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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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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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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2화. 그의 이야기.

DUMMY

72화. 그의 이야기.



제주에서 시작한 당내 경선은 내일 있을 수도권 경합만 남겨 두고 있었다.

거듭 압승을 거둬 대권에 한 발짝만이 남겨져 있는 상황.

화면 속 서 의원의 얼굴은 어느때 보다 밝아 보였다.

제 딸의 낯 빛을 그럴수록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얼굴에서는 어떤 그늘도 비춰지지 않았다.

이왕이면 대권 도전에 스스로 좌초되길 바랬건만, 이변이 없는 한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제1야당 대선 후보.

이틀 뒤, 그가 거머 줠 타이틀이자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이다.

나는 은하의 표정을 살피다 긴 한숨 소리에 티비를 꺼버렸다.


“본다고 달라 질 건 없어. 너만 생각하면 돼!”

“알아. 그저···. 아빠의 해맑은 얼굴을 언제 봤었나 생각하고 있었어.”

“은하야···.”

“생각해 보니, 엄마 돌아가시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 같아서.”


네 탓이 아니다 말 해주고 싶었다.

어떤 기쁨을 주어도 너로 인해 행복해질 일은 없을 거라고, 현실을 알리고 자책을 지워주고 싶었다.

복수에 삼켜져 여유를 잃었다고, 경주마가 된 그에겐 배경 따윈 보이지 않을 거라고.

변해버린 그를 깎아 내려 딸이 품을 만한 감정을 뿌리 뽑고 싶었다. 하지만 입가에 맴돌 뿐 뱉을 수 없었다.

가족도 아닌 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임을 알기에 여지가 남는 말이 씁쓸했지만, 찍어 눌러야 했다.

지금도 차고 넘치게 참견하고 관여하고 있으니 이번만은 못들은 척 눈을 피했다.

그저 망각하는 동안이라도 웃을 수 있기를.

텀을 늘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김차장’이란 드라마 요새 핫 하다던데, 정주행 가 볼까?”

“됐어! 이젠 드라마 안 볼 거야.”

“왜? 몇 날 며칠을 드라마와 보낸 사람이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다른 드라마는 눈이 잘 안가. 콩나물 싸대기 이후 더한 막장이 아니라면 끌리지 않는 몸이 되 버렸어.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되는 그런 막장 사이다 드라마는 되야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타오를 거 같아.”


그런 스토리가 어디 가능이나 하겠나?

드라마 속 등장 인물이 죽어 환생을 한다면 모를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버린 그녀. 안타깝게도 최강의 매운맛과 함께 드라마와 작별을 고했다.

빠지기만 하면 하루를 순삭 할 수 있을 텐데, 변해버린 취향이 아쉽기만 했다.

시간을 보낼 다른 묘안을 생각해야 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다.

200평 남짓한 별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산책이나 가자!”

“강아지도 한시간에 한 번씩 산책 가자면 싫다 할 꺼야.”

“그럼 뭐해?”

“그냥 있어. 가만히. 천장 올려 보며 멍하니.”


그게 싫어서 그랬던 거다.

애처롭게 구겨지는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서.

제 게 최선이 아닌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말이다.

움직이면 덜 하지 않을까? 딴 생각 못하게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는 이따금씩 공상에 빠져 들었다.

여전히 제 결정에 확신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

나는 소파에 기대 머리를 베베 꼬는 그녀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 구슬조각을 만지작거렸다.


“머리 베베 꼬는 거, 그거 내 버릇인데.”

“그러게, 어쩌다 보니 따라하고 있었네.”

“힘들면 그냥 내려놔! 굳이 뭘 하려 할 필요는 없으니까.”

“미국으로 떠나도 좋다는 말이야?”

“아니, 그건···.”

“쫄기는 나 안 가!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단호한 사람 치고 다리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달달 떨렸다.

마치 수십 번 변하는 제 마음을 대변하는 양.

선택의 기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기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천륜의 힘 앞에선 자신이 당한 부합리도 가혹함도 덧없는 먼지에 지나지 않았다.

핏줄은 정의마저 희석시킬 힘이 있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어서 될 데로 되라며 거실 바닥에 등을 붙였다.

이 이상은 내 몫이 아니니, 눈을 감아 고민을 외면해 버렸다.

단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응원하겠다고 한가지 짐만 덜어주었다. 항상 네편에 서겠다고 다정한 눈빛으로 뒤따를 책임에 한발 걸쳤다.

그러자 그녀가 망설임 끝에 속내를 비춰 보였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물음. 하지만 함축된 의미를 알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복수해 준다고 엄마가 좋아할까?”


모르길 바랬건만, 권력에 눈 먼자로 보길 원했건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변한 이유.

그녀는 그 때문에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저 제 아비를 이해하고픈 효심에서 비롯된 줄 알았는데, 더 큰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모를 줄 알았는데···.”

“아빠가 대통령이 되면, 파라다이스 그룹을 해체할 수 있는 거야?”

“독재정권이라면 모를까? 아마 불가능 할 걸.”

“그럼, 투쟁의 가치가 없잖아.”

“글쎄,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그게 아니더라도 위협은 되겠지.”


은하의 입술이 짓이겨 지고 뒤따라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자신을 제물삼아 이룩한 발판, 그 마저도 뜻대로 될 가능성이 적다니 생각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과거는 과거로 묻고 싶어 하는 모양새.

원치 않는 미래가 그려져 나도 그녀따라 입술이 짓이겨 졌다.

때마침 낡은 엔진 소리가 들리고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익숙한 호칭.

기다리던 사람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했던 결전의 순간.

더는 결정을 미루지 말라고 은하를 올려 보았다. 그리고 몸을 세우며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다며 미소로 말을 대신 전했다.

이윽고 현관이 열리고 서 의원이 거실로 들어섰다.

원망스럽고 분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라 마음과 달리 몸은 재깍 90도로꺾였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자네가 고생이 많네. 고맙네 그려.”

“아닙니다.”


환희에 가득찬 얼굴.

그는 티비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피곤에 쩔어 풀어 헤쳐진 셔츠에 느슨해진 넥타이가 너저븐하게 걸려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세상 다 갖은 듯 여유로웠다.

바로 앞에 언제 어떻게 돌변할 지 모르는 변수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은하는 걱정과 달리 무척 담담하게 행동했다.

더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실랑이하고 싶지 않은 양 해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헝클어진 제 아버지의 2대 8 가르마를 정갈하게 넘겨주고 미소도 보여주었다.

자식으로써 도리를 다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는 듯 보였다.


“그래, 마음은 정한게야?”

“미국, 가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 할 줄 알았다.”

“안 가도 되나요?”

“네 엄마, 곧 올거야. 같이 떠날 채비해!”

“그럴 실 줄 알았어요. 박장화씨와 같이 가게 될 진 몰랐지만.”

“애비 마지막 부탁이다. 들어줄 수 있지?”


은하가 처음 하는 부탁이라 말하면 과연 아버님은 들어 주실까?

그녀의 처진 어깨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젠 기대할 것도 망설일 것도 없는데 그녀는 놓지 못했다.

꼼지락 거리는 횟수가 빈번해질수록 나도 조금씩 애가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우였던 모양인지 그녀가 약속한 행동을 보였다.

더는 망설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눈빛으로 내게 계획을 실행하라 일렀다.


“아버님, 시계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였던 참인데. 선뜻 내어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그리고 제겐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서 의원은 케이스에 고이 담긴 시계를 선반 위에 고이 올려 놓았다. 그리고 만족스러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이 막힘없이 술술 풀리니 기분 좋으시겠지. 하지만 몰랐을 것이다.

운수 좋은 날은 항상 그 끝이 유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빠, 부탁이 있어. 들어줄 수 있어?”

“말만 하렴. 네가 미국에 가 준다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

“네 기억을 들여다봐 줘. 그리고 돌아봤으면 해. 아빠의 과거 발자취를.”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을 텐데.”

“그땐, 깨끗이 포기할게. 그러니 들어줬으면 해.”


울먹이면서도 담담히 제 할말을 이어가는 은하.

가슴이 쿵쾅대며 다시금 이게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주머니를 떠난 구슬조각은 그의 손에 들렸고 시위를 떠난 화살을 막을 길은 없었다.

우리의 선택이 그에게 다시금 빛을 비춰 주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긴 한 숨을 쉰 아버님은 손바닥에 놓인 구슬 조각을 하염없이 내려 보았다.

제 딸의 과거와 생각을 엿보는게 내키지 않는 듯.

일기장을 펼쳐 놓고 다음을 주저했다.

변하지 않을 제 판단에 실망할 딸을 보기 미안한 건지 그렇게 한참을 망설였다.

은하의 눈에 맺힌 눈물이 기어이 흘러 바닥을 적셨다. 그럼에도 후련하지 않은듯 억지 미소엔 잔 떨림이 일었다.

결정하기 전엔 고뇌와 번뇌가 가득 찼는데, 모든 감정을 초월한 그녀의 얼굴엔 한가지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제 아비의 손을 꼭 쥐고 전보다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매정하게 변한 과거의 아버지께 작별을 고하는 일이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웃음엔 긍정적인 감정 하나 서려 있지 않았다.

불길한 징조를 눈치첸 것일까?

아버님은 쥐다만 구슬 조각을 손바닥에서 굴려 보았다. 그리곤 은하만큼 쓰디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통스럽다면, 그냥 잊어버려. 그게 엄마와의 추억일 지라도.”

“이게 네 생각이니?”

“편안 해졌으면 좋겠어. 얽매이지 말고 이제라도 아빠의 삶을 살아.”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미안해!”


주먹이 쥐어지고 은하의 나직한 음성에 반응한 구슬이 웅웅거린다.

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녀석은 온힘을 다해 힘을 개방했다.

이윽고 푸른 광원이 주먹을 비집고 세상에 흩뿌려졌다.

제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며 빛은 술자를 감싸 안았다.

푸른 빛이 슬픈 눈망울과 만나 애닳게 산란한다. 제 숙명을 이루려는 물건과 오묘한 감정은 부딪히며 뒤섞여 후회라는 잔상을 남겼다.

부디 이로써 복수의 늪에서 벗어나기를.

은하는 언젠가 비수로 돌아올지 모르는 후회는 제 가슴에 묻고 제 아비에겐 평안을 선물했다.


“엄마를 지워줘!”


거실이 푸른 광원으로 채워지고 시계에 어설프게 끼워진 다른 구슬 조각이 공명하며 옅은 푸른빛을 뿜으며 발광했다. 그리고 때마침 현관 문이 열리며 박장화 씨가 들어섰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시각.

화들짝 놀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적어도 당내 경선이 끝나기 전까진 아버님을 되 돌릴 방법은 없다. 구슬 조각이라도 지워진 기억을 하루만에 복원시킬 능력은 없었다.

그걸 아는지 박장화 씨는 한달음에 두 부녀에게 뛰었다.

나는 방해할 수 없게 그런 그녀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또다른 곳에서 푸른 광원이 푸른 빛을 비집고 뿜어진다.

박장화 씨가 밀며 헤집을수록 광원은 더 거세게 번쩍였다.

몸싸움 끝에 드러낸 광원의 정체.

박장화 씨 목걸이 팬던트가 열리며 스스로 발광하는 작은 구슬 조각 하나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또 다른 구슬 조각의 존재.

나는 그 어느때보다 눈이 크게 떠 졌다.


“이게···. 어째서 여기에.”


박장화 씨의 고함에도 절규 섞인 몸부림에도 시선은 떨어진 구슬조각에서 떠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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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3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0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9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1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17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0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4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2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3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4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6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2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7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6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5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6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6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7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2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0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19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8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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