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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10,586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9.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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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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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0쪽

달빛 손톱과 검은 갈퀴 (2)

DUMMY

전투는 소리소문 없이 시작되었다.


라이칸스로프의 묵직한 몸집을 떠올린다면 의외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칸스로프가 어째서 최상위 포식자인지, 탁 트인 평야보다 숲을 좋아하는지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겉보기엔 늑대를 닮은 이 괴물은, 고양잇과 맹수가 할 법한 움직임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다.


물론 체격에서 오는 한계는 존재했다. 아간은 킬레브처럼 나무 사이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진 못했다. 그러기엔 몸집이 너무 컸다.


하지만 강인한 육체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탄력성 있는 움직임은 충분히 과시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하늘 높이 껑충 뛰어올라 밤하늘을 가리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었다.


검은 갈퀴는 순간 라이칸스로프를 닮은 구름이 지나가는 착각을 했다. 밝게 빛나는 달빛이 구름에 의해 가려지자 칠흑 같은 어둠이 도래했다.


구름은 센바람을 맞은 것처럼 금방 씻겨내려갔다. 문제는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그 구름 자체가 자신에게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윽!"


검은 갈퀴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물러났다. 원래는 떨어지는 아간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려고 했다.


착지하는 곳이 어딘지만 알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커도 너무 컸다. 이 정도면 물러났다고 생각한 지점까지 다 덮어버리는 바람에 더욱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아간이 전방을 향해 포효했다. 때아닌 바람이 새된 소리를 내며 검은 갈퀴와 숲을 뒤흔들었다.


바람은 찢어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터뜨렸다.


머리칼이 이마와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럼에도 검은 갈퀴는 손으로 얼굴을 훑지 않았다.


전투는 한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검에서 손을 떼는 순간, 대처도 못하고 당할 수 있었다.


아간이 자세를 낮췄다. 높다랗게 자라난 벽이 갑자기 바닥으로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온다.


검은 갈퀴의 직감이 말함과 동시에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간의 초월적인 각력이 만들어낸 소리였다.


검은 갈퀴는 부르르 떨리는 고막을 무시한 채 재빠르게 검자루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찌르기 자세로 변환한 것이다.


상대가 노리는 곳을 명확히 하고 달려오는 이상 굳이 베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늑대포식자가 날아오는 라이칸스로프를 주시했다. 목표는 목덜미. 질기고 튼튼한 가죽을 가진 괴물도 급소가 뜯기면 힘이 빠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아간이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검은 갈퀴 목전에 도달했다. 검은 갈퀴는 눈을 번뜩 떴다. 그리고 힘차게 앞으로 내찔렀다.


촤악! 가죽 안에 있는 연약한 살결을 꿰뚫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갈퀴는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목이 꿰뚫렸으니 조만간 쓰러질···.'


생각을 온전히 끝내지 못했다.


분명 꿰뚫긴 했다. 다만 목이 아니라 어깨였다.


검은 갈퀴가 목을 노리고 내찌르려는 그때, 아간이 손으로 바닥을 짚어 허공에 몸을 뒤집은 것이다.


검은 갈퀴와 아간의 시선이 아주 짧은 순간에 엇갈렸다.


검은 갈퀴는 의아함과 경악을, 아간은 굶주림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크윽!"


검은 갈퀴의 머리 바로 위로 아간이 날아갔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휘둘러진 다리가 뒤따라 날아오고 있었다.


검은 갈퀴는 재빨리 무기를 회수하고는 세로로 검신을 세워 방어했다. 좋은 반사 신경을 보여준 순간이기에 찬사를 받아도 마땅했다.


그러나 피해를 온전히 막진 못했다.


하마터면 검은 갈퀴는 늑대포식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충격이 생각보다 강한 탓이었다.


호되게 여러 번 구른 검은 갈퀴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서야 간신히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구르면서 생긴 찰과상이 몸 곳곳에 생겼다. 특히 가슴팍에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다. 갈비뼈가 부러진 건 아니나 숨쉬기가 힘들었다.


검은 갈퀴는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간이 어디로 갔는지 찾았다.


아간은 머리를 좌우로 홰홰 흔들고 있었다. 거목 두어 개를 부러뜨렸으면서도 꽤나 태평한 반응이었다.


다만 머리로 부딪쳐서 그런지 어질어질한 모양이었다.


검은 갈퀴는 가슴 부근을 어루만졌다. 라이칸스로프의 기름을 담아놓은 주머니가 터져 있었다.


원래라면 낭패감이 들었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적절한 순간이었다. 상대가 온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금이라면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었다.


검은 갈퀴는 주머니에 남아 있는 기름을 검신에 흘렸다. 피로 얼룩진 검신이 씻겨내려갔다.


검을 고쳐잡은 검은 갈퀴가 아간에게로 달려갔다. 기척을 읽은 아간이 고개를 올렸다. 하지만 검은 갈퀴는 없었다.


당황하여 주변을 훑으려는 찰나, 무시할 수 없는 기세가 왼쪽에서 느껴졌다.


아간은 팔을 들어 막으려 했고 이는 성공했다. 다만 살이 깎여나가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기척이 느껴지는데 막상 돌아보면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다.


목을 베기 위해 검을 들고 다가오는 검은 갈퀴의 모습이.


그러나 아간은, 저건 실체를 가진 허상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검은 갈퀴의 공격이 연격을 이어나갔다. 하나같이 치명상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아간은 최소한의 피해만 받으면서 어떻게든 검은 갈퀴를 공격하려고 했다. 한 번만 제대로 적중하면 바로 행동불능이 될 테니까.


검은 갈퀴는, 그런 아간의 목적을 뻔히 예상하고 있다는 듯 절대 틈을 주지 않았다. 도리어 기묘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아간을 둘러싼 어둠 가운데 갑자기 검은 갈퀴의 형상이 나타나 무기를 휘둘렀다.


그걸 피하고 나면 바로 옆에서 또다른 검은 갈퀴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수많은 거짓 속에 무엇이 진실인지 아간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검은 갈퀴는 제대로 먹히고 있음에 만족했다. 저 괴물들은 자신들에게 약점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라이칸스로프는 분명 모든 감각이 예민했다.


어둠도 꿰뚫어보는 시각과 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듣는 청각,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도 피 냄새를 포착할 수 있는 후각 등 그야말로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같은 능력 때문에 라이칸스로프는 자칫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괴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가 위와 같은 감각을 골고루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감각은 바로 후각이었다. 그 의존성이 얼마나 심한지 설령 눈앞에 상대가 서 있더라도 냄새가 나지 않으면 심히 불안해 했다.


싸움판에서 있었던 일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냄새가 덜 났을 뿐인데도 아간은 어쩔 줄 몰라했다.


평소에 라이칸스로프로 만든 육포를 먹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검은 갈퀴가 이런 정보를 알게 된 건 예전에 치룬 전투에서 얻은 경험 덕분이었다.


그 뒤로 검은 갈퀴는 고기는 훈제육으로 만들어 항상 먹는 버릇을 했고 기름을 따로 짜서 보관하였다.


'싸움판에서와는 상황이 완전 다를 거다. 그땐 기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야.'


검은 갈퀴는 검자루를 세게 쥐었다. 마음 같아선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기름을 뿌렸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흘러내리는 기름 따라 냄새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에 기름을 만들 땐 냄새가 더 오래갈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은 갈퀴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런다고 시야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감각의 혼선 정도는 줄 수 있었다.


뒤에서 공격할까. 앞에서 아니면 뒤에서. 어쩌면 위에서 공격할 수도 있지.


어디로 공격하든지 간에 어쨌든 최후의 일격으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지금!'


그리고 아간이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때.


검은 갈퀴가 늑대포식자를 들어 한 점을 찔러들어갔다. 옆구리를 찔러 그 안에 있는 내장을 갈가리 찢어버리기 위해서.


그 시도는 분명히 해봄직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검은 갈퀴는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다.


웬 꿩 사체가 날아와도 빠르게 반응하지 못할 만큼.


"뭣!"


옆얼굴을 맞은 검은 갈퀴는 피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늑대포식자가 어딜 찔러들어가는지도, 조준했던 목표로 향 나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멈출 수 없었다. 검은 갈퀴는 라이칸스로프를 사냥해오면서 얻은 노련함과 직감을 믿고 힘을 주었다.


따뜻한 피가 검신을 타고 검자루를 잡고 있는 손까지 적셨다. 검은 갈퀴는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비틀었다.


늑대포식자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는 순간이자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희열도 잠시, 무시무시한 압력이 지척까지 들어왔다. 뒤늦게 알아챈 검은 갈퀴가 급히 늑대포식자를 뽑았다.


텅! 가공할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옷가지처럼 검은 갈퀴는 우쭐거리며 공중에 떴다.


체공 시간은 짧았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 갈퀴는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착지를 미처 할 수 없었던 바람에 발목이 돌아가버렸다. 그러나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눈을 떠보니 아간이 자신에게 달려들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검은 갈퀴는 손에 묻은 꿩 피를 보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리하군. 확실히 다른 놈들과 달라.'


땅이 울렸다. 아간이 검은 갈퀴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쉬이익,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오싹오싹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사이에 이미 양자의 간격은 한 걸음 차이로 좁혀졌다.


검은 갈퀴가 뒤로 몸을 젖히면서 늑대포식자를 들어올렸다. 아간이 입을 쩍 벌렸다. 허리에 검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간과 검은 갈퀴가 동시에 공격을 시도했다. 두 공격은 상쇄되지 않았다.


본인들도 놀랄 정도로 너무도 정확하게 목표했던 지점을 공격한 것이다.


검이 복부를 꿰뚫었고. 이빨이 쇄골을 부수었다.


양자 모두 상당한 고통을 안고서 마지막으로 힘을 냈다. 조금만 더 파고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둘 다 모두 뒤에 절벽이 있었다는 걸 까먹지만 않았다면. 그러면 누구든 당당히 승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괴물과 인간은 거의 동시에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보글보글 거품이 끓어오르는 세찬 폭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



게티아르의 염려와 달리 귀족들의 반응은 격하지 않았다. 축제가 오늘 끝나건 내일 끝나건 일정에 크게 차질이 생기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꼬리별 축제의 대미는 엊그제였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좀 더 여흥을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아쉬움을 표하는 자들도 있었다.


"얼른 내년이 돌아오길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가딩 공. 이보다 멋진 축제가 올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니까요."


"저 또한 깊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인. 하지만 축제는 자고로 만인이 즐거워야 할, 경사스러운 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상대는 자리에서 떠나는 대신 조금 머뭇거렸다. 의아해하던 게티아르는 곧 이해했다.


'아마 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내심 궁금해하는 것이겠지.'


당연한 일이겠다. 지금 도시는 그 일로 인해 떠들썩하니까.


하지만 게티아르는 부드럽게 인사를 한 뒤 먼저 자리를 떴다. 실례라는 걸 알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그는 함부로 입을 열어서 상대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또한 괜한 말을 해서 불필요한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게티아르는 궁금한 얼굴로 찾아오는 자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모두 물리치고는 홀로 발코니로 나갔다.


잠시 난간에 기대 쉬고 있던 사용인들은 게티아르를 보자 급히 자리를 피할 채비를 했다.


"됐으니 쉬어라."


게티아르가 말했다. 사용인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다.


평소 게티아르라면 편히 쉴 수 있게 얼마 안 있다가 도로 들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게이타르는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도시 전경을 바라보았다.


불살라버리겠다는 듯 길거리를 환히 밝혔던 축제의 불빛은 이제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도시 밖 마을에 비하면 밝은 축에 속했지만 게티아르는 왠지 어둡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빛도 잘 들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을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게티아르는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올렸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높다랗게 자라나 있었다.


성벽 위에는 자그마한 횃불이 뽈뽈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깊어가는 밤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낮처럼 활발하게 움직였다. 경계를 강화하라는 경비대장의 명령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렇게 지시한 게티아르 때문이지만.


게티아르는 저 병사들이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린 경비대장을 욕할지 아니면 성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자신을 욕할지 궁금했다.


'그것도 아니면 강물을 피로 물들게 한 정체불명의 맹수를 욕할지도 모르지.'


생각에 잠긴 게티아르는 저도 모르게 난간을 세게 잡았다.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는 마음은, 영주로서 분명히 갖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도시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었기에.


그러나 라이칸스로프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 또한 갖고 있었다.


뿌득. 게티아르가 이를 갈았다.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티아르는 바위라도 씹어먹을 것처럼 사나운 기세를 흩뿌리고 있었다.


혹자는 게티아르를 평가할 때 세련되고 절제된 기품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을 복종시킬 분노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무릇 지도자란 때로는 상식과 법을 넘어서는, 도덕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영주가 마냥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야 따르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게티아르는 확실히 위압적인 면모가 부족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티아르는 이미 자신만의 냉혹함과 날카로움을 잘 갖고 있었다.


단지 내비칠 대상이 주변에 없기에 애써 표출하지 않을 뿐이었다.


라이칸스로프. 오직 그 괴물과 관련된 것만이 게티아르를 진정 분노시킬 수 있었다.


사실 게티아르는 지도자로서의 재능보다 전사로서의 재능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기사나 용병과 다른, 용맹하고도 흉폭한 전사만의 기질이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일까.


게티아르는 여기있기보다 직접 현장으로 나가고 싶었다.


몸을 짓누르는 갑옷을 입고 검을 높이 쳐든 채 라이칸스로프에게로 달려나가고 싶었다.


'이깟 축제가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분노로 흐려진 정신이 퍼뜩 되돌아왔다.


게티아르는 신중치 못한 자신을 꾸짖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보다 검은 갈퀴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꼬리별 지방에 라이칸스로프가 숨어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줄곧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검은 갈퀴가 준 정보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라이칸스로프가, 사실 사람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는 라이칸스로프의 가죽을 매일 같이 보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보름달이 정성스레 빚어서 만든 괴물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사실은 사람이라니. 장난도 지나치다. 게티아르는 이를 갈며 손에 힘을 주었다.


'어찌 됐든 내 땅에서만큼은 놈들이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것이다. 내 이름만 들어도 도망치게 만들 거란 말이다.'


이는 괴물을 잡고 위명을 떨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기필코 그는 그래야만 했다.


게이타르가 짚고 있는 난간에 금이 갔다. 거미줄처럼 균열이 일어나면서 돌 부스러기가 먼지처럼 흩날렸다.


그러나 게티아르는 자리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아빠!


나는 참 그리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매일 같이 듣는 단어이건만.


그럼에도 왠지 '아빠' 라는 말은 추억 속에 바스라진 환상처럼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디아프가 돌멩이를 손에 들고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나 나는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잘 알았다.


잘 골랐네. 이제 해봐.


디아프는 입술을 오므렸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으레 하는 버릇이었다. 팔을 뒤로 뺀 디아프는 힘차게 돌멩이를 던졌다.


아!


본인은 돌멩이가 몇 번 수면에 튕겨 오를 줄 알았나 보다. 당연하지만 돌멩이는 튕기지도 못하고 바로 수면 아래로 꼬르륵 잠겼다.


디아프는 짜증이 났는지 발로 바닥을 꾹꾹 찔렀다.


잘 봐.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멋드러지게 시범을 보였다. 쐐액, 하고 날아간 돌멩이가 수면을 내달렸다. 파문이 무수하게 번져나갔다.


디아프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빠만 좋은 돌멩이잖아. 나도 좋은 거 쓸 거야.


사실 그런 거 상관없어. 내가 잘하는 거니까.


아니거든!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좀 져줘. 아들 이겨먹어서 뭐하려고?


아내가 나무 그늘에 앉아 웃고 있었다. 참 그리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매일 같이 보는 얼굴이건만.


어쨌든 피로 가득한 얼굴이 아닌 생기로 가득한 얼굴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 왜 피가 난다고 생각했을까?'


의아해하는 내 얼굴 위에, 의문 모를 부스러기가 내려앉았다.


올려다보니 푸른 하늘에 균열이 가 있었다. 균열 너머에는 짙은 밤이 있었다.


해가 떨어졌나 봐.


아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납득이 갔다.


해가 떨어져야 달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은 없을 것이다.


과연 내 짐작대로 해가 떨어진 자리에 달이 걸려 있었다. 달은 보름달이었다.


밤이 되면 할 일이 있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아내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눕혔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더없이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솜을 꽉 채운 이불을 덮고 있어도 이보다 포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내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말뚝을 들었다. 그리고 내 손등에다 찍어버렸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런다고 아픔이 느껴질 것 같은가. 차라리 간지럽히는 게 더 아플 것이다.


내가 웃건 말건 아내는 주먹을 쥐더니 말뚝 머리 부분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조금 아팠다.


아파. 이제 그만해줘.


듣지 않았다. 아내는 연달아 내리쳤고 점점 나는 고통스러워 신음을 흘렸다.


그만, 그만!


흉하게 일그러진 아내 얼굴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왠지 모르지만 이제야 내가 잘 아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를 이런 꼴로 만들었기에.


엄살 부리지 마라, 괴물.


쿵.


네가 죽인 희생자들은.


쿵.


이것보다 훨씬 아팠을 테니까.


아내가 있는 힘껏 말뚝을 내리찍었다.



******



눈을 떴음에도 여전히 아간은 앞을 볼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혹시 눈이 멀어버린 건 아닐까.


아간은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허, 억!"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단순히 움직일 수만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아간은 팔을 타고 전해져오는 고통에 몸부림 쳤다.


"기운 넘치는군."


탈력감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간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다고 앞이 보이는 일은 없었다.


"너는, 어떻게···."

"어깨가 작살나고 배때기에 구멍이 났는데도 말할 기운이 있는 건가. 역시 괴물이군."


검은 갈퀴가 말했다.


아간의 얼굴에는 검은 갈퀴의 옷이 덮개처럼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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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선전 포고 22.09.07 53 4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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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엇갈림 (2) 22.09.05 49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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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잠든 야수 (2) 22.08.24 58 4 17쪽
21 잠든 야수 (1) 22.08.23 64 4 20쪽
20 피 냄새 (7) 22.08.22 70 4 13쪽
19 피 냄새 (6) 22.08.21 59 4 17쪽
18 피 냄새 (5) 22.08.20 66 4 18쪽
17 피 냄새 (4) 22.08.19 72 4 15쪽
16 피 냄새 (3) 22.08.18 75 3 16쪽
15 피 냄새 (2) 22.08.17 83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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