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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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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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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1,635

작성
23.07.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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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1화. 그녀의 이야기.

DUMMY

71화. 그녀의 이야기.



“야 괜찮아? 정신 차려!”

“허···. 헉. 허···. 헉. 괜찮을 겁니다. 물을 많이 먹어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것뿐입니다.”


백사장에 명호를 눕힌 김실장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그는 아직 숨이 진정되지 않는지 대자로 뻗어 한참을 숨을 몰아 쉬었다.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창백한 명호의 낮 짝을 보고 있자니 걱정되 도무지 진정 할 수가 없었다.

명호를 제외하고는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어떡해! 죽은거 아니야? 누가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나는 명호의 발다리를 주무르며 몇 번을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볼에 부딪히는 얕은 호흡이 느껴지고 맥박은 점점 일정해 지고 있었다. 하지만 깨질 않으니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괜한 말 때문에 이지경이 됐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나는 명호의 기억을 토대로 심폐소생술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녀석의 주둥이가 마중 나와 있다. 마치 내가 무얼 준비하는 지 알고 있다는 양.

때때로 마른 침을 삼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안정된 호흡과 혈색을 확인하고 거칠게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죽어! 그냥 죽어!”

“커허허헉. 숨 먼저 불어넣어 주고 가슴 압박은 30회만···.”


명호는 트라우마보다 강한 충격에 오징어처럼 몸을 베베 꼬아댔다.

나는 놈의 장난에 놀아 났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이번엔 발로 심폐소생술을 발로 펼쳐 보였다.

두어번 발길질을 견디던 그가 데구르르 굴러 전신에 모레를 묻혔다. 그리고는 더는 폭력을 견딜 수 없다며 제 업적을 방패삼아 날 제지했다.


“신발! 여기. 그러니 그만 때려!”

“한 번만 더 그러기만 해!”

“미안, 네가 너무 걱정하는 거 같아서.”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걱정했을 날 위한 배려인 줄 알기에.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죽을 뻔한 사실을 자각한 모양이다.

내가 웃으니 몸을 움크려 맘껏 마신 바닷물을 게워 냈다. 그리곤 괜찮다며 걱정말라며 손을 저어 보였다.

혹시 또 장난치는 게 아닐까? 이번엔 반응하지 않았다.


‘오돌돌돌. 오돌돌돌.’


가지가지한다.

양치기 소년이 된 그가 미덥지 못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까지 부딪히며 떨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추운데 젖기까지 했으니 그럴 만두 하지. 나는 이대로 있다 가는 정말 큰일 날 거 같아 이동을 서둘렀다.


“실장님, 우선 차로 가야겠어요.”


벗어 두었던 코트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 꼭 껴안아 체온을 나눴다. 그리고 떨림이 진정되자 무릎에 눞혔다.

차 안, 히터로 몸을 녹이자 노곤노곤 했던지 명호가 금세 잠이 들었다.

아이같이 해맑아 보이는 얼굴.

원피스가 젖고 흙 묻은 뺨을 부벼 지저분해졌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견하다는 생각만 들 뿐.

나를 위해 제 트라우마까지 이겨내며 신발을 건져온 그가 오늘따라 유독 멋져 보였다.

혼자 사색에 잠기니 생각이 많아진다.

파도에 휩쓸려 멀어지는 신발. 그리고 놓지 못한 나.

그런 나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명호를 보고 있자니 그간의 유유부단했던 행동들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복수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놓지 못한 나.

이로 인해 겪게 될 문제와 혼란이 떠 오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아빠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핏줄을 핑계로 외면했던 걸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명호의 젖은 머리를 쓸며 언제 변해 버릴지 모르는 마음을 다잡았다.

뒷 자석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늘 날 감시했던 여 감시자가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생쥐꼴이 된 김 실장을 대신해 말없이 악셀을 밟았다.

적막한 차 안.

라디오도 꺼진 차는 고요하기만 했다.

내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그녀 또한 운전하는 동안 내내 말이 없었다.

5분만에 별장에 도착하고 뒤따른 차들이 양 옆으로 멈춰 섰다.

나는 먼저 내리려다 룸 미러에 비친 그녀 얼굴을 보고 잡았던 문고리를 놓았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

모른척 하려다 엉덩이를 붙이고 먼저 입을 뗐다.


“이름이 뭐예요?”

“참,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몇 번 물었던 거 같은데.”

“그랬나? 진숙입니다. 김진숙.”


진숙은 멍석을 깔아 줬음에도 당찬 성격과 달리 말하기를 주저했다.

직업 특성상 규칙인 모양인지 한참을 밍기적 댔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자 그제야 그녀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무 의외의 이야기.

주제 넘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아버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진숙씨가 할 말은 아닌거 같은데.”

“그래서 망설였는데, 해야겠어요. 좋은 분이에요. 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내 겐 더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걸까? 하지만 중요치 않았다.

뜬금없이 이 말을 했다면 이유가 있을 터, 더 듣고 싶었다.


“제게 한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전 의원님을 믿어요.”

“세뇌라도 당했어요? 사이비 교주도 아니고. 맹목적으로 믿는 이유가 뭔가요?”


창가를 두르려 나오라는 김 실장의 제스쳐를 확인한 그녀가 말하려다 멈췄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 일어서려는 그녀를 눌러 앉혔다.

김 실장이 어둡게 썬팅된 차량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대답을 독촉했다. 먼저 말을 꺼냈으니 꼭 듣고 싶었다.


“화난 거 아니예요.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왜죠?”

“’사랑의 종집’ 저희 원장님이 운영하던 고아원 이름이예요. 지금은 수도권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죠.”

“여기 사람들 다 거기 출신인가?”

“아니요. 저랑 실장님만.”

“그래서요?”

“의원님 덕분에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은혜 갚으려고 뒤치다꺼리 하시는 거고.”

“아니요. 그분은···.”


때마침 김 실장이 창을 또 두드리고 진숙은 말하려다 말고 뒷말을 줄였다.

좀 전에 들어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 하지만 앞으로 며칠을 더 같이 지내야 할 사람이니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룸미러에서 시선을 떼자 대답을 독촉했다.


“말 하다 말고 어디가요. 하려던 말마저 해요.”


그녀는 어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제 속에 있는 말을 모두 꺼냈다.

의원님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거라는 이야기부터 과거를 거슬러, 모시게 된 배경까지.

긴 세월의 이야기를 되도록 짧게 들려주었다. 생략이 많았지만,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 실장이 들려준 이야기와 이어진 이야기라 곧잘 알 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아빠는 어쩌다 초심을 잃었을까?

30분 전만해도 혈육의 정은 잊기로 맹새 했는데, 순박한 옆집 아저씨로 묘사된 아빠와 같은 모습의 기억에 조금 흔들렸다.

무슨 계기로 이리도 변한 건지 알 수 없어 뜯긴 손톱만큼이나 상처가 아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김 실장이 차 안으로 고개를 내 밀었다.

더 고민한다 해서 바꿜 것도, 나아질 것도 없어 명호를 흔들어 깨웠다.


“다 왔어. 그만 일어나!”

“어···. 벌써?”

“왜? 몸이 안 좋아?”

“추운 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몸이 으슬으슬 오한이 드네. 그래도 한 숨 자면 나아질 거야.”


명호는 창백한 얼굴로 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위태로 보여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장난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씻지도 않고 쇼파에 엎어지는 모습을 보자 의심은 한달음에 달아났다.

탈 나는 건 아닌지. 두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저체온증은 아닌 것 같지만, 따뜻한 물에 몸이라도 녹여야 할 거 같다.

나는 재빨리 욕조에 물을 받고 엎어진 그를 깨워 욕실로 밀어 넣었다.


“5분만 이따가.”

“젖은 체로 오래 있으니까 그렇지. 빨리 들어가!”

“1분만.”

“맞고 들어 갈래? 그냥 들어 갈래?”


터벅터벅 걷다 휘청이는 명호.

정말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인다. 저대로 욕실에서 객사하는 건 아닌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가야 했다.


“뭐하는 거야?”

“빨리 씻기고 병원 가려고.”

“그런데 왜 들어 오냐고.”

“볼 거 다 본 사이에 부끄러워하기는. 다른 뜻 없으니까 들어가기나 해!”

“아무리 그래도···.”


열기에 상기된 두 뺨.

빤스 바람으로 좁은 욕조에 몸을 구긴 그는 창피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스물여섯이나 처먹은 남자가 부끄러움이 왜 그리 많은지 그는 싫지 않으면서도 어색해했다.

내가 유혹하고 있다는 걸 녀석은 알까?

부끄러워 수증기에 내 볼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행여나 사람 많은 이 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벌일까 안정을 찾은 그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씻겨 준다며.”

“생각보다 멀쩡하네. 스스로 씻어!”

“좋다 말았네.”


붙잡고 같이 씻자 하면 역사가 새로 쓰일지도 모르는데, 소심한 놈은 그러지 못했다.

키스를 허락해 줘도 겨우 눈만 감는 놈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를 잘 알기에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고구마 100개 처먹은 달팽이보다 느린 진도는 아쉽지만, 장소도 상황도 여의치 않으니 참아야 했다. 그런데 첨벙이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손을 잡고 당긴 명호.

예상과 다른 용기 있는 행동에 울대를 지나 침이 한움큼 삼켜졌다.


“은하야.”

“왜···. 왜···. 뭐···. 뭐 하는 거야?”

“칫솔이 없어서 그러는데, 좀 사다 줄···..꼬로로록.”

“죽어! 그냥 나가 죽어!”


이 상황에서 칫솔 타령?

눈치 없는 놈의 머리를 사정없이 눌러 응징했다.

멍석을 깔아 줘도 아무것도 못하는 쪼다 병신이 뭐가 좋다고.

나는 현관문까지 잠그고 혼자 들뜬 스스로를 탓하며 거칠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막 욕실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명호가 평소와 달리 진중한 목소리로 부른다. 괘씸해 모른척하려다 남은 미련이 뒤돌아 세웠다.


“어떻게 할 지 결정은 내렸어?”


저 말을 하려 이리 뜸을 들였던 거였구나!

나는 혼자 빠졌던 발칙한 상상을 털어버리고 녀석처럼 진지하게 답해 주었다.


“글쎄.”

“아버님은 물러서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누가 속 시원하게 알려 줬으면 좋겠다.

이게 옳은 결정이라고 날 위한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람이 명호였으면 했다. 하지만 차마 되묻지 못했다.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잘 모르겠어. 아직 고민이야. 아마 뱉은 말을 지키지 않을까?”

“넌 결정만 내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욕조에 누워 팬티만 걸친 사람의 말이라 그닥 믿음이 가진 않는다. 그러나 안심은 되었다.

헐벗은 사람 치곤 퍽 진정성 있는 표정이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다면 나도 결정을 내려야겠지.

차 안, 그의 머리를 꼼지락거리며 되새겼던 맹새를 이제야 실천할 마음이 생겼다.

갈팡질팡 쉽게 휩쓸린 결단이 깊게 뿌리내린 것이다.

이게 옳은 판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 밖에 없는 딸로써 마땅히 되 찾아야 할 권리임에 틀림없다.

나는 다시 욕조 옆에 앉아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세월이 지나 언젠가 이 결정을 후회할 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지 모르겠다.

믿고 싶다.

특별한 계기가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으니 이 또한 변화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막연하지만, 그리 믿고 싶었다.

내 기억을 아빠에게 주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진심이 통하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보았다.


“너 도산의 팔찌 가지고 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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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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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 그의 이야기. 23.07.11 13 0 11쪽
» 71화. 그녀의 이야기. 23.07.10 11 0 12쪽
71 70화. 그의 이야기. 23.07.09 10 0 14쪽
70 69화. 그녀의 이야기. 23.07.08 11 0 13쪽
69 68화. 그의 이야기. 23.07.07 18 0 12쪽
68 67화. 그녀의 이야기. 23.07.06 10 0 12쪽
67 66화. 그의 이야기. 23.07.05 14 0 11쪽
66 65화. 그녀의 이야기. 23.07.04 13 0 12쪽
65 64화. 그의 이야기. 23.07.03 13 0 12쪽
64 63화. 그녀의 이야기. 23.07.02 18 0 13쪽
63 62화. 그의 이야기. 23.07.01 14 0 12쪽
62 61화. 그녀의 이야기. 23.06.30 16 0 14쪽
61 60화. 그의 이야기. 23.06.29 12 0 12쪽
60 59화. 그녀의 이야기. 23.06.28 17 0 14쪽
59 58화. 그의 이야기. 23.06.27 16 0 13쪽
58 57화. 그녀의 이야기. 23.06.26 16 0 14쪽
57 56화. 그의 이야기. 23.06.25 16 0 14쪽
56 55화. 그녀의 이야기. 23.06.24 16 0 13쪽
55 54화. 그의 이야기. 23.06.23 16 0 13쪽
54 53화. 그녀의 이야기. 23.06.22 17 0 14쪽
53 52화. 그의 이야기. 23.06.21 14 0 14쪽
52 51화. 그녀의 이야기. 23.06.20 14 0 15쪽
51 50화. 그의 이야기. 23.06.19 18 0 11쪽
50 49화. 그녀의 이야기. 23.06.18 22 0 13쪽
49 48화. 그의 이야기. 23.06.17 16 0 12쪽
48 47화. 그녀의 이야기. 23.06.16 20 0 14쪽
47 46화. 그의 이야기. 23.06.15 19 0 15쪽
46 45화. 그녀의 이야기. 23.06.14 18 0 13쪽
45 44화. 그의 이야기. 23.06.13 18 0 13쪽
44 43화. 그녀의 이야기. 23.06.12 2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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