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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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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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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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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08.2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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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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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피 냄새 (7)

DUMMY

"무두장이 아간. 맞나?"


아간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추궁하듯이 물어오니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자는 뒤를 힐긋 보더니 말했다.


"난 조사대원 가나마라 한다. 뒤에 있는 자는 로이벤이라 불리지. 마찬가지로 조사대원이다."


"아간이라 합니다."


가나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렸다. 어디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지 약간 얼굴을 찌푸려 보이기도 했다.


아간은 자기에게 냄새가 나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가나마는 아간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아마 라이트가 있는 방에서 나는 거라 짐작한 듯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 있어서 온갖 냄새가 풍길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묻고 싶은 게 있어 직접 찾아왔다. 잠시 시간을 내달라."


"어떤 걸 묻고자 하는지···."


가나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간은 뭘 잘못 말했나 싶어 뒤에 서 있는 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로이벤이라 불린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얼굴로 아간을 보고 있기만 했다.


아간은 가나마를 관찰했다. 이제 보니 가나마는 단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네 동료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고 싶다. 아는 게 있다면 자세히 듣고 싶군."


아간은 침을 삼켰다. 사냥꾼 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사대가 찾아와서 흔적을 살핀 적이 있노라고.


그렇다면 이들은 당연히 영주가 직접 보낸 것일 것이다.


영주는 다른 때엔 온화하나 라이칸스로프와 관련된 일이면 예민해진다고 했었다. 혹시 영주는 이 일이 라이칸스로프에게서 일어난 거라고 짐작하는 걸까.


"나도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단지 잠을 자고 있었고 누가 문에 기대어 쓰러지길래 놀라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네 동료였던 건가?"


"예, 맞습니다."


"동료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나?"


"예. 무척···끔찍하더군요."


동의의 의사로 고개를 끄덕인 가나마는, 그러나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듣자 하니 도시로 달려올 때 알몸이었다고 성문지기가 그러더군. 왜 옷을 입지 않고 왔는가?"


"잘 때는 옷을 벗고 잡니다. 일 특성상 피부병에 걸리기 쉬운 지라 옷을 입고 있으

면 무척 간지럽지요.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옷을 입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간지럽겠군."


"심하진 않습니다."


가나마는 아간의 몸을 살폈다. 의사가 준 옷이 작은 편이라 약간 달라붙어 있었다. 더군다나 비로 인해 젖어서 더욱 그랬다.


아간은 가나마가 혹시 피부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알까 봐 심장이 두근거렸다.


확실히 아간은 반팔을 입고 있어서 팔꿈치 아래로는 다 드러나 있었다.


아간은 가나마가 혹시 옷을 벗어줄 수 있느냐고 할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도 가나마는 별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다음 질문이다. 오늘 새벽에 사람들이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도시 밖에 살아가는 자들이 한 말이지. 확실하진 않지만 미리내 산 쪽에서 들렸다고 하더군. 넌 도시 바깥에서도 외곽 쪽에 살아가니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뇨. 듣지 못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었던 터라."


"피부병 때문에 깊이 잠자기가 힘들지 않나?"


"그럴 때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그래도 잘 자는 편입니다."


"동료도 피부병이 있겠지. 그는 잠에 잘 못 드는 편인가?"


"나보다는 잘 못 자는 편입니다."


"그럼 동료가 자다 말고 밖에 나가는 건 별일도 아니겠군."


"예. 긁다가 지쳐서 나가곤 했습니다."


"동료가 늦은 밤에 근처 숲이나 산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나?"


"그건 잘 모릅니다. 다만 잿물로 몸을 씻기는 했었지요. 그러면 가려움이 좀 가라앉는 모양입니다."


아간은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속으로는 초조감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가나마는 엄지손가락으로 이마를 슬슬 긁었다. 그런 와중에도 날카로운 눈빛은 여전히 아간을 향해 있었다.


아간은 조심스레 방 쪽을 가리켰다.


"질문 다 했으면 내 동료가 괜찮은지 좀 봐도 됩니까? 걱정이 돼서 밥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글쎄. 나도 몇 번 보지 못하고 바로 나왔다. 치료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오래 못 있을 것 같더군. 적어도 오늘은,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 거다."


아간은 청각에 집중했다. 신음과 비명이 간간이 터져 나왔고 다급한 발소리와 달그락거리는 도구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것 가지고는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후에도 가나마는 몇 가지 더 아간에게 물었다. 아간은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일부러 모른 척 잡아뗀 적도 있었지만 정말 몰라서 대답한 게 훨씬 많았다.


질문을 끝낸 가나마는 얕게 한숨을 쉬며 벽에 기댔다.


"알았다. 이제 가서 일 봐도 좋다. 동료가 얼른 회복되길 신께 기원하지."


아간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혹 내 동료가 그 괴물에게 당한 겁니까?"


가나마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리고 로이벤과 얼굴을 마주 보았다.


로이벤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너도 그런 소문을 믿나? 괴물이 나타나서 깽판을 벌이고 있다는걸."


"심심찮게 그런 얘기가 돌고 있어서 말이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겁니다."


"뭐, 어떤 일이든 섣불리 결론을 내려선 안 되겠지. 조사대는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황당무계한 가설이라도 일단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니까."


가나마는 다리를 꼬고는 왼쪽 발끝을 까딱거렸다.


"그러니 라이칸스로프라고 관련짓는 것 또한 완전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가설을 받아들이기에도 무리다."


"왜 그렇죠?"


"맹수가 습격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쉬우니까. 그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고. 만약 그 늑대 괴물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네 동료는 살 수 없었을 거다. 유골도 찾기 힘들 만큼 갈기갈기 찢겼을 테니까."


왠지 확신에 찬 듯한 말이었다. 아간이 이에 대해 물었다.


"혹 그 괴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가나마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비록 어릴 때였지만 지금도 기억난다. 봇짐 장수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늦은 밤까지 물건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울음소리가 들렸지. 그건 단순히 맹수가 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두려움을 이끌어내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울음소리였다."


팔짱을 껴고 눈을 감은 가나마는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그리고 비명이 터졌다. 도시 밖이었는지 굉장히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포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 절대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지."


가나마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길거리를 달려가는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난 무서워서 부모님 품에 숨어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도 나와 다를 바 없더군. 두 분 모두 몸을 벌벌 떨고 있었으니까."


방문 틈새로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나마와 로이벤은 잠시 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문이 열리지 않자 가나마는 멈췄던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새벽이 흐르고 아침이 되었다.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괴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 그때 기사와 병사들이 거대한 사체를 짊어진 채 길거리를 가로질렀어.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온 적은 없었다. 축제가 벌어질 때 말고는 말이지."


"사체를 짊어졌다고 했습니까?"


"그래. 그리고 그들은 광장에 나무를 튼튼하게 엮고는 거기에 사체를 걸어두었지. 난 그걸 봤고. 그때 느꼈어. 저렇게 거대한 괴물에게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이빨과 손톱은 흉측했고 털을 새빨갰지. 마치 희생자의 피로 물들인 것처럼."


가나마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간에게 '상상이 가는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간은 어깨를 약간 움츠려 보이고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진짜 라이칸스로프인지 의문이 든다고 하더군요."


"하! 단순히 큰 늑대에 불과하다고 말이지? 나도 안다. 심지어 직접 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말하더군. 기가 막혀서. 성에 들어간다면 다시는 그런 소리 못할 거다. 거기에 가죽이 벽에 걸려 있거든. 뭐,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녀석은 어떤 맹수보다도 크고 강한 힘을 가진, 진짜 괴물이지."


고개를 저은 가나마는 숨을 큼, 하고 내뱉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다. 이 사건과 그 괴물을 결부시키기에는 정황 증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그 커다란 놈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움직일 리가 없지. 영주님께선 자세히 알아보라고 지시하셨지만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가나마."


그동안 말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로이벤이 불쑥 입을 열었다. 로이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가나마를 바라보았다.


가나마는 조금 찔린 얼굴을 지었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아무튼 아직은 뭐라 확답할 수 없다. 그러니 너도 이제 할 일 하러 가라."


"동료가 괜찮으지만 알고 가겠습니다."


"귀먹었나? 언제 좋아질지 모른다고 했을 텐데. 아까 잠깐 들어가서 봤는데 정말 심각하더군."


아간은 그래도 기다린다고 말하려고 했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사냥꾼 롬이었다.


의외의 인물이 나오자 아간은 놀랐다. 롬도 아간을 보고 놀랐지만 가나마와 로이벤이 다가오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조사대원들은 롬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어떤 고약한 놈이 그랬는지 짐작이 가시오?"


가나마가 물었다. 롬은 밤사이 자란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쓸다가 그만두었다. 손에는 피와 진물, 고름 냄새가 한데 섞여 나고 있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소. 하지만 물리거나 찢어진 상처를 보아하니 정황상 곰이 그런 것 같소."


"곰?"


"지금은 여름이잖소. 한창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시기지."


로이벤이 물었다.


"혹시 음식을 찾다가 민가에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있소?"


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기야 하지. 하지만 웬만해서는 없소. 곰은 머리가 좋은 맹수니까 말이오. 그놈들도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소. 역으로 사냥당할 수 있으니까. 또한 가급적이면 제 영역 밖으로 나오진 않을 거요. 새끼를 데리고 있으니 말이오."


"흐음."


가나마는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로이벤은 가나마의 어깨를 두드려 잠시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롬에게 실례한다고 말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아간은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들으려다 그만두었다. 롬이 아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행한 일이 벌어졌소. 착한 사람에게 이런 참변이 일어나다니."


롬이 착잡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아간은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롬은 약간 겁먹은 얼굴을 지었다.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에 놓인 사람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롬은 힘없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문을 쳐다봤다.


"잘 모르겠소. 나도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가 싶지 않소."


하마터면 아간은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롬이 놀란 얼굴로 잡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가나마와 로이벤은 이내 다시 대화를 나눴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군. 난 의원이 아니니 잘 알지 못하오. 다만 이건 말할 수 있겠소. 의원과 약제사 두 분을 비롯한 많은 분께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걸. 그러니 걱정 마시오. 무엇보다 여기는 신이 거하시는 공간이 아니오. 무사히 회복할 거요."


따스한 위로가 담긴 말이었지만 아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허탈하면서도 허망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기만 했다.


롬은 입을 오물거렸지만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아간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자리를 떴다.


그 사이 대화를 마친 조사대원 두 명은 아간에게 다가왔다.


"부디 고통을 떨쳐내고 이겨내길 바란다고 기도하겠소."


가나마가 말했다. 하지만 아간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가나마와 로이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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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피로 물든 강물 (2) 22.09.09 51 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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