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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새 님의 서재입니다.

댕댕아 너의 주인은 말이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원새
작품등록일 :
2022.06.14 17:03
최근연재일 :
2023.02.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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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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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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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6화

DUMMY

"...."



붉은 피가 대리석 이음새를 따라 조금씩 퍼져 흐르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큰 키에 비해 좁은 공간 안에서 쭈그려 앉아있다. 충격으로 덜덜 떨리는 손에 흥건히 묻은 피를 내려보던 눈을 올려 한 구의 시체를 망연히 바라본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회색 눈. 붉은 핏방울들이 튄 흰 머리칼을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을 안아 올리려 한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팀 내의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다른 하나인 '설틴'이 말한다.



"죽었어, 내려놔."



털썩.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담담한 목소리에 헤르메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또 한 번 등짝을 쳐 줄 생각으로 들어간 곳에는 참혹한 모습의 울저가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워치를 가지러 오겠다고 한 녀석이 여기 죽어있는 건데...?



"이럴 수 없어...! 고작 규율대원이 울저를 죽일 수 있을 리 없다고!"



헤르메스가 창고에 와보니 설틴과 킹하트가 있었고 그들 건너 울저가 창고 구석에서 여러 선반 사이 밑에서 벽에 기대 죽어있었다. 얇고 날카로운 것으로 당한 듯 보였다. 목 부근에 부위는 작지만, 사망 이유로 보이는 깊어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먼저 와 있던 그들은 울저가 규율대원들에게 당한 것 같다고 한다.



"여럿한테 당한다면 그럴 수 있지. 이 녀석들도 작정했나 보네."



평소 무신경한 말투인 설틴의 말은 차갑기 짝이 없었다.



"하...!"


"헤르... 후... 이 일은 일단 우리끼리 비밀로 해두자. 자칫, 혼란이 생길 수 있어."



킹하트는 주먹을 꽉 쥐며 패닉에 빠진 것 같은 헤르메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헤르메스는 제 뒤에 서 있는 킹하트를 돌아보았다.



"...왜?"


"우리는 이곳에 하루만 머물 거니까. 팀원이 죽었다는 혼란과 분노 때문에 일이 어그러질 수 있어. 관객들을 공격한다던가 말이야. 야누스 같은 다혈질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


"야누스는 앞뒤 안 가리는 바보는 아니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다른 팀 선수들은 어떨지 몰라. 개중엔 인간을 증오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불씨가 될 계기는 최대한 만들고 싶지 않잖아."


"...아니. 난 숨기지 않을 거야. 아무리 하루라도 해도 숨기지 않아. 난 어떤 것도 내 동료들에게 숨기지 않을 거라고."



헤르메스는 발에 힘을 주어 일어나 자신보다 더 어두운 빛깔인 회색 눈과 금안을 번갈아 보며 선득한 눈빛을 내었다.



"비밀은 없다. 우리 약속 중 하나였어. 잊은 거야 대장? 나 먼저 제어실로 가서 다른 녀석들한테 알려줄 거야. 너희들은 울저를... 다른 넓은 방에 잘 눕혀놔 줘."



괴로운 빛을 띄는 눈은 좁은 구석 울저의 시체를 담았다 이내 고개를 돌려 몸을 움직인다. 헤르메스는 싸하고도 자신을 면밀히 살피는 눈초리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비좁은 통로를 나가려 헤르메스는 어깨를 틀었다. 회색. 색은 같지만, 명도가 다른 헤르메스와 설틴의 두 눈이 서로 눈꼬리 끝까지 집요하게 얽히다 흩어진다. 헤르메스가 창고를 떠나고 복도 밖을 뜀박질로 잠시간 채운 것이 사라질 때까지, 창고에 남은 수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복도 밖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해졌다.



"눈치챘으려나."


"...됐어. 이미 '밖'도 '안'도 시작됐으니까. 거기다, 울저를 죽인 마당에... 너...!"



쾅! 우르르, 땡그랑 땡땡.



킹하트는 설틴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채 선반에 밀어붙였다. 선반에 있던 상자 안 잡동사니들이 떨어져 피로 적신 바닥 위를 나뒹군다. 어떤 것은 죽은 울저의 머리를 부딪히고 떨어졌다.


킹하트는 어두운 회색 눈을 가늘게 뜬 설틴을 보며 미간을 와락 구겼다.



"네가 어떤 녀석인지는 잘 알고 있지. 경고했던 거 잊었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특히 수인에 관해서는, 우리 팀원에 관해서는 더욱더 말이야! 그런데, 넌 주저 없이 팀원의 목을 찌르다니..."



울분을 삼키는 킹하트의 핏발 선 눈과 다르게 설틴의 눈은 고요했다.



"어쩔 수 없었잖아. 우리 얘기를 다 들었고, 포섭해려해도 다른 녀석들한테 알리겠다고 막무가내였어. 우리가 여기서 얘기하려던 건 어떻게 안 거야. 하, 저 몸을 어떻게 캐비넷에 구겨 넣은 건지... 대장, 이 일 계획하면서 누군가 죽어나갈 수 있다는 거 인지했잖아?"


"그게 네 손은 아니었어.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래? 유감이네."


"이 자식...!"



킹하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설틴은 그래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실수한 건 인정할게. 나도 놀래서 그랬어. 헤르가 눈치챌 수도 있겠어... 말을 맞추자. 의심하는 것 같아 보이면 잡아떼고."


"넌... 뭐가 그렇게 쉽지?"


"쉽다니. 나, 이 상황 전혀 우습게 보고 있지 않아."


"감정적으로 걸리는 게 없냐는 거야. 넌 같이 먹고 지내던 동료를 죽였어."


"난감하다니까. 그만하지? 빨리 여기 상황 수습해야지 대장. 수인의 권리를 위해서 어서 움직이라고."


"...네가 벌린 일 네가 알아서 해."


"아, 그래? 그럼 이 녀석 어디 큰 쓰레기통에 구겨서 버려도 되지? 안 보이게 뚜껑만 닫아놓으면 될 테니까."


"너!!"


"이런 나니까... 협조 좀 부탁하자고 대장."


"...."



킹하트는 설틴의 만행에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헤르메스는 킹하트를 어린 시절, 선수 훈련소에서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같이 지내는 몇 안 되는 동료였다. 그의 냉철함과 무게감이 있는 모습은 헤르메스에게는 좋은 대장이었고 기댈 수 있는 동료였다.


설틴? 설틴은 2년 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같이 뛴 녀석이다. 머리는 좋다는 걸 알지만 굳이 내세우지는 않고 요령만 부리려는 녀석.



'울저...'



울저의 키는 우리 팀원 중에서 가장 크다. 반올림하면 3m가 되는 체격이다. 그런 녀석의 목을 대다수 2m 아래인 인간이 찔렀다 라.


거기다가...


인간의 손이 쉽게 닿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잡동사니들 사이로 피 묻은 커터칼이 보였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어.'



킹하트랑 설틴...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인간들의 첩자?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럼, 도대체 뭐냐고...?!



헤르메스는 괴로움과 혼란스러움을 가득 안고 서둘러 제어실로 향한다.




.

.

.




"이건 또... 뭐야."


"헤르... 우리 쪽에서 연락을 끊을 수가 없어."



제어실에 와보니 웬 처음 보는 녀석의 얼굴이 제어실의 화면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헤르메스시죠. 안녕하세요. 협상가로 나온 유호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화상통화야?! 우리 얼굴을 보고 있어...!



"어이 유호진 씨 우리끼리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있다가 다시 연락해요."


[우리 조금 얘길 하죠, 헤르메스 씨.]


"있다가, 라고 했잖아."



울저의 죽음에 헤르메스는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서 다른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단 말이야!



[급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서요. 수인들이 민간인을 죽이고 보이는 것들은 죄다 부수고 있어서요, 물러날 수 없습니다. 그쪽도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이런 불편한 상황, 빨리 해결을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무슨 소리야.



"...뭔가 착오가 있나 본데. 우리는 관람객은 죽이지 않았어. 부순 것도 없을 텐데. 다들 뭐 들은 거 있어?"



난 질문과 함께 제어실 안에 있는 수인들을 모두 돌아보았으나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행히 관람객까지는... 그럼, 바깥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까...? 무관하다고요?]


"바깥?"


[외부 cctv를 보세요.]


"딱히... 문제없는데."


[지금 경기장 밖만 해도 수인들이 날뛰고 있어요. 저희 쪽 헬리캠 실시간 영상을 보여주죠.]



화면이 바뀌었다. 길거리에 나온 수인들이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게 모든 걸 부수고 있었다. 가로수는 물론이고 전봇대도 넘어트리고 창을 깨트리고 상점들을 털고. 뭉쳐있는 수인들 사이를 자세히 보면 인간이 그들 발밑에서 쥐어 터져라, 맞고 있었다.



[이 사태를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끊어."


[헤르메스 씨.]


"일단, 끊으라고. 30분 뒤에 연락해."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여러분이 저희에게 협조해주길 믿겠습니다.]



뚝.


화면은 다시 어느 cctv화면으로 바뀌었다. 화상 통화가 끝나고 수인들은 패닉이었다. 직원 수인들은 선수들에게 정말 계획에 없던 거냐 아니면 거짓말을 한 거냐 물었다.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저 영상 뭐냐며 인간들이 조작된 영상을 보여준 거 맞지 않냐며 다들 하나 같이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헤르메스는 이 혼돈 속에서 잠시 시야를 거둔다. 고개를 내려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헤르메스와 같은 팀 동료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로 제어실에 없었다. <ㄴ국>에서는 울저와 헤르메스가 제어실 담당이었다. 헤르메스는 얼마 안 돼,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 다들 혼란스러운 거 아는데... 얘들아... 우리 팀 울저가 죽었어."



그 갈라진 목소리에 잠시 혼란은 조용해졌다.



"...뭐? 무슨 소리야? 그 녀석이 왜?"


"아무래도... 우리 팀 설틴이랑 킹하트가 그런 것 같아."


"뭐?!"



일동 경악 어린 목소리들에 헤르메스는 조금 전 다녀온 창고에서의 상황을 설명했다.



"...설마. 너희 같은 팀 동료야.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해. 걔네 말이 맞을 거야. 응? 헤르? 그 말이 맞을 거야."



같은 국가팀 <수중 사냥> 리더는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려는 헤르메스가 걱정되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울저가 죽은 것, 통신 이상, 그리고 우리가 모른다는 바깥... 너무 이상하잖아. 뭔가 우리 눈을 가리는 게 있어. 블라인드 올려줘.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인간들이 우리 내부 상황을 보려는 거짓말일 수 있어!"



다른 선수들의 반발에도 헤르메스는 단호하게 직원에게 어서 올리라 또 한 번 말했다. 평소랑 다른 분위기의 헤르메스에 반대하는 선수들도 더 이상 말리지 않는다. 직원은 침을 삼키고 손을 움직인다.



"층별로 블라인드를 조정할 수 있으니까 여기 층만 건드려볼게."



헤르메스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곧장 제어실로 나와서 복도 창으로 향한다. 성큼성큼, 선수들도 그 뒤를 곧바로 따라 나갔다.


검은 블라인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가고 그를 따라 흰 조명 빛을 뚫고 햇살이 드리워진다.


창 앞에 도착한 선수들은 아직 다 올라가지 않은 블라인드 아래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움직이는 것들이었다.


길거리를 두려울 것 없이 부수고 다니는 수인들이었다.


홍보성 문구를 띄우는, 수많은 홀로그램 드론들을 겨냥해 파괴하고, 둔기를 가져와 여러 시설들의 설비를 부순다. 수인 몇이 모여있는 곳을 자세히 보면 그들의 발길질 밑에 인간이 있었다.


블라인드가 다 올라갈 때까지 그것들을 멍하니 보던 헤르메스는 창문을 열었다. 10층이었지만 헤르메스는 지상의 모든 것이 보이고 모든 것이 들렸다.


파괴와 비명. 그것이 전부였다.


마치 참혹한 야생이 눈 앞에 펼쳐지듯.




위이잉...



한 외부 드론이 헤르메스의 시야를 가로질러 나타났다.


헤르메스의 얼뜬 얼굴이 잠시 드론의 렌즈에 담겼다. 그는 이내 미간을 와락 구기고는 창을 닫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제어실로 들어갔다. 직원은 선수들이 다시 들어오는 것과 함께 블라인드를 내렸다.



"저거 뭐야?! 아는 거 없어 헤르메스? 아니, 수인들이 죄다 저렇게 날뛰는 건데... 목줄, 목줄이 왜 꺼져있지? 초록 불이 안 들어와 있었다고! 헤르메스 뭐 아는 거 없어? 정말로???"


"킹하트... 설틴...을 찾아내야 해. 걔네야."


"우리를 찾는 거라면 여기 있어."



마침, 킹하트와 설틴이 일 처리를 하고 제어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기 전 복도 창 블라인드가 올라간 걸 확인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린다.



"너희... 울저 죽였어?"


"숨길 필요는 이제 없겠네. 맞아, 정확히는 내가 죽였어. 확실히 할 건 확실히 해야지."


"이 개자식!!!"



쾅!



헤르메스는 설틴을 벽 쪽으로 밀쳤다. 설틴은 밀쳐진 뒤통수에 충격에 살풋 미간을 찡그렸다.



"미안해 헤르메스, 실수였어."


"실수? 실수?! 넌 네 동료를 죽인 게 실수냐!!"



헤르메스는 설틴의 양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어쩌다가 울저가 우리 계획을 엿들었고 방해하려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당황했어. 당황해서 죽였으니까 실수지... 그러니까, 미안한 거잖아 헤르."


"...아오!!!"



헤르메스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신경질적인 고성을 질렀다. 그와 함께 잡고 있던 설틴의 어깨를 밀쳐내듯 놓고 몸을 돌린다.


잠시 고요하게 헤르메스의 숨소리만 제어실을 채우고 나서 헤르메스가 등만 보이며 입을 뗀다.



"말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같아. 헤르. 수인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 다만, 네가 알던 거와 다른 점은 방식이지. 그리고, 응당 받아야 할 죗값을 말이야."


"그건 또 무슨..."


"헤르, 내가 다 설명할게."



킹하트가 선득하게 빛나는 회색 눈을 올곧이 바라본다. 헤르메스는 수인들의 우상이고,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인이다. 중요한 녀석인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이곳에서 6만여 명의 관객들로 인질을 잡아 항거해 오늘 하루 내로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불가능한 계획이야 헤르."


"인제 와서 무슨 소리야 그게!"


"인간들은 갖은 이유를 갖다 붙여 시간을 끌겠지. 그리고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럼, 그러는 동안 넌 관객을 정말 죽일 생각이었어?"


"규율대. 규율대를 죽여가면 되는 거잖아! 규율대도 똑같이 인간이니까!"


"아니, 달라 헤르. 다르다는 걸 아니까 너도 관객들은 안 건드리는 거잖아."


"...."


"인간들은 우리를 노예로 생각해. 그 본보기 적인 예가 목줄이지. 목줄의 기능은 세 가지지. 흥분할 시에 전기 충격, 위치 추적, 그리고 생존 여부. 노예가 덤벼들시 전기 충격, 노예가 탈출할 시 위치 추적, 그리고 그사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생존 여부 기능."



킹하트는 금안을 가늘게 뜬다.



"우리가 한 건 별로 없어. 그저, 목줄의 모든 기능을 끈 것뿐이야. 자유를 준 거지. 지금 저 바깥 아래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감정, 흥분이 폭발해 수인들이 여태껏 켜켜이 쌓여있던 고통을 호소하는 거라고."



이해를 못 하겠다는 얼굴의 헤르메스를 뒤로 하고 제어실 복도 밖을 킹하트는 잠시 응시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말이지..."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킹하트 넌 당당하다는 거지?"



헤르메스는 킹하트의 뒤통수에 대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래. 울저는 정말 예상에 없던 일이지만... 그 이외에는 후회없다 헤르메스.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야."


"...외부 cctv를 조작한 것도 네녀석 짓들이야?"



똑같았다. 우리가 반란 계획을 짜는 걸 들키지 않게 훈련 센터 숙소 cctv도 조작됐었다.



"그래."


"그리고 저 드론들도 네 녀석들이랑 관련 있겠군."


"그렇지."


"...그래, 궁금한 건 솔직히 많은데. 더 이상은 됐어."



언제 이 일을 계획한 건지, 배후는 누군지, 다른 동참하는 녀석들은 누가 또 있는지. 숨통을 조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됐다.


내가 왜 이 반란에 동참하게 된 건데.


이 난리 통에서 주인은 무사할까...?


마지막으로 본 어린 주인은 항상 검은 정장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다닐 정도로 약했다.



주인... 주인!!!




"이렇게 된 이상 다들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야."



헤르메스가 갑자기 이 일에서 손 떼겠다는 식의 말투에 다른 수인들은 당혹스러워한다.



"뭐...?"


"헤르메스! 무슨 소리야 일을 이렇게 벌여 놓고는!!"


"너희도 봤잖아. 수인들이 모든 걸 부수고 인간을 죽이고 있어. 그리고 인간들은 곧 정비해서 그런 수인들을 죽이겠지. 시간 문제야. 공존의 꿈은 이제 불가능해. 킹하트 같은 녀석들이 무슨 일을 꾸며 놨는지는 모르지만, 누가 누구의 발밑에 깔리는가만이 남겠지."



관람석으로 가서 관객의 옷을 뺏어야겠어. 긴 겉옷이랑 모자도. 마스크 같은 것도 찾아야 해. 규율대복에는 혹시 모를 추적될만한 장치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헤르메스는 슈트를 해제해 바닥에 던져두고 원래의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왔다.



"헤르,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지 마!"


"인간들이랑 같이 잘살아 보자고 들뜨게 할 때는 언제고?!"



내가 떠나려 하는 분위기에 다들 난색을 보인다. 난 출입구 쪽으로 돌리려던 발을 멈추었다.



"무책임? 난 이 일의 주동자가 아니야. 그래, 나서서 움직이고 하는 것들 있었지.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있어서였어. 처음부터 틀어져 있던 계획이라는 거 확인한 이상, 나 혼자 떠나겠어."


"우리는... 우리는 어떡하라고."


"너희도... 너희 길을 찾아. 동참하지 않겠다는 수인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든, 킹하트가 하라는 대로 하든, 아님, 바깥에 나가서 마음껏 날뛰든."



난 지금 내 주인이 무사한지 그것만 해도 미칠 것 같아.


헤르메스는 마음을 먹은 듯 제어실 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킹하트의 입에서 떨어진 한 이름에  큰 보폭을 멈춰낸다.



"차새벽."



헤르메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홱 돌아보았다.

킹하트가 지그시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이름을 네가 왜.



"놀랐군. 그래, 단 한 번도 넌 우리에게 네 주인에 대해 제대로 말한 적이 없으니까. 뜰채에게 잡혀 와 주인이랑 헤어졌다는 정도만 지나가듯이 말하고 말이지."


"...어떻게. 어떻게 아는 거야? 설마 새벽이 한테 무슨 헛짓거리라도 한 거냐?!"


"난 네가 훈련사한테 부탁한 얘기밖에 몰라. 심지어 나이도 모르지. 너도 모르니까. 피부가 하얗고 검은 눈에 검은 머리 그리고, 웃는 게 예쁜 여자아이. 네가 말한 것만 말이야."



나의 주인. 나의 새벽.



"우리 쪽에서도 네가 말한 정보와 다른 외부 정보를 참고해서 꽤 긴 시간 동안 투자해서 찾아봤는데 말이야..."



킹하트의 말 한 자 한 자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훈련사들과 기업들이 안 찾거나, 찾았어도 못 찾은 척하는 게 아니라 못 찾은 게 맞더라고. 우리도 못 찾겠어, 이십 년이 되가는대도 말이야."


"...."


"그게 뭘 뜻하냐면, 새벽이라는 인간 쪽에서 일부러 자취를 감춘 거라는 거야. 너가 찾아올까 봐 말이야. 그러니까 주인 찾으러가는 건 그만... 컥!"



퍽!!



헤르메스는 킹하트에게 순식간에 다가가 복부를 세게 걷어찼다. 몸을 수그려 콜록거리는 킹하트를 헤르메스는 차디찬 눈으로 내려본다.



"넌 더이상 내 대장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잡소리를 조언이라고 하고 입 털지 마."


"콜록... 헤르... 네 주인은 잘해도 이미 죽었어. 굳이 가서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아주 잘된 일이지. 내 주인이 쉽게 드러났다면 너희가 내 주인을 '잘해도' 인질로 이미 삼아놨을 테니까. 가장 빠른 견종인 우리 그레이하운드의 사냥 방식이 뭐지 킹하트?"


"...후각이 아닌 시각을 따라."


"그래. 난 이 다리로,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헤르메스는 비장한 눈빛을 띠고 등을 돌리려다가 이쪽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에 눈가를 움찔한다.



"...다들 날 믿고 따라온 녀석들도 많았을 텐데 미안해. 미안하지만, 이해해줘. 한 번 마음을 준 주인이 수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잖아. 거기다 내게 첫 주인이었어. 절대 잊을 수가 없다고."



헤르메스는 괴로운 눈매를 지었다. 그는 그렇게 제어실을 그렇게 떠났다. 남겨진 수인들의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킹하트는 설틴의 부축받아 일어났다. 제대로 먹이고 갔군.



"헤르가 이렇게 빠져나가게 할 수는 없지. 설틴."


"어, 시작한다?"


"그래."


"모기 새끼야, 들은 대로 전해."


ㅡ ....



다른 선수들이 뭐라 이들에게 말을 붙이기도 전, 모든 전력이 꺼진다.


모두, 암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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