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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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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7,680

작성
23.04.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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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신관 이사벨(2)

DUMMY

“잠깐.”


이사벨은 손을 뻗으며 그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당신의 전생을 봐 드릴까요?”


아슬라프는 그녀가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를 믿어도 좋을지,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복종할지 떠보는 것이었다.


만약 전생을 보는 걸 거절한다면 아슬라프가 자신의 사람이 되는 걸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푸티차를 잡아 온다 해도 이용만 하고 아슬라프가 재판에서 이기도록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생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사벨은 자신의 손 위에 손을 올려놓으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지금 그녀에게 손을 주면 전생이 알렉세이1세라는 걸 들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협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전생을 그렇게 쉽게 본다고?’


아슬라프 자신도 환영으로 타인의 전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상대의 목숨을 구하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그의 전생과 연관된 자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이사벨은 손을 접촉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의 전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전생을 보는 겁니까?”


아슬라프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사벨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인과교의 교리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49일간 자연을 떠돌며 자연과 뒤섞여 정화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임산부의 뱃속에 태아에게 들어가서 다른 육체로 환생하게 됩니다. 새로운 육체로 들어가 새로운 뇌를 갖게 되면서 전생의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그런데 죽음의 순간에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면서 영혼에 잠재되어있던 전생의 기억이 활성화되어 눈앞에 보여집니다.”


아슬라프가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줄 때마다 그의 전생을 보게 되는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가 전생을 보았습니다. 내 영혼이 육체를 떠날 뻔한 위기의 순간에 각성하게 된 겁니다.”


이사벨은 자신이 전생을 각성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전생에도 높은 신분의 성직자였고 그 업으로 인해서 신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생에 지냈던 수도원의 모습과 사건을 정확히 묘사해서 사람들에게 신통력을 인정받았다.


“아무나 전생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인연이 깊은 사람의 전생은 더 잘 보이는 법이지요.”


인과교 경전에 따르면 전생을 보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정신력이 요구되었다. 49일간 자연에 정화되는 과정에서 잠시도 정신을 놓지 않고 전생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49일이 지나 환생할 수 있게 되면 곧바로 다른 육체로 환생해야 전생을 보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생과의 인연도, 전생을 보는 능력도 스러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알렉세이1세는 복수를 위해 전생을 기억하려고 49일간 오직 자신의 전생만을 생각하며 지냈다는 말이군.’


아슬라프는 알렉세이1세가 죽어서도 전생을 기억하려고 애썼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슬라프가 전생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었다.


‘나는 각성하고 나서 전생과 상관없이 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알렉세이1세가 못 이룬 것들을 이뤄가는 삶을 살고 있지만, 처음에는 알렉세이1세였던 과거는 잊고 살려고 했다.

죽어서도 과거의 기억을 지키려고 했던 알렉세이1세를 생각하면 무시했던 자신의 전생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신관님은 어떻게 손만 잡으면 전생을 알 수 있으신 겁니까?”


“그것은 제가 신에게 선택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글자로 보이시는 겁니까?”


캐묻는 아슬라프에게 이사벨은 약간 성가시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전생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죠.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이름이 딱 떨어지게 나오는 게 아니라면 얼굴만 보고 누군지를 짐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사벨은 알렉세이1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얼굴을 보면 알아볼지도 모른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슬라프는 자신의 전생을 알고 있으니, 이사벨이 진짜로 전생을 보는 능력이 있는지, 그런 능력이 있는 척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알아낼 수도 있었다.


‘어디, 얼마나 잘 맞추는지 보자.’


아슬라프는 손에 낀 레이스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바닥에 얹었다.


이사벨은 눈을 감고 아슬라프의 손에서 영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당신의 전생은...”


이사벨은 숨을 후 하고 내쉬며 중얼거렸다.


“당신은 농부였군요. 밭을 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다음 순간,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 아닌가? 병사였나?”


그러더니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농부였던 것 같군요. 아, 아닌가?”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눈을 떴다. 아슬라프는 그녀가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슬그머니 손을 뺐다.


이사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양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뭔가 이상하게 여러 모습이 겹쳐 보이는군요.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전생에 전생까지 보신 건 아닙니까?”


아슬라프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전생의 전생을 본 사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농부와 전투를 치르는 군대가 보였어요.”


이사벨이 전생을 보는 능력이 없는데 보았다고 거짓말하는 거라면, 아슬라프의 전생이 뭐라고 한마디로 단언했을 것이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 혼란스러워한다는 건 이사벨의 능력이 순전히 거짓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전쟁에 동원된 농부였나보군요.”


아슬라프는 다시 장갑을 끼고 정중하게 말했다.


“이사벨 신관님의 신통력은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하십니다.”


아슬라프의 칭찬에도 이사벨은 어딘지 꺼림직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슬라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슬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하고 신관의 방을 나왔다.


신전을 나온 아슬라프는 말에 올라 기다리고 있던 시종에게 말했다.


“가자.”


한참을 말을 달려가던 아슬라프는 주위에 자신의 하인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레이스 장갑을 벗었다.


“갑갑해서 혼났네.”


반지를 빼고 손바닥을 문질러서 가죽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뱀이 허물을 벗듯이 손바닥 가죽이 주르륵 벗겨졌다.


지난번 전투에서 전사한 자의 시체에서 벗긴 손바닥 가죽으로 얇은 장갑을 만들어서 손에 끼고 있었다. 손바닥 가죽 장갑의 실밥과 이음매를 감추기 위해서 두꺼운 반지를 여러 개 끼었다.


그러니 이사벨은 손바닥을 아슬라프의 손과 직접 접촉할 수 없어서 제대로 전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바닥 가죽의 주인이었던 자의 생전 모습과 전생을 보고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그래도 아예 못 맞춘 건 아닌 걸 보면 뭔가 능력이 있긴 하네.’


그녀가 전생을 보는 능력이 있다면 아슬라프도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그냥 환상을 본 게 아니었다.


신전을 나온 아슬라프는 스타로비치 공국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잘 되셨어요?”


기다리던 사비나가 물었다.


“칼리 영주 모르겐이 푸티차라는 사이비교주를 보호하고 있지? 그 녀석을 잡아 오라는군.”


“아, 푸티차 교주를요?”


사비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푸티차의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어서 황제 폐하께서도 걱정하신다고 들었어요.”


“푸티차의 종교가 무슨 장점이 있어서 빠르게 번지는 거야?”


“워낙 비밀주의라서 자세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이비종교나 이단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거겠죠.”


사비나는 그들이 비밀집회를 하고 숨어다녀서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모르겐을 공격하고 이겨서 칼리 성을 차지한들 푸티차를 찾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모르겐보다 푸티차가 어디 숨었는지 소재를 우선 확보해야겠네.’


이사벨이 원하는 건 푸티차이니, 그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슬라프는 집시 사촌 프랑케를 불러들였다. 이런 은밀한 소문은 부유층을 상대하는 사비나보다 밑바닥 사람들을 접하며 떠돌아다니는 프랑케가 더 잘 알았다.


“푸티차가 종교집회를 어디서 하는지 알아낼 수 있나?”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만, 알아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 장소가 수시로 바뀌고 신분이 확실한 자에게만 알려준다고 하니, 군대가 덮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점조직으로 비밀리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푸티차의 종교집회를, 대규모로 이동하는 게 뻔히 보이는 군대로 추격한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한다.


“그럼 신분을 숨기고 잠입해야겠군.”


프랑케에게 푸티차 종교집회에 참여할 방법을 알아보라고 지시한 지 며칠 후,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칼리 성 여인숙에서 푸티차 교도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아슬라프는 떠돌이 집시 상인으로 변장하고 칼리 성으로 떠났다.


칼리 성은 제국의 서쪽 끝에 있어서 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거리도 멀지만, 도로가 정비되어있지 않아서 길이 마차도 다닐 수 없는 거친 돌길이었다. 표지판도 없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야했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외진 곳이니, 사이비 종교가 번지는 거로군.’


아슬라프는 말발굽에 박힌 돌을 칼로 빼냈다. 길이 엉망이라 말이 수시로 발을 절었다.


마침내 도착한 칼리 성은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가 나는 모습이었다. 듬성듬성 돌이 빠진 성벽, 인기척이 드문 거리, 서로 말이 없는 사람들까지.


“여깁니다.”


낮인데도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전부인 어두운 여인숙에서 프랑케가 기다리고 있다가 손을 흔들었다.


“푸티차 교에 관심있다고 하니까, 사람을 보내준다고 합니다.”


그냥 어중이 떠중이 다 집회에 데려가는 게 아니라, 먼저 신원 점검을 하고 데려가는 모양이었다.


“수고했다.”


아슬라프가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말라비틀어진 빵을 집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것조차 맛있어 보였다. 멀건 수프에 적셔서 입에 쑤셔 넣었다.


프랑케는 주위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푸티차 교주는 알렉세이1세를 신으로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뭐? 알렉세이1세를 신으로 모셔?”


아슬라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먹다 말고 되물었다.


알렉세이1세는 사람인데 신으로 모신다니.

성스러운 기적을 행하고 죽은 역사 속 인물을 성자로 추모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알렉세이1세는 그리 오래전에 죽은 사람도 아니었고, 기적을 행한 적도 없었다.


“알렉세이1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이 크니까,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알렉세이1세가 오랜 기간 역적 취급 당했지만, 그가 억울하게 매도당한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 알렉세이1세가 재평가되면서 알렉세이1세를 내세운 푸티차교도 급속히 성장했다고 한다.


“모르겐은 대체 왜 그런 이상한 사이비교주 푸티차를 보호하는 건데?”


자신의 영지에 사이비 교세를 퍼뜨리는 푸티차를, 성주인 모르겐이 왜 굳이 이사벨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숨겨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르겐도 푸티차를 이용하는 겁니다. 모르겐은 자신이 알렉세이1세를 최후까지 지켰던 기사단이라고 선전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알렉세이1세가 신격화되면 모르겐의 명예도 같이 올라가는 겁니다.”


“모르겐이? 알렉세이1세를 최후까지 지켜?”


아슬라프는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뻔뻔스런 놈.’


모르겐의 행적을 아는 아슬라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손으로 이마를 쳤다.


전장에서 가장 먼저 도망쳐놓고 능청스럽게 최후까지 지켰다고 과거를 세탁하며, 알렉세이1세의 명성을 이용해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 먼 칼리 성에서 거짓말로 사기를 쳐도 통하는 것이다.


‘모르겐 녀석. 칼리 성을 빼앗고 정당성이 부족하니 저런 엉터리 계보를 내세워서 권위를 얻으려고 하는군.’


사람들은 모르겐의 실체도 모르고, 그의 말만 믿고 알렉세이1세의 충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알렉세이1세의 명성을 이용해서 부족한 자신의 권위와 인기를 채우는 것이 푸티차와 모르겐이 서로 공생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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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신관 이사벨 23.04.15 538 13 12쪽
110 상속 전쟁(2) 23.04.14 557 13 12쪽
109 상속 전쟁 23.04.13 564 14 13쪽
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6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4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4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19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8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9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51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7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6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50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50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7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7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3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6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8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5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6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42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7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7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5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5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8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50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20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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