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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재단사님의 서재입니다.

전생을 보는 환생 군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공기재단사
작품등록일 :
2022.12.22 15:12
최근연재일 :
2023.06.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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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680

작성
23.04.1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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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상속 전쟁(2)

DUMMY

“어서 피하십시오! 룽족이 몰려옵니다!”


창병부대가 흩어지자, 룽족이 가운데로 밀고 들어왔다.


“측면의 정예병 부대는 어떻게 되었나?”


구스타프는 다급하게 전체적인 전황을 파악하려했지만, 측면의 부대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연족 기병이 그들을 포위하고 전열에서 이탈하는 자를 족족 쏘아 죽였기 때문이었다.


“전황을 알 수 없습니다. 일단 후퇴해야 합니다.”


부관이 그에게 일단 물러나도록 권했다.

룽족이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은쿤이 앞을 막아서는 병사를 걷어차며 다가왔다. 그리고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야! 구스타프! 창 사느라고 돈 좀 썼던데, 내가 다 부러뜨려서 어쪄냐? 이제 부러뜨릴 창이 없으니, 네 목이라도 부러뜨려야겠다.”


은쿤의 위협에 구스타프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거냐!”


망설일 틈이 없었다. 구스타프의 본진에 난입한 룽족은 도끼를 마구 휘두르며 거침없이 몰려왔다.


방패를 든 호위부대가 구스타프의 앞을 둘러싸고 지켰지만, 룽족의 기세에 얼마 버티니 못할 듯했다.


“에잇! 빌어먹을!”


구스타프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측면 부대로부터 승전보가 날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 전에 그의 목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아, 안되겠다. 후퇴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민하던 그는 호위병이 룽족에게 도륙당하자, 마침내 겁에 질려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퇴각하라!”


구스타프가 쏜살같이 달려가자, 그의 신하들과 기사들도 자신의 부대를 수습해서 뒤로 물렸다.


구스타프가 후퇴하고, 창병들이 뒤로 빠지자, 그의 본대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며 밀렸다.

그러자, 양쪽에 덩그러니 남은 그의 정예병도 재빨리 눈치를 보며 후퇴했다. 여차하면 그들만 적진에 고립될 수 있었다.


구스타프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벌판에는 부상자들만 신음하며 나뒹굴었다.


“쳇, 제국의 정예병이라더니 별것도 아니군.”


은쿤은 코웃음쳤지만, 그의 행색은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갑옷과 도끼 날에 난 무수한 창의 흔적은 그가 얼마나 많은 창을 부러뜨렸는지 말해주었다.


“잘했어, 은쿤.”


아슬라프는 위험한 창병부대를 셀 수 없는 도끼질로 뚫고 구스타프의 본대를 기어이 해체시켜버린 은쿤을 치하했다.


“팔 괜찮아? 창을 몇 개나 아작낸 거야? 구스타프의 본대를 철수시켰으니 네 공이 크다.”


“흠, 뭐 이쯤이야.”


은쿤은 아슬라프의 칭찬에 입을 헤벌쭉하며 좋아했다.

기욤과 예레이가 말에서 내려서 다가왔다.


“애썼다. 기병이 먼저 승기를 잡아줬어.”


아슬라프는 그들도 아낌없이 칭찬했다.


“기욤 형님이 적을 유인해줘서 처리하기 쉬웠습니다.”

“예레이의 활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활도 엄청 빨리 쏘고, 쏘는 족족 맞추더라고요.”


기욤과 예레이는 서로 공을 돌리며 화기애애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미하일 백작도 수고하셨습니다.”


아슬라프는 뒤늦게 측면부대에서 복귀한 미하일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미하일은 이마에 땀이 맺히고 파리하고 지쳐 보였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했다.


“팔이 욱신거리는 걸 보면 아직 살아있습니다.”


“측면 부대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게 미하일 백작이 최전선에서 독려한 덕분입니다.”


아슬라프의 칭찬에 그는 겸손하게 고개를 저었다.


“별말씀을요. 저도 전투에 참여했으니 당연히 제 몫을 해야죠. 아슬라프 후작님의 뛰어난 전술과 통솔력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은쿤은 의외라는 듯이 미하일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 팔을 하고 최전선에 섰다고? 칼도 방패도 없이 깃발만 꽂고?”


미하일이 예상밖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미하일이 알아듣지 못하게 룽족 말로 중얼거렸다.


“어제 피냄새 맡고 기절한 겁쟁이 맞아?”


미하일은 은쿤이 자기에 대해서 뭔가 안 좋은 말을 하는 걸 짐작했지만, 불쾌한 표정을 감추고 예의 바르게 은쿤에게 말했다.


“은쿤 장군. 룽족 말을 쓰는 건 장군의 뜻대로 하셔도 좋지만,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제국어로 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은쿤은 헛기침을 하고 제국어로 대꾸했다.


“그냥 어제보다 발전했다고 한 거요.”


순화시킨 게 아니라 많이 바뀐 표현이었지만, 미하일은 왈가왈부하지 않고 넘어갔다. 오히려 그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어제 저를 구해주셨는데, 미처 인사를 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은쿤은 당황해서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은 미하일을 비판만 했는데, 미하일이 뜻하지 않은 타이밍에 다른 사람 앞에서 칭찬하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뭐, 미하일 백작때문이 아니라, 아슬라프 공작이 위험해서 간 거요. 뭐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은쿤은 머쓱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부대 상황을 정리하러 간다며 사라졌다.


“은쿤이 쑥스러워서 그러는 겁니다.”


아슬라프는 은쿤이 미하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어제처럼 싸늘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귀하게 자라 나약하고 말만 앞서는 겉멋 들린 귀족인 줄 알았던 미하일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장을 누비자, 그를 재평가한 듯했다.


“압니다. 은쿤 장군이 거만해 보여도 속마음은 따듯한 사람이라는 걸요.”


미하일은 멀리서 부하들의 부상을 살피는 은쿤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전장에서 이렇게 활약할 줄 몰랐는지 스스로 뿌듯해했다.


“아슬라프 공작님 덕분에 저도 백성들을 힘으로 지키는 떳떳한 군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부관이 전장에 남은 적의 시체의 숫자를 세어서 아슬라프에게 보고했다.


“구스타프의 군대를 궤멸시켰으니, 한동안 다시 쳐들어오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구스타프가 아닙니다. 남은 수단을 총동원해서 다른 계략을 꾸밀 겁니다.”


미하일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전히 구스타프는 법적으로 자신이 상속자이고 아슬라프가 스타로비치 공국을 무단점유한 거라며 떠들고 다닐 것이다.

게다가 구스타프의 뒤에는 군터 수상이 있어서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터.


중앙 정치에 뛰어들어 인맥을 쌓아서 세력을 만들어야 군터같은 중앙 귀족들의 카르텔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의 수도 가까이에 있는 스타로비치 공국이 비교적 좋은 위치에 있었다. 말을 타고 반나절이면 수도에 갈 수 있었다.

구스타프의 군대는 박살냈지만, 구스타프가 도망쳐서 어떤 정치적 음모를 꾸밀지 모르니, 수도 근처에 있으면서 기민하게 대응해야 했다.


아슬라프는 고민 끝에 부대를 절반으로 나눠서 재편성했다.


“나는 당분간 스타로비치 공국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구스타프가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르니까.”


아슬라프는 은쿤에게 노헨그라드 공국 전체의 군사권을 맡겼다.


“내 군대 절반을 떼어줄 테니, 네가 상티누스와 함께 노헨그라드 공국을 총괄해.”


“엥? 노헨그라드 공국 전체를 나보고 맡으라고?”


파격적인 조치에 은쿤도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도 놀란 눈치였다. 은쿤을 전적으로 믿지 않으면 불가능한 조치였다.


“에셀부르를 맡아서 다스려봤잖아?”


“그야 그렇지만... 성 하나와 공국 전체는 다르잖아.”


“행정적인 건 상티누스가 맡아서 하니, 군사적인 일만 하면 돼. 넌 잘 할 수 있어.”


“알았다. 걱정 말고 여기 일 잘 처리해.”


은쿤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를 이끌고 길을 떠나기 전에 그는 가려다 말고 쭈뼛거리며 돌아왔다.


“왜? 할 말 있어?”


“저기, 군대 절반을 떼 줄 정도로 나를 믿어주다니. 네가 나와 룽족을 소홀히 여긴다고 오해했어. 내가 속좁게 굴었는데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슬라프는 별 말 없이 빙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쳤다.


“알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스칼렛이 잔소리하며 투정을 부릴 때, 싸우기 싫어서 그냥 피해버렸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가 원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은쿤이 아슬라프의 인정을 바라는 것처럼, 스칼렛도 알렉세이1세의 인정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인생 2회차라 경험이 늘어서 그런지, 여유가 생겨서인지,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는 보였다.


은쿤이 떠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령이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구스타프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전령이 가져온 편지는 제국의 종교재판소에서 온 것이었다.


[

소환장


원고 : 구스타프 군나르 후작

피고 : 아슬라프 렌케 스타로비치 공작


원고는 피고가 막심 스타로비치 공작의 유언장에 성직자의 서명을 무단으로 대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의 성스러운 서명을 조작하는 것은 신의 권위를 사칭한 중대한 신성모독 행위입니다.

위 사건에 관하여 제국력 1025년 10월 15일 이카루스 제국 종교재판소에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카루스 제국 종교재판소장

]


재판부가 유언장의 판결을 애매하게 넘겨버리고, 전쟁에서도 패하니, 구스타프는 마지막 수단인 종교에 호소했다.

아슬라프의 유언장에 서명한 성직자의 사인이 조작된 것이고, 따라서 그가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종교재판이라니 이거 큰일 아닌가요?”


사비나가 걱정스럽게 아슬라프를 쳐다보았다.


종교재판에 걸리면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이 낮았다.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신성 모독의 책임을 물어 파문될 수도 있었다.


파문당하면 부정한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찍혀, 사람들이 신체접촉은 물론 대화조차 피했다. 그러니 집에서 은거하거나, 사회적으로 따돌림당하는 긴 속죄의 기간을 가져야 했다. 파문이 철회되기 전에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도, 군대를 온전히 지휘할 수도 없었다.


재판의 결과가 치명적인 만큼, 종교재판을 거는 원고 측도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상대가 무죄를 받으면 곧바로 무고죄로 반대로 종교재판을 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재판이 시작되면 끝에는 어느 한쪽은 치명타를 입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종교재판은 이길 확신이 있지 않으면,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성직자의 서명이 들어간 공작의 유언장이 있지만, 결국 판결은 종교재판소에서 하는 건데요. 종교재판소의 성직자들도 군터와 구스타프의 사람들이 많아요.”


자칫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는 큰일이었다. 파문당하면 귀족이라 해도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신에게 버림받은 자여서 천민보다도 더 천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종교재판소의 판사들 성향은 어때?”


아슬라프는 사비나에게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정보를 알아오도록 했다.


“종교재판소장은 군터 수상의 친척이라서 쉽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도 구스타프 후작, 군터 수상과 같은 군나르 가문 사람이거든요.”


사비나는 한숨을 쉬며 재판소의 판사 명단을 건넸다.


“판사 대부분이 군터 수상과 친하거나 후원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이길 가능성이 없어요.”


아슬라프는 명단을 살펴보고 내려놓았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


“예?”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사비나는 아슬라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관 이사벨이 군터 수상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때?”


“아, 이사벨 신관님이요. 그렇죠.”


그 말을 들은 사비나는 손뼉을 쳤다.


“맞아요. 신관님이 군터 수상하고 부딪친 적이 있죠. 군터 수상님이 영지 내 수도원에서 세금을 걷겠다고 해서요.”


권력은 왕과 귀족들끼리만의 다툼이 아니었다.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의 싸움이야말로 제국의 역사 내내 수백 년 이어져 온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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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속 전쟁(2) 23.04.14 558 13 12쪽
109 상속 전쟁 23.04.13 565 14 13쪽
108 미하일 백작(2) +1 23.04.12 577 14 12쪽
107 미하일 백작 23.04.11 585 14 12쪽
106 구스타프 후작의 반격 +1 23.04.10 614 15 13쪽
105 제후 선출(2) 23.04.09 620 15 13쪽
104 제후 선출 23.04.08 608 12 12쪽
103 공작의 장례식 +1 23.04.07 649 16 13쪽
102 스타로비치 공작의 양자가 되다 23.04.06 651 17 12쪽
101 게오르그의 최후 +1 23.04.05 667 17 12쪽
100 게오르그와의 결전(2) +2 23.04.04 616 17 12쪽
99 게오르그와의 결전 +2 23.04.03 651 15 12쪽
98 룽바인의 봉기 +1 23.04.02 652 17 13쪽
97 이합집산(3) +1 23.04.01 657 16 13쪽
96 이합집산(2) 23.03.31 647 18 12쪽
95 이합집산 23.03.30 693 19 12쪽
94 타라스 자작(3) +1 23.03.29 686 18 13쪽
93 타라스 자작(2) +1 23.03.28 678 20 13쪽
92 타라스 자작 +1 23.03.27 716 21 13쪽
91 명예 회복 +1 23.03.26 759 18 12쪽
90 황제의 칙서(3) 23.03.25 742 19 13쪽
89 황제의 칙서(2) 23.03.24 738 19 12쪽
88 황제의 칙서 23.03.23 777 19 12쪽
87 농민 봉기(3) 23.03.22 765 19 12쪽
86 농민 봉기(2) 23.03.21 785 18 12쪽
85 농민 봉기 23.03.20 848 20 13쪽
84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2) +1 23.03.19 850 19 13쪽
83 지그리드에게 복수하다 23.03.18 821 20 13쪽
82 용병대장 헬리오스(3) 23.03.17 81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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