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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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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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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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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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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0화. 그의 이야기.

DUMMY

60화. 그의 이야기.



“연극하지마! 어디서 개수작이야!”

“···.”

“말 해! 네가 꾸민 거잖아? 네가 꾸민 짓이라고 빨리 말 하라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해진.

그 모습에 이가 갈리고 열이 뻗힌다.

그가 아닌걸 아는데, 은하의 기억을 통해 확인했는데, 마주한 엿 같은 상황은 합리적인 결론을 리셋 시키며 온전히 그를 범인으로 둔갑시켰다.

주먹으로 턱을 후려치고 다시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 숙인 그대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말 하라고!”


아무리 다그쳐도, 윽박 질러도 미안하다는 말만 되 뇌일 뿐. 반항도 저항도 없다.

그저 촉촉히 젖은 눈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묵묵히 취조를 감내했다.

때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맞아 준다 해서 바뀌는 건 없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참회를 위해, 나는 배신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우린 무대에 서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만! 그만 하세요.”


더는 못 보겠다며 조비서가 나서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신 실토하기 시작했다.


“제 단독으로 꾸민 일입니다. 지점장님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걸 어떻게 믿어!”

“테이블에 놓인 서류는 ‘파라다이스 유통 지분 양도 계약서’입니다. 보시다 싶이 사인도 없이 구겨져 있습니다.”


테이블에 아무렇게 펼쳐진 서류더미.

반은 구겨져 있고 일부는 훼손 되 있다.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은 서류는 멀쩡한 곳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거래.

시계를 상납한 이상 서류는 의미가 없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그는 친구를 판 배신자였다.


“다 내 불찰이야. 미안하다 은하야.”

“기자는 아닐테고 누구야?”

“기자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알고 묻는 듯한 질문에 그는 외투를 걸치더니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조비사가 사원증을 반납하는데도 힐끔 본 그는 일언반구 없이 집무실을 나섰다.

누굴 만날지 알기에 반납한 조비서의 사원증을 챙겨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꼴보기도 싫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도 같이 가.”


은하도 합류하고 우린 해진의 차에 몸을 싣고 도심을 나아갔다. 하지만 생각했던 목적지와 다른 방향.

차는 시계와 상관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개가 갸웃해지고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차가 익숙한 길로 접어들자 그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의원님께 가려는 겁니까?”

“먼저 만나 뵙고 말씀드리는 게 도리 같습니다.”

“차 세워!”


은하의 고함에 차는 한강 변 대로에 정차했다.

그는 운전대에 고개를 박고 생각에 잠겼고 생각을 정리한 은하는 따지듯 물었다.


“시계 안 찾을 거야?”

“못 찾아. 절대 주지 않을 거야.”

“네 형이 그 시계가 필요한 이유가 뭔데?”

“역시, 알고 있었구나.”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항거할 수 없는 분노에 잠식당한 듯.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처음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새끼는 원래 그랬어! 독사 같은 놈이라고. 어려서부터 줄 곧 제 이익만 쫓는 이기적인 놈이었다고. 넌 알아보지 못했고 말 해줘도 믿지 않았지. 너는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위한 덫,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해진의 이야기를 듣자 그녀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흐렀다.

드문드문 떠오르던 조각은 제 자리를 찾고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되기 시작했다.

퍼즐이 맞춰지자 그림은 점점 제 모습을 갖춰 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슬픔이 몰려와 몸을 가누기도 벅찼지만,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흩어지는 정신줄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이제야 그녀의 과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닥친 고난은 눈에 보였던 혼란이 전부가 아니었다.

세상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첫사랑에 대한 실망도 아닌, 그 보다 깊고 어두운 현실이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누구라도 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순간들.

격동하는 감정에 구토감이 몰려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이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전화를 받는 척 내려 등을 돌렸다.

사실을 숨기려 전전긍긍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혼자 삭히고 감내하기 힘겨웠을 텐데 고군분투 싸웠을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새롭게 알아낸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다 말해 주기로 약속했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말 할 수 없었다. 때론 모르는게 약.

삭히고 감내하는 건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겨 둬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복잡하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그녀가 다치지 않게 떠안는 것.

원치 않았다며 그때처럼 화내고 탓하지 않을까 무서웠지만, 기억을 전이 받은 대가로 보듬고 감내해야 했다.


“넌 집에 가 있어.”

“내 일이야. 떠 넘길 생각은 없어.”


고집 쎈 그녀를 설득할 방법도 회유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결심은 확고 하고 방편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다.

서운해하겠지만 가장 현명한 방법.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돌아 갈래. 선임 근무자도 휴무라 매장에 사람이 없어.”

“뭐?”


붙잡으려 뻗었던 손을 거두고 그녀가 해진의 차에 오른다.

가슴이 아렸지만, 뒤 돌아보면 괜한 말을 할 것 같아 택시를 잡아 새로운 목적지로 향했다.


“쌍문동이요.”


집에 들러 도산의 유품을 챙기고 다시 택시에 올라 파라다이스 전자 본사로 향했다.

집에서 제법 먼 거리.

차분히 계획을 세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로비를 지나며 챙겨 온 조비서의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당당히 보안문을 지나갔다. 하지만 회사가 달랐던 탓에 조비서의 사원증으로 입구를 통과할 수 없었다.

보안문이 경보음이 울리고 멀뚱히 서 있던 보안요원이 다가온다. 하지만 예상했던 터라 차분하게 문제에 대응할 수 있었다.


“사장님을 뵙고자 파라다이스 유통에서 왔습니다. 방문 등록 부탁드립니다.”

“사전에 미리 연락하셨나요?”

“사안이 급박해 미처 연락 드리지 못했습니다. 급하니 통과 먼저 시켜 주시죠.”

“잠시만요. 비서실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조비서의 사원증을 받아 든 청원경찰은 로비 안내에게 건네며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 허술할 줄 알았는데, 메뉴얼은 철저하고 상대는 유도리가 없었다.

틀렸구나 싶어 적절한 변명을 준비하려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보안문은 쉽게 열렸다.


“확인됐습니다. 24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너무 쉬워 이상했지만, 막연히 자주 들락거린 조비서 행보 덕분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장실에 들어서고 알게 되었다.

아무 제제 없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조비서의 후임으로 알 줄 알았는데, 반갑게 맞이해준 이는 나를 알고 있었다.


“비서 실장, 김진입니다. 명호씨, 사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 돋고 등골이 오싹하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했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자신감은 온데 간데없이 손끝이 파르르 떨려 왔다.

김진 실장이라면 사람 하나 쉽게 병신으로 만드는 냉혈한.

전 운전기사와 같은 꼴은 면하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곳은 호랑이의 아가리 속이고 허점을 보이면 잡아 먹히고 말 테니까.

비서의 역겨운 미소를 뒤로 하고 해산을 마주했다.

은하의 기억 속 남자와 그는 같은 사람이었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온화한 미소와 깍듯한 태도는 해진과 같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가운 인상에는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살갑게 반기며 악수를 청하는 소탈한 모습 이면에서 능구렁이 같은 검은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를 잘 알았지만 모르는 척해야 했다.

계획이 성공하려면 나는 여자에 빠져 사리분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로 보여야 했다.


“유명하신 분 만나 뵙게 되, 가문의 영광입니다. 포옹 한번 해도 될까요?”

“남자에겐 취미 없지만, 다른 사심이 없다면 얼마든지요.”


악수를 거절한 대신 몸둘바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가볍게 안았다. 그리고 권한 자리에 앉으며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한 연기에 돌입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하, 시계 때문에 무척 난처해졌어요.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이걸 어쩌나. 그건 어려울 거 같은데요.”

“왜죠?”

“동생에게 약속한 지분은 모두 양도했습니다. 값을 모두 치렀으니 이젠 내 것이지요.”

“어디에 쓰려는 거죠?”

“다른 뜻은 없습니다. 시계에 박힌 보석, 진귀한 거라 소장하고 싶었거든요.”


그도 구슬 조각이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능력도 알고 있어 보였다.

구슬 조각을 언급하는 이유는 날 떠보는 것.

알기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마음을 읽히는 것 같아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은하는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는 사람이 사장님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생각은 다르지만요.”

“이거 섭섭해서 어쩌나. 그래서요?”

“시계를 돌려주세요. 그러면 그녀도 더는 사장님을 의심하지 못할 겁니다.”


이마를 쓸며 웃음을 참는 해산. 그 모습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시계를 돌려 달라는 부탁에 웃을 만한 포인트는 없었는데, 억지로 참는 웃음의 의미가 날 꿰뚫어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딱 봐도 영화 속 망나니 제벌 2세와 같은 모습.

이 후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입은 바짝 말라 갔다.


“큭큭큭, 죄송합니다. 제가 간혹 이래요. 가끔 공상에 빠져 혼자 웃게 되죠. 그러니 오해 마세요. 비웃음은 아니니까.”


비웃음이 확실하다. 떼를 쓰는 듯한 요구에 그는 감정을 드러내며 조롱했다.

차라리 무시하거나 화를 냈다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였을 텐데, 오히려 그런 면모가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나누던 대화와 동떨어진 질문.

모르는 이는 엉뚱하다 여겼겠지만 내 겐 스산하게 다가왔다.

그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걱정이 한껏 묻어 있는 질문은 짙은 밤보다 음산하게 들렸다.


“은하, 기억을 잃었다 들었는데, 찾은 모양이죠?”

“그걸 어떻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기억을 되 찾은 거죠? 쉽지 안을 텐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왠지 물어 선 안 될 거 같은 직감에 말하고 싶어 안달이난 그를 회피했다.

피가 마를 지경이다.

협박도 위협도 없었는데 말을 섞을 때 마다 냉기는 피부를 타고 침투했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맹수의 그것처럼 본능만 가득 차 있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게 되면 나도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거짓 모습은 충분히 어필했으니 목적을 이루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설마, 시계를 이용해 은하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시죠?”

“전혀요. 걱정하지 마세요. 더는 이 시계가 세상에 나올 일은 없을 테니까.”

“돌려줄 생각은 없는 겁니까?”

“처음엔 없었는데, 은하의 간절함이 와 닿아 고민이 되네요. 좀 더 생각해 봐도 될까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죠.”


드디어 의미 없는 대화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부터가 중요했다.

내가 이 곳에 온 진짜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 남자 친구가 생겼다길래 궁금했거든요.”

“역시 모르시는게 없으시네요.”

“조비서가 간간히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오해는 마시구요.”

“어휴, 어떻게 제가 감히. 바쁘실 텐데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포옹 어떠세요.”

“얼마든지요.”


거림낌없는 대답에 처음과 달리 그를 거칠게 안았다. 그러면서 영광스럽다는 표정은 잊지 않았다.

그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이물감이 잡히고, 이물감은 손바닥 중앙에 놓인다.

함박 웃음을 짓는 그를 따라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소원을 되뇌며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의 진짜 속내를 보여줘!’


이게 과연 될까?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손바닥을 비집고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고 놈과 나는 몰려오는 현기증에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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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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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4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2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10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2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20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3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5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5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5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6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8 0 14쪽
»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3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8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7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6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7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7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9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4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1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21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9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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