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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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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7,680

작성
23.03.3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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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글자
12쪽

이합집산(2)

DUMMY

“누크타가 왔습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누크타가 아슬라프를 만나러 왔다. 희게 세었지만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에 뭉툭한 코, 툭 튀어나온 이마 사이에서 빛나는 두 눈은 그가 여전히 투지를 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지원해주겠다고요? 당신이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뭡니까?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25년이 지났지만, 누크타는 여전히 남을 불신하고 비협조적이고 자기 멋대로였다.


‘거만한 건 여전하군.’


아슬라프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차고 그에게 차를 내밀었다.


“초면인데 거짓말이라니요? 속고만 살았습니까?”


누크타는 차에 이상한 약이 들어있지 않은지 의심하는 것처럼 냄새를 맡았다.


“속은 게 한두 번인 줄 압니까? 제국인이 룽족에게 약속해놓고 지키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그렇게 속았습니까? 알렉세이1세요?”


“알렉세이1세는 양반이죠.”


차에 이상이 없다고 여겼는지, 누크타는 쓰읍 입맛을 다시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솔직히 알렉세이1세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만난 제국인은 다 사기꾼에 룽족을 이용하려는 놈뿐이었지만, 알렉세이1세는 말이 통했습니다. 적어도 사기를 치지는 않았으니까요. 약속한 건 지켰습니다.”


누크타가 알렉세이1세를 이렇게 좋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알렉세이1세와 누크타는 사사건건 부딪쳤고, 누크타는 늘 알렉세이1세와 니콜라스의 합의에 트집 잡으며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알렉세이1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추진하는 일에 반대를 많이 했었다고요. 용병 협상할 때도 합의안에 요구사항을 추가하면서 지연시키지 않았습니까?”


“아, 그땐 알렉세이1세가 약속을 안 지킬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 확인하느라고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 왜 그랬는지. 내가 젊은 혈기에 좀 과격했던 것 같습니다.”


누크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도 나이 먹으니 철이 들었구나.’


아슬라프는 속으로 빙긋 웃었다. 강경파였던 누크타가 그나마 조금 현실적으로 변해서 다행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만 더 세지는 사람도 있는데, 누크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나도 알렉세이1세만큼만 약속을 지키면 같이 일할 만하겠군요.”


아슬라프의 말에 누크타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뭐... 제국인은 그 정도 기본적인 신의를 지키는 사람도 드물단 말입니다. 게오르그 후작이 룽족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립니다.”


“나는 게오르그 후작과는 다릅니다.”


“대충 평판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도 귀는 있습니다.”


누크타는 코를 문지르며 쩝 입맛을 다셨다.

아슬라프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을 이야기해보죠.”


누크타와의 협상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의심이 많은 그는 아슬라프를 믿지 않았다. 이런저런 말을 던지며 시험하고 진의를 확인하려 들었다.

그가 가장 의심하는 것은 과연 아슬라프가 룽바인을 룽족에게 돌려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게오르그처럼 처음에는 자치를 허용해주겠다고 하고, 나중에는 직속령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아이고, 저 답답이.”


협상에 도움을 주려고 온 은쿤이 대화를 하다 포기하고 씩씩거리며 가슴을 쳤다.


“같은 룽족이지만, 정말 이해가 안 가네. 일단 룽바인을 손에 넣어야 그다음이 있는 거지. 계속 못 믿겠다는 말만 하면서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으면, 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아슬라프도 몇 번이나 협상 때려치우고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누크타의 성격을 아는지라 참았다.

누크타는 처음에 까다롭게 굴긴 하지만, 일단 합의에 도달해서 일을 시작하면 추진력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니콜라스가 그를 구워삶아서 협력할 마음을 먹게 만들기만 하면, 그의 조직원들은 어떤 상황을 뚫고라도 승리를 쟁취했다.


‘이럴 때 니콜라스가 있었으면.’


온건파인 니콜라스는 협상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룽족의 이익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끈기있게 고민해서 제국과 룽족의 절충점을 찾을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살아는 있을까? 니콜라스.’


은쿤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룽족 거주지에는 없으니, 살아있다면 제국에 있을 것이다.


‘제국에 있다면 집시들이 더 잘 알지도?’


지금껏 룽족을 통해서 니콜라스를 찾으려고 했는데, 제국 내의 정보망은 집시 쪽이 더 광범위했다.


아슬라프는 프랑케를 통해서 니콜라스의 인상착의를 알려주고 그를 본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20년 전 인상착의를 가지고 사람을 찾으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프랑케가 황당해하며 니콜라스의 초상화를 받아들었다.


“룽족이라 눈에 띄는 외모니 최선을 다해 찾아봐.”


룽족은 보통 사람보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눈에 띄었다. 제국에 룽족이 살긴 해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니콜라스를 본 사람이 있다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크타와의 협상도 계속 진행했다. 간신히 누크타를 설득해서 일단 룽바인에 남아있는 그의 조력자들과 연락을 취해보기로 했다.


“일단 활동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활동비부터 좀 주시죠.”


누크타는 협력할지 확답을 주지 않으면서 돈부터 요구했다. 아슬라프는 그가 요구한 돈을 주었다.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큰 돈을 줘도 되겠습니까? 돈만 받고 튀면 어쩝니까?”


상티누스는 잘 알지도 못하는 누크타에게 선뜻 돈을 내주는 아슬라프의 과감함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아슬라프는 누크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누크타는 돈보다도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돈을 횡령하지않고 자신의 무너진 조직을 복구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 쓸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누크타를 다루는 건 내게 맡겨 둬. 저런 종류의 사람들을 잘 알아.”


누크타가 조직원들을 만나러 변장하고 룽바인으로 출발하고 며칠 후, 프랑케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콜라스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한적한 시골의 작은 수도원이었다. 아슬라프는 떠돌이 순례자로 변장하고 은쿤과 함께 니콜라스가 있다는 수도원으로 출발했다.


“계십니까?”


밤늦게 도착해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한 수도사가 문을 열고 나와 그들을 맞았다.


“뉘신지요?”


“지나가는 순례자인데 날이 저물어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아, 들어오십시오.”


수도사는 아슬라프를 맞아들여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 다른 수도자는 없습니까? 룽족 수도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니콜라스 수도사 말씀이군요. 그분은 왜요?”


수도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은쿤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그분의 사촌이라서요.”


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렇군요. 어쩐지 닮으셨더라.”


그런데도 수도사의 눈에는 룽족은 다 비슷해 보이는지 속아 넘어갔다.


“헌데 니콜라스 수도사는 묵언수행 중입니다. 전에도 룽족이 찾아와서 만나려고 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묵언수행이 언제 끝납니까?”


“그야 모르지요. 벌써 십 년이 넘었습니다.”


니콜라스는 세상을 등지고 종교에 완전히 귀의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촌이 왔다면 만나주지 않겠습니까?”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만...”


수도사는 말끝을 흐렸다.


“기대하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예전에 니콜라스의 딸이 아이를 낳아서 얼굴을 보여준다고 데리고 왔는데도 얼굴만 보고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의지와 인내력이 강한 니콜라스가 이렇게 변해버렸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룽족의 권익을 위해서 집요하게 협상에 임하던 그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그가 룽족을 버리고 종교에 빠져들었다니.


“그래도 만나긴 했군요. 우리도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슬라프의 부탁에 수도사는 그들을 니콜라스의 방으로 안내했다.


“니콜라스 수도사. 그대를 보고싶어하는 손님들이 왔습니다.”


니콜라스는 좁고 어두운 방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는 성자상과 촛불이 있고, 벽에는 ‘나의 모든 업보가 소멸할 때까지 침묵을 행할지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업보가 소멸할 때까지?’


아슬라프는 그가 무엇 때문에 침묵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어떤 심정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듯했다.


인과교에서는 좋은 업보를 쌓으면 환생할 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나쁜 업보를 쌓으면 나쁜 환경에서 환생한다고 믿었다. 니콜라스는 자신이 나쁜 업보를 쌓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소멸되기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기도하던 니콜라스는 고개를 들고 뒤로 돌아 그들을 쳐다보았다. 텅 빈 공허한 눈빛이었다.


“니콜라스. 게오르그 후작이 룽바인에 동원령을 내렸소. 룽족을 자신의 전쟁에 동원하고 있소.”


아슬라프의 말에도 니콜라스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룽족이 제국인의 전쟁에 동원되어 의미없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그대가 나서야 하오.”


은쿤이 말하자, 니콜라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룽족인 은쿤이 말하자, 아슬라프가 말했을 때보다는 눈빛이 진지해진 듯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돌아앉아 성자상에 고개숙여 기도를 계속했다. 은쿤이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룽족이 어떻게 되건 상관 없단 말이오? 당신의 동족이잖소?”


은쿤의 말에도 니콜라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룽족보다 자신의 환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아슬라프는 그의 앞에 써진 문구를 입속으로 읽었다.


‘모든 업보가 소멸할 때까지.’


그가 소멸시키고 싶어하는 업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게 그의 입을 열게 만드는 열쇠임은 분명해보였다.


“이렇게 기도만 한다고 업보가 소멸됩니까?”


아슬라프는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은 업보가 뭔지 몰라도, 기도만 한다고 환생이 좋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 업을 없애고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죠.”


아슬라프의 말에 니콜라스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였다. 그는 몸을 돌려 아슬라프를 노려보았지만, 이내 입술을 꾹 다물고 다시 등을 돌렸다.


“당신의 업보가 뭐길래? 룽바인의 성주로서 룽족을 위해 헌신하지 않았소? 대체 무슨 나쁜 행동을 했길래, 업보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거요?”


온건파인 니콜라스는 과격한 것을 싫어하는 신중한 성격 때문에 큰 사건 사고에 얽힌 적이 없었다.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와 감정을 고려해서 서서히 접근했기에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악랄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무슨 나쁜 업보를 쌓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세이1세가 죽고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렉세이1세와 잘 지낸 걸로 아는데. 게오르그 후작과도 처음에는 잘 협력했고. 뭐가 문제인 거요?”


아슬라프의 말에 니콜라스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귀를 막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입을 뗐다.


“난 잘못된 인생을 살았소.”


니콜라스의 목소리를 들은 수도사는 놀라서 부르짖었다.


“니콜라스 수도자가 말을 하다니...”


십여 년 만에 입을 연 니콜라스의 목소리는 쉬어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난 실패했소. 난 패배자요. 난 죄인이요.”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요?”


“내가 부하들이 짐승으로 변하도록 명령했소.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봐야 했소.”


그는 숨을 헐떡이기는 했지만, 점점 목소리의 안정을 찾아갔다.


“짐승으로 변하다니?”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학살자 말이오.”


“알렉세이1세가 시킨 대로?”


니콜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게오르그 후작의 명령에 따라 같은 룽족을 죽였단 말이오.”


그는 침통한 목소리로 울먹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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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상속 전쟁(2) 23.04.14 556 13 12쪽
109 상속 전쟁 23.04.13 563 14 13쪽
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4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2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2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17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6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7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49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5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5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47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48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6 16 13쪽
» 이합집산(2) 23.03.31 645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2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2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7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1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3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39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4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4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2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2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4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47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17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5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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