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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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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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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94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2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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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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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7쪽

피 냄새 (6)

DUMMY

의원은 순간 자신의 직업이 사실 장의사가 아니었던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관짝에 들어가야 할 시체가 생명을 구하는 장소로 왔으니 헷갈릴 만도 했다.


그러나 시체가 숨을 내쉬고 있는 걸 본 순간 의원은 제 머리를 때릴 뻔했다. 시체가 숨을 쉰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즉 이 자는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의원은 깨끗한 천과 따뜻한 물, 각종 의료 도구와 약재를 갖고 오라고 간호 보조인에게 소리쳤다. 자다가 일어난 보조인은 반쯤 비몽사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들었는지 의문이었지만 약재 창고로 가는 걸 보면 머리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한 모양이었다.


의원은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라이트를 보고는 아간에게 눈길을 돌렸다.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이렇게 됐는지 묻는 듯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문을 두드리길래 나가봤더니 동료가 이렇게···."


아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의원은 아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한 명은 죽을 것 같은 모습이고 다른 한 명은 옷도 안 걸치고 있다니.


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의원은 제 본분이 뭔지 잊지 않았다. 시간을 촉박하게 다툴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라이트의 상처를 살핀 의원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젠장, 꼴이 이게 뭔지. 온몸에 피를 바르고 맹수에게 몸을 던져도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쉽지 않을 거요. 새끼 있는 호랑이나 어미 곰이라면 몰라도. 팔은 아예 걸레짝이 되어버렸군."


비통한 어조로 중얼거린 의원은 옆에 서 있는 아간에게 말했다.


"당신은 옷이나 입으시오. 저기 있는 방 보이시오? 내 방인데 의자에 옷이 걸려 있을 거요. 그거 입고 다시 오시오. 할 일이 있으니까."


의원 말대로 아간은 옷을 추려 입었다. 옷이 좀 작아서 고생했지만 그럭저럭 입을 수 있었다. 아간이 돌아오자 의원은 종이에 글자를 적어 건네주었다.


"당장 약제사에게 뛰어가서 이걸 보여주시오. 곤히 자고 있을 테니 문을 때려부술 정도로 두드려야 할 거요. 그 양반, 잠에 한 번 들면 잘 못 일어나니까. 뭐하고 있소, 얼른 가시오! 한시가 급해!"


성소원 밖으로 뛰쳐나온 아간은 약제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의원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추측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물을 사람은 많았다. 아침부터 소란을 벌이며 뛰어왔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성소원 정문 앞에 삼삼오오 서 있었다.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음에도 옷이 젖는 것보다 궁금증이 더 큰 모양이었다.


"약제사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급합니다!"


"따라 오세요!"


무리에 섞여 지켜보던 젊은 청년이 팔을 열렬히 흔들어보였다. 아간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청년의 뒤를 따라갔다. 청년은 달리면서 아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환자는 많이 다쳤어요? 당신이 환자를 안고 성소원에 들어간 걸 봤어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그보다 당신은 아까 왜 옷을 벗고 있었죠?"


아간은 황당과 당황이 섞인 얼굴로 청년을 쳐다보았다. 청년은 열의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밤 중에 산을 넘다가 산적에게 당하기라도 한 겁니까? 아니면 그 괴물에게 물어뜯긴 건가요?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요?"


"괴물?"


"소문을 들었거든요. 도래솔 숲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고. 열성적인 벌목꾼도 그 정도로 나무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고 말이죠. 그런 짓 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당연히 괴물이지. 그거 듣고 나도 직접 보고 싶었죠. 물론 괴물과 만날까봐 가진 못했지만. 아무튼 정말 그런 겁니까?"


아간은 청년이 왜 재빠르게 길찾기를 자원했는지 알았다. 누구보다도 당사자에게 먼저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당장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누구는 남에게 소식 전할 생각이나 하다니. 아간은 순간 욱했지만 겨우 참아내었다. 다만 노려보는 것마저 포기하진 않았다.


청년은 찔끔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섬뜩한 눈으로 째려보니 하려던 말도 쏙 들어갔다.


"여깁니다."


이윽고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청년은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번 째려봤다고 쫄았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아간은 청년이 어떤 마음을 품었건 관심이 없었다. 약제사가 있는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아간은 문을 두드렸다.


"이보십시오! 안에 있으면 문 좀 열어주십시오!"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여러 차례 더 두드렸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초조한 얼굴로 문을 쏘아보던 아간은 의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간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문 손잡이를 잡더니 그대로 팔을 뒤로 당겼다.


"아니···."


옆에 구경하고 있던 청년은 입을 벌렸다. 문짝이 통째로 아간의 손에 끌려왔다. 아간은 어버버 하며 말을 못하는 청년을 두고 문짝을 벽에 세워두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약재 냄새가 훅 끼쳐왔다. 벽이며 천장이며 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간은 굳은 얼굴로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가느다랗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간 아간은 한 방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돌리니 잠겨 있었다.


아간은 아까처럼 뜯어낼까 하다가 말았다. 밀고 들어가는 구조여서 쉽게 뜯기가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문이 잠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 뜯어냈다간 남아도는 문이 없을 듯했다.


아간은 입술을 깨물고는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는 듯한 소란이 들리는가 싶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약제사는 그림자처럼 서 있는 아간을 보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안은 밤 못지 않게 어두웠다.


"뭐, 뭐요. 당신은!"


아간은 약제사를 번쩍 들더니 문가로 이동했다. 약제사는 이동하는 동안 몸을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약제사를 바닥에 내려놓은 아간은 상대가 뭐라 하기도 전에 종이를 내밀었다. 약제사는 종이와 아간을 번갈아봤다.


"의원이 이걸 갖고 오라 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멍한 얼굴로 중얼거린 약제사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곧 심각한 얼굴로 글자를 읽더니 빠른 걸음으로 선반에 갔다. 선반에는 약재를 담는 소쿠리가 놓여 있었다.


"이거랑, 이거랑···."


고르는 동안 잠이 깼는지 약제사는 한결 또렷해진 눈빛으로 약재를 찾아다녔다. 어느새 품에 한아름 쌓이게 되었다. 약제사는 약재를 바구니에 담더니 아간에게 건네주었다.


아간은 곧장 돌아가려고 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시오."


약제사는 도로 약재를 가져가더니 막자로 일일이 갈아냈다. 아간은 초조함에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런 아간에게 약제사가 말했다.


"이게 더 빠르오. 가면 치료하느라 정신 없을 텐데 언제 갈고 앉아 있겠소."


"나도 같이 하겠습니다."


"됐으니 가만 있으시오. 정신 사나우니까. 그보다 어떻게 들어왔소? 분명 문이 잠겨 있었을 텐데."


아간은 눈짓으로 문가를 쳐다봤다. 약제사는 손으로는 약재를 갈고, 눈으로는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약제사는 문이 바깥으로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니라 경첩 째로 뜯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약재를 갈던 약제사는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죽는 것보단 문짝이 나가는 게 낫지."


"꼭 변상하겠습니다."


"환자가 살아나면 받겠소."


약제사는 약재를 다 갈고는 나무 그릇에 쏟아부었다. 그 위에 뚜껑을 올린 약제사는 옷 깊숙히 찔러넣었다.


"직접 가겠소. 생각해보니 그게 나을 것 같소."


아간은 누가 들어와서 약재나 돈을 훔쳐가면 어떡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약제사도 이미 고려하고 있었는지 아간에게 부탁했다.


"곧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여길 보고 있어주시오. 혹 손님이 오면 나중에 오라고 말하시오."


"알겠습니다."


약제사는 두 번 당부하지 않았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는 곧장 성소원으로 뛰어갔다. 아간은 약제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는 비가 지치지도 않고 쉴 새 없이 내렸다. 그러나 안은 묘하게 조용했다. 천장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아즈라이 들려왔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적막감을 더해주기만 할 뿐이었다.


아간은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력감이 몸에 엄습했다. 손을 적시던 피의 감촉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했다.


"하아···."


아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있다 해도 뭐라 해야 할지 몰랐기에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겠노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간은 멍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빗줄기를 뚫고 도시로 달려오던 일이 떠올랐다.


바닥은 질척거렸고 튀어오른 흙덩이가 바지 밑단과 무릎에 달라붙었다. 운무처럼 떠도는 습기와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대는 빗줄기는 아간의 진로를 방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간은 그런 것에 신경을 거의 쏟지 않았다. 아간은 오로지 품에 안겨 있는 라이트에게 온 집중을 쏟고 있었다.


라이트를 향한 동정심과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아간은 빗줄기에 섞여 바닥에 떨어지는 피 냄새에 후각과 청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살육을 할수록 광기에 물든다.


킬레브의 살점을 뜯어먹었을 때 아간은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평화와 안정을 누렸다. 예민했던 감정과 흉폭함은 사라져 있었고 세상 천지가 시야에 또렷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 살육은 또다른 살육을 부를 뿐이었다.


짐승의 피를 마시는 건 라이칸스로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도 않지만 광기를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피는 달랐다. 라이칸스로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기에 잠깐은 편안할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 더한 피를 원했다.


잠깐의 평안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살육을 저지른다니. 보상을 위한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목격자는 살려둬선 안 된다.


그때 라자살라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머릿속에 웅웅 울렸다. 아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돌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간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라자살라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귀에 생생히 들려왔다.


"그러게 진작 낫게 해주지 그랬습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당신은 주술사 아닙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젠장."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시간이 얼마나..


아간은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간은 꼼짝없이 라자살라가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성소원에 있을 수는 없어요.


반대쪽에는 하리 수녀가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라자살라에 비하면 강요적이지도 성난 어조도 아니었지만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디아프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빠가 있잖아요.


"아니. 아빠는 무슨. 라이칸스로프를 부모로 둔 아이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간은 괴로운 얼굴로 소리쳤다. 밖에 사람이 안 다녀서 망정이지 누가 있었다면 식겁할 내용이었다.


하리 수녀는 자리에 떠나지 않고 여전히 아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자살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아간을 보며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내쉬고 있던 아간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의 주위에는 당연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이 텅 빈 공간에 오직 아간 말고는 누구도 없었다.


라자살라가 실험을 한다고 말했을 때 금방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물론 라자살라는 몇 주는커녕 몇 달, 몇 년이 걸릴 지 모르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술사의 기이한 힘이라면, 설사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변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떠나야 하는 걸까.


더 늦기 전에 도시를 떠날 필요가 있었다. 만약 라이트가 살아서 정신을 차린다면 누가 그랬는지 말할 것이다. 그러면 영주는 곧바로 수색을 지시할 것이다.


라이칸스로프가 도망쳤는지, 만약 도망치지 않았다면 도시 내에 있는지 샅샅이 조사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간에게로 수사망이 좁히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애초에 라이트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아간이었다. 반드시 한 번은 그에게 손길이 뻗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라이트가 죽는다면?


처음에는 해괴한 소문이 돌 것이다. 라이칸스로프가 그랬을 거라는 얘기도 당연히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소문은 대개 휘발성이 강하다. 처음에는 확 불타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가라앉는다.


라이트가 죽은 건 수많은 사건 중에 하나로 치부될 것이고 곧 잊을 것이다. 한 무두장이의 죽음 따위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간은 평소처럼 무두질을 할 수 있다. 아들의 병이 낫기까지 기다린 다음 조용히 빠져나오면 될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친 아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간은 거친 숨을 내쉬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바닥에 찌릿한 아픔이 밀려왔지만 아간은 주먹을 풀지 않았다. 아간은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라이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아간을 걱정하고 있었다. 혹여 자신을 구하러 올까봐 어디 있을지 모르는 아간에게 도망치라고 말했었다.


그런 자가 죽기를 바라고 있다니. 아간은 선을 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비웃었다.


봐라, 비루하고 멍청한 놈아. 네가 앞으로 저지를 짓이다. 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청껏 부르짖던 자를 네가 죽이려 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인가.


아간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았다. 장막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때 아닌 실개울이 형성되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언제 그칠까. 되도록이면 계속 내렸으면 싶었다. 만약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았다면 아간의 마음은 더욱 심란했을 것이다.


우루룽..하늘이 몸을 비트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어느새 아간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하릴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돌아올 거라던 약제사는 여전히 오지 않고 있었다.


무소식을 희소식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간은 약제사가 얼른 와서 소식을 전해주었으면 좋을지 아니면 최대한 늦게 오길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간이 귀를 기울였다. 비로 흘러 넘치는 바닥을 철벅철벅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간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가에 누군가 섰다. 병사는 가게가 생각보다 어두워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다 안에 있는 아간을 발견하자 얕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이 그 다친 무두장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오?"


"그렇소."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보시오."


병사는 옆으로 비켜주었다. 아간은 걸음을 옮기려다가 말았다.


"여기 문이 고장나서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가기나 하시오."


병사는 퉁명스레 말했다. 아간은 의아했지만 일단 빨리 가기로 했다. 어쩌면 라이트가 정신이 들었을 수도 있었다.


아까와 달리 지금은 성소원 문앞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들 제 할 일을 하러 떠난 모양이었다. 아간은 성소원 내부에 있는 병동으로 갔다.


바닥에는 물이 묻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단지 발자국만 보았는데도 얼마나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떤 곳은 물이 살짝 고여있기까지 했다.


라이트가 있는 곳으로 거의 도착한 아간은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간은 가기 전에 잠시 몸을 숨겼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듣고 싶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혹시 라이트가 정신을 차린 걸까. 괴물이 자신을 이 꼴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간은 모습을 드러내기 두려웠지만 끝내 걸음을 옮겼다. 마치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라이트의 방 앞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비교적 깔끔한 옷과 정돈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한 사람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는 흠뻑 젖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아간을 물끄러미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두장이?"


아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는 자도 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짐짓 엄한 얼굴로 아간을 맞이했다.


아간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들이 누구길래 라이트의 방 앞에 앉아 있는 걸까.


그때 의자에 앉아 있는 자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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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잠든 야수 (3) 22.08.25 61 4 17쪽
22 잠든 야수 (2) 22.08.24 58 4 17쪽
21 잠든 야수 (1) 22.08.23 65 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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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냄새 (6) 22.08.21 6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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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피 냄새 (4) 22.08.19 72 4 15쪽
16 피 냄새 (3) 22.08.18 75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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