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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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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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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수 :
421,635

작성
23.07.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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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4화. 그의 이야기.

DUMMY

64화. 그의 이야기.


‘퍽!’

‘커허헉. 끄으윽.’


“끄으윽. 오늘은···. 오늘은 안 때리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너···. 이···.”

“이정도로 끝낸 걸 다행으로 알아!”

“너···. 이···.”


강력한 한방을 날리고 방을 나가버린 은하.

그녀는 그 후 화장실에 틀어 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통증이 진정되자 화장실 멀찍이 서 그녀가 겪을 혼란을 가슴으로 느꼈다.

욕조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다른 소리는 묻혀 버린 듯 고요하기 만하다.

어떤 저항체도 지나지 않고 배수되는 소리에 붉어진 손톱은 입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심란하겠지. 심란할 수 밖에.

이해되는 감정기복에 손톱 사이로 피딱지가 고이는데도 원수라도 진양 집요하게 같은 곳을 공략했다.


“울고 있겠지? 당연히 그러겠지!”


뻔한 전개를 입으로 되뇌었다.

제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됐으니,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끌렸던 핏줄인데 배신감이 오죽했을까!

남인 나도 화가 나는데 그녀의 심적 고통은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최근에 벌인 믿을 수 없는 죄악은 알지 못해서.

보고도 부정하기 바빴던 혼란의 내막을 잠시나마 묻어 둘 수 있어 불행중 다행이라 여겨졌다.

내가 기억을 찾아 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내 기억을 원한다면 거절할 수 없을거 같아서. 그것만은 막고 싶어 충격이 덜한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것도 모자라 제 딸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비정한 아버지.

그의 추악한 민낯을 조금이라도 가리고자 작은 것을 흔쾌히 내어준 것이다.

지금의 그녀라면 금세 이겨낼 걸 알기에.

바로 볼걸 알기에.

술로 이겨내려 했던 그때와 달라진 그녀를 믿은 것이다.

며칠전 해소된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님은 왜 갑자기 변해 버린걸까?하고.

나는 은하가 추스르길 기다리며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보았다.

정치가 그를 변하게 만든 줄 알았다.

박정화 씨의 요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 해답 모두 천륜을 져버리기엔 너무 덧 없어 생각을 달리 했다.

그랬더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려운게 아니었다.

은하의 기억도 해산의 기억도 조금씩 사지고 있는 내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딸을 곤경에 빠트리면서까지 엄청난 자작극을 벌이면서까지 그런 이유는 앞서 생각한 두 이유보다 더 덧 없었다.

일주일 전 아버님을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기사가 터지고 이튿날 저녁 무렵.

그는 내가 올 줄 알았다며 산장도 비우고 비장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부연 설명은 하고 싶지 않은 듯 류홍렬 소장과 함께 있었다.



···.



“아버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다 알고 온 줄 아네. 그러니, 서서 그러지 말고 앉지 그러나.”


말없이 잔에 술을 채운 아버님은 내게 한잔 건네고 제 잔도 따랐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키더니 어정쩡하게 서 있는 소장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류홍렬 소장이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궁금해할 이야기를 먼저 꺼내 말했다.


“명호 씨라 불러도 될까요?”

“편하실데로 하세요.”

“정연이 행방을 궁금해한다 들었습니다.”

“정말 아십니까?”

“알다 마다요. 헌데 믿어 주실지는 모르겠네요.”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도산에게 전해준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점이 있다면 구슬 조각의 능력을 아냐 모르냐의 차이.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나도 도산과 같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

그는 게임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현상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 주었다.


“구슬 조각마다 다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알 테고. 제가 알려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구슬의 또 다른 능력입니다.”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 말고도 다른 능력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기억을 조작한다라, 그건 일부 조각의 능력일 뿐이죠. 구슬 조각의 능력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최근에 발견된 구슬 조각은 신체를 복원하는 능력을 지녔지요. 한정적이고 까다롭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말씀드리려 했던 말을 이어 하자면, 구슬 조각은 어떤 조건에서···.”


아주 긴 이야기였다.

난해해 이해하기 힘들고 믿기지도 않는 이야기들.

핵심은 구슬 조각 때문에 작은아버지가 다른 세계 혹은 다른 차원으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산에게 이 이야기를 전한 이유는 나로 인해 작은아버지의 행방이 와전되길 원치 않아서였다.

판단은 도산의 몫.

믿을 수 없단 이유로 찾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 배제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면 작은 아버지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으로선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의원께서 지원을 약속하셨으니 곧 방법을 찾을 수 있겠죠. 그전에···.”


바라는게 있어 보이는 류소장. 하지만 서의원이 끼어들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순 없었다.

이어지는 추객령.

아쉽지만, 그는 몸을 일으켜야 했다.


“소장님, 자리 좀 피해 주시겠습니까? 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아!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 없게 그만. 편히 이야기 나누십시요. 구슬 조각이 당장 급한 것도 아니니까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목례 후 류 소장이 사라지자 서의원은 빈 잔에 소주를 따라 목을 축였다.

잔이 상에 놓이고 그는 한참을 가득 담겨 있는 내 잔만을 바라보았다.

잠시의 적막.

우린 서로 말이 없다. 그저 이따금씩 풀벌레 소리를 덮으며 액체가 잔을 긁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나는 말하길 기다리려다가 먼저 말해 주길 바라는 것 같아 조심스레 대화를 유도했다.


“아버님 빈속에 속 버립니다.”

“자네가 상대를 안 해주니 이렇게라도 달랠 수 밖에.”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번엔 같이 드시죠.”


‘꼴깍 꼴깍.’


상에는 흔한 김치 한점 없다.

다 먹은 소주 한 병과 반쯤 비워진 다른 한병 뿐. 하지만 우리 사이를 거대한 장막 가로막고 있었다.

그건 실망도 화도 아닌 색다른 감정이었다.

이번엔 서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 덕분에 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벽이 무엇인지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시계는 가지고 왔나?”

“아버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괜찮네! 뺏으려 만나자 한건 아니니까. 녀석 날 많이 원망 할 게야. 그러니 자네가 잘 다독여 줬으면 바라네.”


술이 쓰다.

짐작은 진실이 되었고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맥없이 눈커풀이 닫혔다.

차라리 잡아 떼고 모르는 일이라 우겼으면, 오해라며 변명이라도 했으면 이 정도는 아닐진데.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고 별거 아닌 양 남에게 맡긴 행태가 실망스러워 화가 끌어올랐다.

그럼에도 입은 열리지 않았다.

확인하러 왔지 따지러 온 게 아니니. 제삼자의 주제넘은 간섭은 여기까지로 만족해야 했다.


“기억을 지운 이가 나란 사실은 덮어줬으면 하네. 어려운 부탁인가?”

“아버님, 먼저 말씀하셨으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염치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딱 반년. 더도 말고 딱 그때 까지만 함구해 주길 바라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내막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한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허허, 보기와 다르게 강단이 있구만 자네. 그래, 어디 말 해보시게나.”


뭘 물을지 알겠다는 얼굴.

그는 또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고 뻔한 질문을 기다렸다.

나는 기대감 없는 그 얼굴에 보기 좋게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복수를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자네···.”

“대통령이란 명패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까!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시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속편하게 대통령이 되려 발악하는 늙은이로 봐주지 그랬나. 제 딸까지 도구로 이용할 정도로 권세에 눈이 멀어버린 그런 비열한 인간으로.”

“파라다이스 그룹의 완전한 해체 입니까?”


다시 한잔이 채워지고 액체는 곧장 목젖을 넘었다.

그는 빈 잔을 공허히 내려 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그 빈 잔에 빗대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야자동차가 망했을 때 멈췄어야 했어. 얼마나 허망하던지, 그때까지만 해도 복수는 덧없고 의미 없다고 여겨졌거든.”

“왜 생각을 바꾸신 겁니까?”

“사람이란게 참 아이러니해. 아니 간사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그들이 날 속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허망한 줄 알면서도 여태껏 멈출 수 없었으니까.”


가야자동차를 삼키기 위한 파라다이스 그룹의 뒷 공작.

한낱 의원이었던 그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었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내 점유율 20%를 넘는 건실한 회사가 고작 이천억의 어음을 막지 못했다면 그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는 대충 짐작되고도 남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진짜 원수를 알게 되었고, 이용당했다는 분노에 지금껏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자네 짐작이 맞네. 그리고 멈출 생각도 없어. 여기까지 온 이상 이대로는 멈출 순 없네.”

“그 끝이 허무해도 말입니까?”

“죽은 아내는 가슴에 묻었네. 복수가 아니야. 이건 본보기 일세. 그 누구도 죄값을 받기 전까지 발 뻗고 잘 수 없다는 철면피들에 보내는 경고이자 내 의지란 말일세.”

“왜 왜 하필···..”

“자네처럼 누군가 나서길 바란다면 세상이 바뀌기나 하겠나? 운명이 준 시련, 난 받아들일 바엔 싸우길 선택했네. 그 길이 비록 정도가 아닐지라도 말일세.”


확고한 신념에 이번에 소주잔이 내 입으로 향했다.

딸을 생각해서라도 멈춰 달라는 말이 의미 없어져 타는 목을 알콜로라도 달래야 했다.

마지막 잔을 채운 그가 쓰디쓴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공감되지 않는 신념에 눈을 마주 보는데도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나는 미련없이 빈잔을 식탁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예의 따지지 않고 먼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좀 더 마시지 그러나?”

“전 안주 없이는 못 마십니다.”

“이거 원,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붙잡지도 못하겠고만.”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약속이라 칭한 것만으로 만족하네. 멀리 안나가네.”


산장을 나서 꽤 먼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하산하는 데만 30분 걸렸으니 버스가 다니는 대로까지는 아마 한시간 가까이 걸린 듯하다.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고 어떤게 그녈 위한 일인지. 하지만 긴 시간을 고민해 보아도 흔들리는 마음은 정답을 고르지 못했다.

생각한 거라 곤 전처럼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결정을 내리는 건 기억을 찾은 그녀의 의지를 확인한 후라며 갈대같이 흔들리는 결정 장애를 두둔했다.

은하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나처럼 찌질한 모습은 보이진 않았겠지.

어쩌면 단순한 생각이 해답에 가까울지 몰라 인중을 긁으며 수중기가 뿜어진다.

밤공기가 차가워진만큼 심장은 식어간다.

진실을 알기 위해 아등바등, 불타던 의욕은 양은 냄비처럼 금세 식어버렸다.

누구에게라도 털어 놓고 싶다.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를.

그날 나는 취기도는 몸을 이끌고 발이 이끄는 데로 정처없이 거리를 배회했다.

버스를 타고 익숙한 거리를 걷고 그러다 발길이 멈춘 곳은 아침마다 죽도록 가기 싫었던 제출한 사표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예전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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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3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1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10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1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18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0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4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3 0 12쪽
»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4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4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6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2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8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7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6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7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6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7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2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0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19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9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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