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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조회수 :
10,601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20 21:50
조회
66
추천
4
글자
18쪽

피 냄새 (5)

DUMMY

"팔! 지금···. 당장!"


"뭐?"


물로 씻으라는 말도 다 하지 못했다. 아간은 괴로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라자살라가 준 약을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약을 입에 대기도 전에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아간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산으로 뛰어가는 아간을 보며 라이트는 눈을 크게 떴다.


"아간!"


라이트는 아간을 쫓아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다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무엇이 됐든 홀로 둘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라이트는 헉헉거리며 외쳤다.


"어딜 가는 거야!"


아간은 답하지 않았다. 몇 번의 달음박질 만에 산속으로 들어가는 아간을 보며 라이트는 기가 막힌 감정을 느꼈다.


아간이 다른 이들과 달리 비범한 육체를 갖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옆에서 줄곧 봐왔으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날다람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속도로 산을 타는 모습은, 그동안 알고 지냈던 라이트가 보고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라이트는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였다. 덩달아 산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아간은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아간! 더 이상 쫓아가지 않을 테니 일단 나와 봐!"


라이트가 손을 모아 소리쳤다. 힘껏 외친 목소리는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에 먹히고 말았다.


서서히 동녘이 떠오르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날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었다.


수천 수만 개의 나뭇잎이 빗방울과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는 라이트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라이트는 나무에 손을 뻗었다. 나무 밑단은 아직 비에 젖지 않았는지 메마른 감촉이 느껴졌다.


벼락이 쳤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불을 피어올린다 해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다. 햇볕을 싫어해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이끼도 벼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라이트는 숲 안쪽이 확, 하고 밝아졌다가 어둠 속으로 잠기는 걸 보았다. 저 멀리에 서 있던 나무가 환상처럼 바스라졌다. 어디부터가 가짜고 진짜인 걸까.


하지만 라이트는 여유롭게 사색에 잠길 수 없었다. 벼락은 나무나 바위 같은 자연물만 보여준 게 아니었다.


비틀리며 자라난 나무 사이로 인간 형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다는 것 또한 보여주었다.


"아간?"


우르릉..


천둥이 울렸다. 라이트는 슬슬 두려워졌다. 밖이라면 모르나 숲에서, 그것도 천둥과 벼락이 동반한 비를 맞으며 홀로 있자니 무서움이 밀려왔다.


라이트는 어쩌면 아간 또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쪽으로 갈게."


라이트가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다시 벼락이 쳤다. 라이트는 그림자가 아까보다 더 길고 커진 걸 보았다.


팔을 벌리고 있는 걸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어쩌면 급하게 산을 오르다가 넘어져 다친 것일 수도 있었다. 라이트는 아간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비로 인해 바닥이 진창이 되고 말았다. 멀쩡히 걸으려고 해도 자꾸만 앞으로 넘어지려 했다. 라이트는 혹여 나무 뿌리가 발목을 잡아챌까봐 조심히 걸었다.


우르릉..크르릉..


천둥 소리 안에 뭔가 기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까 들었던 것과 비슷했다. 풀벌레들의 울음을 멎게 만들었던 괴상한 소리와.


다만 차이가 있다면 거리였다. 상당한 거리에서 들려왔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훨씬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라이트는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멈췄다. 오금이 저려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늪에 박힌 것처럼 두 다리는 땅에 고정되어 있었다.


라이트는 볼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번개가 치고 모든 사물의 그림자가 바닥에 찍히는 순간. 한 나무의 그림자가 유독 부풀어올라 있었다.


시선을 든 라이트는 한 두터운 거목에 매달려 있는 두 눈동자를 발견했다. 서늘히 빛나고 있는 눈동자가 라이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저건. 칠흑 같은 어둠과 동화가 된 듯 눈동자 말고는 몸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밤의 모체에서 태어난 또다른 생명체 같았다.


라이트는 목구멍이 막힌 사람처럼 입만 벌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확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 괴물을 자극할 것 같았다.


라이트는 두 손바닥을 보인 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눈동자는 깜빡이지도 않고 있었다.


어쩌면 부엉이나 소쩍새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이거나.


라이트는 후자가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벼락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저 담담하게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크아아아-!"


땅에 내려온 괴물이 곧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린 라이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을 느꼈다. 몸이 튕겨 날아올랐다.


"억!"


그야말로 억소리가 났다. 나무에 부딪힌 라이트는 등이 박살나는 것 같았다. 무기를 쓸 무언가라도 잡기 위해 팔을 마구 휘저었지만 잡초나 돌멩이 말고는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라이트를 덮쳤다. 괴물은 발로 라이트의 허리를 걷어찼다. 라이트는 비명도 숨도 내지를 생각도 못했다.


벼랑에 떨어지는 돌멩이처럼 속수무책으로 굴러내려갔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라이트는 손으로 허리를 더듬거렸다.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손가락으로 세게 꾹꾹 눌러도 감촉 하나 없었다.


라이트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 괴물이 서 있었다. 라이트는 이 괴물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았다.


"라이칸스···."


괴물이 라이트의 팔을 물었다. 비명을 터뜨린 라이트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도망쳐!"


라이트는 아간이 이 근처에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자기가 지른 비명을 듣고 찾아올까봐 라이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팔이 질겅질겅 씹히는 와중에도.


"아간, 오지 마! 멀리멀리 도망쳐!"


순간 괴물이 행동을 멈췄다. 팔을 그대로 뽑아버릴 것처럼 굴던 괴물은 눈동자를 돌렸다. 그리고 씹는 걸 그만두더니 라이트를 땅에 떨어뜨렸다.


무기력하게 떨어진 라이트는 진흙에 반쯤 얼굴을 파묻었다. 나머지 반은 빗줄기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차가울 거란 예상과 달리 따뜻했다.


라이트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렸다. 되도록이면 고통 없이 끝내주길 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죽음은 다가오지 않았다. 아직 현실이라는 듯 고통이 느껴졌다.


체념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 라이트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던 몸이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보는 환상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괴물이 인간 형상으로 바뀌는 모습에 라이트는 실소를 머금었다.


인간으로 돌아온 괴물은 뭐라 중얼거리더니 라이트에게 다가왔다. 라이트는 죽을 때 죽더라도 얼굴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소음이 아득히 멀어지는 걸 느꼈다.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모든 사물이 둘로 나뉘었다. 둘은 셋이 되었고 셋은 다섯이 되더니 곧 무수히 분열했다.


라이트는 몸이 아래로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



라이칸스로프로 변해 있는 동안 아간은 두 명의 자신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한 명은 얼른 먹잇감을 먹어치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굴었다.


혀 위에 굴러가는 피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아느냐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굳이 아껴서 뭐하겠느냐 등 식욕을 자극시키는 말을 건넸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조곤조곤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기억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냐며 귀를 기울이라고 부추겼다.


둘 다 숙고할 만한 말이었다. 아간은 뼈다귀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팔을 씹으며 고민에 빠졌다. 누구 말을 들을까. 누구 말이 더 괜찮을까.


다소 느긋해보이는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아간은, 먹잇감이 내뱉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듣고 먹어도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귀를 연 아간은 충격에 빠졌다.


'내 이름?'


단순히 맛있는 냄새를 흘릴 뿐인 먹잇감의 형태가 점점 익숙한 몰골로 변해갔다. 아간은 입을 벌렸다. 무기력하게 쓰러진 먹잇감은 이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했다.


아간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입가에 잔뜩 묻히고 있는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게 되었다.


몸이 멋대로 비틀렸다. 뒤로 꺾인 팔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줄어들었다. 멀리서 보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아간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사색이 되어 있었다.


"라이트!"


아간은 라이트를 안아들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아간은 라이트의 가슴이 아직 오르내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늦게 발견한 아간은 자신의 멍청함을 거세게 꾸짖으며 라이트를 안아들었다. 한시가 급했다. 생명의 온기가 바깥으로 철철 빠져나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간은 라자살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주술사는 의원이 아니었지만 그의 신비로운 힘은 의술을 뛰어넘었다. 주술이라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자살라였다. 아간은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다는 얼굴로 외쳤다.


"라자살라!"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아간은 라자살라에게 라이트를 들이밀어보였다.


라이트의 몰골은 처참했다. 여기저기 뒹굴고 부딪쳐서 그런지 옷이 너덜거렸다.


흉측한 멍으로 뒤덮인 허리와 갈기갈기 찢겨진 팔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잔혹했다.


게다가 움푹 파인 상처에 옷가지가 말려들어갔다. 이걸 떼어내려면 살점과 옷을 같이 베어내야 할 것 같았다.


팔과 허리를 제외한 다른 부위는 피가 나고 있진 않았다. 다만 상처 입지 않은 몸에도 짙고 푸른 멍이 문신처럼 박혀 있었다.


"도와주십시오, 라자살라. 이 자를 살려주십시오. 당신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잖습니까."


라자살라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라이트를 바라보았다. 아간은 라자살라가 '이제야 드디어 내 능력을 인정해주는 겐가.' 라는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라자살라는 말하지 않았다. 비꼬고 말장난 하기를 좋아하는 라자살라는 드물게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라자살라?"


"자네를 봤나?"


"예?"


"라이칸스로프로 변한 자네를 이 자가 똑똑히 봤냐는 게야."


아간은 멍한 얼굴로 쳐다봤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간신히 라자살라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깨달은 아간은 연신 도리질을 쳤다.


"아뇨. 못 봤어요. 못 봤을 겁니다. 설사 봤어도 제가 변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할 겁니다. 그러니 얼른 치료해주십시오. 죽고 있습니다!"


라자살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주술사지 의원이 아닐세. 직접적으로 남을 치료하는 건 내 특기가 아냐."


"무슨 소립니까. 그러면 제 아들 약은 어떻게···."


"그건 육체가 아닌 다른 문제니까. 아무튼 이건 내 능력 밖일세. 아간, 포기하게. 의원에게 데려다준다 해도 상처가 심해서 살아나기 힘들 게야."


아간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라자살라도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 말하는지도 몰랐다. 아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그래도 당신이라면 라이트 씨를 살릴 수 있잖습니까. 주술로든 뭐든 어쨌거나 당신 지식이라면 언제든지···."


"아간."


라자살라는 라이트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자네가 라이칸스로프인 걸 들켰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닐세. 중요한 건 이 자가 라이칸스로프를 봤다는 게 문제야. 살려두어선 안 돼."


"뭐라고요?"


아간은 경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라자살라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여전히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조는 다소 성나 있었다.


"게다가 자네 부탁은 이미 전에 들어줬잖나. 아들 약 만들어달라고 말이야. 근데 또 부탁을 한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라자살라를 보던 아간은 버럭 소리질렀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지금 그런 말이 나옵니까!"


"내가 그랬나? 자네가 그랬지."


라자살라가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자네가 멋대로 변하고서 물어뜯어놓고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겐가?"


"예, 내 책임입니다! 맞습니다! 지당한 말씀이니 나중에 잔소리든 체벌이든 다 달게 받겠습니다. 원하는 실험 있으면 군말 않고 다 받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라이트 씨를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러니까 내가 왜!"


비가 세차게 내렸다. 아간은 라이트가 되도록 비에 덜 맞게 하기 위해 상체를 굽히고 있었다.


라자살라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런 아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를 목격했잖아! 두 눈으로, 똑똑히! 근데 목격자를 살리라고? 웃기는 소리! 안 그래도 라이칸스로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요즘 들어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 도래솔 숲에서 있었던 일이 점점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이런 때에 확실한 목격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간은 당장 비키라고 말하고 싶었다. 라이트가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체온이 빠져나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라자살라가 아간을 못 가게 막고 있었다. 주술로 속박한 걸까. 아간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찌 되는지 진정 몰라서 하는 소리야? 네놈이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아들 또한 어떤 꼴을 당할지 몰라. 아들이 사느니 못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 말해 봐, 멍청하고 한심한 것아!"


씩씩대며 말하던 라자살라는 아간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뭉툭하게 튀어나온 콧망울에 빗방울이 뭉쳐 떨어졌다.


"무엇보다 웃기는 게 뭔 줄 알아? 내가 이딴 말을 너한테 하고 있다는 거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누군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나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분명 그리 말했었지! 이런 일도 예감하지 못했다면 그건 네 잘못이야!"


아간은 입을 꾹 다물고 라이트를 힘껏 안았다. 처음부터 주술은 걸려 있지도 않았다. 아간의 망설임이 몸을 꽉 물고 놔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실이 아간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아간은 라자살라를 밀쳐냈다. 그리고 라이트를 꼭 안고 산 밑으로 내려갔다. 라자살라가 주술로 몸을 속박할까봐 서둘렀다.


주술은 없었다. 라자살라는 몸이나 주술로 막아서지 않았다. 또한 아간이 가는 길을 막지도 않았다.


아간은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라자살라가 노려보고 있는 걸까. 기분 탓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끝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떠나는 아간에게 더 이상 눈길 주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간은 빗줄기를 뚫고 달렸다. 평소에는 그토록 빠르게 느껴졌던 속도가, 지금은 너무도 느리게 느껴졌다.


하늘이 아까보다 약간 밝아져 있었다. 원래라면 동이 트고 있었을 테지만 짙게 깔린 먹구름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았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세게 내리는 장대비에 불평을 하고 있었다.


봇짐장수들은 오늘은 글렀다는 얼굴로, 농민들은 비가 너무 내리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한 인영을 발견했다. 그 인영은 무슨 일인지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하의를 입고 있긴 했지만 넝마나 다름 없어보였다.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것도 벅차보였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꽤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문을 지키는 두 병사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두 명의 병사는 문을 열기 전, 간단한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목을 빼더니 말했다.


"내 눈이 잘못 된 건가? 웬 미친 놈이 알몸으로 뛰어다니고 있는데."


"나도 보고 있어. 이쪽으로 오는데?"


"볼기짝 몇 대 때려주고 보내야겠군. 음?"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던 그들은 곧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은 알몸의 남자가 무언가를 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알몸의 남자는 고래고래 뭐라 말하고 있었다. 내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들은 어리둥절한 서로를 마주보았다.


"뭐라고 말하는 거야? 맹수가 뭐 어째?"


"잠깐만, 저게 뭐지?"


둘 중 눈이 좋은 병사가 눈가를 찌푸렸다. 남자는 가죽이 벗겨진 동물 사체를 안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사체가 아니었다.


그 병사는 살면서 시력이 좋다는 것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병사는 난생 처음으로 불만을 넘어 충격을 받게 되었다.


"미친!"


눈이 좋은 병사가 문쪽으로 달려갔다. 어리둥절하며 옆에 서 있던 병사는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어느새 알몸의 남자는 성문 근처까지 도달하였다. 그 덕분에 뭐라고 소리치는지 아까보다 훨씬 뚜렷하게 들려왔다.


병사는 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 또한 문쪽으로 달려갔다.


"사람이 죽고 있소! 어서 문을 열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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