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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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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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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1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28 22:55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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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6쪽

잠든 야수 (6)

DUMMY

"성소원에서 만든 술입니다. 이번 축제 때 팔 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레로가 술병을 흔들어보였다. 그 말은 아직 시중에 나와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간이 어떻게 갖고 있냐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레로는 되려 놀란 얼굴을 지었다.


"왜 순진한 척을 하십니까. 이미 다른 사람들은 한 집에 한 병씩 갖고 있을 걸요. 몇 다리만 건너면 어렵잖게 구할 수 있는 건데요."

"세상 사람 모두가 너처럼 도둑질 하는 건 아냐."

"이상한 소리 하시네. 정당하게 구한 겁니다. 오히려 웃돈 더 얹어주고 산 걸요. 나처럼 양심적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시죠."


그레로는 그러니 어서 잔이나 가져오라고 채근했다. 아간은 죄책감이 조금 생겼지만 그레로 말대로 하기로 했다.


기왕 생긴 술을 모른 척 하는 건 아까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아간에게 있어서도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아간이 잔을 두 개 가지고 오자 그레로는 크게 웃음을 머금었다.


"좋아요, 그겁니다. 같이 마시고 함께 죄를 짓자고요."

"가져올 거면 더 가지고 오지. 고작 한 병이야?"

"성소원 술을 우습게 보지 마시죠. 달콤하다고 홀짝홀짝 마셨다간 어느새 정신을 잃을걸요."

"두고 보지."


각자 잔에 술을 따른 그레로는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건네줬다. 아간은 술내음을 맡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레로가 잔을 위로 올렸다.

"자, 뭐라고 할까요."

"그냥 마셔."

"참 분위기 더럽게 못 맞추네. 자, 봐요.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요."


그레로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짐짓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크시포스 제국의 무궁한 안녕과 황제 폐하의 건강을 위하여."


그레로는 아간이 질린 얼굴로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않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레로의 혀를 지켜준 우리 아저씨를 위하여. 또 언젠가는 이 토 나올 것 같은 냄새가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말을 마친 그레로가 술을 쭈욱 마셨다. 잔을 다 비운 그레로는 격하게 기침을 했다. 주변에 술냄새가 확 퍼졌다.


"아저, 씨도 쿨럭, 한 번 말, 케헥, 케엑. 말해봐요. 나처럼 멋있게 못, 한다고 빼지 말, 쿨럭! 말고."

"됐어, 나는."

"아, 빨리 해봐요."


아간은 왠지 부담이 됐다. 원래는 그런 귀찮은 짓 안 하고 바로 마실려고 했다.


그러나 그레로가 부담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간은 가만히 술잔을 들여다보았다. 오랫동안 써와서 그런지 표면이 잔뜩 긁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잔을 쓰다듬던 아간은 낯선 감촉이 들었다.


평소에 본인이 쓰던 잔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잔은 라이트가 쓰던 것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아간은 천천히 잔을 들어올렸다.


"상처 받은 자를 위로하는 밤이 되기를."


아간이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처음에는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지만 끝에는 쓴맛이 났다. 아간은 착잡한 얼굴로 잔을 어루만졌다.


그레로는 아간 어깨를 툭 쳤다.


"나쁘지 않았어요. 만약 여자 앞에서 했다면 점수 제대로 땄을 걸요."


아간이 희미하게 웃자 그레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 잔을 채우고 술을 마시는 그레로를 보며 아간이 물었다.


"넌 어디에 살지? 거지라도 쉬는 곳은 있을 거 아냐."

"비밀입니다. 다만 시궁창에 산다고만 말해두죠."

"혼자?"

"뭡니까. 호구 조사라도 하는 거예요?"

"싫으면 말아. 나도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니까."


아간은 끝이 뾰족하게 깎인 나뭇가지를 들어 감자를 쿡 찔렀다. 새까맣게 탄 나뭇잎을 벗기니 잘 익은 알감자가 드러났다.


아간은 반으로 쪼개 그레로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레로는 오도방정을 떨며 뜨거운 감자를 먹었다. 입 주변이 금방 까맣게 되었다.


"무두장이치고 잘 먹고 잘 살고 있군요. 여기서 살고 싶어지는데요."

"자리 없어."

"잠자리가 한 자리 남아 있던데요?"

"동료 자리야."

"아참. 그랬죠. 다쳤다고 했죠."


그레로는 눈동자를 굴리고는 말했다.


"듣기로는 꽤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좀 괜찮습니까, 그 아저씨는?"

"아니. 아직은."

"그렇군요. 그래도 죽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죽으면 다 끝이잖아요. 사지가 잘려도 살아 있는 게 최고죠."


그레로는 동의의 의사를 묻는 눈으로 아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간은 말없이 감자를 먹고 있었다. 그레로는 술을 홀짝 마셨다.


"열 여섯 명입니다."

"뭐가."

"저 혼자만 사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죠."

"많군."

"징그러울 정도로 많죠. 가끔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새앙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더더욱."


아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안 춥고 좋던데요. 의외로 천장이나 벽에 구멍이 뚫려 있지도 않고요."

"지금은 여름이잖아. 겨울 되면 여기도 추워."

"에이, 꽁꽁 언 수로 근처에서 안 자봤으면 말하지도 마십시오.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죠. 등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서는, 살점이 그대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버텼지?"

"천운이죠. 저기 위에 있는 신이 보살핀 덕분이라고 하면 되나요. 그러고 보니 감사하다는 말도 안 했군요. 못 배워서 그럽니다. 이해해주십쇼."


그레로가 하늘을 보며 낄낄 웃었다. 아간은 병을 들어 그레로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목례를 한 그레로는 머리를 좌우로 찬찬히 흔들었다.


잔디가 미풍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노곤한 몸짓이었다.


"이빨이 절로 딱딱 부딪치는 추운 겨울날이 오면 사람 한 명은 꼭 죽죠. 몸을 이렇게 웅크리고 있어서는, 누가 보면 곤히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레로가 몸을 앞으로 수그려 보였다.


"하지만 만져보면 딱딱하게 굳어 있죠. 아마 망치로 두드린다면 쩍하고 갈라질 걸요. 해보진 않았지만 분명 그럴 거예요."


아간은 가라앉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레로는 수그린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대로 씻지 않은 머리칼은 기름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잔뜩 엉켜 있기까지 해서 빗으로 빗는다 한들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아예 박박 깎아야 할 듯싶었다.


그레로는 한동안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아간이 어깨를 잡고 일으켜주려던 참이었다. 그레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는 그렇게 죽을 수는 없었어요. 죽더라도 차갑게 식은 채로 죽고 싶진 않았어요. 적어도 배고파서, 추워서, 목말라서, 아파서 죽고 싶지는 않았죠."


아간은 그레로의 등에 손을 얹으려다 말았다. 그레로가 머리만 살짝 돌려 아간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돈을 모으려고 한 겁니다. 돈이 있다면 어디 가서 굶어죽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돌려 받아야 할 것도 있고요."

"돌려 받아?"


아간이 물었다. 하지만 그레로는 들리지 않는지 제 할말을 이어갔다.


"미안합니다. 아저씨를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우연찮게 싸우는 걸 봤는데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그레로는 상기된 얼굴을 지었다.


"보자마자 '이야, 저 사람만 잘 꼬드기면 떼돈 벌 수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던 거죠. 무두질이나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돈이 고프겠지. 게다가 여기저기서 천대 받으니까 화도 많을 테고. 그러니 내가 주선해서 싸움판에 참가할 수 있게 하면 옳다구나, 하고 물겠구나. 그러면 당연히 나한테 떡고물이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겠구나. 온갖 생각을 다했죠. 그런데."


그레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아간도 아는 내용이었다.


아간은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레로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계속 뭐라뭐라 웅얼거렸다.


갑자기 그레로가 상체를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시야 전환에 그레로는 현기증을 느꼈다. 밤하늘에 있던 별이 그레로의 눈앞에 내려와서 까불거리는 것 같았다.


그레로는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기 위해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빛은 더욱 심해졌다. 세상이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레로는 바닥에 놓인 잔을 들더니 남아 있는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쓰러질 듯 요란하게 기침을 했다.


아간은 병에 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절반도 다 안 마셨다. 고작 두 잔 마시고 취하다니.


아간은 헤롱거리는 그레로에게서 잔을 뺏어갔다.


"그만 마셔."

"얕보지 마세요. 제가 고작 이 정도 마시고 취할 것 같습니까?"


그레로는 잔을 다시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상대는 아간이었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이길 수 없는데 하물며 술에 취해 있다니.


그레로는 씩씩거렸다.


"젠장,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레로는 크게 외치더니 아간을 째려보았다.


"도대체 왜 안 나가는 거죠? 내가 그런 힘을 갖고 있었더라면 싸움판에 나가서 다 때려잡았을 거예요. 그리고 돈이란 돈은 죄다 긁어모았을 테지요. 여자도 끼고 술도 마시고 흥청망청 놀았을 거예요!"


아간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레로는 성토했다.


"알겠어요? 내가 당신처럼 강하기만 했더라면, 다리 없는 병신한테 꼬박꼬박 돈 갖다바칠 일도 없었을 거고 매일매일 굶어죽을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다 못해 용병이라도 돼서 각지를 떠돌았을 거라고요!"

"많이 취했어."

"듣기 싫어요? 그럼 당신도 내 혀 뽑던가요! 그게 아니면 잠자코 들어요. 내가 당신이었다면, 내가 당신이었더라면..이딴 곳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레로는 아간에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뭐에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그레로는 활활 불타는 눈을 하고 있었다.


"왜 능력이 있는데 꽁꽁 감추려고만 합니까?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딴 사연 개나 줘버려요. 그냥 밀고 나가라고요. 비웃고 욕하고 무시하는 작자들을 다 넘어뜨리라고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나와는 달리···."


그레로가 서글픈 얼굴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나처럼 등이 굽어보던가요. 이빨이 툭 튀어나와보던가요. 이깟 술 몇 번 마셨다고 취해보던가요. 그런 거 아니라면 말하지 말고 가만히 듣기나 해요. 제발요."


그레로는 거의 엎어지듯 아간에게 몸을 맡겼다. 이러다 자연스레 잠에 들 것 같았다. 아간은 무릎에 이마를 대고 있는 그레로를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달이 네 어머니라고 했지."


그레로가 고개를 들었다. 아간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레로는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네 어머니가 너보고 당장 죽으라고 말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이제 와서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달은 살아 있지 않은데요."

"봐봐."


그레로는 아간이 시키는 대로 했다. 반쯤 줄어든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기분이 어때?"

"포근하네요."

"난 찢어버리고 싶어."


아간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달을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어. 그런데도 나처럼 되고 싶어?"

"왜 그런 마음이 드는데요?"


찌르르 찌르르 하고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강가에서 물이 찰랑이며 흐르는 소리도 섞여 들렸다.


마을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노래를 부르는 주정뱅이의 노랫소리가 아즈라이 흘러들어왔다.


아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이곳과 달리 도시는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커다랗게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도시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아간은 그레로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정체를 알아차린 건 아닐까. 아니면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이상하게 보고 있는 걸 아닐까.


아간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레로의 시선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왜 그런 마음이 드냐면···."


드르렁.


아간이 고개를 내렸다. 그레로는 아간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잠에 골아떨어져 있었다. 아간은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레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라이칸스로프이기 때문이야."


아간이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술사 말고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비밀을, 우연찮게 만난 한 청년에게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달콤한 잠에 빠져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아간은 낮고 느린 곡조로 노래를 부르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한 노인이 짙푸른 초목을 가로질러 갔다.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지만 없어도 문제될 건 없어보였다.


걸음걸이가 당차고 굳세었기 때문이다.


발을 저는 일도 없이 꿋꿋이 걸어가던 노인은 어느 집 앞에 멈춰섰다.


건물은 외견상으로 보면 모래 위에 지어진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디 구멍이 뚫려 있다거나 헤진 곳은 딱히 없었다.


주변을 둘러본 노인은 왜 자신이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집 말고는 근처에 자리 잡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냄새 때문이로군."


노인은 코를 위로 들어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누구든 절로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냄새였다. 하지만 노인은 평온한 기색이었다.


노인이 조심스레 집으로 들어갔다. 창문 노릇을 하는 덧문 틈 사이로 달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노인은 왼쪽에 누운 사람을 쳐다보았다. 허리가 굽은 탓인지 쪼그리고 누워 있었다.


곁으로 다가간 노인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보라색 빛이 일렁였다.


'이 아이는 아니군.'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손을 뗀 노인은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로 갔다.


남자는 최대한 벽에 붙어 누워 있었다. 노인은 잠자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아이인가?'


마치 야수가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인은 혹시나 싶어 남자 머리에 손을 올렸다. 노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여운 것.'


상처 입은 어린 아이를 보는 것처럼 노인은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밤만 되면 뛰쳐나오려는 괴물 때문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폭주한 자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걸 알기에 노인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버텨왔던 것일까.


노인은 이 남자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리고 깊은 죄책감도 들었다.


노인은 남자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노인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잘못 느낀 걸까. 노인은 다시 한번 다가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올린 노인은 놀라워했다.


'상당한 기운이로군. 나나 라자살라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야.'


다만 원석이나 다름없었다. 찬란한 보석으로 깎아내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물론 원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노인은 뒤로 물러나 잠시 고민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직접 온 건 다름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래서야 힘을 쓰기도 쉽지 않아보였다. 잘못 하면 본래 갖고 있는 기운을 흐트러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여기가 내 땅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노인은 미리내 산이 있는 방향을 힐끗 쳐다보았다. 신중히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바로 들킬 것이다.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노인, 브렌세라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까처럼 아간 머리에 손을 올린 브렌세라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희미한 빛이 집 한구석을 물들였다.


브렌세라는 땀을 훔치며 일어났다. 바늘 구멍에 실을 꿰매는 것보다 더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한 탓이었다.


주저앉고픈 욕구를 간신히 참아낸 브렌세라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느새 아간은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숨소리였다.


부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내기를. 그리고 누구도 다가오지 못할 커다란 불로 키워내기를.


브렌세라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달이 구름 뒤로 들어갔다. 어둡게 변한 사위를 가로지르며 브렌세라는 남몰래 중얼거렸다.


"잘 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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