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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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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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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2,567

작성
21.11.1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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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배신#2

DUMMY

끝없는 상념으로 빠져드는데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선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차례를 기다린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횡설수설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어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외딴곳으로 돌았던가? 이제 어떻게 이들과 어울려야 한단 말인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낌새가 이상해서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니 손겸선이다. 곽상진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손겸선이 말을 시작하면서 곽상진에게 아는 척을 한다. 손겸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결국 손겸선이 몹쓸 일을 당한 것도 결국 내 탓이 아닌가? 어떻게 지냈을까? 사정을 들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얼추 소개가 다 끝난 모양이다. 사회 보는 이가 건배 제의를 하며 각자의 잔에 술을 따를 것을 권한다. 옆에 있던 기생이 술병을 들고 다가붙는다.

‘나으리. 잔 받으세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시는 분치고는 너무 표정이 어두우세요.’

곽상진이 술을 따르는 기생을 쳐다본다. 기생이 마주 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제가 잘못 보았다면 용서하시고 오늘은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사회 보는 이의 선창에 따라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를 외친다. 건배가 끝난 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서로 술잔을 주고받느라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고 나자 악기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한바탕 연주가 끝나고 나서 사회 보는 이가 손뼉을 치면서 앞으로 나서 목소리를 높인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시를 한 수씩 읊도록 하겠습니다. 순서는 맨 막내부텁니다. 맨 말석에 앉아 있는 유갑석 장군부터 하는데 그다음에는 그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그다음에는 그 옆 사람이 이어받고 그다음에는 그 건너편 사람이 이어받는 식으로 진행을 하겠습니다.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해 주시기 바라며 오늘 시제는 봄입니다.’

곽상진은 정신이 퍼뜩 드는 듯하다.

‘유갑석? 갑석이가 어찌 이곳에?’

맨 끄트머리 자리를 보니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유갑석이다. 곽상진이 유갑석을 쳐다보자 유갑석이 아는 척을 한다. 곽상진도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악기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잠시 시구를 떠올리느라 생각에 골몰하는 표정들이다. 드디어 유갑석이 일어서자 악기 소리가 잠시 멈춘다.

‘봄이 왔도다. 봄이 왔도다.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부터 다르구나.

나뭇가지 끝에서부터 봄이 돋아나는구나.

골목길 뛰노는 아이들 소리가 흥겹고

들판을 둘러보려는 농부 얼굴이 밝구나.’

제법 박자까지 맞추어가며 시구를 읊고 나자 참석자들이 손뼉까지 쳐가며 환호를 하고 기생들이 악기 소리에 맞춰 후렴구를 읊는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곧바로 이어받는다.

‘어제 들판에 나가보니 햇볓 따사롭고

보리 순에 파란 기운이 돋아나오는구나!

강가에 나가보니 겨우내 묵은 얼음 흘러가네!

새소리에 풍년을 부르는 소리가 묻어나고

장터에 시끌벅적 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드디어 곽상진의 차례가 돌아왔다.

‘벗님네들. 겨울새 깃을 접어 북으로 돌아갈 채비 하고

논배미 구석에는 개구리가 깨어날 채비를 하네

이미 깊게 얼어있던 개울물은 질펀하게 녹아내리는데

벗님네들. 기지개를 켜세. 기지개를 켜세.

이제 긴 겨울 다 지나고 봄은 기어코 올 것이로세.’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시고.’

곽상진은 자신의 차례가 지나고 나자 긴장이 확 풀어지느라 그러는지 다시 오만가지 상념에 사로잡힌다.

‘곱단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왜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단 말이냐?’

오랜 시간 독수공방하도록 만들어 놓고 다정한 한마디 말도 없이 내버려 두었던 자신을 책망해 보지만 그런 걸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형이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복수하겠다면서 사방으로 뛰어다녔다니. 남도에 내려와서 그와 똑같은 말을 할 때 설마 하며 한 귀로 흘렸는데.

갑자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기생들이 일어나 앞으로 나가 춤을 추며 돌아가고 소리꾼들이 목청을 높여 소리를 해댄다. 이제 공식 행사는 얼추 끝난 모양이다. 이제 참석자들이 한데 어울려 돌아가며 목소리를 드높인다. 퍼뜩 정신을 차리는데 누군가가 슬쩍 옆자리에 와 앉는다.

‘좌대언님.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손겸선이다.

‘어이 반갑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가? 가내 두루 평안하시고.’

‘어이구. 좌대언님. 아니 대제학 님이시지요? 며칠 전에 왕명을 받고 급히 올라왔습니다. 저는 함경도 궁벽한 산골에서 고생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자네는 함경도로구먼. 나는 남도에서 5년이었는데. 함경도는 너무 궁벽한 곳이라 진짜 고생이 많았겠구먼. 미안하네. 원인 제공을 한 내가 신경도 써주지 못하고.’

‘좌대언님이야 뭔 죄가 있습니까?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죽일 놈은 바로.’

손겸선이 갑자기 목소리를 죽이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인다.

‘그 인간이지요. 그래서 결국 죄로 가지 않습니까? 변을 당해서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다고 하니 하늘도 무심치 않은 거지요.’

‘말조심하게. 새가 듣겠어. 그렇게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다고 해도 아직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야. 아예 다른 자리에서 그런 소리 비치지도 말게.’

곽상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더욱 소리를 낮춘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마 이 자리도 그 인간에게 핍박받았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양입니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피바람이 한번 불 것 같아요.’

‘그런가? 나는 그 김자량이 문병을 할까 생각했는데.’

‘좌대언님 속도 깊으십니다. 가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5년 동안 귀양살이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시려고요?’

‘사실 생각해 보면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우리를 더는 손대지 않고 고이 모셔둔 것만 해도 백번 감사할 일이지. 자 한잔하게.’

손겸선이 술잔을 받으며 못내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듯하다.

‘그렇긴 하네요. 속도 좋으셔. 좌대언님도 한잔하시지요.’

술잔을 받는데 억센 손아귀가 겨드랑이를 파고든다. 고개를 돌리니 유갑석이다.

‘마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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