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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486
추천수 :
28
글자수 :
421,635

작성
23.07.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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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6화. 그의 이야기.

DUMMY

66화. 그의 이야기.



집을 나간 은하가 나흘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얇게 입고 나갔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닌지.

자는척했던 그때가 미친듯이 후회스럽다.

슬픔에 같이 맞서 줬어야 했는데, 혼자가 아니라고 안아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 한켠이 아렸다.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바람 좀 쐬고 오면 낫지 않을까? 하고.

같잖은 위로를 할 바엔 그게 그녈 위한 선택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게 화를 더 부추긴 꼴이 되었다.

그 후 그녀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걱정 때문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를 찾아 나서진 못했다.

핸드폰을 꺼놨다는 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니, 걱정을 핑계로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순 없었다.


“치사하게 핸드폰을 꺼 놓냐!”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친절한 안내 멘트에 쉰일곱번째 통화도 막을 내렸다.

나는 하염없이 전화기를 내려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냉수라도 한잔 들이 켜야지 안그러면 타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주방에 가자마자 물한잔을 들이켰다. 때마침 거실에서 콩나물을 다듬던 엄마가 날 올려본다.

갑작스러운 은하의 가출에 대한 궁금증이 서려 있는 눈빛.

못 본체 하려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눈빛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아니, 아니라고!”

“누가 뭐래? 얘는 혼자 제발 저려.”

“자꾸 그런 눈으로 날 보니까 그렇지.”

“내 아들인데 엄마가 쳐다도 못 봐? 아무튼 싸가지없는건 지 아빠를 닮아서는.”

“어머니. 죄송한 말씀인데. 전 외모 성격 모두 외탁입니다.”

“말하는 거 하고는. 말이 나와 묻는데, 너희 싸웠냐?”

“물을 줄 알고 대답 먼저 드렸습니다. 됐죠!”


영화 ‘메트릭스’에서 나오는 예언자 오라클 빰치는 독심술을 펼치고 서둘러 방으로 복귀했다.

폭력행사를 하기전에 도망이 상책이었다.

손에 잡힐 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한켠에 묻고 날린 작업을 복구하러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엄마보다 더 피곤한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이 닥쳐 다시 독심술을 펼쳐야 했다.


“아니, 아니라고!”

“안이고 밖이고 간에. 은하 어쩔거시여.”

“뭘 어째?”

“이대로 영영 안 볼거냐 이말이여.”

“안 싸웠다고. 싸운거 아니라고!”

“근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가브렀다고? 구라를 쳐도 정성 한스푼 정도는 담아서 쳐야제. 그 독한것이 집을 나갈 정도면 대판 싸워브렀고만 어디서 공갈이여.”

“하···.”

“아야, 뭐 더냐? 후딱 안 나가냐!”


팔찌 분실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는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 그를 위해 숨긴 거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이정도의 굴욕은 참아야 했다.

나는 매트리스 밑에 있는 팔찌를 냅다 놈의 뒤통수에 던지고픈 욕구를 가까스로 이겨 내고 명령데로 집을 나섰다.

사실 그가 등을 떠밀지 않았더라도 오늘은 찾아가 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정도 시간이면 화도 많이 누그러졌을 테고 생각도 정리됐을 테니,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끝끝내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아버지를 이해해 달라 종용한 거 같아. 제 슬픔을 별거 아닌 거로 만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등 떠밀린 게 잘된 건 지도 모르겠다.

어떨 땐 방석을 깔아 줘야 수월해질 때도 있는 법.

나는 내 오만이 빚은 그녀의 상처를 그녀를 보고싶어 하는 가족의 그리움으로 감추고 발걸음을 독촉했다.

그녀의 집 앞.

오늘따라 집이 더 삭막해 보인다.

집 주인의 실체를 알고 나서 그런지 더욱 그래 보였다.

문 앞을 서성이길 수십 분. 막상 오니 망설여졌다.

기억을 찾은 그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또 다른 변수에 지레 겁먹은 손가락은 정처 없이 버튼 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벨을 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때마침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만났고 이 곳에 온 목적은 덧없이 의미를 잃었다.


“명호 학생?”

“안녕하셨어요.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 신가 봐요?”

“마트 좀. 사모님께 부탁받은게 있어서.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은하 좀 볼까 해서요.”

“무슨 소리야. 은하 학생을 왜 여기서 찾아. 학생 집에 같이 지내는 거 아니었어?”

“네? 여기 없어요?”

“학생 집에 머문다고 들은 후 본적 없는 걸.”


아니 이게 무슨 청척벽력 같은 소리인가?

그녀가 집에 없다니. 나는 급한 마음에 알고 있는 마지막 목격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명호씨. 무슨일이시죠?]

“은하 어디갔습니까?”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은하가 나흘째 행방불명입니다. 전화도 꺼져 있고요. 그날 댁을 만나러 갔지 않습니까! 정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겁니까?”

[행방불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디 간다는 말도 없었습니까?”

[어디세요? 제가 그 곳으로 가겠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지금은 은하 본가입니다. 다른 데서 뵙죠. 찾아볼 데가 몇 군데 있으니.”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녀가 기거할만 한 곳에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전화하는 족족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불안감에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능성이 적더라도 어디든 뒤져봐야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다래 어머님이 입원하신 병원.

역시나 은하는 그곳에 없었다.

실망할 세도 없이 다른 곳을 떠 올려야 했다.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곳은 없었다.

유일한 친구인 우주도 못 봤다 하고, 찾을 만한 장소는 몇 없었다.


“찜질방을 싹다 뒤져야 하나?”


이런식으로 반응할 줄 몰랐다.

여린 줄 알았지만, 이정도 일 줄 몰랐다.

크게 화내고 풀 줄 알았다. 설마 도피를 선택할 줄이야.

생각은 많은데, 딱히 쓸만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을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겠다.’는 생각에 접어 들었을 때,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 입에서 은하의 이름이 나오는 통에 생각을 접어야 했다.


“오빠!”

“어, 유정아.”

“말 도 없이 일도 그만두고 여긴 무슨일이야? 다래 만나러 온 거야?”

“아니, 누구 좀 찾으러. 미안한데 조금 바뻐서.”

“혹시 은하씨?”


은하란 한마디에 돌아선 발길이 다급히 멈춰섰다.

넘겨짚은 줄 알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민하는 듯 입술을 축인 그녀가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궁금한 건 은하의 행방인데, 그녀는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오빠 마음. 단순히 내게 화난게 아니었구나!”

“미안한데,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이젠 의미조차 없는 거야? 슬프네. 그날 내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우리 지금도 그때와 같을까?”

“유정아···.”

“알았어. 미안해. 나도 정리가 필요해서 그래서 물었어. 후회해서 무슨 소용이야.”

“미안하다.”

“오빠가 무슨, 내가 미안하지.”


이미 끝난 이야기였건만 바로 제지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이 너무 서글퍼 보여 내 목적만을 닥달할 순 없었다.


“그 동안 정말 미안 했어. 상처를 줘서. 그리고 놓지 않아서.”

“갑자기 왜 그래.”

“이러면 좀 개운해지지 않을까 해서. 못됐지? 끝까지 내 생각만 하고.”

“그렇게 말하니 뭐라 말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은하씨에게 못 할 짓도 했는데, 받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은하씨에겐 미안하다고 전해줘. 정리했다고 앞으로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라고.”

“그래···..”


잠시 후, 마음의 평안을 얻었는지 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받아 들었다며 개운한 척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에 마음이 풀린다.

비록 억지스러워 보였지만, 좋아했던 그때의 얼굴을 마주하니 과거의 잘못이 너무 쉽게 용서되었다.

화내지 못했던, 원망한마디 쏟아내지 않았던, 악감정만 남은 그녀와의 이별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정리되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이별에는 터럭도 미치지 못했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여겨졌다.

미련도 원망도 손을 맞 잡으면 눈 녹듯 사라질 걸 알기에. 서로를 위해 이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하얀손을 맞잡고 괜찮다며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러자 그제야 그녀가 은하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었다.


“사흘전이었던거 같아. 은하씨를 봤던 때가.”

“어디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장소.”

“은하가 병원에 왔었다고?”

“응. 난 숙모님 병문안 온 줄 알았지. 그런데, 뒤 따라온 검은 세단을 타고 다시 병원을 나가 버리더라고.”

“검은 세단? 그게 누구 차인데?”

“글쎄, 그것 까지는. 어떤 날카롭게 생긴 남자와 잠시 야이기 하더니 따라 가버렸어.”

“얼굴은? 이름은?”

“너무 어두워서. 게다가 처음보는 얼굴이라···. 인상이 차가워 보였단 느낌 말고는 기억 나는게 없어.”

“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그거라도 고맙다.”


날카롭게 생긴 차가운 인상이라.

나는 그녀가 말한 인상착의에 가까운 인물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대조해 보았다. 하지만 마땅한 인물도 떠오르지 않았고 있어도 은하와의 연결고리는 부족했다.

집에 없으니, 가족은 아니란 말인데.

아무리 떠 올려도 용의자를 특정 지을 수 없었다.

때마침 놓친 기억을 떠올린 샤넬이 손가락을 부딪혔다.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한 제스처에 눈이 초롱 빛났다. 하지만 단어가 당장 떠오르지 않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반쪽짜리 기억에 그녀도 기억해 내려 안간힘을 썼다.


“아···. 그 뭐냐. 혀짧은 여배우가 남자 주인공을 부르는 호칭 있었는데.”

“혀가 짧은 여배우? 드라마에서?”

“어어, 오래된 드라마인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명대사를 만들어 낸.”

“’천국의 계단’ 10년도 더 된 그 드라마 말이야?”

“맞아. 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 부르는 명칭 있잖아!”

“뭐지? ‘공포의 회전목마.’짤 밖에 기억 안나. 그게 뭐야?”

“대표, 이사, 전무, 상무, 이런 호칭 중 하나인데, 혀짧게 발음하면 웃긴···.”

“실땅님?”

“맞아! 실장. 은하씨가 그 남자를 실장이라 불렀어.”

“아···. 유정아 그런데 그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야.”

“아 그래? 아무튼. 너무 오래되 기억나지 않네.”


실장이란 호칭 때문에 이 긴 대화를 나누다니. 헌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아는 이중 실장이란 직책을 갖은 이는 딱 한명 뿐.

김진 실장. 그 놈이다.

잠적한게 아니라 잠적 당한 거라니.

생각치도 못한 전개에 입술이 물리고 언 귓바퀴에서 증기가 일었다.

놈을 찢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끓었다.

김진, 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천국의 계단.’ 레전드 짤을 찾아보겠다는 잠시 든 딴 생각을 치우고 그를 찾을 가장 빠른 방법을 취했다.

해산.

이 빌어먹을 놈은 거제로 쫓겨났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또 뭘 꾸미고 있는지.

화가 들끓고 속에 천불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녀석의 멱살을 비틀어 쥐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화를 다스려야 한다.

하수인이 아닌 놈에게 직접 해명을 들으려면,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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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4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2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10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2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20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3 0 12쪽
»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5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5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5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6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8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2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8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7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6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7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7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9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4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1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21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9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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