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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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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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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신관 이사벨

DUMMY

수도원은 귀족 못지않은 넓은 농지와 소작농을 소유하고 있었고, 수도원 내부는 귀족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지대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수도사들과 귀족들의 법적 분쟁이 종종 벌어졌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수도사들이 귀족에게 패소했지만, 종교재판으로 가면 수도사들이 거의 승소했다.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 내에서 자신의 통치를 따르지 않는 수도사들이 눈엣가시였고, 수도사들은 그들을 통제하려 드는 귀족들에게 맞서 종교재판으로 대항했다.


수상 군터와 신관 이사벨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군터는 귀족과 수도사의 분쟁이 발생하면 종교재판을 걸어서 번번이 수도사의 손을 들어주는 이사벨의 권한을 제한하려 했다. 수도원에서 세금을 걷는 세금 개정법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이사벨이 그를 파문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실패했다.


어쨌든 성공하지 못했어도 그런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사벨은 군터를 몹시 괘씸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사벨 신관님이 아무 이득 없이 우리 편을 들어줄까요?”


아슬라프 역시 귀족이었다. 종교권력자인 신관이 굳이 자신과 상관없는 세속권력자들의 문제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이사벨 신관이 원하는 걸 들어주면 돼.”


“그게 뭔데요?”


“만나서 들어봐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슬라프는 신관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이사벨 신관.’


아슬라프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 알렉세이1세 때 그녀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기부를 받는 걸로 재정은 충분하지만, 신관은 군사력이 없었기에 이사벨은 귀족과 영주들 가운데 자기 편을 만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래서 알렉세이1세에게도 접근했지만, 그는 거리를 두었다. 알렉세이1세는 영지에서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기에 인과교 근본주의 수장인 이사벨과는 성향이 맞지 않았다.


‘영적 능력이 있다는 게 사실일까?’


이사벨은 사람들의 전생을 보는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서 젊은 나이에 신관이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니 이사벨이 맞췄는지, 못 맞췄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녀의 말이 맞을 거라 믿었다. 어차피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도 없었으니까.


그녀가 신관이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녀가 맞춘 전생이 틀린 것 같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신관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사벨이 내 전생을 맞추면?’


아슬라프는 이사벨을 직접 만날지 다른 사람을 보내서 협상할지 고민했다.

귀족들은 이사벨을 직접 만나기를 꺼려했다. 이사벨은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 전생이 보인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나더라도 가까이 가거나 손을 잡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아슬라프의 전생이 알렉세이1세라는 걸 맞춘다면?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지 모른다.


알렉세이1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 관계가 좋지 못했던 사람도 여럿 있다.

황제도 알렉세이1세를 내치려고 했던 만큼, 아슬라프를 극도로 경계하게 될 수도 있다.


‘엉터리로 맞춰도 문제고.’


이사벨이 그의 전생을 이상한 사람으로 지목하면 그 때문에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가 아슬라프의 전생이 무능하고 탐욕스런 자였거나 악질 범죄자였다고 말해버리면 아슬라프의 신용과 명예에 간접적으로 손상이 갈 수도 있었다.


이사벨의 말 한마디로 전생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낙인이 찍히고 그로 인해서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저절로 좋거나 나쁘게 결정되어버렸다.


이사벨이 신관이 되는 걸 반대했던 한 수도사가 그녀에게 당한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예배를 위해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그를 불시에 덮쳐 손을 잡고, 그 수도사의 전생이 신성모독으로 화형에 처해졌던 이교도라고 말하며, 자신이 신관이 되는 걸 반대하는 게 이단의 음모라고 몰아세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반대파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신관이 되었다.


그러니 누구도 섣불리 이사벨이 하는 행동에 반대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찍히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이사벨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사벨 신관은 좀...”


사비나는 내키지 않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나중에 더 큰 댓가를 치러야하지 않을까요.”


아슬라프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종교재판이 걸린 상태라, 종교의 권위를 통한 해결책밖에 없어.”


다른 경우라면 세속의 힘을 이용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아슬라프는 제국의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사벨이 기거하는 신전을 찾아갔다.


마차를 타고 두세 시간이면 제국의 수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산기슭에 신전이 있었다.


신전은 황궁 못지않게 호화로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황궁은 세속적인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된 반면에, 신전은 신과 성자의 그림과 조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사방이 번쩍번쩍한 금으로 칠해져 있고, 멀리서 수입한 신비한 향기가 나는 값비싼 향이 아낌없이 뭉텅이로 피워졌다.


아슬라프는 접견실로 안내되었다.


“신관님이 오십니다.”


문이 열리고 이사벨이 들어왔다.


‘이사벨...?’


그녀의 얼굴을 본 아슬라프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놀란 기색을 애써 누르며 표정관리를 했다.


‘어떻게 하나도 안 늙었지?’


30년 전 알렉세이1세가 마지막으로 이사벨을 봤을 때, 그녀는 3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러니 지금은 60대 후반일 것이었다.

그래서 아슬라프는 내심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주름진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요빅과 상티누스를 비롯해서 환생하고 만난 전생의 인물들은 옛모습이 남아있긴 해도 대부분 나이가 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벨은 검은 머리에 여전히 30대라고 봐도 믿을 정도로 팽팽한 피부였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피부에 광채가 나고 젊어 보였다.


여전히 변함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아슬라프는 놀랍다 못해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이사벨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아슬라프 렌케 스타로비치 공작님.”


아슬라프에게 스타로비치라는 성을 붙여 부른 걸 보면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아슬라프가 온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고 그를 자신의 편으로 인정하겠다는 암시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


“신관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슬라프는 손을 가슴에 대고 경의를 표했다.


“어인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요?”


이사벨은 속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국에 뻗어있는 수도원 조직의 정보망으로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억울한 일이 있어 신관님께 호소하고자 찾아왔습니다.”


“호오, 어떤 억울한 일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인이 되신 막심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로 입적되었습니다. 수도사와 법률가가 입회한 적법한 절차였습니다. 그런데 구스타프 후작이 저의 영지를 노리고 종교재판에 제소하였습니다.”


아슬라프는 이사벨에게 단순명료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에는 신께서 판단하시겠지만, 이 재판 과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신관님께서 지켜봐 주시기를 간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이사벨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송구하게도 그렇습니다.”


아슬라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인 저를 두고 가계도도 그리기 어려운 먼 친척인 구스타프 후작을 상속자로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종교재판에서 의혹이 없는 판결이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아슬라프는 자기가 이사벨을 위해서 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신관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드려주십시오. 그리하여 신께서 저를 굽어살피신다면 저도 신의 은총을 잊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이사벨은 입꼬리를 올리고 구미가 당기는 듯이 입술을 핥았다.


“신께 보답한다라. 그렇다면 신에게 반대하는 이단의 무리를 제압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떤 무리입니까?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사벨에게 신관의 권위에 대항하는 이교도와 이단은 항상 눈엣가시였다. 이교도로는 자연교가 대표적이지만, 그들은 국경 밖의 연족이 믿는 종교이니 큰 영향은 없었다. 그보다는 제국 내부의 이단이 더 골칫거리였다.

인과교도 교리를 두고 여러 분파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신관의 권위에 복종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세력이 있었다.

어떤 자는 이사벨이 아닌 자신이 진정한 신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사벨은 제국 서쪽 끝의 이단 세력을 퇴치해달라고 요청했다.


“칼리 지역에 푸티차 교라는 사이비종교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칼리 지방은 다소 낙후되고 고립된 지역이었다. 그곳에 성주가 치안 유지를 위해 모르겐 기사단을 영입했는데, 성주가 죽은 후에 모르겐이 칼리 성을 점유하고 성주가 되었다.


“칼리 성주 모르겐은 사이비종교를 퍼뜨리는 푸티차라는 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종교재판에 푸티차를 여러 차례 호출했는데, 그는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르겐과 싸워 칼리 성에서 푸티차를 체포해 오면 신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사이비교주 푸티차를 체포해 오라?’


이사벨의 제안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했다.

만약 이사벨이 명분이 없이 그녀의 눈 밖에 난 영주를 공격하라고 하거나, 스타로비치 공국 내의 자연교를 색출하라고 한다면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사이비종교를 타도하는 거라면 다르다.


아슬라프도 푸티차가 퍼뜨리는 사이비종교의 폐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거짓 선전으로 교주를 신격화하고 선량한 백성을 현혹시키는 무리를 제거하는 임무라면 기꺼이 할 용의가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모르겐.’


칼리 성을 점유한 모르겐 기사단에 대해서는 아슬라프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교활한 자식. 늘 허풍을 떨어대더니.’


모르겐 기사단은 원래 알렉세이1세의 신하 중 한 명이 데리고 있던 소규모 용병단이었다.

그런데, 모르겐이 기사 작위를 받고 나서 모르겐 기사단으로 명칭을 고치더니, 귀족이 될 기회를 노리며 알렉세이1세에게 자신이 공을 부풀려 보고하곤 했다.


그러나, 거짓 보고로는 알렉세이1세를 속일 수 없었다. 알렉세이1세는 모르겐이 아니라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올레그 렌케를 베덴 성주로 임명했다.

귀족이 되지 못하자, 앙심을 품은 그는 알렉세이1세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핑계를 대며 임무를 지연시키곤 했다.

알렉세이1세의 최후의 전투에서도 그는 뒤늦게 참전하는 척 합류했다가 가장 먼저 줄행랑을 쳤다.


‘결국 칼리 성을 차지하고 귀족이 되었군.’


전쟁터에서 탈영하듯이 도망친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백성을 미혹시키는 사이비교주를 보호하고 있다니 그것 또한 천벌을 받을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푸티차를 반드시 잡아오겠습니다.”


아슬라프의 말에 그제야 이사벨은 만족스러운 듯히 활짝 웃었다.


“가능하면 생포해오도록 하세요. 종교재판에 세워야 하니까. 하지만 피치 못한 경우라면 시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슬라프는 고개를 숙이고 다짐했다.


“신의 권능을 자신의 것처럼 휘두르는 자는 반드시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신께서도 당신을 굽어살피실겁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사벨과의 거래가 성사된 셈이었다.


“종교재판은 걱정하지 말고 칼리에 다녀오십시오. 푸티차를 잡아오면 모든 게 잘 해결될 겁니다.”


신관의 권한으로 종교 재판을 질질 끌다가, 아슬라프가 약속대로 푸티차를 잡아오면 판결을 유리하게 내려주겠다는 뜻이었다.

이사벨이 종단의 수장으로서 모든 성직자를 제어하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 저는 곧바로 칼리로 떠나겠습니다.”


아슬라프가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이사벨이 그를 불러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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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상속 전쟁(2) 23.04.14 556 13 12쪽
109 상속 전쟁 23.04.13 563 14 13쪽
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4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2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2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17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6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7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49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5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5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47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48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6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5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2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2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7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1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3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39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4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4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2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2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4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47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17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5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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