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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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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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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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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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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화. 그의 이야기.

DUMMY

42화. 그의 이야기.



무광 은빛 대문이 닫히고 나를 마지막까지 배웅해준 이는 꽃순이와 고용된 아주머니였다.

나는 이집 담장과 퍽 닮아 있는 그녀의 부모를 떠올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문을 나섰다.

꽃순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뒤 돌아 하염없이 담장을 올려 본다.

담장 넘어 불 꺼진 그녀의 2층 방이 마음 떠난 주인의 심리를 대변한 듯 보였다.

그녀는 가정부 아주머니께 웃어 보이곤 대로까지 배웅하겠다며 먼저 들어가라 권했다.

나는 꾸벅 인사를 건넸고 아주머니는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돌아선 아주머니가 저택으로 발을 뗀다. 하지만 몇 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멈춰서 돌아섰다.

아주머니는 잠시 망설인가 싶더니 이내 조심스레 입을 뗐다.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닌데, 은하 학생. 오늘은 학생이 너무 심했어!”

“아주머니께서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정말 많이 잘 못한 모양이네요.”

“알지? 난 항상 은하 학생 편이 거. 그런데 목숨을 구해준 어머니께 그런 심한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야!”

“네?”

“왜 그래, 정말 기억이라도 잃은 거야?”

“말도 안 돼!”

“내가 뭐 하러 지어 내겠어.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니까. 늘 당차기만했던 학생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다신 그러지마!”

“정말 박장화씨가 절 구했다구요?”

“이상하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기억 못 할리 없는데.”

“아니에요. 너무 의외라서 그래요.”

“아무튼 돌아오면 먼저 죄송하다 사과드려. 의원님도 많이 실망하셨을 거야. 은하학생이 이번엔 져드려.”

“그런 이유라면, 생각해 볼 게요.”

“오늘 일 때문에 의원님과 은하 학생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말뜻 무슨 말인지 알지? 그나마 두사람이 있어 숨이 트였는데, 이런 분위기면 나도 못 견뎌.”

“알겠어요. 먼저 들어가세요.”

“그럼, 명호 학생 조심이 가!”


어깨에 걸친 가디건을 여민 아주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집으로 사라지셨다.

꽃순이는 생각이 많은지 총총히 사라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말 의외 긴 의외네.

새어머니가 그녀의 자살기도를 막은 장본인이라니.

꽃순이를 우환 덩어리로 취급하던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였다는 사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생각이 많아 보여 능청스럽게 팔짱을 끼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가자, 대로까지 배웅해 준다며!”

“이거 풀어. 그냥 들어가는 수가 있어!”

“연인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뭘! 어서 가자.”

“풀어. 내가 낄 테니까. 넌 키가 커서 너무 불편해.”


못 이긴 척 팔을 바꿔 껴주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시원스러운 성격과 달리 감정 표현은 왜 그리 서툰지, 쓸어 올린 머리카락 사이 붉어진 귓볼이 귀엽게만 보였다.

나는 행여나 트집 잡아 팔을 뺄까, 그녀를 비탈길 아래로 인도했다.

1분 1초가 아쉬운 마당에 괜한 실랑이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데이트다운 데이트 한번 해보지 못한 우리에겐 이 작은 순간도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니.

수줍음을 이기지 못해, 괴팍한 성격이 나오기전에 움직여야 했다.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대로에 접어 들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바닥을 비추며 지나가면 어김없이 붉은 빛 줄기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지나치는 자동차를 눈으로 쫓다가 내내 말이 없는 그녀를 힐끔 내려 보았다.

늦가을 홍조 띤 얼굴이 빛에 비취 유독 붉어 보였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추위 때문이라며 니트 소매를 늘어 뜨려 얼굴에 부볐다.


“별로 춥지도 않고만, 엄살은.”

“넌 자켓까지 입었으니까 그렇지. 난 이거 벗으면 맨살이야. 볼래?”

“어디 보자! 봐봐!”

“어쭈, 이놈 봐라. 내성이 생겼다 이거지?”

“볼 거 다 본 사이에 부끄러워하기는.”

“재미없다. 그냥 가!”


더욱 붉어진 얼굴을 놀리자 그녀는 저만치 앞서 걸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워 재빨리 다가가 벗은 자켓을 어깨위에 얹어 주었다.

그녀는 어깨를 튕겨 거절하더니, 이내 못 이기는 척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번지는 미소를 옷깃 으로 숨겼다.


“어좁이라 그런지 딱 맞네.”

“뭐?”

“봐! 빈틈이 없잖아!”

“아니거든, 낭창 낭창 하거든. 그게 아니라면 네 어깨가 올림픽 대로만 한 거 겠지.”

“이게 한번을 안 지려 하네. 매가 많이 고프지?”

“어! 사악하게 웃으면서 니킥을 날려야 너 다운데, 요새 너무 너 답지 않아 많이 고프다.”

“말을 말자. 말을 말어!”


버스 정류장.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두르고 버스가 늦게 오길 간절히 빌며, 헤픈 미소를 흘렸다.

그녀도 이런 내가 싫지 않는지 전과 달리 미동없이 있어 주었다.

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던 버스는 오늘 따라 재깍 나타났다.

더 오래 있고 싶어 신호에 정차한 버스를 뒤로 하고 은근 슬쩍 그녀의 등을 밀었다.


“골목이 너무 어두워 안되겠다. 다시 집까지 바래다 줄게.”

“지랄 염병을 한다. 개수작 하지 말고 그냥 가!”

“괴한이라도 만나면 어떡해! 이런 동네일수록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높단 말이야.”

“우리나라,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안정된 국가야. 내가 당할 정도면 네가 있어도 별 수 없으니까. 그만 가라. 마침 버스도 오네.”

“아쉬운데.”

“자 자켓 받아. 곧 가니까. 아쉬워할 것도 없고.”

“빨리 와야 해!”

“연락할 게.”


버스에 올라타며 몇 번을 뒤돌아봤는지 모른다.

그녀는 길어지는 배웅을 견디기 힘들어 올라타자 마자 자리를 떠났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담고 파 차창 넘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



그녀와 헤어진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억겁의 세월이 지난 듯 그립고 보고프다.

가슴 한 구석이 뚫린 것마냥 휑하니 시립고 아렸다.

이상하게도 그녀와 헤어졌던 일주일보다 만난 후 반나절이 더 고통스럽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짬짬이 흑형의 핸드폰으로 통화도 했건만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어제 입었던 자켓에 스민 그녀의 채취를 만끽하려 팔짱을 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 언제 나타났는지 토커는 그런 나를 지적하며 괜스레 말을 걸어왔다.


“너무 자세가 불량한 거 아닙니까? 고객에게 도발이라도 하려는 모양새인데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지적하시니 정정하겠습니다.”

“간섭하려던 건 아니고, 하나만 물읍시다.”

“간섭만 하시고 가시던 길 가시죠.”

“그러지 말고, 좀 물어 볼게요. 은하, 잘 지내던 가요?”

“궁금하시면 직접···.이 아니라. 아주 잘 지냅니다.”


나는 행여나 집에 찾아간다 할까,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하지만 대답이 미덥지 못했던지 토커는 좀 전의 나와 같은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며 코치코치 캐 묻기 시작했다.


“아버님이 지방에 출타 중인 거로 아는데, 만나 뵀다 하던가요?”

“네, 아주 잘 지냅니다.”

“어머님 성격이 많이 까랑까랑 하신데, 지낼 만하다 하던가요?”

“네, 아주 잘 지냅니다.”

“휴대폰이 없어 연락이 안되는데, 아직도 안 샀던가요?”

“네, 아주 잘 지냅니다.”


‘찌릿.’


토커는 내 우문현답에 인상을 구기더니 긴 한숨을 밷었다.

그 모습에 조금 쫄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하나도 알려주지 않겠다며 옹심을 부렸다. 하지만 그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는 기분 나쁜 기색 그대로 다가와 당장이라도 멱살을 움켜쥘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쪽으로 부쩍 내성이 생긴 나도 지지 않고 맞서 주었다.


“명호씨는 자신 없는 모양이죠? 조금 정정당당했으면 하는데.”

“경기도 치를 생각이 없는데 정정당당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네요.”

“전 시작했어요. 휘슬을 불었고 전 뛰고 있단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 개인 체육관에 멋대로 들어와서는 혼자 휘슬 불고 뛰고. 너무 염치없는 거 이닙니까?”

“두고 보세요. 결승점엔 제가 먼저 도착할 테니.”

“마음데로 하세요. 결승 테이프도 없는 뜀박질, 심장이 터지든 다리가 아작 나든 내 탓은 하지 마시고.”


아까 보다 더 구겨진 얼굴에 나는 승자의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가 입술을 씰룩 일 때마다 승리감이 도취되, 나은 점 하나 없는 자존감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는 화를 풀 길이 없어 된 콧김을 내 뱉더니 작전을 바꿔 회유하기 시작했다.


“명호씨를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은하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입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니까 명호씨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전하겠습니다. 설마 제게 말 못할 이야긴 아니겠죠?”

“네 못합니다. 부탁할게요. 연락할 방법이라도 알려 주세요. 제가 그 집에 가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럽니다.”

“이유가 뭐죠? 들어보고 생각해 보죠.”


사선을 향한 시선처리, 저울질하는 속내가 뻔히 보였다. 하지만 모르는 척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이대로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여유를 잃지 않고 잠자코 바라봤다.

나는 쥐고 있는 패가 많으니 뭐 든 다 해보라며 시건방을 떨어 보았다.

그는 고민이 깊어지는지 입술을 적시며 잦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민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역시 알맹이만 쏙 빠진 이야기. 하지만 이해 못 할 이야기 속 내용이 너무 섬뜩해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저희 집안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럼 별일 아니겠고만.”

“아니예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은하 지금 보다 더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재벌가와 은하가 무슨 원한이 있다고 곤란해진다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명호씨에게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막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란 겁니다. 그녀가 필요합니다.”

“절 협박해서 연락처를 뜯어내려는 수작 아닙니까?”


갑작스레 내 멱살을 잡은 토커는 맹수처럼 으르렁대며 바짝 얼굴을 붙였다.

처음엔 당황해 흠칫 놀랐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지지 않고 똑같이 노려봐 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갈팡 질팡 어쩔 줄 몰랐다.

내 선택이 그녀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몰라 망설이게 되었다.


“이게 당신의 대답입니까? 은하를 망치는 한이 있어도 알려주지 않겠다는게!”

“맹세할 수 있어요? 은하가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는 그 말. 믿어도 되냐 이 말입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명호씨가 판단하세요. 단, 그 후 벌어질 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할 겁니다.”


범의 기세에 눌린 하룻강아지가 되는 꼴은 퍽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할 위인은 아니라 고민은 깊어졌다.

그녀의 인생이 걸린 문제.

뭔 지 몰라도 마냥 무시하기엔 뒤가 찝찝했다. 그리고 은하를 상대로 도박을 벌일 정도로 난 독하지 못했다.


“좋아요. 알려 드리죠. 단 개인적은 통화는 자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내민 핸드폰에 순순히 내 핸드폰 번호를 찍어 주었다.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다가도 마지막까지 진지한 표정에 남았던 의심은 쉽게 지워졌다.

그는 번호를 받자 마자, 택배 받으러 가는 소녀처럼 급히 매장을 벗어났다.

그 모습마저 가식 없어 보여 머리는 절로 갸우뚱 해졌다.


‘무슨 큰일이길래, 저 인간이 서두르는 거지?’


그가 알려 주지 않는 한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별일 아니길 빌며, 매장에 들어선 손님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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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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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4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2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10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2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20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3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5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5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5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6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8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3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8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7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6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8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7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7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9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7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6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20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5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8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1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21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9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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