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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님의 서재입니다.

이 경계 어찌 아니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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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ighd
작품등록일 :
2021.08.24 10:52
최근연재일 :
2021.11.1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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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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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72,567

작성
21.10.29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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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9장 청자#7

DUMMY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영감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곽상진을 끌고는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간다. 허름하기는 하지만 안에는 꽤 넓다. 밝은 곳에 있다가 집 안으로 들어서니 어둠침침하고 집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츰차츰 눈에 익어오는 방안의 모습은 낯설다. 더벅머리가 몇몇 물레를 돌리며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리고 손에는 거무스름한 흙덩이를 주무르고 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꽤 규모가 큰 가마터인 듯하다.

‘이곳은 관에서 운영하는 가마터입니다.’

‘아. 그렇군요.’

영감이 안내하는 탁자 앞에 앉았다. 의자라 하기에는 좀 뭣하기는 하지만 나무둥치를 멋없이 잘라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화로 위에서 물이 끓고 있는 약탕기에서 찻가루가 들어있는 주전자에 물을 따른다. 차 향기가 은은히 피어오른다. 탁자나 의자는 형편없이 투박하지만, 도자 주전자나 찻잔은 언뜻 보기에도 명품이다.

‘명품입니다.’

곽상진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감탄을 한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명품이지요. 이런 곳이 아니면 우리가 같은 천것들이 감히 가까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서 한 잔 드시지요? 혹시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지?’

‘아니. 뭐 특히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청자의 고장인 이곳에 와서 3년이 넘었는데 가마터도 한 번 둘러보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가마터 구경도 좀 할 겸 이리 어려운 부탁을 했습니다.’

탁자에서 일어나 물레질을 하는 더벅머리들 옆을 지난다. 어떤 친구는 초보 딱지를 면하지 못한 듯 흙덩이의 중심을 잡지 못해서 그대로 뭉그러뜨리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솜씨 좋게 그릇 모양을 만들어낸다. 밖으로 나오니 햇볕이 쨍하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 한쪽에는 도자기 파편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 진흙을 이겨 붙인 가마가 여러 개 기슭을 따라 죽 늘어서 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늙은이를 따라 가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입을 벌리고 있는 가마에는 엄청난 불길이 일어나 가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더벅머리 하나가 가마 앞에 서서 연신 장작을 집어넣고 있고 중년의 사내 하나가 수레로 장작을 날아오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집 있는 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 멀어서 무슨 얘기인 줄은 모르겠으나 늙은이는 그 소리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그 표시로 팔을 들어 크게 흔들어 보이고는 곽상진에게 돌아선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그동안 만든 도자기를 내가는 날이라서. 애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제가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모양 꼭 붙어서 잔소리를 해야지. 그러지 않았다가는 그동안 들인 수고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제가 붙어 다니며 설명을 해 드려야 하는데.’

‘아니 됐습니다. 괜히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십시오. 구경하다가 돌아갈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구경 하십시오.’

늙은이가 자리를 비우자 가마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가마 속에 장작을 던져 넣는 더벅머리 옆에 섰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더벅머리 옆에 쌓아 놓은 장작에서 잘 마른 참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묵묵히 장작을 가마에 던져 넣던 더벅머리가 곽상진을 흘끗 쳐다본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목둘레에 걸쳐 놓은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고 있다. 곽상진은 마침 옆에 놓여있던 참나무 둥치를 끌어다 앉았다. 앉아있기 맞춤하게 잘라 놓은 듯하다.

‘어르신. 조금 비켜 앉으세요. 역풍이 불면 가마가 불길을 토해낼 수도 있으니 조금만 비켜 앉으세요.’

흠칫 놀라 더벅머리를 올려다본다. 더벅머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낭랑한 목소리다. 곽상진이 추측했던 것보다는 더 나이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릴없이 조금 비켜 앉아 던져 넣는 장작을 불길로 집어삼키는 가마를 넌지시 응시한다. 뜨거운 열기가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시뻘건 불길이 피어오르며 장작이 스러져갈 때 언뜻 사람의 얼굴이 거기 떠오른다.

‘누구일까?’

그렇다 서금옥이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오롯이 피어오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시절에 혼례를 치르고 나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들 낳고 무덤덤하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왜 서금옥이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너무 엉뚱한 데 정신을 팔았는지 앉아있던 참나무 둥치가 기우뚱하며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장작을 던져 넣던 더벅머리가 일으켜 세워 주려 하는 것을 손을 내저으며 일어나 옷에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더벅머리 옆에 서서 다시 불길 속을 들여다본다. 세차게 타오르던 불길이 장작을 던져 넣으면 잦아들었다가 다시 장작을 불쏘시개로 피어오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불길에서 또 다른 얼굴이 떠오른다. 아. 주향이다. 다 피어오르지 못하고 져버린 꽃봉오리 같은 주향이가 거기 불길 속에 서 있다.

‘주향아 거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빨리 나오거라. 좋은 신랑감을 만나 행복하게 한세상을 살아야지. 그래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는 만나 보았니. 엄마와 함께 사는 그 세상은 어떤 곳이니?’

어느덧 곽상진의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옆에 서서 무덤덤하게 서 있던 더벅머리가 한마디 한다.

‘눈이 매우신가요?’

‘아니다. 못난 애비 덕에 일찍 저세상으로 떠나간 딸아이에게 바치는 눈물방울이야.’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나오는 말을 속으로 새긴다.

‘맞아. 내가 나서서 그놈에게 돌려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단 말인가. 내가 왜 이렇게 비겁해졌단 말인가?’

잠시 시선을 돌려 파란 하늘을 쳐다본다. 귀양길을 떠날 때 서럽게 울며 제풀에 지쳐 혼절하던 어머니. 차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서 그런 어머니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버지.

‘억울한 누명까지 씌워놓고 귀양까지 보내고 3년 이상 나 몰라라 하는 저런 인간을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일이 끝났는지 더벅머리가 자리를 뜬다.

‘어르신. 제 일은 끝났습니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시고 조금 떨어져서 구경하세요.’

더벅머리는 곽상진이 불구경을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내가 일을 벌인다면?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김자량을 향해 도모한다는 것은 어쩌면 달걀로 바위 치기일지도 모른다. 만약 일이 실패하고 그 사실이 내가 주도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어쩌면 비겁하다고 모든 사람이 비난하더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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