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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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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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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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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검은 갈퀴

DUMMY

꼬리별 도시의 영주, 게티아르 남작은 장검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서 벽에 매달린 장식품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라이칸스로프라는 늑대 괴물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자가 있다면, 꼬리별 영주가 기거하는 성으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부터 검토해봐야겠지만 만약 들어가는데 성공하면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벽 한 편을 장식하고 있는 라이칸스로프의 가죽을. 그것은 과거, 꼬리별 도시를 공격했던 바로 그 괴물이었다.


세간의 소문에 의하면 이 괴물은 별 피해를 주지 못하고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껏 양 몇 마리와 사람 두어 명 정도만 물려 죽었을 뿐 그 외의 피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완전한 사실이 아니었다.


물론 꼬리별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 소문이 그리 틀리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비단 도시에서만 살지 않는다.


산 혹은 숲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정도로 많은 사상자와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게티아르가 괴물의 가죽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 영지를 지킬 의무가 있는 영주로서의 위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산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던 적이 있었다.


게티아르는 숨을 골랐다. 혼자 있었다면 바로 욕설을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혼자만 있지 않다는 걸,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실리스. 나오거라."


한 그림자가 작게 요동쳤다. 책장 뒤에 숨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숨어 있었다.


곧 실리스라 불린 소년이 걸어나왔다. 게티아르는 아직 날카로움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말했다.


"되도록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을 텐데. 혹시 한나와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냐?"

"아뇨."


실리스는 조금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아는 아버지의 모습과 달라 무서운 듯했다. 그럼에도 제 할 말을 또박또박했다.


"아침에도 살아서 움직이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사람들이 그랬어요. 밤이 되면 라이칸스로프가 되살아나 복도를 거닌다고. 근데 그 말은 해가 뜨면 다시 죽는다는 거잖아요. 그땐 무섭지 않으니까 당당히 쳐다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게티아르는 누가 그런 우스갯소리를 했는지 궁금했다. 같은 또래인 하인이 한 걸까.


어쩌면 그보다 나이 많은 하인이 몰래 퍼뜨린 소문을 듣고 전해준 걸지도 모른다.


누가 했든 그런 소문이 성 내에 돌아다닐 거라고 미처 알지 못했다.


게티아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과 똑 닮은 눈색을 하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보통 용기가 아니구나. 그러나 만약 라이칸스로프가 아침에도 살아움직였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상관없어요. 그게 있잖아요."


실리스가 손으로 가리켰다. 그건 게티아르가 들고 있는 검이었다.


"그걸 들고만 있어도 괴물이 어쩌지 못한다면서요? 그럼 안전한 거잖아요."

"잘못 알고 있구나. 단지 들고만 있다면 널 지켜주지 못해. 제대로 다룬다면 모를까."


실리스가 씩 웃었다.


"아버지가 알려주면 되잖아요. 아시죠? 전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게티아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 얘기를 하려고 여태까지 기다린 거냐? 혹시 소문도 지어낸 건.."

"아뇨. 소문은 진짜예요."


'그건 가짜이길 바랐건만.'


게티아르는 누가 그랬는지 꼭 밝혀내겠노라고 다짐했다.


"혹시 한나도 그런 소문에 대해 알고 있니?"

"몰라요. 걘 근데 들어도 아무렇지 않아 할 걸요. 쬐끄만 게 무서운 게 없잖아요. 나한테도 막 대하고. 내가 오빤데도요."


한나가 당찬 성격인 건 맞았다. 어른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위축되기 마련일 텐데 한나는 그런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 조그만 몸으로 잘도 뽈뽈 돌아다니니 남작 부인과 하녀들이 여간 피곤해하는 게 아니었다.


"언제는 거미를 들고 와서 제 앞에 들이밀더라고요. 그래서 왁, 하고 놀라니까 그때부터 사마귀, 귀뚜라미, 메뚜기, 무당벌레를 한가득 가지고 오더라고요! 어우, 소름끼쳐. 한나는 분명 커서도 그러고 놀 거예요. 장담해요."


게티아르는 아까보다 훨씬 얼굴이 풀어졌다. 그러자 실리스도 안심이 됐는지 평소처럼 재잘재잘 말하기 시작했다.


이해심이 깊은 눈으로 들어주던 게티아르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집사였다. 집사는 영주가 아들과 같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자식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보이는 게티아르도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홀로 있길 원하기 때문이다.


집사는 혹시나 하면서도 게티아르가 실리스를 혼내켰는지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안심했다.


"도련님. 여기 계셨군요.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라이칸스로프를 무찌르러 왔어요."


집사는 의문을 품은 얼굴로 게티아르를 슬쩍 쳐다봤다. 게티아르는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실리스. 이제 가보거라. 다른 친구들도 슬슬 깰 시간이니."


실리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실리스를 전송했다. 문이 닫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간밤에 별일 없으셨는지요."

"나야 괜찮지. 자네가 잘 못 잤을까봐 걱정이지."


집사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얼른 축제가 끝났으면 좋겠군요."

"부인하고 싶진 않군."


게티아르는 뒷짐을 지고 창가에 다가갔다.


길거리는 한가했다. 전날 그렇게 왁자지껄하던 소음은 어디로 갔는지 고요했다. 아마도 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인숙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고 있을 것이다.


게티아르가 시선을 올렸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대로 위에는 사람과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혼선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통행이 복잡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마차가 지나가는 길과 인도가 철저히 구분되어 있었다. 덕분에 낮이 되어도 사람과 마차가 부딪치는 일은 드물었다.


반면 골목길은 아니었다.


물론 골목길 자체가 복잡하고 비좁은 길목을 의미하긴 하나 꼬리별의 이것은 한층 더한 느낌을 주었다. 얼마나 복잡한지 오래 거주한 사람도 가끔 길을 헷갈릴 정도였다.


만약 이정표 역할을 해줄 대로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을 것이다.


언뜻 보면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지어진 것 같은 도로와 건물들이었다. 실제로 게티아르가 서 있는 창가를 통해 바라본 광경은 마치 미로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게티아르는 도시가 왜 이런 식으로 지어졌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갈수록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젠 초아 지방에서도 찾아오시더군요."


상념에 잠겨 있던 게티아르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오신 분들은 특별히 좋은 방으로 안내해줘. 오시는 것만도 피곤하셨을 테니. 물론 자네가 알아서 잘 할 테지만. 여러모로 고생이 많아."


집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축제는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아직도 찾아오는 귀족이 있었다.


그는 영주가 자기 몰래 초대장을 더 뿌렸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장난기 짙은 생각이다.


게티아르는 언제나 같은 양의 초대장만 뿌렸다.


사실 초대장 유무와 상관없이 귀족이라면 성에 기거할 수 있었다. 초대장은 의례 혹은 예의에 불과했다.


집사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하지만 육체적 노곤함을 느낄지언정 정신적 피로감에 시달리진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영주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객들께서는 뭣하고들 계시지?"

"산책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분도 계십니다. 아, 언제 아침 식사를 하느냐고 묻는 분도 계시기도 하고요."

"누군지 알 것 같군. 그 사람은 식사를 걸러도 될 것 같던데."


두 사람은 동시에 베레이 자작을 떠올렸다. 새끼 돼지 한 마리쯤은 거뜬히 포용할 것 같은 우람한 뱃살은 언제 봐도 흥미로웠다.


둘은 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집사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보다 영주님. 이른 아침부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말해."

"그 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게티아르는 집사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집사는 위에 음식이 얹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전에 명하신 바에 따라 당연히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비병이 어찌 할 새도 없이 놓치고 말았습니다."

"놓쳤다니. 혹시 성 안에 들어왔다는 의미인가?"


집사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일단 경비대장에게 찾아내라 말해두었습니다. 다만 객들이 소동을 알아차리면 안 되기에 조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티아르는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딘가로 시선을 돌리더니 읊조렸다.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군. 아벨린에게 가서 말해 줘. 걱정 말고 제 할 일 하라고."

"예?"


집사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집사 등 뒤로 한 인물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두 팔로 시종의 허리를 감싸더니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안아올린 모습 같았다. 집사는 새빨개진 얼굴로 버둥거렸다.


"무, 무슨!"

"날 붙잡으라는 명을 거두면 풀어주겠소."


남자가 게티아르에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게티아르는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거두었으니 그를 내려놔라."

"아하."


남자는 집사를 풀어주었다. 집사는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아보였다. 거칠게 내쉬는 숨소리를 들어보면 당장이라도 고함을 지를 것 같았다.


게티아르는 집사를 진정시키고는 물러나게 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가 봐."

"이 무뢰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영주님, 당장이라도 이 놈을.."

"그럴 필요 없소. 뭣하면 영주님이 날 잡아버리면 되니까."

"뭐라고?"

"기척을 숨겼는데도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지 않았잖소. 쉽게 당할 분이 아니오."


집사는 그게 할 말이냐고 쏘아붙이려고 했다.


"호. 그만."


게티아르가 팔짱을 낀 채로 검지만 슬쩍 들어올렸다. 집사, 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눈을 흘기는 것까지는 감추지 않았다.


"그보다 조찬할 준비는 어느 정도 되었지?"

"이미 다 끝마쳤습니다. 제가 영주님을 찾아뵌 건 단지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15분. 앞으로 15분 후에 조찬을 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호는 깊이 목례를 보이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게티아르는 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근처 의자에 풀썩 앉았다. 영주 앞이니 몸가짐 정도는 정돈할 법도 했지만 남자는 거리낌없이 행동했다.


처음부터 남자는 영주의 안위 따위는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보셨소?"


게티아르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을 들은 것처럼 매정히 등을 돌렸다. 남자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간식을 꺼내들었다.


남자는 육포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침묵을 뚫고, 남자가 우적우적 씹으며 말했다. 게티아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몸가짐이나 행동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으나 표정은 아니었다.


남자는 게티아르가 사나운 얼굴을 짓고 있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이해가 안 된다고?"

"안 되오."

"애초에 이 부근에 라이칸스로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아니, 있소. 저걸 보고도 없다고 할 작정이오?"


남자가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가죽을 가리켰다. 게티아르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도래솔 숲 근방을 샅샅이 뒤진 결과 흔적이 나 있는 걸 발견했소. 나 스스로도 그걸 어떻게 찾았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그 흔적이 놀랍게도 이곳으로 이어져 있지 않겠소."


게티아르가 덤덤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볼을 긁적였다.


"뭐, 도중에 끊기긴 했지만 확실히 방향은 이쪽이었소. 그럼 뭐겠소?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겠지."

"결국 추측이로군."

"직감이라는 말로 바꿔주시오. 나의 이 짐승 같은 직감은 범인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하단 말이오."

"미쳤군."


남자는 예리하게 벼려진 칼처럼 눈을 빛냈다.


"그렇소. 난 미쳤소. 하지만 나만 미친 건 아닌 것 같던데. 영주 나리. 당신이 정말 내 도움 없이 그 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소?"


게티아르가 눈을 부라렸다. 남자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아니잖소. 병사들 뒤에 숨어 있을 거잖소. 그럴 거면서 내가 괴물을 잡을 거라느니 따위의 말을 하는 거요?"


탁자에 올려진 꽃병이 깨졌다. 있는 힘껏 휘두른 팔에 맞아 떨어진 것이다.


게티아르는 붉어진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디 더 혀를 놀려보거라, 사냥꾼. 영주를 능욕한 죄로 지금 당장 네 목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

"뭘로 자를 거요?"


게티아르는 두 말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빼들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냥꾼은 이 이상 도발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알겠소. 내가 좀 심하긴 했소."


사냥꾼이 두 손바닥을 보였다. 게티아르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검로가 새겨지는 듯하더니 옆에 있던 탁자가 양분되었다.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게티아르는 눈도 깜짝 않고 검을 갈무리했다. 유려한 솜씨였다.


"하지만 나도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오. 그놈을 홀로 잡을 생각이오? 어지간히 경험이 많지 않은 이상 라이칸스로프를 홀로 잡는 건 무리요."

"나도 그동안 놀고 먹은 건 아니다."

"그리 보이긴 하군."


사냥꾼은 게티아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 있는 자세만 봐도 균형이 단단히 잡혀 있다는 건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자는 게티아르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강함은 무력이 전부가 아니오. 풍부한 경험도 뒷받침 되어야 하지."

"내가 아무런 경험도 없이 이러는 줄 아는가?"

"설마 저 놈, 영주 나리가 잡은 거요?"


게티아르는 말하지 않았다. 남자는 비웃음인지 미소인지 모를 묘한 웃음을 띄었다.


"설마 한 번 마주한 걸 가지고 경험해봤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리 말한 남자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보였다.


"이보시오, 난 그 놈들로부터 무려 네 번이나 살아남았소. 그 중 세 번은 직접 잡았고. 장담하는데 나보다 더한 사냥꾼은 별로 없을 거요. 애초에 라이칸스로프를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든 마당이니."

"입증할 수 없다면 거짓이나 다름없지."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힘있게 발을 내딛더니 게티아르 앞에 섰다. 게티아르는 턱을 치켜든 채 시선만 아래로 내렸다.


"이게 입증이오."


남자는 상의를 들어올렸다. 게티아르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뒤로 물러서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 정도로, 남자의 배에 난 흉터는 끔찍한 것이었다.

"여기에 윗니를 박았고."

남자는 손가락으로 갈비뼈를 가리켰고.

"여기에 아랫니를 박았소."

이어 장골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씹어버렸지."

남자는 배꼽 위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지. 이빨이 살가죽을 뚫고 내장을 건드리는 그 감촉을. 비명은 고사하고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소."


게티아르는 시선을 올렸다. 아까 전까지 비아냥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남자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옷을 내렸다.


"곰이 이랬을 거라 생각하지 마시오. 호랑이는 물론이고 사자가 와도 이런 흉터는 만들지 못하오. 이건 명백히 라이칸스로프가 한 짓이오. 그 흉폭하고 잔인한 괴물이 말이오!"


게티아르는 입안에 혀를 굴린 뒤 말했다.


"설사 그게 진실이라 해도 네 녀석과 손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째서요?"

"내가 직접 잡겠노라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어."

"누구와 맹세했소?"

"나 자신과."

"하!"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어떤 사연이 있으시길래 자기 자신과 맹세까지 한 거요? 한 번 들어나봅시다."

"말할 생각 없다. 상대가 네놈이라면 더더욱."

"들으나 마나 어차피 복수겠지. 이보시오. 무고한 피를 사방에 흩뿌릴 생각이오? 설마 모르진 않을 거요. 라이칸스로프 앞에서 숫자는 무의미하다는 걸. 어리버리하고 겁 많은 자들을 세워봤자 희생만 늘어날 뿐이오. 오직 숙련되고 용감한 자 몇 명만이 라이칸스로프를 막을 수 있소."

"내 병사들은 결코 어리버리하지도 겁이 많지도 않다!"

"어련하겠소."


남자는 발을 세게 굴렀다. 책상 위에 있는 장식품과 물품이 순간 좌우로 흔들렸다.


"그 맹세가 이루어질 일은 없을 거요. 어찌됐든 내가 먼저 발견하고 잡을 거니까. 아무튼 여러모로 실망이오, 영주 나리. 손쉬운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굳이 힘든 길로 가려고 하다니. 소문과 달리 그다지 통찰력이 있는 것 같진 않소."

"선심 쓰는 척 하지 마라, 검은 갈퀴. 너 또한 내게 기대서 잡으려는 속셈이겠지. 내가 모를 줄 아나?"


게티아르가 서늘한 눈으로 말했다. 줄곧 여유로운 자세를 보이던 검은 갈퀴는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성질 건드리지 마시오. 다른 건 몰라도 그놈을 잡는 일 만큼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소."

"그러면 왜 싸움판에서 희희낙락 시간이나 보내고 있는 거지? 얼른 잡지 않고."

"뭘 모르시오. 정보를 얻으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오. 그리고 내가 괜히 거기에 있는 것 같소?"


검은 갈퀴가 옆모습을 보였다.


"그 괴물도 달이 뜨지 않는 날은 사람이나 다름없소. 사납고 더러운 성질이지만 어쨌든 겉은 사람이란 소리요."


게티아르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되도 않는 주장을 하는군. 사람이 괴물로 변한다니."

"허 참.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데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었소? 하긴 여기 주변을 좀 둘러보니까 평화롭기 그지 없더군."


검은 갈퀴는 검지로 옆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모르면 가만히 듣기나 하시오. 아무튼 그놈은 사람이어도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성정을 지니고 있소.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결국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요. 그러면 어디로 갈 것 같소? 싸움판이지."


검은 갈퀴가 뒤로 돌았다. 이제 용무는 다 끝났다는 것처럼 굴었다.


"아무튼 깊은 뜻은 잘 알겠소.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라. 난 영주가 아니니 당신의 고충을 알진 못하지. 하지만 움직여야 할 땐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어찌 됐든 뜻은 알겠으니 나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소. 아, 아니지. 그놈을 잡게 되면 한 번 찾아뵙겠소. 걱정은 마시오. 귀하신 몸 다치지 않게 고이 죽여서 데리고 올 테니까."


검은 갈퀴가 방에서 나갔다. 게티아르는 홀로 남게 되었다.


잠시 후, 호가 찾아왔다.


호는 게티아르에게 조찬 준비가 모두 끝났으며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얼른 문을 닫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엉망진창이 된 방 한가운데. 그곳에 게티아르가 검을 뽑은 채 헝클어진 옷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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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피 냄새 (4) 22.08.19 72 4 15쪽
16 피 냄새 (3) 22.08.18 74 3 16쪽
15 피 냄새 (2) 22.08.17 82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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