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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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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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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공작의 장례식

DUMMY

며칠 후, 스타로비치 공작이 세상을 떴다. 조용히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았다.


‘편히 잠드십시오. 다시 좋은 인연으로 환생하시길.’


아슬라프는 두 번째 아버지인 공작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상주가 되어서 공작의 장례식을 주관했다.


“인근 성주와 귀족들에게 장례식을 알리고 조문하도록 해.”


장례식에 참석한 영주들은 자연스럽게 아슬라프가 공작의 아들로서 정통성을 가진 후계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례식을 예법에 맞춰 성대하고 엄숙하게 치러야 했다. 스타로비치 공국의 총리에게 의전에 특별히 신경 써서 흠 잡힐 곳 없이 준비하라고 일렀다.


“비용은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서 장례식을 준비하라.”


평범한 백성들도 공작을 조문할 수 있도록 수도원을 개방하고, 병력을 배치해서 많은 인파가 몰려도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천정이 높은 수도원에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롱한 빛이 새어들어오고, 성스러운 합창이 울려 퍼졌다. 값비싼 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하얀 백합꽃이 주위에 장식된 가운데, 공작의 관이 중앙에 안치되었다.

아슬라프는 검은 상복을 입고 상주로서 공작의 시신이 공개된 수도원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저분이 아슬라프 스타로비치 공작이시군.”

“예전에 스타로비치 공국에서 비서로 일하신 적이 있지.”

“나도 기억나. 그때 우리 마을 돌다리 확장공사를 해주셔서 지금까지 편하게 다니고 있지.”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조문객을 맞는 아슬라프의 모습을 보면서 차츰 그를 자신들의 영주로 인식했다.


봉신 성주들이 속속 도착했다. 아슬라프는 정중하게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아슬라프 스타로비치 공작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슬라프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떠돌이 집시 혈통의 서자로 연족과의 전쟁에 승리하고, 25살의 나이에 공국을 세워 후작이 되고, 이제 스타로비치 영지를 물려받아 공작이 된 자. 그런데 그가 자신들의 주군이 된다니.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부친께서 돌아가셔서 얼마나 황망하십니까.”


어딘가 뼈가 있는 질문이었다. 아슬라프가 스타로비치 공작의 죽음을 슬퍼하긴 하는지, 영지를 상속받아서 기뻐하는지, 진심을 떠보는 듯한 말이었다.


“아버지와는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만나 함께 사선을 넘은 사이라 더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슬라프는 공작과 자신의 인연이 우연이 아님을 강조했다.


“아버지께서는 연족에게 사로잡히셨을 때도 자존심과 기개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훌륭한 군인이셨습니다. 한편으론 신하와 백성들에게는 너그러우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들보다 공작을 더 잘 안다는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의 능력을 알아보고 믿어주신 분이셨습니다. 제 고향 베덴 성이 연족에게 공격받자 제게 선뜻 군사를 빌려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연족을 물리치고 베덴 성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공작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영주들은 아슬라프의 무용담에 빠져들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공작님께 들었습니다.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차츰 아슬라프를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아닌, 공작의 오른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의 주군으로 인정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미하일 백작이 도착하셨습니다.”


시종이 들어와서 미하일 백작이 당도했음을 알렸다.


“어서 모시거라.”


아슬라프의 명령에 시종은 백작을 안으로 안내했다.


미하일 백작은 아슬라프보다 서너 살 많은 품위있고 잘생긴 젊은이였다.


“안녕하십니까. 미하일 백작입니다.”


그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자신의 주군 스타로비치 공작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첫눈에 그가 마음이 따듯하고 정이 많은 사람임이 느껴졌다.


“부친께서 영면하시니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저도 스타로비치 공작님이 돌아가시니, 기대어 쉬던 큰 나무가 쓰러진 것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보는 아슬라프를 경계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따듯한 말투로 위로했다.

온화하고 조용한 행동거지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저래서 다른 영주들한테 인기가 많군.’


사비나의 말로는 남의 뒤통수를 치거나 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으니, 아슬라프도 그에게 가면을 쓰지 않고 솔직하게 대했다.


“생부처럼 저를 아껴주셨는데,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보내드려서 아쉽습니다.”


미하일도 아슬라프의 진심이 느껴지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표정과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


“혹시 전에 어디서 뵌 적이 있습니까?”


아슬라프가 묻자, 그는 잠시 아슬라프의 얼굴을 쳐다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오. 저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군요.”


아슬라프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어디서 봤더라.’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장례식은 사건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배를 드리고 성직자가 스타로비치 공작의 업적을 기리고 좋은 환생을 하기를 기원하며 기도했다.


백성들도 그들을 잘 보살펴주었던 공작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무사히 장례식이 끝나는가 싶었다.


쾅-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예배당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한 사람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갑옷을 입고 칼을 찬 모습이었다.


“이 장례식은 무효다.”


그는 손가락으로 아슬라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가짜가 장례식을 주관하다니. 당장 중지하라.”


“누구십니까? 이름을 밝히십시오.”


아슬라프는 그 무례한 자가 누구인지 대략 짐작이 갔지만 일부러 위엄있게 나서며 물었다.


“나는 구스타프 후작이다. 스타로비치 공작의 팔촌 조카이며 스타로비치 공작령의 상속자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서 저 가짜를 끌어내고 장례식을 당장 멈추지 못할까!”


안하무인인 그의 태도에 은쿤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나서려고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아슬라프는 재빨리 눈짓으로 그를 말렸다. 무례함에 똑같이 무례함으로 상대하기보다는 이럴수록 예를 갖춰서 상대가 얼마나 한심한 족속인지 밑바닥을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는 편이 낫다.


“장례식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놀라서 술렁거리던 군중은 차분한 아슬라프의 말에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을 쳐다보았다.


“스타로비치 공작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예를 갖춰주십시오. 지금은 고인이 우선입니다. 산 자들의 이야기는 장례식 이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군중들은 구스타프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들이 애도하는 공작의 장례식을 망쳐버린 구스타프에 대한 무언의 원망이 담겨있었다.

스타로비치 공작의 신하와 봉신 영주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싸늘하게 구스타프를 노려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구스타프는 끙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영지를 상속받으려면 신하와 백성의 민심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공작의 먼 친척일 뿐이라 정통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늦게 오셨으니 저쪽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아슬라프는 구스타프를 내쫓는 대신 그가 앉을 자리를 마련하도록 일렀다.


어디까지나 이 장례식의 주관자는 아슬라프이고 구스타프는 그의 지시를 따르는 손님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준 거나 다름없었다.


‘이, 이건 계산에 없었는데.’


구스타프는 자신이 들어오면 아슬라프가 겁을 먹고 물러서거나, 자신에게 나가라며 덤빌 거라 여겼다. 그러면 자신이 칼싸움으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슬라프는 구스타프가 물을 흐릴 수 없도록 판을 짜 놓았다.

스타로비치 주민, 관리, 봉신 영주까지 이미 아슬라프의 명령을 따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사람들의 눈이 모두 그에게로 향하자, 구스타프는 마지못해 지정해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속하게.”


아슬라프는 성직자에게 장례식을 마저 마치도록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장례식은 계속되었다. 관을 운구해서 수도원 지하에 안치하기까지 별 다른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다.


구스타프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렸지만, 장례식 의전은 누가 봐도 압도될 정도로 장엄하고 성스럽게 치러졌다.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들어오고 나가는 조문객.

황홀하게 메아리치는 백여 명의 합창단의 노래소리.

고급 향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연기.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꽃잎.

감동적인 수도사의 제문.

장례식을 마치고 군중들에게 나눠준 빵과 포도주까지.

모든 것이 천상을 재현한 듯이 엄숙하고 환상적이었고 흠잡을 데 없었다.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고, 아슬라프는 영주들과 구스타프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가셔서 식사하시죠. 준비해 놓았습니다.”


구스타프는 거만하게 눈을 내리깔고 아슬라프에게 말했다.


“이 성의 주인은 나다. 그만 좀 나대시지?”


그는 아슬라프에게 다가서며 주먹질이라도 할 듯이 내뱉었다.


“계속 내 앞에서 까불면 아구창을 날려버리겠다.”


그때 미하일이 끼어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구스타프를 달랬다.


“구스타프 후작님. 엄숙한 장례식에서 얼굴을 붉히시는 건 지체 높으신 후작님의 인품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을 보아서 오늘은 참으시고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다들 급히 먼 길 달려오시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오셨을 텐데요.”


그의 말에 다른 제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구스타프를 말렸다. 그들의 지지를 얻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구스타프는 성질을 가라앉히고 한발 물러섰다.


“좋다. 내 오늘만 참지.”


그가 발걸음을 쾅쾅거리며 사라지자, 미하일은 구스타프로 인해서 기분이 상했을 아슬라프를 위로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급하게 준비하셨을 텐데도 이리도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아무리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들 아버지께 입은 은혜를 다 보답할 수 없습니다.”


미하일은 아슬라프가 예의바르고 경우에 밝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는지 따듯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아슬라프는 그와 좀 더 친분을 쌓기 위해서 식사 후에 방에서 따로 차를 마시며 현안을 이야기했다.


“하스문트 성의 샛강에 홍수와 가뭄이 자주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복구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빨리 복구해야 농사일이며 백성들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은행에서는 우리 사정이 급한 걸 이용해서 이자를 많이 받아가곤 하죠.”


“노헨그라드 공국에서는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기금이 있습니다. 각 영주들이 평상시에 보험금을 모아서 은행에 보관하다가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시스템이죠. 스타로비치 공국에도 도입할 계획입니다. 하스문트도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비나를 통해서 얻은 정보로 미하일과 이야기가 쉽게 풀렸다. 미하일은 확실히 예의없는 구스타프보다 합리적인 아슬라프에게로 마음이 기울어가는 듯 보였다.


“오신 김에 여쭤보겠습니다. 제후 선출 일자는 어떻게 잡으면 좋겠습니까?”


아슬라프는 미하일에게 향후 봉신계약 갱신을 위한 일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물었다.


공국의 왕이 죽고 작위를 다른 사람이 세습하면 개별적으로 계약을 갱신하기도 하지만, 봉신들은 투표로 선출하는 과정을 거쳐 한꺼번에 계약하는 것을 선호했다.

왕이 과도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걸 막기 위해서, 봉신들이 뭉쳐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어디까지나 상호계약관계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스타로비치 공국도 봉신하는 영주들이 모여서 새로운 왕을 선출하는 절차를 거쳐야 아슬라프가 그들의 왕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제가 선출되도록 지지해주시겠습니까?”


아슬라프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봐야겠지요.”


미하일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슬라프 후작님이 소문대로 훌륭한 인품과 능력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서 저희의 주군으로 손색이 없는 분 같습니다.”


호의적인 그의 반응에 마음이 놓였다.


‘미하일 백작은 나를 뽑아줄 것 같네.’


예절 바른 그가 거칠고 난폭한 구스타프보다 아슬라프를 선호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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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4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2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2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17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6 12 12쪽
»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7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49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5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5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47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48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5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4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2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2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7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1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3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39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3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4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2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1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4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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