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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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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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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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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9.0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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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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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피로 물든 강물 (1)

DUMMY

"뭐야?"


해가 서녘을 향해 지고 있을 무렵, 목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양치기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어찌나 소란을 피우는지 땅이 먼지 구름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양치기는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소식 한 토막이라도 건네주었으면 싶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았다. 헛소리를 하지 않다는 점을 보면 편한 면도 있었지만 이럴 때는 아니었다.


이들은 먹이를 먹는 것 외에는 도통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치기는 사람이었다. 축제가 벌어져도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처지에 외로움과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네가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오면 안 될까?"


양치기가 개에게 물었다. 개는 흙바닥에 누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양의 머릿수가 그대로인지 양을 노리고 있는 맹수는 없는지 꼼꼼히 둘러보고 있었다.


밖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건 책임감 있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너야말로 진정한 양몰이 개다."


양치기는 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때 우레와 같은 함성이 멀리서 터져나왔다.


양치기는 불만 어린 얼굴로 지평선에 시선을 던졌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군중의 끝자락은 볼 수 있었다.


그때 양치기는 도로 위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은 축제를 즐길 만큼 즐기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듯했다.


하지만 발을 놀리기는커녕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양치기가 크게 외쳤다.


"이보시오! 어디 산불이라도 났소? 아니면 유명한 가수라도 온 거요?"

"싸움판이오!"


무리 중 한 사람이 답했다. 양치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싸움판이 뭐 어쨌단 거야?"

"유명한 싸움꾼이라도 나타난 것 같소!"


그렇게 말한 사람은 다시 일행과 얘기를 나눴다. 곧 그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과 달랐다.


그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 직접 가보기로 한 것 같았다.


다 꺼져가는 장작불에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기라도 하는 건가. 양치기는 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체념도 있었다. 그러나 궁금증이 해결됐으니 더 이상 관심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다.


양치기는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맛난 연초나 피우기로 했다.


"응? 왜 그래?"


듬직하게 자리를 고수하던 개가 별안간 벌떡 일어났다. 이유는 모르나 귀와 꼬리가 기운없이 내려가 있었다.


개는 낑낑거리며 양치기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함성이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며 코를 씰룩였다. 양치기는 개를 쓸어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늑대한테도 안 쫄던 녀석이 뭐에 겁을 먹은 거지?"



******



나자빠지고, 물러난다.

기다리다가, 달려든다.


지극히 단순하고 단조로운 작업. 화려함도 없고 복잡함도 없다.


그저 자기 차례가 되면 짧게 고함을 지른 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달려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켜보는 관중과 기다리는 싸움꾼들의 얼굴에는 지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글바글 뭉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듯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없던 창작욕도 샘솟게 만들었다.


실제로 어느 한 음유시인은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었다.


돼지 멱 따는 소리와 치열한 경쟁을 펼쳐도 이상하지 않을 솜씨였지만 혹평하는 청중은 아무도 없었다.


간헐적으로 퍼져나가는 함성이 천둥처럼 사방에 퍼져나갔다. 그럴 때마다 경기장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싸움꾼들은 초조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 사이에서는 말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소리가 컸고 대화를 나눈다기엔 내용이 이어지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말이었다.


언제쯤이면 쓰러질까. 과연 쓰러지기는 하는 걸까. 혼자서 몇 명이나 상대하는 거지. 젠장, 화장실 가고 싶은데. 판돈은 얼마지. 배당이 왜 저래. 내 눈만 잘못된 게 아닌가 보군. 뭐야, 벌써 내 차례라고? 나가라고? 지금? 에라, 모르겠다. 간다!


기세 좋게 달려나간 싸움꾼은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자기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대기자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분명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공격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허공에 양팔이 교차하는 순간, 상대가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몇몇 못난 싸움꾼들은 먼저 가서 상대하라고 등을 밀거나 일부러 뒷줄로 이동했다.


한편, 판돈과 배당이 적힌 나무판에는 석필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도 숫자를 적고 고치기를 반복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돈을 걷는다. 이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정산하기도 전에 벌써 경기가 끝나 있었다.


그렇다고 매 판마다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빠른 진행을 원했다.


달빛 손톱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잠깐 맴돌았지만 금방 사그라들었다.


누가 봐도 달빛 손톱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결국 브랜디의 적극적인 의견을 수용한 결과, 전과는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달빛 손톱이 몇 명까지 상대할 수 있을지를 두고 내기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달빛 손톱은 이미 열 세 명을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5명쯤에서 지쳐 나가떨어질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은 진작에 돈을 잃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크게 부르짖고 있었다.


"그래! 계속 이기라고! 못 일어나게 팔다리도 부러뜨려버려!"


이 자리에 올라온 싸움꾼들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참가한 건 아니다. 달빛 손톱의 도발 어린 말은 그들의 투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동안 자리에 앉아 구경만 하던 사람들도 참가했다. 싸움꾼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실력을 가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딱 한 판. 한 판이라도 이기기만 하면 돈이 굴러들어오는 건 물론이고 명성 또한 얻는다. 매력적인 보상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도 달빛 손톱의 독주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브랜디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 질렀다. 당분간 목 쓸 일은 없을 거라 단정한 사람처럼 브랜디는 핏대까지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분명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싸움판은 다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기를 관람하기보다 기어가는 개미를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싸움꾼들은 의욕을 잃었다.


그렇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순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청량하기까지 느껴졌다.


브랜디는 더 이상 싸움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 다음 싸움꾼이 경기장 위에 올라가면 곧바로 시작되었다.


신호도 울리지 않았는데 왜 멋대로 시작하냐는 핑계는 이제 통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올라온 이상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브랜디는 판돈이 얼마나 쌓였는지 보았다. 검은 갈퀴와 센이 맞붙었을 당시보다 훨씬 많은 돈이 모였다.


귀족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걸까. 브랜디는 남다른 눈썰미로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있는 귀족들을 훑어보았다.


싸움판에 흥미를 갖고 있는 귀족들은 각자 자기 수행인에게 뭐라 속삭이고 있었다.


수행인들은 싸움판이 있는 곳을 슬쩍 보더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브랜디는 저들이 누굴 노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살살하라고! 누구 죽일 일 있어?"


곰 가죽인지 돼지가죽인지 모를 별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싸움꾼이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우락부락한 덩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정작 하는 행동은 어린애처럼 어리광이나 부렸다.


달빛 손톱은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늘진 얼굴을 하고서 다음 상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덩치가 놀라운 모습을 선보였다. 튕기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달빛 손톱에게 달려들었다. 소매 밑에 숨겨두었던 날붙이를 드러내고서.


"아!"


브랜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다른 곳을 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하지만 브랜디는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지도 않고 공격을 피한 달빛 손톱은 안다리를 걸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위로 솟아오른 날붙이은 빨아들인 햇볕을 사방에 반사시켰다.


"어····."


허망한 얼굴로 위를 바라보는 덩치. 달빛 손톱은 손바닥으로 따귀를 후려갈겼다. 요란한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먼지가 사방에 흩날렸다.


덩치는 눈을 뒤집은 채 기절했다.


"정지!"


괴괴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브랜디가 급하게 외쳤다.


"우리의 영웅이자 전설, 달빛 손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는 법이죠. 평등한 실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는 건 멍청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잠깐 중단하겠습니다. 또 이런 웃기지도 않은 짓을 벌일지도 모르니까요."


브랜디는 재빨리 눈짓으로 몸수색을 하라고 지시했다.


"계속해."


달빛 손톱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브랜디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달빛 손톱은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부터 두 명씩 올라오게 해."

"뭐라고?"


브랜디는 욕을 뱉으려다 간신히 삼켰다. 그는 관중과 싸움꾼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달빛 손톱. 이건 그쪽을 위해서이기도 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싸워댔잖아. 이참에 조금 쉬어두라고."


브랜디는 최대한 납득이 갈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달빛 손톱은 듣지 않았다.


"필요 없으니 진행해."

"젠장, 경험자의 말이야!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내 말 들어. 이제 곧 당신을 만나러 귀족 따까리들이 올 거란 말이야. 정식 싸움꾼이 될 생각 없느냐고 말이지. 내가 조언 하나 해주자면 일단 거절해. 상대가 귀족님 가라사대 어쩌구저쩌구 염병 떨어도 거절하라고. 그런 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달빛 손톱이 손을 내뻗었다. 목이 잡혀버린 브랜디는 컥컥거리며 아간의 손목을 마구 쳤다.


"나불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빛 손톱은 브랜디를 내동댕이쳤다. 브랜디는 왈칵 화가 났다. 그 어떤 성격 더러운 싸움꾼도 자신을 이렇게 대하진 못했다.


"이 힘만 쓸 줄 아는 병신이!"


달빛 손톱이 고개를 홱 돌렸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브랜디를 쏘아보았다.


욕을 퍼부으며 일어나려던 브랜디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칫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봉변을 당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달빛 손톱, 아간은 넋 나간 브랜디를 놔두고 시선을 돌렸다. 싸움꾼들이 줄줄이 서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호승심이 깃든 얼굴. 겁먹은 얼굴.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공포가 서린 얼굴. 내기 돈에 탐욕을 품은 얼굴.


다들 제각각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뛰는 건 똑같았다.


강렬하고 힘차게 뛰는 심장 고동 소리.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가는 소리가 아간 귓가에 꽝꽝 울려퍼졌다.


자아. 저기에 네 먹잇감이 있다. 배를 가르고 목을 뽑고 다리를 분질러라.


내면의 야수가 웃으며 속삭였다. 아간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건방진 것들.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감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구나.


아간이 토해내듯 고함을 질렀다.


"와라!"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친 싸움꾼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맞고함을 질렀다. 고함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우락부락한 체구를 지닌 세 명의 싸움꾼이 동시에 올라왔다.


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이 올라오자 관중들은 혼란에 빠졌다. 분위기가 과열된 것 같으니 일단 멈춰야 하지 않느냐는 자중의 말도 오갔다.


하지만 아간의 고함에 고취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동조했다.


"가라!"


아간이 거칠게 호흡했다. 점점 근육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옷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뿐, 아간의 몸이 성난 황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세 싸움꾼이 다시 한 번 고함을 내질렀다.


그들은 합을 맞춘 것처럼 우뚝 서 있는 아간을 향해 다같이 돌진했다.


아간이 눈을 홉떴다. 그리고 다른 이보다 한 걸음 앞서 달려오는 싸움꾼을 제자리에 서서 밀어냈다.


싸움꾼은 벽에 치이기라도 한 듯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뒤에 따라오던 두번째 싸움꾼은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깔린 흙을 발로 걷어찼다.


아간이 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자 세번째 싸움꾼이 사각지대에서 공격했다. 단단하게 쥐어진 주먹이 옆구리를 노렸다.


흙을 걷어찬 싸움꾼도 몸을 빙글 돌리더니 발을 위로 뻗었다. 두 공격이 동시에 아간의 옆구리와 목을 노렸다.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아간이 양 팔을 날개처럼 펼쳤다. 한 팔은 손등을, 다른 한 팔은 무릎을 가격했다.


두 싸움꾼은 제자리에서 빙글 도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선보였다. 웃기는 장면이었지만 당사자들은 웃을 수 없었다. 무릎과 손등이 박살났으므로.


"으아!"


그때 첫번째 싸움꾼이 기합을 지르더니 아간의 다리를 붙잡았다.


"뭣들 하고 있어! 올라와서 싸워, 겁쟁이들아!"


뒤에 서서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는 싸움꾼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겁쟁이라는 말에 발끈했지만 정작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세 싸움꾼이 아무것도 못하고 나동그라지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다들 눈치만 보며 주춤거리는 사이, 한 덩치 큰 싸움꾼이 싸움판으로 올라왔다.


그는 쇠검지라는 별명을 가진 자였다. 검지 하나로 사람 쇄골도 부러뜨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멍청한 놈. 겁쟁이가 아니라 일부러 안 올라온 거다. 같이 싸우면 돈을 나눠가져야 하잖아."


쇠검지는 나무판에 적힌 판돈을 확인했다. 금편 예순 일곱 닢.


아무리 축제의 휘광을 등에 업었다 한들 저 정도의 돈이 모인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오늘 도시를 떠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군.'


쇠검지는 여유로운 얼굴로 좌중을 훑어봤다. 검은 갈퀴가 혹시 있을까 싶어서였다.


쇠검지는 이미 떠났으리라고 짐작했다. 싸움꾼 대기줄에서도 없는 걸 보면 확실했다.


"힘 빠진 녀석을 상대하는 건 나도 싫다. 그러니 기권해라, 달빛 손톱. 순순히 물러나면 1할 정도는 줄 수 있다."


쇠검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첫번째 싸움꾼이 소리쳤다.


"멍청아, 지금 이거 안 보이냐? 내가 막고 있잖아! 나랑 나눠야지!"

"쓰러진 주제에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꼴 하고는. 고작 그거 하나 했다고 나눠먹으려 하다니."

"뭣, 이 정신 나간-."


아간의 손이 빠르게 앞뒤로 흔들렸다. 머리를 맞은 첫번째 싸움꾼은 흰 자를 보이며 기절했다.


쇠검지는 기겁하며 오른팔을 들었다. 두터운 근육이 자리잡힌 그의 팔뚝에 새빨간 멍이 들었다.


상반신 오른쪽이 마비가 된 듯 힘이 쭉 빠졌다. 그러나 쇠검지는 이를 악물고 왼손 검지를 들었다. 상대 목구멍을 뚫어버릴 심산이었다.


보지도 못하고 한 방에 나가떨어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쇠검지는 강했다. 다만 그의 판단은 패착이었다.


만약 공격하지 않고 물러났다면 아간도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간은 쇠검지의 손가락을 잡더니 옆으로 부러뜨렸다. 그리고 복부를 공격해 무릎 꿇게 만들었다.


"욱!"


내장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쇠검지는 급히 손을 들어 기권하겠노라고 말하려 했다.


굴욕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달빛 손톱은 물러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달빛 손톱을 칭송하던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달빛 손톱의 업적을 부르며 찬양하던 음유시인은 신앙심이 꺾이는 기분을 느꼈다.


노랫말을 바꾸어야 할 정도로 잔인하고 비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자, 잠깐!"


브랜디가 황급히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아간의 눈을 보자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저러다 쇠검지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을 엄두가 안 났다.


그때 싸움판에 한 인영이 민첩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올라왔다. 그를 발견한 브랜디는 마치 영웅이 등장한 것처럼 눈을 초롱초롱 떴다.


아간이 팔을 뒤로 당겨 마지막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공기를 가르는 공격이 매섭게 들어왔다.


아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재빠르게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뺨에 살짝 스쳤다.


아간은 한 바퀴 굴러 균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가올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공격은 없었다. 대신 어떤 사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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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피로 물든 강물 (2) 22.09.09 51 4 19쪽
» 피로 물든 강물 (1) 22.09.08 54 4 17쪽
36 선전 포고 22.09.07 54 4 22쪽
35 엇갈림 (3) 22.09.06 53 4 18쪽
34 엇갈림 (2) 22.09.05 50 3 13쪽
33 엇갈림 (1) 22.09.04 5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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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잠든 야수 (3) 22.08.25 61 4 17쪽
22 잠든 야수 (2) 22.08.24 58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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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피 냄새 (5) 22.08.20 67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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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피 냄새 (3) 22.08.18 76 3 16쪽
15 피 냄새 (2) 22.08.17 83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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