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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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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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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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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잠든 야수 (3)

DUMMY

축제는 확실히 만인을 즐겁게 해주는 행사임이 틀림없다. 비천한 자도 고귀한 자도 하나같이 다가오는 꼬리별 축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각지에서 온 여행객이나 모험가들이 들뜬 얼굴로 도시를 방문했다. 아직 축제는 벌어지지 않았고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열기는 벌써부터 시작된 듯했다.


일찍이 봇자리를 편 봇짐장수들은 물건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도시 광장 부근에는 길거리 악사와 혐업하여 연극을 펼치는 배우들도 있었다. 각 식당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는 너무도 다종다양하여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수많은 인파에 몸살을 앓는 도시는 입이 없어서 서러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신음을 토해내었을 것이다.


신체가 불편한 자들도 다들 즐거운 미소를 띄웠다. 귀머거리는 길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맹인은 귀청이 떠나가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축제의 열기를 체감했다.


열기는 도시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전해져오고 있었다. 사실 밖이 더 왁자지껄했다. 비교적 밤에는 얌전하게 굴어야 하는 안과 달리 밖은 그러한 제약이 거의 없었다.


달리지 못해 불평을 터뜨리는 말은 투레질을 하며 바닥을 벅벅 긁었고 컹컹 짖으며 이 사람 저 사람 냄새를 맡는 개의 움직임은 소란을 더해주고 있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벌써부터 천막을 펼치고 있었다. 앞으로 각종 물품과 온갖 내기판을 수용할할 공간이었다. 또한 비밀리에 거래되는 정보와 암투가 오가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도시 밖에는 또다른 마을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땀으로 절여진 장이 있었다.


한낮의 열기가 축제만큼 달아오르는 시각.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양을 치던 양치기와 무르익어가는 벼를 흡족하게 여기던 농사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원을 이룬 채 하늘을 찌를 듯이 주먹을 내지르며 소리를 질렀다.


찔러라, 뭉개라, 죽여라 같은 살벌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만 들으면 오늘 밤 줄초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그럴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어쨌든 날붙이를 휘두르며 싸우는 것보다 맨손만으로 격투를 벌인다면 부상자는 나올지언정 사상자가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목을 조르거나 급소를 가격한다면 모르지만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는 전면 금지되었다. 따라서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 등신아! 그걸 못 피하냐!'


사람들의 환호성과 비탄이 동시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툭 튀어나온 앞니에 등이 굽고 눈이 동그란 한 청년, 그레로가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그 바람에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뒤통수가 축축해지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레로는 외설스러운 농담과 욕을 섞어가며 진 쪽을 조롱했다.


아무리 졌다고 해도 이긴 쪽과 다름 없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레로의 등을 더 굽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조롱으로 인해 그레로의 말소리는 금방 묻혔다. 들었다 해도 인파에 파묻혀 있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진 쪽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승자, 로바!"


입이 튀어나온 사람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내기에 이긴 사람들은 로바에게 휘파람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수 차례 오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 로바는 오늘도 거뜬히 이겨내었다. 사람들은 로바가 언제까지 연전연승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육시럴. 이래서 체격은 중요하지 않다니까. 기술이 중요하지. 하여튼 제 몸뚱이 믿고 까부는 녀석들은 하등 쓸모가 없어."


그레로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싸움판이 끝난 건 아니다. 걸 돈을 다 잃었을 뿐이었다.


다음 참가자들이 무대 뒷편에서 몸을 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레로는 서글픈 눈으로 돈자랑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는 수 없이 걸음을 옮기던 그레로는 별안간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거하게 욕설을 내뱉으려던 그레로는 입을 다물었다.


아까 전에 싸움판에서 진 사람이 흉흉한 얼굴로 그레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그레로. 내 고추가 어떻다고?"


안 들릴 줄 알았는데 그 소란에서 용케 들은 모양이다. 그레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우람하다고 했지."

"웃기는 소리!"


남자는 우악스러운 손으로 그레로를 잡아채려 했다. 그레로는 식겁한 얼굴로 남자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갔다. 남자는 두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레로는 마치 쥐구멍에 숨어드는 쥐처럼 요리조리 도망다녔다.


쥐와 고양이를 연상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제법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다음 싸움판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의도치 않은 장면에 환호했다.


"그레로! 안 붙잡히면 돈을 주지! 열심히 도망다녀 봐!"

"이봐, 톤! 저 등 굽은 놈 잡으면 거하게 쏠게! 설마 싸움에서 지고 또 지진 않겠지?"


순식간에 내기판이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그레로가 도망칠 수 있을 것이냐 혹은 톤이 그레로를 붙잡을 것이냐에 각각 돈을 걸기 시작했다.


열화와 같은 성원이 주변에서 쏟아지자 톤은 그레로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기서마저 물러선다면 한동안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이 놈이라도 붙잡아서 돈도 벌고 화풀이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레로 입장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 만약 도망치는데에 성공하면 돈을 벌게 된다. 그 말은 싸움판 내기에 다시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레로는 눈에 불을 켜고 발발거리며 도망다녔다.


싸움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점차 그레로와 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보이는지 하나 둘 모여들었다.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자 톤과 그레로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특히 톤은 더 했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사람을 응원하기 마련이다.


톤은 이러다간 자신이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되었다.


"으랴앗!"


톤이 발로 바닥을 찼다. 흙이 사방팔방 흩어지더니 그레로의 몸을 때렸다. 입에 흙이 들어간 그레로는 퉤퉤 뱉으며 손바닥으로 혀를 닦았다.


사방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본인 힘으로 잡아야지, 그게 뭐야?"

"치사하다!"


사람들이 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그 사이 뒤로 멀찍이 도망친 그레로는 활짝 핀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덩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기술이 최고야. 허리힘이 강하면 뭐해. 제대로 놀리지도 못하는데. 아참. 거기가 작다고 했었지. 미안해라."


그레로가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사람들은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렸다. 할 말 안 할 말이 있다며 그레로를 나무랐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자식이···."


톤이 사나운 눈으로 그레로를 노려볼 때였다. 다음 싸움판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이는 술래잡기 대결 또한 끝이 났다는 걸 알리는 의미이기도 했다.


관중들은 한 목소리로 톤을 모욕했다. 특히 톤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더 했다. 그들은 그레로가 한 것보다 훨씬 심한 성적인 농담을 던졌다.


반면 그레로에게 돈을 건 사람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레로에게 수고비를 주었다. 여러 사람에게 받으니 제법 괜찮은 액수가 모이게 되었다.


그레로는 이 기회에 술래잡기 판이나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물론 그럴려면 관중과 참가자가 많아야 할 것이고 적절한 무대도 마련되어야 했다. 그레로는 이내 터무니없는 발상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보다 얼른 새 싸움판이 벌어지기 전에 돈을 걸어야 했다. 그레로는 사람들과 함께 싸움판으로 이동했다.



******



"그래서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입니다."


그레로가 돈 주머니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재물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로 군침이 돌 만한 소리가 났다.


그레로는 상대에게 부럽지 않느냐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 정도 돈이면 한 끼 거하게 먹어도 남겠지요."


아간은 묵묵히 가죽을 운반했다. 오랫동안 분뇨통에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냄새가 지독했다. 그레로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나름 이런 저런 냄새를 맡아본 그레로도 무두질 작업장에서 나는 냄새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아간에게 돈 욕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간신히 헛구역질을 참은 그레로는 바깥으로 피신했다. 그런다고 상쾌한 바람이 밀려오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작업장보다는 훨씬 나았다.


노을이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는 쉬이 식을 줄 몰랐다. 바위에라도 앉으려던 그레로는 곧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레로는 화상 입은 엉덩이를 투다닥 두드렸다. 어디 하나 편히 쉴 곳이 없었다.


"나중에 의자라도 하나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이래서야 손님맞이를 제대로 할 수 있나요."


그레로는 아간이 계속 무관심으로 일관할 거라 여겼기에 아무 말이나 뱉었다. 그래서 아간이 자신에게 뚜벅뚜벅 걸어오자 당황했다.


"들었어요?"


아간은 대꾸 없이 걸어오더니 그레로의 옆을 지나쳤다. 모닥불 근처에 놓인 냄비를 든 아간은 다시 그레로를 지나쳐 강가로 갔다. 그레로는 아간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레로는 꼬질꼬질한 제 손을 보더니 아간이 있는 곳 바로 옆에 앉았다.


"참 좋지요. 밥을 먹는다는 건. 그것도 이빨이 성하게 있어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잇몸으로라도 씹어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 믿어도 좋아요. 실제로 씹어본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그레로의 말은 아간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이어졌다. 대강 감자와 소금만으로 만든 음식이지만 고소한 내음이 몽실몽실 퍼져나갔다.


감자를 이손 저손 옮겨가며 뜨거움을 달래던 아간은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포슬포슬하고 짭짤한 게 맛이 기가 막혔다.


아간은 두 번째 감자를 꺼내려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레로가 잘 삶아진 계란을 들어올리며 얌체처럼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그러다 아간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레로는 못 본 체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끝내 아간이 입을 열었다. 그레로는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 말입니까? 나는 무시해도 좋습니다. 저기 땅에 박혀 있는 바위라고 여겨도 무방합니다."


그레로는 최대한 저자세를 보이며 말했다. 아간은 콧잔등을 살짝 일그러뜨리더니 말을 짓씹었다.


"바위는 휘파람을 불지 않아."

"그러면 바람이라고 봐주십시오. 나뭇잎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실바람 말입니다."

"실바람은 말을 하지 않아."

"알겠습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지요?"


그레로는 꽤 적절한 타협안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간이 말없이 계속 노려보지만 않았다면 속으로 자화자찬을 했었을 것이다.


그레로는 저 눈 좀 어떻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간의 눈은 제대로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절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했다.


"그런다고 내 몸에 구멍이 뚫리진 않아요."


그레로가 용기 있게 말했다. 아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매일 찾아온다고 내가 싸움꾼이 되는 것도 아니야. 그보다 집 안 가? 너무 늦게까지 밖에 있으면 경비병에게 추궁당할 텐데. 부모님이 안 찾으시나?"

"걱정 마십시오. 이미 부모님께 허락 받았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인사나 하세요. 내 어머니입니다."


그레로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가리켰다.


"···돌아가셨어?"

"무슨 그런 망발을. 돌아가시긴요. 저기 떡하니 계시잖습니까. 참고로 제 아버지는 해입니다. 나중에 인사시켜드리죠."


그레로는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아간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묵묵히 식사를 재개했다. 물론 그레로에게 당장 여기서 떠나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레로는 바닥에 주먹 형상으로 움푹 파인 구덩이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아간의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땅이 파여 있었다.


그레로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켜냈다. 두려움이 일었지만 그보다 경이로움이 더 컸다.


"귀하는 대체 누구십니까? 은둔 고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어법에 아간은 어이가 없어졌다. 보통 사내 녀석들은 자기보다 센 상대를 만나도 자존심 때문에 잘 굽히지 않건만.


그레로는 굽히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군요. 누구에게도 실력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러셨던거군요. 괜히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거군요. 아!"


그레로는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이었는데 저렇게 되자 앞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두장이를 하고 있던 거군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맞죠? 제 말이···."

그레로는 침묵했다. 아간은 딱히 고성을 지르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다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노려볼 뿐이었다.


그레로는 고개를 끄덕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후다닥 자리를 떴다.


아간은 그레로가 모습을 감출 때까지 본 뒤에야 감자를 먹었다. 간신히 얻은 평화에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녀석인지 모르지만 계속 엉겨붙어서 귀찮았던 참이었다. 아간은 그레로를 쫓아내서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내심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만약 라이트가 곁에 있었더라면 살갑게까지는 아니어도 감자 정도는 건네주었을 것이다.


아간은 한순간의 분노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레로처럼 아직 어린 청년이라면 더더욱.


아간은 오물꾼을 두드려 팬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레로는 굉장히 인상 깊게 본 모양이지만 아간은 아니었다.


그 일 이후로 오물꾼은 무두질 작업장에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크게 다친 걸까.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으니 어쩌면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오물꾼에게 사과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오물꾼도 그 나름의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그러나 지나친 폭력을 행사한 거에 대해선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간은 오물꾼이 말없이 찾아와서 오물통을 내민다면 자신 또한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 될 수 있다면 웃돈을 더 얹어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오물꾼은 끝내 오지 않았고 아간도 그에 대해 뭐라할 수 없었다.


아간은 어디론가 시선을 돌렸다. 낮에 싸움판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축제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 걸까. 흥을 주체하지 못한 몇몇 이들로부터 시작된 싸움판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가끔 도시 경비병들이 다가와 의례적으로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소용은 없었다. 아마 그들도 정말 와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나중에는 경비병들도 간식거리를 씹으며 짬짬히 구경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격화되지만 않는다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듯했다.


싸움판을 즐기는 사람들은 기쁘게 여길 일이었지만 불행히도 아간은 아니었다. 아간은 경비병들이 좀더 제 의무를 충실히 다하기를 바랐다.


특히 싸움판에서 함성과 열기가 터질 때 더욱 그랬다. 아간은 폭력을 마음대로 발산하고픈 야수를 하루에도 몇 차례나 억눌렀다.


아간은 왜 라자살라가 라이칸스로프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대인 관계가 좋지 못하다고 얘기했는지 다시금 체감하게 되었다.


아간은 미리내 산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 일 이후로 라자살라와 만나지 않았다. 여전히 라자살라는 침묵했고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었다. 결국에는 사람으로 되돌아가려면 라자살라의 힘이 필요했다.


물론 그 전에 먼저 라이트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아간은 라이트가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는 누구와 얘기하고 싶지도, 같이 있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감자를 다 먹은 아간은 냄비를 닦으려고 일어났다.


아간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웬 소란이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치고 받고 싸우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드문 일도 아니었다.


특히 축제날이 다가오고 있는 이맘 때, 술에 취해 시비가 붙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아간은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곧 그럴 수가 없어졌다. 누군가 아간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왔다. 뒤를 돌아본 아간은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레로가 퉁퉁 부은 얼굴을 한 채 외치고 있었다.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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