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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새 님의 서재입니다.

댕댕아 너의 주인은 말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원새
작품등록일 :
2022.06.14 17:03
최근연재일 :
2023.02.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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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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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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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5화

DUMMY

헬멧을 제거하기 무섭게 야누스가 거칠게 내 어깨를 잡아챘다. 콧잔등을 찡그린 야누스는 으르렁거리며 내 면전에 대고 큰 소리를 낸다.



“널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안달 난 녀석이 방금만 해도 네 눈에 들려고 골로 갈 뻔했어! 분명, 널 계속 따라다니고 싶어서 뇌 꺼내고 움직인 거겠지! 저 땅콩 새끼 이대로 두면 너 때문에 또 정신 팔릴 거야. 얘가 죽길 바라냐? 그걸 바라냐고 이 새끼야!”



야누스의 고성을 마주한 난, 입을 살짝 열었다가 입꼬리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야누스... 시발... 아무래도 이거 바닷물 차는 거... 내 탓 있는 것 같아. 아까 설틴이랑 전력실에서 싸우느라... 검은 쇳덩이들 망가져서 그런 것 같다고!”



속이 울렁거린다. 울저가 죽은 것부터 시작해서, 킹하트의 배신, 바깥 상황, 훈련사들의 침묵과 기만 등등. 모두, 별의별 경험을 지낸 세월로 커버가 됐다지만, 이젠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그리고, 니코... 또 초록이 일처럼 되면 어떡해? 그때는 내가 눈엣가시로 보이는 녀석들이 그런 거지만, 이번엔 확실한 목표로 움직이고 날 노리는 게 한둘이 아니야. 인간들이며, 킹하트 일당이며, 하이에나들까지...”



이런 와중에 니코를 데리고 다니라고? 야누스는 부담과 절망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헤르메스를 당황해한다.



“아니...! 으악! 그럼, 안 되겠다고 지금 말해놓으라고. 땅콩 새끼, 또 이상한 헛짓거리하게 만들지 말고! 내가 말하려던 건... 에이 씹, 땅콩을 네가 데리고 다니라고 말하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확실하게 말해놓으라는 거였어!”


“....”


“자, 어서 말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야누스는 잡고 있던 헤르메스의 어깨를 끌어 니코와 마주 보게 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뒤에서 듣고 있던 니코는 귀 끝까지 시뻘게져 있었다. 헤르메스는 머뭇거리다가 갈라진 목을 가다듬고 운을 뗀다.



“미안해, 니코. 형이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꼭 찾아야만 해. 그 길은 혼자 떠나고 싶어.“


”...형에게 부담이 되려던 게 아니었어요. 같이 도와드릴 수는 없나요? 제가 그렇게 형한테 짐이 되나요?“



니코의 간절함과 음울한 목소리는 그대로 헤르메스에게 전달되었다. 분명히 둘은 다른 색인데. 눈의 색이 초록이어서 이름이 초록이인 녀석의 순한 눈이 니코 위로 겹친다. 왜 이 녀석들은 날 따르지. 다른 형들이 나보다 못 해준 건 없을 텐데. 왜 내게만.


초록이 때는 그냥 날 좋아하고 잘 따르니까 그냥 나도 그게 귀엽고 좋았는데 지금은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녀석들의 주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갈급한 애정 어린 눈빛은 주인에게만 보여야 하잖아? 수인은 수인에게 주인이 될 수 없는데, 왜 내게.


너희들이 내게 소중한 것은 맞지만... 난 너희들의 그런 눈빛을 받을 녀석이 아니야.


헤르메스는 니코에게 어떤 거절의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에 정리하곤 말문을 열어본다.



”그래. 넌 내게... 짐이야. 아주 소중한 짐. 그런 소중한 너랑 다니면 내가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 너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야. 난... 이 건물을 떠나면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좀 더 주저함 없이 행동할 거라...“



딱, 이 건물에 머무는 시간까지다. 주인을 생각해서 인간의 안전에 신경 쓰는 건.


필요하다면... 무장하지 않은 인간도 죽일 생각으로 움직일 거다. 이 이상 내 앞길을 막는 것들은 모두 죽여버릴 거야.


나의 주인, 새벽이는 잘 설명하면 분명 이해해줄 거야. 날 기만한 ‘훈련사’들부터, 훈련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훈육사’ 새끼들한테 내 이름을 지켜내고, 내가 아끼는 동생을 ‘규율대’ 녀석들이 장난식으로 죽이는 등등, 그동안 있던 인간들 오락거리 때문에 많은 고생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힘들었겠다며 꼭 안아줄 거야.


...이렇게 보니까 관객들 손댈 생각 없던 게 대단한 거지.


내가 널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분명 너도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게 가야 한다.



”정말 많이 지체됐어... 주인과 만난 뒤에는 꼭 널 찾을게. 그때까지 다른 형들이랑 있어 줘. 이 길은 나 혼자 떠나야만 하는 길이야. 이건 전부터 생각해놨어.“



니코는 제게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조곤조곤히 얘기하는 헤르메스에게 차츰 체념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남아있어, 니코의 가슴 안쪽을 쓰라리게 했다. 그 주인이라는 인간이랑 지낸 시간보다 우리랑 지낸 시간이 분명 더 많을 텐데.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헤르메스의 주인이라는 자에게 좀스러운 샘이 마음 한구석에서 틔워 올라온다. 니코는 조금 못마땅히 헤르메스에게 물어본다.



”형한테는 주인은 어떤 존재예요?“



헤르메스는 앞서 니코에게 어떤 말로 거절을 얘기해야 할지 생각할 때보다 더 빨리 답해준다.



”목숨은 단 하나잖아. 주인도 내게 단 하나야.“



뒤이어 그가 자기 말에 쐐기를 박듯 확신의 미소를 그려냈다.



”....“



니코는 형의 미소가 애달프게도 느껴졌다. 그도 그 자신이 품고 있는 맹목적 사랑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려하는 것을 엿보았기에. 더 이상 니코에게는 침범 불가 영역이었다. 니코는 형의 앞길에 함께할 옆자리는 아무도 없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울컥하는 목울대와 함께 헤르메스를 껴안는다.



”계속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형... 저는 물론이고 저희 팀 꼭 다시 모여 만나요. 형을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들이 있다는 거 꼭 항상 기억해주고요. 다시 만나길 기다릴 거예요.“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만약에 절 먼저 찾으실 거면, 야누스 쪽은 넘겨도 돼요.“


”큭, 그래.“


”이, 망할 땅콩 새끼.“



야누스는 니코를 향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기껏 자기 생각해서 이런 자리를 만든 건데 말이다. 야누스는 니코의 귀를 또 한 번 잡아당기며 찰진 욕을 낸다. 니코는 그의 손을 뿌리치진 않지만 그를 조금 탓하는 눈초리로 올려다보았다. 야누스의 행동에 수긍하는 것과 괜히 탓하는 마음이 드는 건 또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는 으르렁거리는 둘을 떼어놓았다.



”하, 이 새끼 한 번 교육 좀 제대로 해야 한다니까? 후배 생각해주는 선배 맘은 귓등에도 안 담고 꼬라박고 말이야.“



헤르메스는 니코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야누스의 팔목을 붙잡고 다급하게 말한다.



”너희 모두 일단 이 건물 나가. 물 차는 건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선비랑 호루스네가 일반 수인들을 인도하면서 바깥과 연결되는 문 셔터들을 열었을 거야. 일반 수인들은 소형견이랑 중형견 뿐이니까 귀랑 꼬리만 가리면 돼. 인간들이랑 섞여서 몰래 나갈 수 있겠지만 우리 선수들은 덩치가 남다르니까 같이 섞여서 탈출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화물용 엘리베이터 통로로...“



퍽!


야누스가 헤르메스의 등에 시원하게 손바닥을 날려줬다. 헤르메스는 가슴을 ‘쿵’하니 울리는 둔탁함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뭘 혼자 해? 건물 밖에선 너 혼자 뭘 하든 상관 안 하겠는데, 건물 안에서는 함께다. 죽어도 함께야.“



헤르메스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진지한 검은 눈을 마주보며 등 뒤로 진땀을 빼었다.



”그래요, 형. 이 안 만큼은 함께 움직여요.“



니코의 거듦에 헤르메스도 한 걸음 물러나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메스는 둘을 제어실로 이끌어 가려던 걸음을 한 걸음 떼다 멈췄다. 잠시 잊고 있던 나즐리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나즐리는 헤르메스와 야누스를 번갈아 보며 꽁한 얼굴로 지켜보던 터라 헤르메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했다.



”그런데, 쟤는 왜 규율대복을 입고 있는지 아는 사람 있어? 뭔가 싶어서 데려오긴 했는데. 슈트는 다 챙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헤르메스가 나즐리를 가리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ㄴ국> 선수들의 대화를 다른 선수들과 함께 말없이 지켜봐 주던 레이스반이 그 질문에 손을 가볍게 들며 응한다.



”관객이야. 내가 빌려줬어. 우리 바깥 길잡이로 삼은 애라 괜한 봉변에 휘말리면 안 되니까.“



니코는 헤르메스의 말을 곱씹어 보다 나즐리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나즐리는 뜨끔한 얼굴로 그 따가운 시선을 슬쩍 피해낸다. 니코는 그것을 홉뜬 눈에 담고는 빈정거리는 말투를 꺼낸다.



”이번엔 도둑질까지? 하하! 선배들, 쟤 또 뒤통수 칠 녀석이라니까요? 인간을 굳이 끼고 다니실 거면, 저런 녀석 말고 차라리 다른 순해 보이는 인간 하나 챙겨서 데리고 다니는 게 나아요!“



니코는 조금은 넘쳐 보이는 듯한 비웃음을 내보였다. 조금 전의 헤르메스에게 거절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마음 한구석엔 여파가 남아있어 괜히 더 빈정거리고 싶은 느낌일 것이다. 레이스반은 그런 니코의 자신도 모르는 꽁함을 훤히 보인다는 듯 씩 미소 짓는다.



”길잡이는 깡이랑 겁 없는 것도 필요할 거 같아서. 그걸로는 얘가 제격으로 보이지 않아? 바깥에 나가면 얘는 확실히 우리 손에서 감시당할 거라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뭐, 제가 선배들이랑 같이 다닐 것도 아니니까요. 더 말 안 할게요.“



레이스반은 그 말에 아쉬움이 가득 묻어난 눈길로 니코를 본다.



”누구랑 같이 다닐지 아직 못 정했으면 우리랑 같이 다니는 거 어때? 너같이 좋은 전력이 함께 해준다면 우리도 꽤 든든한데. 우리 꽤 수 많이 모아놨어. 이번에 같이 팀 먹게 된 애들 대부분이랑 그리고 각기 팀에서 마음 맞는 팀원들까지 데려와서 합치면 5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아.“


”수가 너무 많아도 인간들 눈에 너무 띄니까 안 좋을걸요. 금방 표적이 될 거예요.“


”일단 뭉치고 다녀보려고. 오히려 큰 무리에 기가 죽어서 인간들이 몸 사리고 다닐지 모를 일이지. 네가 걱정하는 상황 같은 게 온다면, 잠깐 몇 그룹으로 분리했다가 다시 나중에 합치는 식으로 말이야. 인간만 경계해서는 안 될 일 같거든 이번 일.“



니코는 킹하트 일당 때문에 그러냐, 물었으나 레이스반은 ‘그것도 그거지만...’라고 말끝을 흐렸다. 바깥이 수인들이 판을 친다면... 예감이 좋지 않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도 전, 빼주세요. 원래 팀원들이 역시 편해서요.“


”흠, 어쩔 수 없지. 우린 이대로 지금 탈출할 거야. 인질인 인간들이 저렇게 다 빠져나가는데 빨리 살길 찾아 떠나야지. 너희들도 그냥 나가는 게 좋을 텐데... 뭐, 무사히 잘 빠져나가길 바랄게.“


”그래, 너희도 무사하길 바랄게.“


”아, 잠깐만 헤르메스.“



레이스반은 헤르메스에게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떠나려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상대 팀이기도 하고 내가 리더니까 그동안 티를 별로 못 냈거든.“



레이스반은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다. 그것은 매직펜이었다. 헤르메스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건네주는 것을 받았다. 누군가의 사인이 기재된 펜이었다. 아마 굿즈 상품 중 하나이리라.



”여기로 오는 길에 굴러다니길래 주워 왔지. 이왕이면 네 사인이 그려진 걸로 다가 하면 좋을 텐데 그럴 여유는 없어가지고. 아, 정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레이스반이 반바지를 훌렁, 내렸다.



”헤어지기 전에 여기다 사인 좀 해줄래?“


”....“



그가 가리킨 곳은, 드로즈였다. 헤르메스는 가운데를 크게 차지하는 자기 얼굴과 기묘한 눈높이에서 만났다.


헤르메스는 처음엔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 이 정도면 귀엽지. 팬 중에서 더한 녀석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맨살 엉덩이에 해달라는 인간도 있었는걸. 다만, <ㅈ국> 리더가 날 이렇게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줄은 몰라서 잠깐 놀란 것이다.


헤르메스는 멋쩍게 웃고, 무릎을 접어 사인해주었다.


그를 따라 야누스도 니코도 충격을 받았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나즐리는, 입을 쩍 벌리다 사인받는 레이스반의 무척 기뻐하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발. 그래, 레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저렇게 좋아하는 얼굴이면 뭐든 뭔 상관이야!’


나즐리는 팬심으로 충격을 갈무리하고 눈을 질끈 감아 속으로 그를 응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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