난 탓이었다.


가뜩이나 푹 젖어버린 몸은 물을 먹은 솜만큼이나 무거웠다. 마음 같아서 이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고 그랬듯 꿋꿋이 일어났다. 설령 몸 상태가 최악이라고 해도.


그를 일어나게 만드는 건 과거의 기억이었다.


라이칸스로프에게 잡아먹히는 아내. 그걸 바라보기만 하는 무력한 남자의 모습.


남자는 바로 눈앞에 아내의 잘린 손을 바라보았다.


살아 생전, 따뜻한 온기를 지닌 손이었다. 그런 손이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자 아무 감정도 없는 무정물처럼 느껴졌다.


포식을 마친 라이칸스로프는 곧바로 남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필사적인 반항에도 불구하고 복부에 이빨을 꽂은 라이칸스로프는 딱, 하고 입을 닫았다.


피부가 뜯기고 내장 일부가 날아갔다. 남자의 입가에 새빨간 피가 솟아나왔다. 여기서 더한 상처를 얻으면 곧바로 죽음이었다.


그런 그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기사와 병사 무리가 구하러 온 것이다.


마을이 괴물에 의해 습격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영주가 보낸 것이다.


라이칸스로프는 남자를 내버려두고 더한 먹잇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무려 반나절이란 시간이 흐르고서야 전투가 끝이 났다.


끔찍하고 처절한 현장 가운데 기사와 두 명의 병사만이 서 있었다. 그 기사는 검은 갈퀴였다.


검은 갈퀴는 아내를 잃은 남자를 들쳐메고 의원에게 데려다주었다. 본인도 배가 뜯겨나가서 사경을 헤메는 중이었음에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남자와 검은 갈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기어코 살아난 것이다.


사람들은 신이 보우하신 덕분이라 칭송했다. 영주는 괴물을 죽인 검은 갈퀴에게 큰 보상과 명예를 내려주었다.


그의 복부에 난 상처는 영광스러운 훈장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용맹한 기사라 불렀고 시인들은 멋드러진 시구를 만들어 읊어주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던 검은 갈퀴는 문득 또다른 생존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처럼 사람들에게 기적이라고 불렸던 자였다. 적어도 무관심 속에 방치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남자를 찾아간 검은 갈퀴는, 그가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아니, 실은 살아 있었다. 육체만.


남자는 빛을 잃은 눈동자를 하고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배가 뜯겨나갈 때 영혼 또한 같이 빠져나간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힘겹게 넘겼으면서 자발적으로 다시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사람들은 남자가 멍청하다고 쑥덕거렸다. 그리고 검은 갈퀴가 기사 작위를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날 때도 정신 나갔다고 뒷담화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고 알 리도 없었다. 검은 갈퀴가 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떠났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도 라이칸스로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내 한몸 바치리라.'


설사 그 길이 피로 얼룩져 있다 해도 꿋꿋이 걸어가겠노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맹세했다.


그건 군주에게 의례적으로 서약하는 기사의 맹세와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결의를 품고 길을 떠난 검은 갈퀴는 두 번의 사냥을 시도, 성공했다. 한 번은 거의 죽을 뻔했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사냥 성공이 목전에 와 있었다.


검은 갈퀴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간을 발견했다. 아간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러면 곤란하다. 괴물로 변한 상태여야만 죽일 수 있다. 그래야 원하는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검은 갈퀴는 기절한 아간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혼자서도 걷기 힘든 몸이건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쨌든 한쪽 발과 팔은 멀쩡한 셈이다.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간 복부에 출혈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이대로 둔다고 해서 죽진 않겠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못 할 수도 있었다.


"젠장할."


할 수 없었다.


검은 갈퀴는 본인이 쓰려고 남겨두었던 약을 아간에게 사용하기로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라이칸스로프라면 다르다.


설령 하반신이 날아간다 해도 두어 시간은 버틸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었기에.


상의를 찢어 붕대를 만든 검은 갈퀴는 아간 허리에 둘둘 감싸주었다. 이것으로 바로 죽을 염려는 사라졌다.


어차피 앞으로 흘릴 피는 많다. 벌써부터 흘려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검은 갈퀴는 붕대로 쓰고 남은 천을 아간 얼굴에 덮고는 말뚝을 준비했다. 되도록이면 큰 걸 준비하고 싶었으나 힘이 부족했다.


게다가 꺾인 발이 땅에 질질 끌릴 때마다 상당한 고통이 밀려왔다.


'우물쭈물거릴 시간이 없어.'


검은 갈퀴는 이 악물었다. 아간이 눈을 뜨기 전에 얼른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옆구리에 나무 토막을 들고 온 그는 단검으로 끝을 뾰족하게 깎았다.


'무기는 어디 있지?'


보이지 않았다. 검은 갈퀴는 말뚝을 만들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반대편 물가에 기다란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그가 찾던 무기였다.


다행히도 물길은 유속도 느리고 깊이도 얕아보였다.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찾아가기로 했다.


검은 갈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팔로 말뚝을 붙잡은 그는 아간 손등을 향해 찍었다. 아간이 작게 꿈틀거렸다.


"엄살 부리지 마라, 괴물."


두 번째 말뚝을 박을 준비를 하며 검은 갈퀴가 중얼거렸다. 아까와 똑같이 위로 들고, 내리찍었다.


"네가 죽인 희생자들은."


세 번째.


"이것보다 훨씬 아팠을 테니까."


네 번째···는 잠시 쉬었다가 하기로 했다. 검은 갈퀴가 자리에 쓰러졌다. 앉을 힘도 없었다. 자갈이 얼굴을 쿡쿡 찔렀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갑자기 옆에서 숨소리가 터졌다. 아간의 몸이 위로 펄떡 뛰었지만 말뚝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


"기운 넘치는군."


아간이 고개를 돌렸다. 뭐라 중얼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검은 갈퀴는 실소를 흘렸다.


"어깨가 작살나고 배때기에 구멍이 났는데도 말할 기운이 있는 건가. 역시 괴물이군."

"이게···, 뭐야···."


아간이 머리를 흔들었다. 대강 덮어놓은 덮개가 살짝 옆으로 틀어졌다. 검은 갈퀴는 말뚝을 박았을 때 썼던 돌을 들고는 아간 머리에 떨어뜨렸다.


"가만히 있어. 아직 남았으니까."


마지막 말뚝. 저것만 박으면 사지를 온전히 구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은 갈퀴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백 번도 넘게 말뚝을 박았지만 현실에서는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도 벅찼다. 검은 갈퀴는 슬쩍 아간을 쳐다보았다.


머리에 돌을 맞아서 그런지 아까보다 움직임이 굼떴다. 검은 갈퀴는 이참에 본인도 편하게 눕기로 했다.


여차하면 다시 돌을 떨궈서 정신 없게 만들면 되니까.


"넌 정체가 뭐지?"


침묵하던 아간이 입을 열었다. 조금이나마 쉬어서 그런지 목소리에 힘이 붙어 있었다. 검은 갈퀴는 내심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도 돼. 사람 잡아먹는 괴물아."


은하수를 중심으로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검은 갈퀴는 별자리 중에 사냥꾼 자리와 늑대 자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모르겠군.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검은 갈퀴가 시선을 옮겼다. 아간이 어딜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는 위로 향하고 있었다.


"들킬 만한 짓은 하지 않았는데. 혹시, 싸움판에서 내 모습을 보고···?"

"당연하지.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진 마라. 싸움판이 아니었더라도 난 어떻게든 알아봤을 거야. 네놈들은 틈만 나면 사람을 죽이니 온몸에 피 냄새가 풀풀 나거든."

"난, 죽이지 않아. 틈이 난다 해도."

"변명은 집어치워라. 라이칸스로프."

"변명이 아냐. 난 괴물도 아니고 살인자도 아니다. 나는···."

"추한 꼴이로군. 곧 죽을 때가 되니 두렵나?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는 건가?"

"부정하는 게 아냐. 나도 내가 뭔지 잘 알고 있어."


아간은 평소 하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손짓을 섞으며 말하려 했다. 그러나 말뚝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달리는 아픔 때문에 입술을 꾹 깨문 아간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지만 최대한 살인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야수의 본능을 이겨내려고 필사적으로 참아왔어. 피 냄새가 감미롭게 풍겨도 어떻게든 꿋꿋이 참으려고 했다고. 그때도 사고였을 뿐이야. 오물꾼이 내 말은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해서 화가 났었어. 그래서 밀친 거고. 나는, 나는 정말로···!"

"하! 제 발 저려서 술술 부는군. 그런다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정당화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죽어."

"나라고 이러고 싶은 줄 알아!"


말뚝이 들썩였다. 검은 갈퀴는 돌을 들어올렸다. 혹시 모르니 마지막 말뚝을 박을 때까지 기절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아 다시 떨궜다.


"지금도 기억해, 내가 변했던 날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금방이라도 땅이 갈라지는 줄 알았지. 그게 사람들이 내는 발자국 소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지!"


아간이 팔다리를 흔들었다. 단순히 말뚝을 뽑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 답답하고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알고 있었나? 이건 저주야. 난 저주에 걸려서 이렇게 된 거라고. 나도 피해자라고! 처음부터 라이칸스로프로 태어난 게 아니란 말이다! 어느 미친 놈이 대륙에 저주를 걸었는데, 그게 바로 라이칸스로프로 변하게 해주는-."

"처음에는 팔다리를 자를 생각이야."


평이한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검은 갈퀴는, 아무렇게나 누운 자세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원래는 목에 칼집을 내서 피를 빼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그럴려면 매달 곳이 필요한데 마땅한 데도 없고. 워낙 무거워야 말이지. 결국 사지를 분해해서 옮기는 수밖에 없어."


아간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갈퀴는 손을 뻗어 흘러내린 덮개를 올리고는 이어 말했다.


"그렇게 자른 팔다리는 일단 나무 밑에 숨겨둘 거야. 그리고 나는 근거지로 돌아가 아픈 몸을 치료해야겠지. 피 냄새가 지독해서 다른 맹수들이 채갈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해. 안 그러면 뼈도 안 남고 사라지거든."

"지금, 무슨 말을···."

"그렇게 다시 가지고 오면 본격적으로 요리할 준비를 시작하지. 썰고, 부수고, 나누고, 쪼개고, 다지고. 그동안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을 테지. 그럼 물 먹은 풀을 올려 연기를 나게 한 다음 그 위에 고기를 올려 훈연을 시킬 거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진행을 해야 겨우 훈제육이 완성이 되는데, 그냥 먹으면 맛도 없고 너무 질기니까 향신료를 조금 첨가해서-."

"웃기는 소리 그만해!"


아간이 강하게 소리쳤다. 목이 잔뜩 갈라져 있었던 탓에 피 맛이 살짝 느껴졌다.


"정신 병자 같으니. 네가 지금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는 거냐!"

"개소리라고?"


검은 갈퀴가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쯤 몸을 일으킨 그는 발작적으로 기침했다. 저러다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간신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검은 갈퀴는 일어서려고 애썼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네가 먼저 시작한 개소리다, 라이칸스로프. 저주가 어쩌고 저째? 핑계대지 마라! 넌 괴물이다.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는 개좆 같은 괴물! 아까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사람을 죽였다, 라고!"


분노로 피어오른 눈빛이 아간을 쏘아봤다. 눈빛만으로 씹어먹을 수 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살육을 왜 너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나 또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너희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먹으니 나도 똑같이 되갚아주는 거다. 이게 궤변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완벽한 논리다! 이거야말로 정당한 행동이고 합당한 방식이란 말이다!"


검은 갈퀴가 말뚝을 들더니 아간 발등에 꽂아버렸다. 아간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검은 갈퀴는 그보다 더한 고성을 지르며 말뚝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뼈가 부숴지고 피가 튀었다.


말뚝이 아래로 파고들어갈 때마다 아간이 파르르 경련했다.


어느덧 말뚝질이 끝났다. 검은 갈퀴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보기 흉할 정도로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뼈에 금이라도 간 건지 푸르딩딩한 멍이 손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검은 갈퀴는 손을 한 번 털어보이고는 늑대포식자를 가지러 갔다. 물이 무릎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했다. 얕은 수심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갔다오는 동안 말뚝을 뽑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아간은 한계 이상을 넘어선 고통에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검은 갈퀴는 혀를 차더니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옆구리를 찔렀다. 맨정신이 아니면 설사 보름달이 떴더라도 라이칸스로프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옆구리를 파고들어간 늑대포식자가 좌우로 비틀렸다. 아간은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이제 변할 시간이다. 일어나라."


아간이 헐떡였다.


"날, 죽이, 려고?"


검은 갈퀴는 칼끝으로 덮개 아래쪽을 건드렸다.

"이렇게 죽기 싫었으면 그전에 자살을 했었어야지. 그래. 라이칸스로프. 넌 진작 그렇게 했었어야 했어. 네가 아까 한 말이 정말로 진실이라면, 저주 때문에 괴물이 된 거라면, 넌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야 했어. 그 남자처럼."


아간으로서는 그 남자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간은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양보 못할 소중한 한 가지가 있었다.


"못 끊어. 나도, 죽으려고 했어. 하지만 절대로···. 아들이 살아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없어."

"아들?"


검은 갈퀴가 미간을 좁히더니 검을 치웠다.

"자식이 있었나?"

"그래."


아간은 딱딱하게 마른 혀로 입술을 핥고는 말했다.


"그 애는 괴물이, 아니야. 평범한 사람이야. 참 다행히도. 그러니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만, 이라도. 살 생각이었어. 난 죽을 수 없다고!"


검은 갈퀴가 하늘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걸까. 이윽고 고개를 아래로 내린 그는 덮개를 치웠다.


눈부신 달빛이 아간 얼굴로 쏟아졌다. 아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간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땅과 말뚝이 동시에 들썩거렸다. 체격이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아무리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상태라 해도 감당 못할 힘은 여전했다.


이러다 말뚝이 쑥 뽑힐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어린 라이칸스로프는 먹어본 적이 없군."


그러나 검은 갈퀴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늑대포식자를 들어올렸다. 완전히 변하지 않고 죽이면 다시 인간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괴물로 변이가 끝나는 즉시 곧바로 목을 꿰뚫을 예정이었다.


다만 장검을 한 손으로만 들고 있어서 그런지 힘이 부족했다.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간이 길어진 주둥이 사이로 거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의문 모를 말이지만 검은 갈퀴는 아주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끝나면 네 아들도 죽이러 가주지."


변이가 끝났다. 그와 동시에 늑대포식자가 아간의 목을 노리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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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4) 22.09.14 56 4 18쪽
»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3) 22.09.13 57 3 16쪽
41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2) 22.09.12 59 4 20쪽
40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1) 22.09.11 60 4 19쪽
39 피로 물든 강물 (3) 22.09.10 55 4 15쪽
38 피로 물든 강물 (2) 22.09.09 51 4 19쪽
37 피로 물든 강물 (1) 22.09.08 53 4 17쪽
36 선전 포고 22.09.07 54 4 22쪽
35 엇갈림 (3) 22.09.06 53 4 18쪽
34 엇갈림 (2) 22.09.05 50 3 13쪽
33 엇갈림 (1) 22.09.04 51 3 14쪽
32 검은 갈퀴 22.09.03 58 4 20쪽
31 달빛 손톱 (5) 22.09.02 54 5 26쪽
30 달빛 손톱 (4) +1 22.09.01 54 4 14쪽
29 달빛 손톱 (3) 22.08.31 56 4 20쪽
28 달빛 손톱 (2) 22.08.30 54 4 13쪽
27 달빛 손톱 (1) 22.08.29 57 4 20쪽
26 잠든 야수 (6) 22.08.28 61 4 16쪽
25 잠든 야수 (5) 22.08.27 55 5 18쪽
24 잠든 야수 (4) 22.08.26 54 3 19쪽
23 잠든 야수 (3) 22.08.25 61 4 17쪽
22 잠든 야수 (2) 22.08.24 58 4 17쪽
21 잠든 야수 (1) 22.08.23 65 4 20쪽
20 피 냄새 (7) 22.08.22 71 4 13쪽
19 피 냄새 (6) 22.08.21 60 4 17쪽
18 피 냄새 (5) 22.08.20 66 4 18쪽
17 피 냄새 (4) 22.08.19 72 4 15쪽
16 피 냄새 (3) 22.08.18 75 3 16쪽
15 피 냄새 (2) 22.08.17 83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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