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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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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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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타라스 자작(2)

DUMMY

문을 열자 어두운 방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니 타라스 자작의 모습이 보였다.

깊은 주름이 진 얼굴, 희게 센 머리카락, 게슴츠레한 눈, 어디에도 젊은 날의 시원시원한 타라스의 모습은 없었다.


‘야, 타라스. 네 꼴이 이게 뭐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변해버린 옛 친구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안 좋았다.

차라리 게오르그에게 붙어서 잘 사는 모습을 봤더라면 짜증은 날지언정, 마음은 안 아팠을 것 같았다.


충격적으로 변한 옛 친구의 모습에 아슬라프는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타라스가 먼저 술에 혀가 꼬인 채 걸걸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걸 어떻게 갖고 있지? 넌 누구냐?”


그의 앞에는 아슬라프가 주었던 작은 상자가 열려 있었고, 안에는 타라스 가문 문양인 말 머리 모양 손잡이가 달린 단검이 들어있었다.


칼날의 한쪽 면에는 ‘아주르와 빌라로스의 영원한 번영을 위하여’라고, 다른 면에는 알렉세이와 타라스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며’라고 적혀있었다.’

그것은 타라스 자작이 알렉세이1세에게 봉신의 증표로 준 선물이었다.


황제의 비밀 칙서 등 비밀문서를 보관했던 아주르 성의 비밀 금고에는 편지 외에도 도난당하면 안 되는 귀중품을 같이 보관하고 있었다. 아슬라프는 금고에서 타라스가 주었던 단검을 찾아서 가져온 것이었다.


“왜 네가 이걸 갖고 있나? 어서 말해.”


타라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칼을 뽑아서 겨누었다.


“네가 갖고 있을 물건이 아니다. 바른대로 말해. 어디서 훔쳤나?”


차가운 칼날이 아슬라프의 목에 와 닿았다. 술에 취해 흔들리는 칼날에 자칫하면 목을 베일지도 몰랐다.


“훔친 게 아니고, 발견한 겁니다.”


아슬라프는 타라스에게 침착하게 설명했다.


“아주르 성의 외교문서와 물품을 보관하는 금고에 보관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걸 네가 갖고 있냐고? 네까짓 게 뭔데?”


타라스는 버럭 소리 지르고 다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쳤다. 그 충격으로 아슬라프는 하마터면 뒤로 물러설 뻔했지만, 간신히 발 끝에 힘을 주고 버텨냈다.


프랑케는 불안한 표정으로 아슬라프를 쳐다보았다. 어찌되었던 타라스는 현재 게오르그의 신하였고, 이곳은 갤리온 공국의 일부였다. 게오르그가 아슬라프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지금,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위험할 수 있었다. 타라스가 그를 잡아서 게오르그에게 바치고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딜을 할지도 모른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프랑케와 달리 아슬라프는 위엄있게 힘주어 말했다.


“나는 아주르 성의 현재 주인, 아슬라프 렌케 후작이다.”


아슬라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프랑케보다도 타라스 자작이 더 놀란 표정이었다.


“뭐? 아슬라프 렌케 후작? 네가?”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게오르그가 너를 죽이겠다고 동원령을 내렸는데, 너는 여기엔 왜 온 거냐? 전쟁 준비하기도 바쁠 텐데.”


“그러는 너는 왜 게오르그 후작의 동원령에 응하지 않았나?”


타라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칼을 내려놓고 아슬라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적진에 제 발로 들어오다니. 내가 너를 붙잡아서 게오르그에게 넘기면 어쩌려고.”


“동원령에 응하지 않아서 파직당했으면서 싸울 준비는 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 너보다는 덜 미쳤지.”


아슬라프의 말에 타라스는 오히려 껄껄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슬라프는 죽음이 목전인데도 태연한 그의 모습이 답답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곧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죽게 될 텐데.”


“죽으면 죽는 거지. 사는 게 재미도 없는데.”


타라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조금씩 화가 치밀어오르는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빌라로스는 고립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주위에는 시시한 놈들 뿐이고. 주군이라는 게오르그 자식은 나를 도와주기는커녕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지. 그런데 내가 그놈을 위해 피를 흘릴 것 같아? 어림없지. 나를 능멸한 그딴 악당을 영주로 떠받들고 사느니 죽는 게 낫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힐끔거렸다.


“동원령을 거부했다고 내가 네 편에 서서 싸울 거란 착각은 마라. 난 이곳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게오르그 놈을 있는 대로 빡치게 할 작정이다.”


아슬라프는 술병을 다시 입에 가까이 가져가는 타라스에게 다가가서 술병을 빼앗았다.


“술을 마시면 뭐가 달라져?”


“어쭈? 이리 내.”


타라스는 술병을 다시 빼앗으려고 했지만, 아슬라프는 잽싸게 뒤로 물러서서 칼을 뽑았다.


“나를 이기면 술병을 돌려주마.”


“오호라.”


타라스는 간만에 흥미를 당기는 일이 생겼다는 듯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씨익 웃었다.


“그래. 요즘 애송이들은 검이나 잡을 줄 아나 한번 볼까?”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얍!”


날카로운 칼이 바람을 가르며 아슬라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슬라프가 옆으로 피하는 바람에 칼은 그의 뒤에 있던 책장에 꽂혔다.


“에잇!”


타라스가 책장에 박힌 칼을 뽑자, 그 바람에 책장이 흔들리며 책이 와르르 쏟아졌다.


“피할 줄은 아는 군.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난 1대1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거든.”


타라스가 입술을 소매로 쓱 닦으며 돌아섰다. 아슬라프는 차갑게 맞받아쳤다.


“알렉세이1세에게 졌잖아.”


“그래. 내가 싸워서 진 유일한 사람이지.”


타라스는 멈칫 하더니 고개를 떨구며 외면했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우리 군대 수레가 빌어먹을 진창에 빠져서 꼼짝 못 하는 새에 말이지.”


알렉세이1세가 최후의 전투에 내린 동원령에 타라스도 자신의 병사를 이끌고 출정했다. 그런데 그의 영지에서 갤리온 공국 영지인 전장으로 오는 길에 넓은 늪지대가 있었다. 수레바퀴가 진흙에 빠진 것을 간신히 끌어내서 전장에 도착했을 때, 알렉세이1세는 이미 전사한 후였다.


“미리 알아보고 돌아서 다른 길로 갔어야 하는데.”


성격이 급한 그는 서둘러 오느라 갤리온 공국의 지리정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출발했다. 무작정 짧은 거리로 가로질러 오다가 진창에 빠진 것이었다.


“알렉세이1세는 내가 일부러 꾸물거리고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지. 나를 겁쟁이로 여겼을 거야.”


그는 입술을 깨물며 자괴감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죽은 건 내 탓이다.”


타라스가 어째서 술독에 빠졌는지 짐작이 갔다. 알렉세이1세가 죽은 것이 자기 책임이라며 죄책감에 빠졌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 알렉세이1세도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믿었다.”


아슬라프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전쟁을 하다보면 온갖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전염병이 돌거나, 행군하다 길을 잃거나, 강을 건너다가 무기와 군량이 유실되는 일도 흔했다. 늪지대를 통과하는 타라스가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돌발상황이었다.

알렉세이1세는 흙투성이가 되어 도착한 전령으로부터 타라스의 부대가 진흙탕에 빠져 고생한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라스는 코웃음을 쳤다.


“흥.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전쟁인데.”


아슬라프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렉세이1세를 그렇게 모르나? 그라면 자기가 동원한 각 부대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건 꿰고 있었을 테지.”


그러나, 타라스는 아슬라프가 그를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화를 벌컥 내며 소리쳤다.


“네가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나를 우롱하려고 들지 마라!”


그러더니 칼을 바람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휘두르며 다가왔다.

칼이 아슬라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카캉-


아슬라프는 여유있게 그의 칼을 받아쳤다.

타라스의 검술은 여전했지만, 나이가 들어 힘이 약해지고 술에 취해 정확도가 떨어져서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다.


“제법이군!”


공격이 막히자 약이 오른 타라스는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가다듬고 칼을 고쳐잡았다. 이번에는 옆구리를 베고 곧바로 반대편에서 찌르는 공격이 들어왔다. 그의 검법을 알고 있는 아슬라프는 차분하게 막아냈다.


“하, 막았다 이거지?”


타라스는 씩씩거리며 연거푸 공격했지만, 번번이 막힐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아슬라프의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는 사정거리에 그의 검이 들어가지 못했다.

지친 그는 마구잡이로 돌진해왔다.


“이얍!”


그러나, 재빨리 옆으로 비켜선 아슬라프로 인해서 그의 몸은 그대로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끙끙거리며 일어선 그는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닦아냈다. 그러더니 있는 대로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너도 공격해! 이 자식아!”


타라스는 힘이 강하고 다양한 검술을 구사했지만, 자신의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초조해지곤 했다.

처음에는 타라스가 우세한 듯 보였지만, 알렉세이1세는 버티다가 그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 허점을 찔러서 이겼다.


아슬라프도 같은 전략을 쓰고 있었다. 타라스는 어딘가 익숙한 패턴에 데자뷰를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아슬라프와 겨루는 건 처음인데, 마치 알렉세이1세와 대련하던 때와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으아아앗!”


자신의 공격이 모두 막히자 타라스는 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칼을 찔러왔다.


캉-


아슬라프의 칼이 스르륵 그의 칼을 감으며 그의 손목이 꺾였다.


“윽!”


스텝이 꼬인 타라스는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숨을 헉헉 몰아쉬며 땀을 바닥에 뚝뚝 흘렸다.


“왜 알렉세이1세를 이기지 못했는지 아나? 스스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는 검술을 사용해서 빨리 쉽게 이기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슬라프의 말에 타라스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그걸 어떻게?”


수십 년 전 알렉세이1세와의 대련을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말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을 걸어 닫고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게 아닌가.”


아슬라프의 날카로운 질책에 타라스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갑자기 술이 확 깬 듯이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불현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나? 이런 조그만 성의 성주가 게오르그를 상대로 뭘 할 수 있냔 말이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간절한 목소리였다. 자신을 이긴 아슬라프라면 길을 제시해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뭘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라.”


아슬라프는 바닥에 쓰러진 그에게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고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뭘 하고 싶은가?”


타라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의 숨결이 거칠어지며 점차 분노가 끓어오르는 듯이 이마에 핏대가 섰다. 어금니를 깨물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복수. 내 친구이자 주군 알렉세이1세를 죽인 게오르그에게 복수하고 싶다.”


그의 말을 들은 아슬라프는 천천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하자. 복수.”


그러자 타라스의 눈빛이 생기를 되찾으며 번쩍였다. 술냄새를 풍기던 폐인과 다름없던 그의 구부정한 어깨가 펴지며 예전의 호걸 모습이 나타났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던 그가 새로운 목표를 찾고 부활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는 양손으로 아슬라프가 내민 손을 잡고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며 말했다.


“당신의 신하가 되겠습니다.”


“우선 이 술병들부터 싹 치워.”


아슬라프의 명령에 타라스는 자신의 방에 나뒹굴던 술병과 술통을 전부 치우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성직자와 증인을 불러서 아슬라프와 타라스는 봉신 관계의 계약을 맺었다.


“이제 타라스 자작은 아슬라프 렌케 후작의 신하이며, 빌라로스는 노헨그라드 공국의 소속이다.”


성직자의 선언에 타라스는 벅차오르는 듯이 양손을 모으고 신께 기도했다.


“드디어 게오르그에게서 벗어났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전부터 게오르그에게서 독립하고 싶었지만, 하급귀족에 작은 성의 영주인 그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슬라프와 같은 든든한 공국의 영주가 배경이 되어주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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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상속 전쟁(2) 23.04.14 558 13 12쪽
109 상속 전쟁 23.04.13 565 14 13쪽
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7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5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4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20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8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9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51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7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6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51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52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7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7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3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6 18 13쪽
»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9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6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9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42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8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7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5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5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8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50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21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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