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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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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680

작성
23.03.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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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황제의 칙서(2)

DUMMY

“아무리 게오르그 후작의 권세가 높다 해도 감히 황제에게 혼사를 압박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게나 말이야. 몇 년 전부터 황제께서 게오르그 후작을 견제하기 위해서 다른 영주와 황녀를 정략결혼 시키려고 한 적이 서너 번 있었는데, 모두 게오르그 후작과 맞서다가 죽거나 물러섰지.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보니, 게오르그 후작도 아예 황녀가 다른 경쟁자와 혼사를 맺지 못하게 자기 아들과 결혼시켜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야.”


“황녀님이 가엾군요.”


아슬라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알렉세이1세가 죽기 1년 전에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아직 강보에 싸인 아기였을 때부터 황제의 전략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황제는 알렉세이1세에게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면 핏덩이인 그녀를 알렉세이1세의 아들과 결혼을 시켜주겠다며 비밀 편지를 보냈다.

알렉세이1세는 황제의 속셈을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황제의 명령은 받들겠지만, 혼사는 정중하게 사양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알렉세이1세가 죽은 후에도 그녀에게 수없이 많은 혼담이 오고 갔지만, 그녀의 약혼자로 물망에 오른 자들은 모두 정치적 득실에 의해 경쟁자에게 제거되거나 파혼했다. 황제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자들은 가차없이 버렸고, 황녀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약혼하고 약혼자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반복해서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혼한 게 6개월 전이지. 그러니 이제 시간이 다 됐어.”


관습적으로 황족이나 왕족의 딸은 파혼하면 6개월 이내에 다시 약혼이나 결혼을 할 수 없었다. 6개월이 지나야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할 수 있었다. 지금껏 황녀가 이전의 약혼자와 파혼한 것이 6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는 핑계로 게오르그의 압박을 피해왔지만, 이제 그 시간이 지난 것이다.


“황제폐하께서 자네를 부르신 건, 새롭게 제후의 작위를 받은 신하를 초청하는 관례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오르그 후작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실 걸세.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가는 게 좋겠지.”


스타로비치 공작을 통해서 황제의 속마음에 대한 정보를 얻은 아슬라프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며칠 후, 제국의 수도 이카루스에 당도했다. 언덕에 올라서자 지평선까지 쭉 뻗은 성벽과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국의 수도는 언제 보아도 거대하고 웅장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그중에서도 화려한 조각상과 벽화로 장식된 황궁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아슬라프는 성문을 통과해서 마차 여섯 대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는 대로를 가로질러 황궁으로 향했다. 전생에는 바빠서 자주 오지 못했지만, 환생해서는 집시 생활을 할 때 여러 차례 와봐서 이카루스의 거리는 손바닥보듯이 익숙했다.


금으로 칠해진 성자와 역대 황제의 동상이 늘어선 황궁 문으로 들어가서, 벽마다 유명 화가의 그림이 장식된 복도를 지나, 정교한 조각이 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서,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 접견실에서 기다렸다.

현생에서 황궁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지만, 구조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가구와 장식품은 모두 바뀌어있었다.


‘그림과 가구가 죄다 새것인 걸 보니, 여전히 돈을 펑펑 쓰고 있군.’


아슬라프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게오르그의 위협을 두려워하면서도, 황제는 병력을 늘리기보다는 황궁을 꾸미는 데 돈을 쓰고 있었다. 군사적 재능이 없으니, 아예 전쟁은 신하들에게 맡겨버리고, 신하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견제하며 황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게오르그를 상대로 살아남은 정치적 수완은 인정할 만했다.


“황제 폐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아슬라프는 시종을 따라갔다. 문이 열리고 헤르만 황제가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헨그라드 공국의 아슬라프 렌케 후작이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아슬라프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있다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22년 전에는 30대의 젋은 황제였지만, 이제는 60살이 다 되어갔다. 그때도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는데, 지금은 주름살이 쪼글쪼글한 것이 80살은 되어보였다.

하지만, 상대를 노려보는 음험한 눈빛은 여전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속을 알 수 없는 하이에나와 같은 눈빛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과 조롱과 공포가 어려있었다.


“젊은 나이에 공국을 세우다니 놀랍구려. 부디 내 영토를 잘 다스려주시오.”


황제의 말은 아슬라프 역시 그의 영토를 대신해서 다스리는 대리인일 뿐이라는 뜻이었다.


“저를 후작에 임명해주신 황제폐하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아슬라프는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렸다.


“소신이 폐하를 위해서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맡겨주십시오.”


황제는 입에 발린 아첨에는 이골이 난다는 듯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국이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여 있고, 황실의 권위를 우습게 아는 자들이 많은데도 나서는 충신이 없으니 참으로 걱정이오.”


그래도 아슬라프가 써먹을 만한 인재로 보였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벽에 걸린 초상화를 보며 한숨지었다. 벽에는 작은 금관을 쓴 황녀로 보이는 여자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초상화는 미화되어 그려지기 마련이라 믿을 게 못 되었다. 특히 정략결혼을 위해 보내지는 초상화에는 절대로 속지 않는 편이 좋다. 황족들은 오랜 근친혼으로 인해서 외모가 볼품없고 단명하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늙은 내게 낙이라곤 황녀를 보는 것뿐이지. 나이가 찼으니 어서 좋은 혼처를 마련해줘야 할 텐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 않군.”


황제의 사위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면서 아슬라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황녀가 아기 때부터 자기 이익에 따라 사위로 삼겠다고 공수표를 날렸으면서 딸을 위하는 척하는 게 역겨웠다. 자기 세력 강화에 도움이 될 자라면 상처한 60대의 노인이든 말에서 떨어져 불구의 몸이 된 자이든 가리지 않고 딸을 팔아먹었다.


‘뭐, 그럴 수 있지. 지금껏 많은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며 낚게 해준 딸이니 얼마나 예쁘겠어.’


아슬라프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황제에게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분명히 좋은 사위를 얻게 되실 겁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황제는 아슬라프에게 사윗감을 열거하며 은근히 경쟁심을 유발했다.


“먼저 약혼자와 파혼한 후로, 게오르그 후작의 아들과 혼담이 있긴 했네만, 초상화를 보더니 딸이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군.”


황녀의 의사는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제가 게오르그와 사돈이 되기 싫어서 딸의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딸조차 자기 방패막이로 써먹는 인간이었다.


“렌케 후작처럼 잘생기고 멋진 청년이라면 내 딸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은데. 게오르그 후작의 아들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아비로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군.”


아슬라프가 반응이 없자, 황제는 적극적으로 구애해왔다.


“그대는 내 딸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나?”


무표정한 태도에 몸이 달았는지 아슬라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나를 내세워 게오르그와의 혼사를 피하려고?’


황제의 속셈을 읽은 아슬라프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저같은 자가 어쩌다 귀족이 되었다고 해서 황녀님의 근처에나 갈 수 있겠습니까. 찾아보시면 귀한 황족의 가문에 어울리는 귀족가의 자제가 있을 겁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데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아슬라프의 태도에 민망해진 황제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황녀와 엮어주겠다는데 이렇게 철벽을 치는 귀족은 처음이었다.


아슬라프는 무안해하는 황제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게오르그 후작 아들과의 혼담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황녀께서는 지금 약혼한 상태라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약혼 중이라고?”


황제는 아슬라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22년 전에 알렉세이1세의 아들과 약혼을 제안하셨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황제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알렉세이1세의 아들과? 그, 그걸 어떻게... 자네가...”


자신이 보낸 비밀 칙서의 내용을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슬라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주르 성의 밀실에서 과거에 알렉세이1세가 주고받은 편지가 들어있는 보관함을 발견했습니다. 폐하와 주고받은 편지도 있더군요.”


아슬라프의 말에 황제의 얼굴이 벌게졌다. 동공이 왔다갔다하는 걸 보면 자신이 편지에 어떤 말을 썼는지 재빨리 떠올리고 있었다.


“흐, 흐음. 그, 그랬나?”


“알렉세이1세의 아들에게 비밀 약혼을 제안하셨으니, 황녀님과 알렉세이1세의 아들은 약혼상태입니다. 그러니, 그 편지를 공개하시고 게오르그 후작에게 황녀님의 상황을 설명하면 됩니다.”


아슬라프가 자신을 위협하려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려는 의도라고 판단한 황제는 경계심을 풀었다.


“하지만, 알렉세이1세와 그 아들은 모두 죽었는데, 약혼상태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나?”


“보통 약혼 당사자가 죽으면 상대의 부모나 친지와 협의하여 약혼을 파혼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후에 그 과정이 없었으니, 여전히 약혼상태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하지만, 알렉세이1세는 내게 혼담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러면 애초에 약혼이 성립하지 않은 게 아닌가?”


“그 답장은 황제 폐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황녀를 새로운 사람과 약혼시키고 싶으실 때 공개하시면 되지요.”


“아하.”


황제의 잔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차피 이런 사안의 옳고 그름은 정치적으로 결정되기 마련이다. 황녀의 약혼이 유효한가 무효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걸 빌미로 적법한지 판단해달라는 재판을 요청하고 법관을 구워삶아서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 그만이다.


“그런 수가 있었구먼.”


황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흥분해서 손가락을 비볐다.


“제가 폐하께서 알렉세이1세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공개하겠습니다. 그것이 실제로 폐하께서 보내신 거라고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편지의 내용에 따라 황녀의 약혼 사실이 성립되는지, 무효화시키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법원에 문의하고 판결을 지연시키십시오.”


알렉세이1세가 죽은 후, 그의 먼 친척조차 박해를 피해서 이름을 바꾸고 숨어버렸기에, 약혼을 무효화시켜줄 혈족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황제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끌 수 있었다.


“정말 기발하군. 자네는 신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천사나 다름없네.”


황제는 기뻐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잠시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 편지에 혹시 다른 내용도 있지 않았나? 알렉세이1세에게 군대를 갤리온 공국으로 이동하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 내용도 있었습니다.”


황제는 난감한 듯이 이마를 짚었다. 자신이 알렉세이1세를 반역자로 지목했는데, 편지가 진짜라고 인정하면 결국은 알렉세이1세의 거병은 자신이 시킨 일이었다는 걸 만천하에 고백하는 셈이었다. 황제가 자신에게 충성한 알렉세이1세에게 도리어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걸 자인하게 된다.


게다가 편지에는 갤리온 공국의 군대를 막으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면 황제가 게오르그 후작의 역모를 의심하고 그를 견제했다는 게 들통나버린다.

비록 오래전 일이기는 하나, 게오르그 후작이 황제로부터 내란의 의혹을 받고 있었고, 게오르그 후작의 평판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내용이었으니, 그가 펄쩍 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황제가 자신이 쓴 편지를 인정하면 황제의 이중성과 게오르그의 역모 의혹, 알렉세이1세의 충성심까지 세 가지 진실이 한꺼번에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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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2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2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17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6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7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49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5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5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47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48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5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4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2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2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7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1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3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39 19 13쪽
» 황제의 칙서(2) 23.03.24 734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4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2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1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4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47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17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4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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