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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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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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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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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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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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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엇갈림 (3)

DUMMY

"저기예요?"


타샤가 물었다. 아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둘러본 타샤는 밝게 말했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겠네요. 사람도 건물도 없어서."


하지만 긍정적인 말은 이게 끝이었다. 타샤는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손가락으로 코를 꽉 막았다.


"많이 심해?"

"아뇨. 생각보다 안 심한대요."


거짓말이었다. 결국 타샤는 발치에 자라난 풀을 뜯어 돌돌 말더니 콧구멍에 쑤셔넣었다. 어지간히도 냄새가 심한 모양이었다.


"굳이 갈 필요 없어. 디아프와 네가 오기엔 별로 좋은 곳이 아냐."

"디아프도 여긴 처음이에요?"


타샤는 디아프를 쳐다봤다. 자기처럼 냄새 때문에 곤혹스러워 할 지 궁금했다.


역시나 디아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타샤는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궁금해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아간은 자리에 우뚝 멈췄다.


'원래 저기에 바위가 있었던가?'


아간은 미간을 좁혔다. 작업장 문 앞이었다. 그곳에 넓적한 바위 같은 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 근처에 바위가 박혀 있었던가 생각하던 아간은 문득 시선을 살짝 돌렸다. 닫혀 있어야 할 집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저씨!"


타샤가 외쳤다. 어느새 아간은 달리고 있었다. 뒤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집을 향해 맹렬히 달렸다.


아간은 돌풍처럼 작업장 앞에 도착했다. 바위가 아니었다. 라이트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라이트 씨!"


아간은 라이트를 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번쩍 안아서 집에 누이고 싶었다. 하지만 섣부르게 행동했다간 상처가 악화될 수 있었다.


아간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타샤에게 소리쳤다.


"성소원으로 돌아가! 돌아가서 타솃 의원에게 알려! 여기 환자가 있다고-."

"아간. 난 괜찮아."


라이트가 눈을 떴다. 아간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라이트 씨. 어째서 밖에 나와 있는 거예요?"


라이트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간은 물통을 갖고 와 라이트 입에 흘려주었다.


"바람 쐬고 싶어서."

"무리하면 어떡합니까. 아직 혼자서 나오기엔 힘들어요."

"미안해. 그보다 이건 어때?"

"뭡니까?"


라이트가 자기 밑을 가리켰다. 아간은 조심히 라이트를 일으켜 벽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라이트가 깔고 누운 게 뭔지 발견했다.


아간은 손으로 매만졌다. 그건 가죽이었다. 본래의 형상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가죽이란 점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사냥꾼에게 온갖 칼질과 활을 맞아 죽은 짐승의 것으로 보였다.


가죽은 아직 무두질이 덜 되어 있어 뻣뻣했다. 아간은 가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찌 된 일이죠?"


라이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디아프와 타샤가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라이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안녕? 너희들은 누구야?"


타샤는 아간 눈치를 보았다. 아간은 타샤 등을 쓸어만지고는 알려주었다.


"이 아이는 타샤, 그리고 이 아이는 디아프입니다. 제가 사는 집이 어떤지 궁금해서 찾아왔어요."


타샤가 디아프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같이 인사했다.


"미안해. 안아주고 싶은데 몸이 안 좋아서 못하겠네. 냄새도 나고."

"어려울 것 없죠."


타샤는 손을 뻗어 라이트를 안아주었다. 라이트는 잠깐 얼굴을 찡그렸지만 곧 사라졌다.


품에서 벗어난 타샤는 라이트의 왼팔을 가리켰다.

"근데 팔은 어디 갔어요?"

"응. 잠깐 집에 두고 왔어. 걸리적거려서."


타샤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숨죽여 웃던 라이트는 뒤에 멀뚱히 서 있는 디아프를 발견했다. 라이트가 눈빛으로 아간에게 물었다. 아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디아프구나."


전체적인 인상은 아빠와 그다지 닮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 쪽과 닮은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빠와 비슷했다. 둘 다 강인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때, 디아프가 팔을 뻗었다. 다소 딱딱하고 기계적이었지만 디아프는 팔을 수직으로 뻗은 채로 라이트에게 다가가더니 폭 안아주었다.


"헐."


타샤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아간도 눈을 꿈뻑거렸다.


잔잔한 경악이 흘러가는 가운데 라이트는 기쁨에 젖은 채로 디아프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라이트는 디아프와 타샤를 한 눈에 담았다.


얼굴에 나 있는 보송보송한 솜털. 만지면 폭 들어갈 것 같은 볼과 찰랑이는 머리칼. 마주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눈망울.


그야말로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의 결정체였다.


라이트는 두 아이에게서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렸다. 오래 전에 죽어, 이젠 기억에서조차 희미한 동생. 그 아이도 필시 저런 순수함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라이트는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췄다.


"많이 아파요?"


타샤가 물었다. 라이트는 그것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고 애써 해명하지 않았다. 라이트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

"제가 기도해드릴까요? 전 배가 아프면 수녀님이 기도해주셨어요. 사실 그런다고 낫진 않지만 기분은 괜찮아지더라고요."

"응, 나중에. 고마워."


라이트는 기특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타샤 머리를 쓰다듬은 아간은, 하지만 아직 중요한 용무가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아간은 라이트에게 누가 가죽을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 물어야 했다.


도시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을 알리는 소리였다.


타샤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수녀님이 저녁 먹기 전까지 돌아오라고 했는데! 아저씨, 이제 돌아가야 해요."

"잠깐만."


아간은 라이트 옆에 앉았다. 라이트는 투명한 눈으로 아간을 바라봤다.


"뭐해요?"


타샤는 두 어른이 말없이 바라보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아간과 라이트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간이 눈으로 물었다.


'누가 했죠?'


그러자 라이트가 눈으로 대답했다.


'몰라.'

'봤잖아요?'

'못 봤어.'

'라이트 씨.'

'미안, 아간. 못 봤어.'


"라이트 씨."


끝내 아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라이트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했어."

"당신이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심심해서."

"무슨 그런···."

"내가 했어. 아간. 미안해. 계속 아파서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 봐."

"계속 그럴 겁니까?"


라이트는 고개를 떨구었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간은 그런 라이트를 바라보다가 가죽을 들었다. 가죽은 바람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아간은 가죽에 코를 갖다 대고는 후각을 열었다. 역겨운 냄새가 한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간. 뭐해?"


라이트가 불안한 듯 물어보았다. 아간은 검지를 들어올렸다. 오물이 뒤섞인 악취 속에 한 사람의 냄새를 발견했다.


아간은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죠. 제가 안아줄게요."

"혼자서도 가능해."

"고집 부리지 말아요."


아간은 라이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라이트는 신음을 내었지만 꿋꿋이 걸으려 애썼다. 집에 들어간 아간은 라이트를 벽에 기대게 해주었다.


"쉬세요. 아이들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아간. 정말 내가 했어."

"알겠으니 다음부턴 하지 마세요."


아간은 일전에 만들어놓은 고기를 물에 불렸다. 씹기 힘든 라이트를 위해서였다. 아간은 그릇에 고기를 올리고는 라이트 앞에 놓아주었다.


"금방 오죠."



******



로미어는 비틀거리며 대로를 가로질렀다. 볼썽사나운 몰골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로미어가 지나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들 찬란한 하늘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미어는 외롭다거나 고독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도 주변 사람들에게 눈길 한 점 주지 않았다.


시끌시끌한 곳에서 벗어난 로미어는 어두침침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로미어를 발견했다.


그들은 축제에 도통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다. 손에 들린 술병과 정체불명의 약만 있다면 세상 만사를 다 가진 기분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은 매일 축제를 느끼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한 점의 빛도 느껴지지 않았다.


로미어의 머릿속에 한 마디 말이 웅웅 울리고 있었다. 동굴 속에서 퍼지는 메아리처럼 좀체 사그라들지 않았다.


로미어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자 환상이 보였다. 라이트가 그토록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에게로 오는 모습이었다.


라이트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하지 마!


가죽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라이트. 그런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 못 오게 하는 자신.


그럼에도 라이트는 끝내 가죽을 움켜쥐는데 성공했다.


라이트는 가죽을 품에 안았다. 가죽은 표면이 맨들맨들해서 자꾸만 밑으로 빠져나갔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라이트는 아예 가죽을 깔고 누워버렸다.


저리 비켜!

하지 마!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라이트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아픈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라이트는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발길질을 몇 번 하던 로미어는 왠지 기가 질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라이트를 찌를 수도 없었다. 애초에 날붙이를 갖고 온 것도 그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혼쭐 내주기 위해서였다.


이도 저도 못한 로미어는 그만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로미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과 귀를 막는다면 헛것이 모조리 사라질 줄 알았다.


로미어의 기대는 무너졌다. 오히려 환청과 환각은 제 몸집을 시시각각 부풀렸다.


하지 마!


로미어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동시에 눈과 귀를 열었다. 어둠과 심장 고동 소리밖에 느껴지지 않던 세상이 익숙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탈진한 로미어는 집을 바로 앞에 두고 주저앉았다. 달빛도 들어가지 않는 어두운 집에 홀로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흐으으."


로미어는 문 앞에 앉았다. 달이 몸집을 부풀린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몇 일만 지나면 보름달이 될 듯했다.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골목길. 후다닥 뛰어다니는 생쥐와 기어다니는 벌레들. 오늘도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대신 죽음을 자조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서 로미어를 노려보고 있는 어느 한 사람.


로미어가 채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골목 끝자락에 서 있던 그 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그는 벼락같이 로미어의 목을 팔로 짓눌렀다. 로미어는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애썼다.


"나, 목이, 숨이···."


그는 로미어를 짓누른 채 앞으로 밀었다. 로미어는 뒤로 벌렁 넘어지더니 집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갔다.


"억!"


로미어는 입을 쩍 벌렸다. 뒤통수가 벽에 부딪혔다. 별안간 시야가 밝아졌다. 끊임없이 무언가가 눈앞에 되튀었다. 로미어는 밝은 공포에 휩싸여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러는 사이, 남자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틈새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바닥에 푸르스름한 빛의 선이 길게 그어졌다.


이로써 둘은 어느 누구 보는 이 없이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


"뭐, 뭐야. 설마 그 개자식···!"


로미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막혀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로미어는 목과 뒤통수 중 어느 곳이 더 아픈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억울함과 공포가 더 컸다. 로미어는 목을 누르고 있는 팔을 붙잡고는 울부짖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자신을 바라보는 서슬 퍼런 눈빛.


로미어는, 분명 무섭고 떨렸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또한 분노와 울분에 차 있었다.


"그깟 가죽 찢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그때 다하지 못한 화를 풀려고 온 거야? 집어치워! 네가 애초에 날 이렇게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 벌어지지도 않았어!"


로미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때문에 난 일도 못하고 앓아눕기만 했어! 찾아오는 이도 없고 돌봐주는 이도 없이! 오직 나 혼자! 만약 네가 날 찾아오기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진 안 했을 거야. 설사 용서해 주진 않았을지언정 복수는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이게 다 너 때문···."

"그렇다고 애꿎은 사람을 괴롭혀?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 사람을?"


아간이 가래 끓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일그러진 콧잔등이 부르르 떨렸다.


"괴롭힌 사람은 너겠지!"


로미어가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이 얼굴을 봐, 코가 비뚤어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어! 턱이 뒤틀려서 제대로 다물어지지도 않아! 어금니가 덜렁거려서 음식도 못 씹는 데다가···이건 뭐야?"


목덜미가 따뜻해졌다.


뒤로 손을 돌린 로미어는 곧 끈적하고 붉은 액체가 묻어나온 걸 발견했다. 벽에 부딪혔을 때 뒤통수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로미어는 기괴한 비명을 터뜨렸다.


"이, 이 또! 이 괴물 같은 새끼야! 똥통에 빠져 죽을 놈아!"


아간은 상체를 뒤로 쭉 뺀 상태에서 로미어를 밀었다. 하지만 로미어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제멋대로 깎인 손톱이 살점을 뜯어내기 위해 갈퀴처럼 구부러졌다. 대책없이 벌어진 입 사이로 침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흡사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다.


"가만 있어!"

"닥쳐!"


로미어가 품에서 날붙이를 꺼냈다. 그건 누가 쓰고 버린 물건으로 보였다.


손잡이는 오래 자란 나무 표면처럼 가죽이 잔뜩 일어나 있었다. 날은 날카롭게 벼려지지도 않았고 녹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단검 크기의 날붙이가 원래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무리 녹이 슬어도 목숨을 뺏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죽어! 죽으라고!"


아간은 적당히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가 죽자살자 달려드는 바람에 섣불리 행동하기 힘들었다.


그때 칼날이 팔을 베고 지나갔다. 아간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다.


아간은 점점 머리가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코가 쉬지 않고 벌름거렸다.


"카아아!"


참지 못한 아간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상대 가슴팍을 강하게 밀어버렸다.


로미어가 속수무책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부딪혔다. 뭔가가 부러지고 터지는 소리가 잠깐 들렸다.


로미어는 밑으로 주르륵 떨어졌다. 팔다리가 힘이 빠진 것처럼 사방으로 늘어졌다.


아간은 몸을 잔뜩 부풀린 채 로미어를 바라보았다. 뼈를 분지른 것 같은 촉감이 아직 주먹에 남아 있었다.


아간은 하염없이 서 있었다. 이때쯤이면 일어날 때가 됐는데도 로미어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젖혀진 목과 살짝 벌어진 입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 모를 불안을 안겨주었다.


"당신-."


문득 아간이 팔을 들었다. 칼날에 베였음에도 상처는 없었다. 아주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 있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보다 팔에는 로미어가 저항한 흔적이 더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건 핏자국이었다.


그건 로미어의 손에 묻어 있던 피였다.


아간은 벽에 대고 팔을 마구 문질렀다. 오래도록 관리하지 않은 나무 벽은 석벽 못지 않게 울퉁불퉁했다. 그럼에도 아간은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피를 닦아내야만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간은 다시 로미어를 쳐다봤다. 로미어는 코피를 흘리며 허망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눈에 빛이 사라졌다. 미약한 숨이 입가에 매달리는 듯 하더니 똑 떨어졌다.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아간은 로미어 집에서 뛰쳐나와 골목길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달리면서 손으로 코를 계속 비볐다. 콧잔등이 벌게졌는데도 비비는 걸 멈추지 않았다.


냄새가, 다시 냄새가 난다.


그동안 거부하고 외면했던 냄새가 다시금 코밑에 맴돌기 시작했다.


사람 피는 물론이고 동물 피도 되도록 맡지 않으려고 했던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골목길에서 벗어나려던 아간은 낭패감이 들었다. 꼬아질 대로 꼬아진 골목길 한복판에 있었다.


꼬리별의 골목길은 맨정신으로도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아간은 머리가 어지러워 제대로 걷지 못했다. 모르는 이가 보면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줄로 알 것이다.


"이봐, 얼마나 마셔댄 거야."


주정뱅이 두 명이 거의 늘어진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아간이 자기들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는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중 한 명이 아간에게 다가갔다.

"우욱, 뭐야! 뭔 냄새가 이리 독해? 이 새끼, 똥밭에 구르기라도 했나?"

"방법이 있지."


술잔을 들고 있는 다른 사람이 아간의 몸에 술을 부어버렸다. 아간의 몸을 타고 술이 쫄쫄 흘러내려갔다.


"봐봐, 어때? 이제 좀 덜해졌···."


아간이 손을 휘둘렀다. 술을 붓고 있던 주정뱅이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힘없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다른 주정뱅이가 술이 깬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과하겠소. 미안합니다."

"나가는 길 어디야."

"예?"


아간이 흰 자를 드러내며 노려봤다.


"나가는 길. 어디냐고."


주정뱅이는 떨리는 손으로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리고 아간이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까지 주정뱅이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않고 바닥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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