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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드라마

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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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수 :
421,635

작성
23.07.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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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5화. 그녀의 이야기.

DUMMY

65화. 그녀의 이야기.



샤워기를 틀어 놓은 지도 20여분이 흘렀다.

나는 낙하하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몸에 힘을 가득 주었다.


‘끄으으응 아.’


‘오늘따라 왜 이리 똥이 된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복잡한 심정에 장에 붙어 말라 비틀어진 놈에게 괜한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다고 나올 녀석이 아닌데.

하지만 계속 투덜댔더니 생각과 달리 효과는 있었다.

고속엘리베이터가 막 출발한 느낌.

아랫배가 울렁이고 불필요한 신체의 일부가 탈락되는 것 같은 상쾌함이 밀려왔다.


‘포옹당.’


아마존에 서식하는 아나콘다 저리 가라 할 거대한 녀석이 똬리를 틀고 날 올려본다.

나는 순산의 희열에 복받쳐 잠시 놈의 대견한 자태를 내려 보았다.


‘우웩.’


내 것이었지만 이젠 내 것이 아닌 놈을 보자 25년전 먹었던 이유식까지 올라오며 구토감을 유발했다.

나는 아래로 쏟아낸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워 서둘러 레버를 눌러 놈과 작별을 고했다.


‘쏴아아르르르 꿀렁 꿀렁 꿀렁.’


“어라 이게···. 이게 왜 이래?”


얕은 수면에 머리만 빼꼼히 내민녀석.

놈은 휴지사이 몸통을 숨기고 예전 있던 곳이 좋았더라며 떠나길 거부했다.

나는 안된다며 우린 다신 만날 수 없는 사이라며 다급히 레버를 연속으로 눌렀다. 그러자 놈은 싫다며 저를 보내지 말라며 점점 깊어지는 웅덩이를 더럽히며 농성을 벌였다.


‘좆댔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누르면 락스로 순수해졌던 화장실은 내 분신의 부산물들로 더럽혀질 것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넘치기 일보 직전인 웅덩이를 하염없이 내려봐야 했다. 그러길 10여분.

웅덩이의 수위가 낮아지자 도구의 힘을 빌려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 번쯤은 맞이하는 위기로 인해 삼십분가량을 화장실에서 더 보내야했다.

기나긴 사투 끝에 드디어 빛을 볼 수 있었다.

육각 모양의 빛무리는 여러가지 의미로 광명을 찾은 날 따듯하게 반겨 주었다.

나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충만함을 간직하려 산등성이 뒤로 지는 태양을 눈으로 쫓았다.

노을진 하늘 그리고 하루의 끝을 알리는 긴 빛 줄기.

그 빛은 문지방에서 졸고 있는 명호에 닿더니 긴 그림자를 만든다.

나는 그제야 그를 발견하고 한시간이나 넘게 샤워기를 틀어 놨었던 민망함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내 똥싸는 버릇을 알고 있을 텐데, 설마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우린 엉덩이 비트박스도 서로 들려줬던 사이고 그보다 더한 것도 강제 공유했던 사이다. 하지만 기억을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한 과거는 어색해지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기억을 잃기 전 나와 기억을 잃은 후 나, 그리고 기억을 되찾은 나.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 같다 느껴졌다.

아마도 감정, 가치관 그리고 성격은 환경에 따라 후천적으로 바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혼란스러워 그가 깨지 않게 조심이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자주 다니지 않았던 길을 찾아 동네를 혼자 배회했다.

평소 좋아했던 상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문득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보았다.

어두워져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높게만 보였다.

문명의 빛이 하늘에 뜬 별들까지 지워 더욱 그래 보인다.

샛노란 달이 떠 있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하늘이 공허한 암흑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년에 비해 유독 따뜻한 초겨울.

맨투맨 한 장만 걸쳤는데도 춥기는커녕 덥다 느껴질 정도다.

나는 이 계절이 내 마음과 같다 느껴져 티셔츠 목선을 펄럭여 더운 열기를 시켰다.

기억을 찾으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지금 보는 밤하늘처럼, 기억은 문명이 되어준 대신 어두웠을 때 비춰주던 별들을 지워버렸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가 이에 물려 짓이겨 진다.

차라리 명호 말을 들을 걸. 이제야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명호가 끝끝내 숨겼던 이유를 안다.

언젠가 밝혀질 일인 줄 알면서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말하길 아꼈던 이유를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후회가 된다.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감정 소모가 필요한 걸 알기에 그의 노력을 수포로 만든 것 같아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한 대 때리고 퉁쳤던 것이다.

얄미움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 뒤섞이며 이상한 감정이 피어나서.

내가 무슨 표정을 짓던 그는 스스로를 책망할 걸 알기에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물론 갑자기 속이 않 좋아진 것도 한몫 했지만.

지금쯤이면 괜찮아졌으려나?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부러 동네를 한 바퀴 빙 돌아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걱정했을 명호에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되 발길이 닿는 데로 걸은 것이다. 그런 내 눈에 익숙한 덩치가 잡혔다.

그는 한적한 공원, 작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다 먹은 맥주캔을 구기고 있었다.

말없이 다가가 옆 그네에 앉았다. 그리고 반동을 주어 잠시 그네에 몸을 맡겼다.

그네가 앞, 뒤로 움직이고 청량한 바람일 불 때마다 근심은 애초에 별것도 아니었던 양 바람결에 흩어졌다.

그도 나와 같이 짓누르는 어둠을 훌훌 털어 버리길 바라며 동심을 자극해 보았다.


“요샌 놀이터에서 술 마시면 안 돼! 잡혀가.”

“참견 말고 갈길 가라잉.”

“그러지 말고 타봐! 오랜만에 타니까 재밌네.”


대꾸도 하지 않는 도산.

그는 모범 시민답게 구긴 맥주캔을 봉지에 버리고 다른 맥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개봉한 맥주를 입에 들이 부었다.

충분히 이해 가는 서운함에 자전운동을 멈추고 손에 들린 맥주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와 같이 입에 한가득 털어 넣었다.

그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그는 다른 맥주캔을 꺼내더니 대수롭지 않게 입구를 개봉했다.

그 모습이 왠지 더 마음이 쓰여 탄산을 넘겨도 게운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큰 상실감에 장난스레 말하면서도 눈치가 보였다.


“새것이 있었으면 날 줬어야지.”

“꽃순아.”

“뭐, 무섭게 왜?”

“전자발찌말이여.”

“왜, 걔는 왜?”

“니는 혹시 아냐? 왜 숨기는지.”


물론 모른다.

애가 타는 걸 알면서, 누구보다 궁금해할 걸 알면서 질질 끌며 모른척했던 이유를.

아끼는 유품을 숨기면서까지 분노를 한 몸에 받으려는 이유를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믿는다.

이유가 있을거라고.

고지식 하다 느껴질 정도로 생각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 녀석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라 짐작할 뿐이다.

뭐라 대답해야 좋을까?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나보다 명호를 잘 아는 그에게 애초에 대신해 입장을 대변할 필요는 없었다.


“몇 대 더 쥐어 패면 입을 열지 않을까?”

“그럴 놈이였으믄 진즉에 말 해줬겄제. 나가 무서운게 뭔 줄 아냐? 그 느자그없는 새끼의 말이 참말 일까봐. 쳐 맞으면서도 담담한 얼굴이 숨김없어 보여 미치고 팔짝 뛰겄 당게.”

“에이, 그게 말이···.”


믿지 못하겠단 말을 끝끝내 하지 못했다.

구슬 조각 그리고 기억의 소실과 전이.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나였기에 마냥 허무맹랑하다 결론 내릴 순 없었다.

그도 구슬 조각과 관련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듣는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에 막 쏟아내려던 과거사는 목젖을 넘지 못하고 삼켜졌다.


“김진인가 뭔가 하는 파라다이스전자 비서가 날 찾아 왔으야. 팔찌를 넘기면 울 아부지 행방이랑 50억을 준다면서.”

“아···.”

“너는 누군지 알 거 같더니만, 근디 그 놈이 뭔데 울 아부지와 팔찌를 아는 거여? 설마 삼촌에게 들은 말이 사실이라도 되냐?”

“하, 그래서···. 그래서 명호가.”

“맞어야. 나 솔직히 50억에 혹 해쓰야. 아부지 행방보다 50억에 눈이 멀어서 눈에 뵈는게 없었당께. 명호 이 새끼가 50억 빼돌리려 수작 부리는게 아닌지. 내 뒤통수 치려는게 아닌지 아부지 행방보다 그게 더 노심초사 걱정이 되가꼬.”

“됐어! 그만해. 이해하니까. 명호 그럴 애 아니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아따, 참말로. 할말없게 만들어 블고만. 알았으야. 근데 한 대 더 쥐어 패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울 아버지를 가지고 그런 거짓말은 지어 내는건 도리가 아니제. 그래도 니 생각해서 뒤 통수 한 대만 후릴란께 그리 알아라잉.”

“내 몫까지 두대로 하자.”

“니가 위로가 될 때가 있고. 오래 살고 볼일이다. 먼저 들어가 볼란다. 너도 쪼까 생각이 많아 보인께.”

“그래.”


도산이 사라지고 남은 맥주를 홀짝이며 땅거미진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수명이 다 되 깜박이는 가로등 아래 풋풋해 보이는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주인 잃은 강아지가 밤이슬을 피하려 공원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움직이는 사물을 쫓아 시선을 옮기다가 멀리 보이는 빌딩 옥상 광고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파라다이스전자 경쟁사 핸드폰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유진.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밝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녀 또한 해산에게 이용당한 걸 알기에 그날의 분노는 거품처럼 꺼져 버렸고 애잔함 만이 감돌았다.

측은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 또한 목적이 있었고 보란듯이 달성도 했으니 이용당했다는 더러운 기분만 같으리라 공감하는 것이다.

그는 명호를 이용해 뭘 계획했을까?

명호는 그의 계략을 간파하고 이러는 게 아닐까?

그가 구슬 조각의 능력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자 생각이 많아진다.

박장화 씨의 시계를 훔친 이도, 기억을 지워버린 이도 그 일지 모른다 생각되자 입술이 떨리고 땅을 긁던 발은 멈춰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께 앙심을 품은 그라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구슬 조각을 취하려는 목적이 뻔해 걸음엔 망설임이 사라졌다.

밤이 깊어 질수록 한기가 얇은 옷을 뚫고 서린다. 하지만 새로운 궁금증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명호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직접 알아내면 그만.

기억은 찾았고 더는 명호에게 기댈 순 없어, 몸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



“네가 우리집엔 웬 일로?”

“해산오빠 불렀는데 왜 네가 나와?”

“명호씨가 너 올 거라 그랬는데 설마 진짜일 줄이야.”

“뭐? 명호가?”


도대체 언제까지 숨기려는 속셈인지.

그의 도를 넘은 걱정에 한차례 짜증이 솟구쳤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면 명호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은 거부했고 이젠 훼방까지 놓고 있었다.

당장 쫓아가 유혈사태를 일으키는 한이 있어도 그의 입으로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해진이 입을 열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 탓에 돌아 서려다 멈춰야 했다.


“기억을 찾았다지?”

“어떻게 알았어?”

“정말 놀랍다. 말이 사실일 줄이야.”

“뭘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네 형은?”

“아버지께 된통 깨지고 지방으로 내려 갔어. 당분간 서울엔 얼씬도 못 할 거야. 그런데 우리형 아니야.”

“형이 아니다니?”

“네 기억을 지운사람 우리형 아니라고.”

“뭐?”


그가 아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해진은 또 어떻게 안 건지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죽도록 싫어하는 명호가 알려줬을리 없는데, 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알수 있는 방법이 없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에겐 숨기고 연적에게 알여준 심보는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한동한 멍하니 그의 얼굴만 빤히 바라보게 되었다.


“솔직히 아직 믿기지 않아.”

“나는 네 말이 더 믿기지 않는다. 너 형 싫어하잖아. 감싸고 도는 이유가 뭐야?”

“감싸긴 없는 이야기도 부풀려 말하고 싶고만.”

“그럼 누군데? 넌 누군지 안다는 소리야?”

“알지. 명호 씨가 숨긴 이유도. 대신 말해달라 부탁한 이유도.”

“왜?”

“널 봐서라도 용서하란 뜻이겠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 안다는 듯 대화를 잇는 그도 이 모든 상황이 명호의 계획이란 말도. 하지만 그가 대화를 이었고 믿을 수 없는 진실에 더는 궁금해할 수 없었다.

상상도 못한 인물이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통에 사고는 정지하고 다리는 힘없이 풀려 그럴 수 없었다.


“네 기억을 지운사람, 날 제물삼아 우리 집안에 선전포고하려던 사람, 바로 네 아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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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3 0 11쪽
72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0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9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1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17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0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4 0 11쪽
»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3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3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4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6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2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7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6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5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6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6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7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2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0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19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8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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